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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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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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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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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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DUMMY

27화

EP1 – 구칠월섬의 하늘


타카시로 유리는 내 작품에 대해 몇 분간 칭찬하고 사라졌다.


“정말, 진심으로, 뜻깊게 읽었습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매우 놀랐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준비한 티가 나는 한국어로 내게 몇 번이고 ‘잘 읽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다 갑자기 낯을 화끈 붉히더니 이런 말을 남겼다.


“아, 아, 제가 초면에 너무 제 말만 많았습니다.”


칭찬은 많이 할수록 좋은데.

하지만 그녀는 뭐라 대꾸할 사이도 없이 벌써 사라진 뒤였다.


“요즘 일본인은 다 저런가? 내가 이번 삶에서 일본인은 처음 만나보니 도통 모르겠네.”


그래도 확실한 거 하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철민과 나 사이에 끼어들어 내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는 것.


내게 무어라 잔소리를 늘어놓던 박철민은 심사위원석에 조용히 돌아가 있었다.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 곧 시상식이 시작된다는 안내가 행사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객석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들이찼다.

그리고 사회자의 안내와 함께 시상식이 시작됐다.


나는 주최 측의 인도를 따라 무대 옆으로 이동했다.

관객석과 무대 위가 한눈에 보이는 위치였다.


행사 진행 요원이 나에게 소리 질렀다.


“작가님, 수상 소감 말씀하셔야 하니까 뒤에서 대기하고 계실게요!”


무대 옆에 선 기분은 이상했다.


강변출판문화단지에 갔을 때도, 무진 교도소에서 이곳 구칠월 섬에 도착했을 때도, 내가 상을 탄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수상 소감을 말하기 몇 분 전이 되니 왜 그렇게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나는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내 자신의 문학이 이렇게 널리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지금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이 나 한 명의 시상식 때문에 모인 거라니.”


그러나 이 감격은 머지않아 곧 깨부숴지고 말았다.


경덕관의 기상천외한 축사가 무대 뒤까지 쏟아졌기 때문이다.


“아, 아, 이 경덕관이가 누구인지는 다들 아실 테니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그 노인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축사랄 것도 없는 축사가 끝난 다음엔 풍기영이란 사람이 올라왔다.


무대 옆에서 보는 풍기영의 몸은 어쩐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게다가 조금씩 몸을 움찔거리는 듯도 했다.


“더운가? 뭐 잘못 먹었나? 왜 저래?”


그는 이따금 뭘 잘못 먹은 사람처럼 몸을 옴싹거렸다.

건강도 안 좋은 양반이 말도 안 되는 선물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유, 유동주 작가님을 위해 추후 대학 진학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겠습니다!”


천둥소리와 같은 박수갈채가 무대 뒤편까지 쏟아졌다.

연이어 경덕관이 풍기영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거 말고 또 있잖아!”


자신의 마이크가 켜져 있단 사실에 관해 관심도 없는 말투였다.


풍기영의 등은 땀으로 다시 한번 젖었다.

폭포수와 같은 체액이 흘러내린 후에, 또 하나의 선물이 쏟아졌다.


“유동주 작가님 가족이 거주할 아파트를 무상 임대 형식으로 제공하겠습니다.”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관객석 쪽에서 또 한 번 천둥과 대포가 터졌다.


경덕관이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그가 풍기영의 등을 마구 두들기면서 말했다.


“그래, 그래. 아주 훌륭한 경영인이야. 자, 이제 내려가 보게.”


풍기영 사장은 별다른 말없이 무대 뒤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그저 황망한 얼굴이었다.


마치 가을 내 모아둔 도토리를 다 빼앗긴 다람쥐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뭐야, 왜 저런 표정이야. 그리고 지금 어디 간 거야?”


나는 황당한 얼굴로 풍기영이 사라진 자리를 쫓았다.

장학금과 아파트만 주고 사라진 사람이라니.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경덕관이 또 한 번 마이크를 들고 무언가 멘트를 외쳤다.


“자, 이 경덕관이의 축사 시간이 이렇게 끝이 아닙니다. 나보다도 더 여기서 축사를 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경덕관의 퍼포먼스를 지그시 지켜보았다.

경덕관 말고 축사를 해야 할 사람이라니.

누굴 초대한단 얘기는 못 들었는데.


“자, 여기 유동주 작가의 부모님이 오셨습니다. 이 경덕관이보다 축사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경덕관은 급기야 관객석으로부터 대답까지 끌어내려 했다.

조용하던 관객석 한편에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맞습니다! 당연하죠!”

“맞아요! 맞아!”

“당연하지! 맞아요!”


나는 소리가 터져나온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앉아있었다.


“송송태, 그리고 소년원 애들이 여길 어떻게 온 거야!?”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무진 소년원의 아이들이 거기 있었다.

송송태를 비롯한 열두 명 전원이 그곳에 착석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옆에 가만히 서 있던 강정운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그는 어울리지도 않는 윙크를 했다. 윙크라기보단 노화에 따른 한쪽 눈 떨림 증상 같았다.


“하, 하, 하하하.”


나는 헛웃음만 지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과 경덕관의 성화에 못 이겨 한 사람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나의 아버지 유상식이었다.

그가 벌벌 손을 떠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그는 단상 위의 마이크를 꽉 움켜쥐며 조금씩 말을 시작했다.


“그 사실은 제가 축사를 할 그런 무슨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저는 유동주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관객석에서 박수갈채가 또 한 번 퍼져나갔다.

찬찬한 파도 소리 뒤에 아버지의 말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가, 감사합니다.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잠시 숨을 내쉬던 아버지가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동주가 중학생일 때 갑자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자기가 쓰레기라고요.”


잠깐만.

저 얘기를 하겠다고?

내가 중2병에 걸려서 아빠, 엄마도 몰라보던 그 시절 얘기를?


나의 경악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축사는 계속되었다.


“저는 아비 된 자로서 네가 왜 쓰레기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러더군요.”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 가족이 방 2개에 사는 집안 꼴을 보라고요. 공부도, 운동도 제대로 못 하는 자기를 보라고요. 이게 쓰레기 아니면 무엇이냐고요.”


아버지의 말에 관객석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그래.

아주 열다섯 언저리에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정말 못난 사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축사가 관객석의 무거운 공기를 뚫고 다시 이어졌다.


“저는 그때 제 아들놈을 혼냈지요. 네가 왜 쓰레기냐고, 무엇이 모자라냐고요. 하지만 아비 되는 자로서 가슴이 꽤 아렸습니다. 더 풍족하게 키우지 못한 죄스러움이 없다 할 수 없었지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멈췄다.

관객석에서 아버지를 응원하는 듯 낮은 박수가 퍼져나갔다.


짝짝짝-

짝짝

짝짝짝짝짝-


아버지가 두 눈가를 훔치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사실 제가 얼마 전 공사장에서 낙상 사고를 당해서 해고됐습니다. 그런데 오늘 누가 그러더군요. 그 덕에 아들놈 시상식에 왔으니 잘 된 거 아니냐고요.”


나는 아버지의 말에 불쑥 화가 솟았다.

아니, 도대체 누가 저런 망발을 내뱉는단 말이야.

그러나 아버지의 뒤이은 발언은 예상도 못 한 얘기였다.


“하지만 그게 맞습니다. 모든 일은 명과 암이 있는 거죠. 제 아들이 소년원에 갔을 때 말은 안 했지만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작가가 됐지요.”


아버지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가 한이 맺힌 사람처럼 낮고 고요하게 말했다.


“사실 제 아들이 좀 요란하게 소년원에 갔습니다.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요.”


두 눈을 감았다 뜬 아버지의 동공엔 핏발이 서 있었다.

그가 주먹을 꽉 쥐며 다시 말했다.


“저는 사실 아들내미 뉴스에 나온 댓글을 다 봤습니다. 꼴통이다. 사회의 해악만 될 거다. 저런 걸 풀어서 어디다 쓰냐, 평생 가둬라.”


아버지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가 마지막 말을 했다.


“제 아들에게 한 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그 모든 경험을 글이라는 걸로 만든 건 제 아들 본인입니다. 동주야, 너는 한 번도 쓰레기가 아니었다. 꼴통도, 해악도 아니야. 너는 언제나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작가가 된 걸 축하한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이 내 안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

사실 소년범이 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꼴통이었다.


학교가 다 인정하는 문제아.

심지어는 소년원에 들어온 흉악 소년범이었다.


내가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곤, 나 자신도 믿지 않았다.


윤동주인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량선인.

작가가 되지 못한 습작생.

친구인 몽규의 당선을 부러운 마음으로 곁눈질하던 게 바로 나였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의 첫 발걸음이 오늘 시작인 것이다.


무대에선 아버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제 아들을 환영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아버지가 축사를 끝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무대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27화

EP1 – 구칠월섬의 하늘




“준비는 다 되었느냐?”


강정운의 목소리가 내 쪽을 향했다.


구칠월문학제는 끝났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나의 출소일이 다가왔다.


“준비할 게 뭐가 있어요. 짐도 딱히 없는데요.”


나는 강정운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이 징글징글한 아저씨와도 오늘이면 마지막이었다.


“저 없다고 시 쓰는 거 게을리하지 말고요!”


나는 강정운을 향해 큰 소리로 호통쳤다.

원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보며 웃었다.


“당연하지!”


강정운은 나를 물끄러미 노려보더니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 또한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쓸 것이다. 구칠월문학상을 탄 어느 젊은 작가처럼 말이다.”


강정운은 나의 수상 소감을 내 앞에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수상 소감을 왜 얘기해요!”

“그러면 작품을 읊어주랴?”


그 사이 유머 감각이 많이 생긴 강정운이었다.

그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물었다.


“집에 가면 무엇을 할 거냐?”

“여권 사진부터 찍어야죠.”

“일본에 바로 가보려고?”

“그럴 수는 없겠지만 일단 빨리 발급 신청을 해야죠.”


강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품 안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선물이다. 집에 가는 길에 읽어라.”

“선물이요? 갑자기?”


강정운이 건넨 책은 <현대시산책>이라는 문예지였다.

그가 어쩐지 쑥스러운 표정으로 표지를 가리켰다.


“자, 봐라. 일전에 너에게 보여줬던 작품이다.”


나는 문예지의 표지를 살펴보았다.

그곳엔 믿기지 않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와, 이거 진짜예요!?”


작가의말

늦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ㅠ 27화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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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12 24.07.19 1,379 62 11쪽
26 26화 +5 24.07.17 1,355 5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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