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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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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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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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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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UMMY

10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경덕관이 제시한 마감일은 7일 남았다.

부지런히 소설을 쓰던 한낮에 뜻밖의 면회객이 찾아왔다.


“야,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야? 시간은 괜찮아!?”


나는 반가운 목소리로 면회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나를 보며 씩 맑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사람. 그 애는 박서완이었다.


“여, 잘 지냈냐?”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그 애의 모습은 낯설었다. 하지만 낯섦이 반가움을 이길 수 없었다.


“너야말로 잘 지냈냐?”


나는 무릎을 꿇고 녀석을 한 번 끌어안았다.

녀석은 쑥스럽다는 듯 나를 밀어냈다.


“아씨, 뭘 안기까지 하고 그래. 더워. 더워. 이제 날이 덥다.”

“하긴 이제 날씨가 덥긴 하네.”


녀석의 복장은 완연한 여름이었다. 반팔을 입은 팔은 까맣게 그을려있었다.


나는 괜히 박서완을 놀렸다.


“이야. 박서완 학교도 안 다니고 아주 재밌나봐? 놀러만 다니나 본데? 아주 새까맣게 탔다.”


박서완이 황당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풉. 푸하하. 그래. 놀러 다녔다. 휠체어 타고 워터파크도 가고, 휠체어 째로 바다에도 빠져봤어.”

“키야. 그거 참 대단하네.”

“그러는 유동주 너야말로 새하얗다. 무슨 겨울잠자는 곰마냥.”

“아주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고 있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박서완도 서로의 처지를 모르지 않다.


나는 이곳 무진소년원.

녀석은 병원.

둘 다 갇힌 채로 치열하게 각자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계절도 닿지 못하는 각자의 철창 안에서.


그러니 이런 쓸데없는 농담도, 쓸데없는 잡담도 재밌는 거다.

나는 박서완에게 말을 이었다.


“나, 그때 너한테 말했던 거 잘 하고 있어.”

“그거? 소설 쓴다는 거?”

“뭐, 소설만 쓰고 있지는 않고. 시도 쓰고, 소설도 써. 물론 지금은 마감이 생겨서 소설에 더 집중하고 있지만 말이야.”

“마감? 유동주 네가 마감이 생겼어? 어디 공모전이라도 내게?”


나는 박서완을 보며 입꼬리를 찡긋 올려보였다.

고작 공모전이라니.

지금 대문호가 내 글을 원하고 있다 이 말이다.


“별 건 아니고 이곳에 특강 온 작가님이 있는데 내 글이 마음에 든다고 보내보라고 하시네. 22일까지 보내달라고 하셔 큰일이다.”

“22일? 일주일도 안 남았잖아. 작가님? 그거 괜찮은 작가 맞아? 사기꾼 아니야? 수상한데?”


박서완은 장난과 걱정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긴, 그 할아버지가 괜찮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긴 하다.

별로 괜찮아 보이진 않거든.


나는 박서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근데 나도 모르게 제법 우쭐한 표정을 지었나보다.


“야, 유동주 뭘 그렇게 의기양양한데?”

“경덕관이라는 작가인데 알아? 제법 유명하다던데?”

“경덕관? 설마 그 경덕관? 감월 오는 길의 그 경덕관?”

“감월 오는 길은 뭐야?”

“최근 수능에 2번이나 기출된 소설을 모른단 말이야?”


박서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건 나였다.

수능에 최근에만 2번이 나왔다니. 수능은 죽은 작가만 나오는 거 아니야?


박서완이 나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다.


“도대체 네 소설에 뭐가 있길래?”

“볼래?”

“지금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원고지를 내밀었다.

자나깨나, 밤이나 낮이나 들고 다니는 게 원고지였다.


물론 이제는 양이 좀 많아져서 나누어 들고 다니긴 하지만 말이다.


박서완에게 건네진 원고는 다행히 초반부였다.

이해하는 것이 어렵진 않을 터였다.

서완은 입을 쩍 벌렸다.


“이야, 이걸 네가 썼다고?”


나는 답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대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유동주로서 쓴 글을 친구에게 보여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서완의 칭찬은 벗이 내게 건넨 첫 칭찬이었다.

나는 서완에게 물었다.


“어떠냐?”

“물론 나야 글은 잘 모르지만 진짜 잘 쓴 것 같은데? 머릿 속에 그림이 그려져. 안 되겠다.”

“뭐가 안 돼?”

“나도 돌아가면 그림을 좀 그려야겠어. 그리고 싶은 게 생겼어.”


나는 의아한 눈으로 서완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그림을 다시 그렸으면 했다.


내가 문학을 시작하면서 가진 소중한 소망 중 하나는 녀석과 함께 예술을 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박서완 이 녀석 지금 그림을 그릴 수가 있나?


그런데 박서완은 내 의아한 눈빛에 힘찬 몸동작으로 답했다.


“짜식, 눈치가 없어. 이거 안 보이냐?”


녀석이 번쩍 들어보인 건 목발이었다.

그 애는 목발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박서완이 말했다.


“끄, 끄, 끄으으읍! 너가 재활하라고 해서 열심히 했다!”


녀석은 끙끙거리며 일어났다.

급기야는 목발을 짚고 면회실을 몇 발자국 걷기까지 했다.


“봐. 이제 내 발로 걸을 수 있어!”


고작 몇 걸음 내딛었을 뿐인데 녀석의 전신에 비처럼 땀이 쏟아졌다.


나는 박서완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부축을 하지 않으면 곧 넘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 박서완! 괜찮아!?”

“돼, 됐어. 놔둬봐!”


박서완은 나의 부축을 거절하고 스스로 자리로 돌아왔다.

사람이 걷는다는 일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구나.


나는 송연히 땀방울을 흘리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박서완은 내게 말했다.


“나 이제 학교도 다시 다닐 거야. 그림도 당연히 다시 그리고. 아파보니까 알겠더라.”


나는 녀석의 두눈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작은 두 눈에 맺힌 햇빛이 번쩍거렸다.


“뭘?”

“결국 누구의 뜻대로 살 순 없는 거야. 아빠가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순 없어. 언제 죽을 줄 어떻게 알아. 내가 이렇게 마비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네 말이 맞아. 힘껏 재활하고, 힘껏 그릴 거야. 아무도 방해 못 하게.”


나와 녀석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웃던 박서완이 나를 향해 물었다.


“뭐, 여기서 필요한 건 없어? 컴퓨터를 못 써서 원고지로만 글 쓰는 거야? 지우개나 연필이라도 사다줘? 부탁할 건 다 해. 나 이제 진짜 멀쩡해. 예전에 비하면 날아다니는 수준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했다.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가는 부탁이 있긴 했는데 지금 박서완에게 해도 될 런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 인터넷 하는 건 아무 문제 없어?”

“그건 손발 다 마비되고 누워있을 때도 했어.”

“살벌한 농담하지 말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혹시 그러면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


**


박서완은 이틀도 안 되어 내가 한 부탁을 성공했노라 전화했다.


들뜬 목소리가 공중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아무튼 네가 부탁한 거 다 했어. 그분 무진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사시던데?”

“아, 그래? 고맙다. 고마워.”


녀석과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나는 원장실을 향했다.

교과 시간이긴 했으나 무슨 상관이랴. 소설을 쓰느라 적당한 자유 시간을 보장 받은 나였다.

그런데 그때, 한 교도관이 내게 다가왔다.


“야, 유동주 너 수업 시간인데 어디를 혼자 싸돌아다녀.”

“소설 쓰러 가는데요?”

“너 지금 가는 방향 원장실이 잖아. 원장실에 소설 쓰러 가?”

“원장님이 오라고 하셨는데요.”


잠시 입맛을 다시던 교도관은 순순히 나를 보내줬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건 권력인가.


내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는데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원장실의 문은 닫혀있었다.

육중히 닫힌 나무문을 두어 번 노크했다.

아무런 대답도 안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분명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젖혔다. 안에서 원장 강정운은 고개를 처박고 글을 쓰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말이다. 심지어는 내가 안에 들어온 것조차 알지 못했다.


연필 서걱거리는 소리가 원장실의 공기를 묵묵히 뒤흔들 뿐이었다.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닌데. 스읍. 다른 표현이······”


혼잣말을 하는 강정운의 뒤로 나는 몰래 움직였다.

원고지엔 그의 시가 보였다.


죄수


소년들은 죄수복을 입으면

소년이 아니라 소년범으로 변신한다

그 옷을 입기 전과

그 옷을 입은 후

그들은 무슨 차이가 생기는가

누군가가 누군가를 때리고

누가 누구에게 훔쳤고

죄를 용서하거나

죄를 용서받고

소년원의 교목은 모든 걸 헤아리고 있다

내가 들고있던 짐을 기꺼이 나눠든 이 아이는 한 달 전 금은방을 털었다

원고지에 시를 쓰는 이 아이는 한 달 전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팼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웃음 소리는

죄의 몫인가, 사람의 몫인가

철창 달린 방에 일군의 아이들이 밤잠을 자러 들어가고

무거운 문을 닫는다

아이들은 감옥에 갇히고

나는 세상에 갇힌다


나는 그의 시를 유의깊게 지켜보았다. 이곳 무진소년원에서 아이들들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시.


소년들에 대한 마음과 세심한 시선이 시 안에 깊게 묻어있어 감동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마지막 두 줄의 결구였다.


‘갇힌 것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까지 갔구나.’


평범한 묘사와 지나친 서술이 아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이 퍽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을 보니 어쩐지 나도 시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소설을 빨리 마감하고 시 쓰기에 조금 더 몰두해 보아야지.


이번 생에 해야 할 글쓰기가 많다는 것이 뿌듯하구나.


나는 강정운의 시를 조금 더 바라보다가 대뜸 칭찬을 건넸다.


“이 시 진짜 좋은데요?”


중늙은 남자는 화끈 낯을 붉히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제야 그의 눈에 내가 보였나보다.


“언제 들어온 게냐.”


당황하지 않은 척 목소리를 내리가는 강정운의 그 모습이 웃겼다.


“문도 몇 번이나 두들겼어요. 안에 들어왔는데도 못 알아보셔서 뭐하나 잠깐 보았죠. 시는 우연히 본 거예요. 몰래 본 거 아니예요.”


나는 그가 뭐라 따져묻지도 않았지만 일단 변명을 내뱉었다.

그가 몹시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계속 얼굴을 매만졌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강정운이 내게 물었다.


“이 시 좋으냐?”

“네.”

“정말?”


원장 강정운으로서 나를 대할 때랑은 사뭇 다른 태도가 흥미로웠다.


자신의 글에 대해 머뭇거리고, 또 칭찬을 갈구하는 그 모습.


모든 글 쓰는 사람은 글 앞에서는 조금씩 어린아이 같아진다.

나는 강정운에게 말했다.


“솔직히 묘사를 통해 생각을 더 보여줬으면 하는데, 이 안에 담긴 생각과 시선이 재밌어요.”

“그, 그래?”

“특히 마지막이 화자가 자신을 세상에 갇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재밌네요. 소년범들만이 이곳에 갇힌 게 아니라 사실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어딘가에 갇힌 존재라고까지 생각이 뻗어나가는 게 재밌어요.”


강정운은 말없이 기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잠시 일어나더니 원장실 한편의 서랍으로 걸어갔다.


-드르르륵!


거친 소리와 함께 열린 서랍에서 그는 웬 사탕을 꺼냈다.

그것은 다름아닌 무지개 빛깔의 사랑방 캔디였다.


“호롱방 캔디는 왜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Goat라는 바로 그 사탕.

강정운은 캔디통을 통째로 들더니 내게 손짓했다.


“손 가져와라.”

“네, 네?”


그는 통째로 내 손에 캔디를 부었다. 오색 빛깔 찬란한 캔디가 내 손에 와르르 쏟아졌다.


“다, 당뇨 걸려요! 이렇게는 많이 못 먹어요!”

“글 쓰려면 당분이 필요하지.”


역시 어르신인가.

무언가 먹는 걸로 호의를 표현하는 게 귀엽기는 한데.


나는 낱개 포장된 캔디를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었다.


“크흠. 알겠습니다.”

“뭐, 유동주. 글은 잘 쓰고 있느냐? 경 선생님께서 제시한 마감 기한이 얼마 안 남았을텐데?”

“그래서 죽을 똥 살 똥 쓰고 있죠.”

“그래. 경 선생님도 네가 글을 가져오기만을 손 꼽아 기다리고 계실 거다. 그분이 누구의 글을 기다린다는 거는 대단한 거야.”


말을 마친 그는 잠시 내 눈치를 살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의 몸짓이었다.

나는 강정운에게 물었다.


“뭐,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잠시 고민하던 정운은 내게 말했다.


“그 소설만 열심히 쓸 거냐?”

“네?”

“소설만 열심히 쓸 거냐고. 시는 이제 영 안 쓰는 거냐?”


강정운이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시를 안 쓸 거냐고?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렸다.


작가의말

10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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