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3 17:37
최근연재일 :
2024.08.21 23:26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73,965
추천수 :
2,845
글자수 :
373,400

작성
24.07.23 22:00
조회
1,015
추천
45
글자
11쪽

34화

DUMMY

34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난생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다.


윤동주의 생에서도, 유동주의 생에서도 비행기를 타본 적은 없었다.


오죽하면 탑승 전 형, 누나에게 이런 놀림까지 듣고 온 터였다.


[동주야, 비행기 탈 때는 꼭 신발 벗고 타야 돼.]

[맞아. 맞아. 그게 에티켓이라고. 신발 벗고 슬리퍼 신고 타야 돼. 개인용 슬리퍼 지참이고.]


워낙 진지하게 말한 탓에 그 말을 믿을 뻔했다.

슬리퍼를 경지연에게 구매하러 가자고까지 했다.


[풉, 푸하하, 유 작가님, 그걸 믿으셨어요? 이렇게 보니까 딱 열 여덟이네! 푸하하하하핳]

[으, 으, 으, 유동희, 유동율!! 가만 놔두지 않겠어!!!]


나는 잡념을 털고 다시 창밖을 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관제탑이 있었고, 수십 대의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삼스러웠다.


비행기라니.


내가 비행기를 타다니.


인천에서 출발하면 두 시간이 되지 않아 간사이에 도착할 터였다.

그 시간이 너무 이상했다.


이전 생에선 교토에 가기 위해 기차, 배를 갈아타며 이틀을 꼬박 보냈다.


그렇게 경성에서 교토로.

낯선 육 첩 방으로.


오래된 내 청춘은 화물칸 짐짝으로 실려갔었는데.


“이틀이 두 시간이 되다니······.”


나가레보시 측은 내게 도쿄가 아니라 교토로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곳에서 시집 관련해 미팅을 진행하고, 출간 관련 미팅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두 시간 뒤면 내 시집의 초안을 보는구나.”


나가레보시 측은 교토에 도착하면 1교 원고를 인쇄하여 주겠다고 전달해왔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을 기다렸다.


“빨리 가자. 가자. 빨리 일본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때, 옆옆칸으로 한 사람이 왔다.


3개가 연결된 좌석 중 2개가 비워져 있었는데, 그 2개 좌석 모두가 그 사람의 차지였다.


한 좌석엔 본인이 앉았고, 한 좌석엔 악기를 앉혔다.

첼로인가.

아마 크기를 봤을 때는 첼로로 추정됐다.


‘오, 클래식하나? 클래식 하는 사람들은 악기도 따로 좌석을 잡는구나.’


남이 악기 앉히는 것까지 신나는 나였다.


하지만 기쁨이 고역으로 바뀌는 데엔 고작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으, 으, 으, 으으으윽.”


내게 비행기 멀미가 있단 사실은 처음 알았다.


아니, 기차도, 자동차도, 배도, 다 멀쩡한데, 왜 비행기만?


그 의문도 오래 할 수 없었다.

메스꺼움이 삽날처럼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우, 우, 우우우욱.”


내장을 다 게울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자리를 박차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러나 화장실에선 헛구역질만 나올 뿐, 아무 것도 쏟지 않았다.


“제, 제기랄.”


온몸에서 쏟아지는 건 한 바가지 식은땀 뿐.

땀으로 홀딱 젖어 자리에 앉았을 때, 옆옆좌석의 사람이 내게 손을 길쭉하게 뻗었다.


“네, 네?”


당황한 채 대답한 내게 그 사람은 손을 흔들었다.


“ガムは酔い止めに良いです.”

“네, 네?”


자세히 들어보니 그 말은 일본말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리둥절하게 대답했다. 물론 일본어로 말이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고맙습니다.)”


그녀가 내게 건넨 건 껌이었다.

박하향의 알싸한 냄새가 내 목을 채웠다.

그 화한 기운과 함께 멀미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신기하네.”


나는 그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가볍게 목례로 대답했다.


자세히 보니 그는 남자가 아니라 내 또래의 여자였다.

검은 마스크를 푹 눌러쓴 까닭에 성별을 알기 힘들었을 뿐.


나는 눈을 감은 채 멀미 기운을 좀 다스렸다.


질겅-

질겅 질겅-


껌을 씹을수록 조금씩 기운이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괜찮아진 내가 슬며시 눈을 떴을 때, 옆옆 좌석에서 여자가 한국어 책을 조용히 읽고 있었다.


그녀는 미간을 구기며 책을 거의 노려보고 있었다.


입모양으로 따라 읽는 중인데 아마 막히는 구간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책을 슬쩍 살펴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것은 내 책, 정확히는 이전 생에 내가 쓴 책이었다.

그러니까 유동주인 내 책이 아니라, 윤동주인 내 책.


그녀는 전생에 내가 쓴 시집을 읽고 있었다.

나의 읊조림에 그 사람이 반응했다.


“이 책 아시무니까?”


어설픈 한국어 질문이 내게 돌아왔다.


이 책을 아냐고?

알지. 너무나 잘 알지. 내가 쓴 책을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머리에 총 맞은 사람 취급은 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일본어로 대답했다.


“아, 아하하, 저, 저도 시를 써요. 그래서 윤동주 시는 당연히 알죠.”


내 일본어를 들은 그녀가 놀란 투로 반문했다.

그녀도 이젠 일본어를 하고 있었다.


“일본어 꽤 잘 하시네요?”

“아, 아하하, 아하, 옛날에 좀 살았거든요.”


그렇지.

일본에 살았었지.

한 80년 정도 전의 일이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게 질문했다.


“윤동주 좋아하세요?”

“네, 아주 좋아하죠.”


좋아하지.

좋아하고 말고.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거든.


나는 그녀와 책을 번갈아보다가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일본분이신 것 같은데 윤동주는 어떻게 아셨어요?”

“아, 저 연희어학당 다니거든요.”

“아하······.”


연희.

자랑스러운 과거 나의 모교 이름이 나왔다.

하긴 그 학교에 다니면 나를 알기야 하겠다.


그녀는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근데 사실은 윤동주 시인이 좋아서 연희어학당 간 것도 있어요. 시인이 다녔던 학교라고 해서요.”

“아, 그렇군요. 지금은 한국에 사시는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를 뱉었다.


“네. 앞으로도 쭉 한국에 살고 싶어요. 일본은 너무 시끄러워요.”


일본이 시끄럽다고?

보통 반대 아닌가?

한국이 시끄럽고, 일본이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게?


그러나 그녀는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다시 한 번 주장에 방점을 찍었다.


“일본은 무척 시끄럽습니다. 정말로요.”


나는 무어라 대꾸할 수 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일본은 왜 돌아가시는 거예요?”

“행사가 있어서요.”

“아, 교토분이신가봐요?”

“아니요, 저는 도쿄 사람인데 매해 교토에서 참가하는 행사가 있어요.”


잠시 미소를 지은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시 쓰신다고 했죠? 궁금하네요. 저도 워낙 시를 좋아해서요. 시집 내신 거 있으세요?”


그녀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뭐라도 꺼내줘야 할 것 같은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그 나가레보시라는 사이트에 시를 한 편 올렸는데 나중에 한 번 찾아보세요.”

“그래요? 와, 진짜 찾아볼게요. 닉네임이 뭐예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쩐지 닉네임 알려주는 게 부끄러운데.


고민하는 내게 그녀의 총기어린 눈빛이 쏟아졌다.


에이, 몰라.

뭐, 어때.


“DongJu예요. 제 본명이 유동주거든요. 하하하. 하하하핳.”


시키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고 말았다.

그 말에 그녀의 눈빛이 돌변했다. 아까보다도 더 커진 눈동자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진짜 궁금하네요.”


맑고, 투명한 하늘 저편의 빛이 그녀 눈동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34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우여곡절 끝에 동주는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한 남자가 동주를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타카시로 히즈키입니다.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남자는 심지어 90도에 가깝게 허리까지 굽힌 상태였다.

극진한 인사에 동주도 덩달아 허리를 접었다.


“저, 저도 반갑습니다!”

“듣던대로 일본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하, 하하핳, 하하하핳, 연습 좀 했지요! 하하하핳!”


그는 근사한 세단에 동주를 태웠다.

경지연이나 타카시로나 그런 점은 똑닮아있었다.


“유 작가님은 뒤에 편히 앉으시죠. 옆에 계시면 제가 오히려 불편합니다.”


유동주는 머쓱한 눈인사와 함께 뒤로 자리를 옮겼다.


하다보니 이것도 좀 편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주가 큰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차창 밖 풍경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동주가 알고 있는 풍경이라곤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하기야, 40년대의 일본이 세상 어디에 남아 있겠는가.


두리번거리는 동주에게 타카시로가 말을 걸어왔다.


“유리가 작가님 작품의 아주 열렬한 독자입니다.”


유리라니.

지나치게 친근한 호칭에 동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의뭉스러운 표정이 룸미러에 비춰보였다.


“아, 타카시로!”


그제야 유동주는 깨달았다.


타카시로 히즈키.

타카시로 유리.

이 사람들 남매구나.

그러니까 가족끼리 다해처먹는다!?


출판 재벌의 실체를 깨달은 동주가 입을 벌렸다.


“아, 그렇군요. 두 분이 남매시군요.”

“네, 제 여동생입니다.”


타카시로 히즈키는 씩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에게 유동주는 단순히 한 명의 저자가 아니었다.


그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유동주를 제 여동생을 방에서 꺼내준 사람으로 느꼈다.


그 사실이 온전히 거짓도 아니고 말이다.


단순히 작가를 만났다기보단, 은인을 만났단 생각까지 드는 히즈키였다.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동주에게 늘어놓았다.


“사실 교토문예출판과 나가레보시도 같은 회사나 다름없거든요. 물론 지분이 복잡하지만 나가레보시가 자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출판재벌이구나.

그런 생각에 유동주의 눈이 번쩍거렸다.


타카시로는 동주에게 다시 이것저것 말을 늘어놓았다.


“요즘 유리가 고민이 많습니다.”

“고민이요?”

“네, 무언가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고 싶나봐요.”


히즈키가 유동주에게 넌지시 운을 떼었다.


“작가님, 새로운 작품은 없으세요? 소설도 상관없는데.”


타카시로 히즈키는 사실 알고 있었다.

유동주가 시와 소설을 동시에 쓰는 작가라는 사실을.


한국에서 구칠월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저자를 만나기 전 그 저자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기본이니까.


물론, 동주에게 새로운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지만, 넌지시 미끼라도 던져보잔 심산이 든 히즈키였다.


“웹에서만 가능한 연재를 좀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소설에 삽화를 넣는다거나, 시에 BGM을 넣는다거나 하는 식이요.”


유동주가 눈을 빛냈다.

삽화라니.

그거야 말로 동주가 최근 가장 바라던 바 아닌가.


“오, 그거 좋은데요?”

“그렇죠? 어느 나라나 다 그렇지만 일본은 출판 시장이 워낙 커요. 웹보다 종이를 더 좋아하니까요.”

“역시 일본이네요.”


타카시로는 호탕하게 웃었다.


“맞습니다. 우리 일본은 변화를 싫어하는 국가죠. 하하하. 하하하하핳.”


타카시로 히즈키는 유동주에게 숨겨왔던 본심을 던져보았다.


“변화를 즐겨하는 한국인의 마음은 어떠세요?”

“네?”


유동주의 어리둥절한 눈빛에 타카시로가 쐐기를 꽂았다.


“일본에서 연재 새로 시작하시는 거요. 시도 좋고, 소설도 좋습니다. 삽화 삽입도 좋고, BGM도 좋고요.”


유동주는 그제서야 타카시로 히즈키의 의중을 정확히 알아차렸다.

그는 지금 제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동주가 말했다.


“좋은 삽화 작가가 한국에 있다면 어쩌실래요?”


타카시로 히즈키가 씩 웃어보였다.


“한국에 그런 속담이 있죠?”

“어떤 속담이요?”


동주는 의아한 눈으로 타카시로 히즈키를 쳐다보았다.


"호박이 넝쿨 째로 굴러들어온다."


작가의말

34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38화 +4 24.07.27 825 45 16쪽
37 37화 +5 24.07.26 886 36 13쪽
36 36화 +3 24.07.25 888 38 13쪽
35 35화 +8 24.07.24 991 43 15쪽
» 34화 +5 24.07.23 1,016 45 11쪽
33 33화 +9 24.07.22 1,130 52 20쪽
32 32화 +8 24.07.21 1,164 50 11쪽
31 31화 +6 24.07.21 1,209 54 13쪽
30 30화 +5 24.07.20 1,234 54 11쪽
29 29화 +3 24.07.20 1,263 48 12쪽
28 28화 +6 24.07.19 1,315 58 11쪽
27 27화 +12 24.07.19 1,379 62 11쪽
26 26화 +5 24.07.17 1,355 55 12쪽
25 25화 +5 24.07.16 1,381 48 13쪽
24 24화 +7 24.07.15 1,418 54 12쪽
23 23화 +5 24.07.14 1,403 49 12쪽
22 22화 +5 24.07.13 1,452 54 13쪽
21 21화 +6 24.07.12 1,469 53 11쪽
20 20화 +5 24.07.11 1,526 54 12쪽
19 19화 +9 24.07.10 1,549 55 12쪽
18 18화 +5 24.07.09 1,535 51 13쪽
17 17화 +6 24.07.08 1,533 53 12쪽
16 16화 +5 24.07.07 1,564 51 11쪽
15 15화 +5 24.07.06 1,611 49 12쪽
14 14화 +5 24.07.05 1,605 61 12쪽
13 13화 +4 24.07.04 1,625 57 11쪽
12 12화 +2 24.07.03 1,687 54 13쪽
11 11화 +6 24.07.02 1,719 53 11쪽
10 10화 +6 24.07.01 1,769 68 12쪽
9 9화 +6 24.06.30 1,822 6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