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3 17:37
최근연재일 :
2024.08.21 23:26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73,996
추천수 :
2,845
글자수 :
373,400

작성
24.07.08 22:00
조회
1,533
추천
53
글자
12쪽

17화

DUMMY

17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난데없이 수상 소식이 떨어진 건 벌써 이틀 전의 일이었다.


이곳은 무진 소년원의 원장실.


눈앞엔 송송태와 강정운이 진지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원장이 나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칠월문학상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상 중 하나로······.”


나는 강정운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런 설명은 이미 몇 번이고 들은 터였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상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말을 끊고 송송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경덕관이란 작가가 네 글을 인정해서 공모전 투고 대신 해줬다잖아! 고마운 줄 알아야지!”


나는 송송태를 노려보았다.

지금 저런 말이 나온단 말인가. 기가 차고 코가 찼다.


“장난하냐!? 티브이 안 보여!?”


나는 원장실 한편에 음소거로 상영되는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그 안엔 대한민국에서 제일 핫한 시사 프로그램 <시사탐정>이 떠 있었다.


[아,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젊은 작가가 탈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상이 구칠월문학상이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정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문인들이 이 상을 수상했는데요. 등단도 안 한 작가가, 그것도 10대의 미성년자가 탄 것은 구칠월문학상 반세기 역사의 처음 있는 일입니다.]

[대단한 일이죠. 대단한 일이에요. 근데 그 작가가 바로 범죄자, 아니, 아니, 소년흉악범이라는 거잖아요. 그것도 몇 달 전 판사를 폭행해서 우리 시사탐정에 출연한 바로 그 소년!!!]


강정운은 거기까지 확인하고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송송태는 입맛을 다셨다.


“저런 졸개들의 이합집산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나는 송송태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꼴에 문학을 한다고 요즘 따라 어려운 한자어를 남발하는 송송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장난을 받아줄 기분도, 여유도 없었다.


물론, 나라고 이 수상이 기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

세상이 내 글을 인정했다는 것.

무엇보다 상금이 오천이 넘는다는 것.

모두 다 기쁘지.


하지만 지금 세상은 나를 아주 흉악무도한 악마로 몰고 있다고.


“원장님, 어제 저희 가족이랑 제가 통화했거든요.”

“그렇지? 기뻐하시지!?”

“다들 기뻐하시죠. 근데 형이 딱 한 마디 하더라고요. 지금 집 밖에기자 쌓여있긴 한데 신경 쓰지 말라고요.”


뼈가 담긴 한 마디에 강정운은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왜 아무도 예상 못 했는가.

나 몰래 저런 유명한 상에 원고를 보낼 거면 내가 소년범이란 사실도 기억했어야지.


그것도 불과 몇 달 전에 판사 폭행으로 전국을 핫하게 달군 소년 범죄계의 핫스타란 사실을.


강정운이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했다.


“미안하다. 사실 경덕관 선생님이 몰래 네 원고를 보낸다고 했을 때만 해도 당선이 될 줄 몰랐어. 그 공모전은 기성 작가도 투고하는 문학상이니까.”

“그래요. 저도 지금 제가 탔다는 사실이 안 믿기네요.”


문제는 벌어졌다.

이제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만 남았다.


우리 셋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그때, 원장실 문을 한 교도관이 두드렸다.


“원장님, 유동주를 면회 온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동그란 눈으로 교도관에게 반문했다.


“면회요? 엄마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얘기 없었는데.”



**



면회를 온 것은 엄마가 아니라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반성은 하고 있느냐.”


낮고 무거운 음성이 나를 향해 덮쳐들었다.

도대체 이 작자가 왜 여기 있을까.


“박서완 아버지? 맞죠? 당신이 도대체 여기를 무슨 생각으로 와? 면회를 신청해? 나랑 나눈 대화가 그리워요?”


박서완의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렸다.

뱀 같은 그의 입가에 실소가 감겼다.


“지금 대화는 모두 녹취 중인 거 알지? 너는 이미 전과가 있으니, 특수협박이 성립되는 것도 쉬운 일이다. 경거망동했다가는 성인될 때까지 옥방 살이하게 될 줄 알아.”


나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박서완 아비의 조롱을 들은 지금, 이 순간.


전생의 윤동주는 사라지고 없었다.

오로지 꼴통 유동주만이 이곳 면회실에 앉아있었다.


“ㅆ발! 뭐 어쩌라고!? 이 자리에서 뒈지고 싶어!?”


박서완의 아버지가 방 한편의 교도관에게 눈짓을 보냈다.


“유동주! 뭐 하는 짓이야!”


교도관이 나를 뒤에서 덮쳤다.

나는 붙들린 채로 머리부터 탁상에 처박혔다.


“흐, 흐으읍! 놔! 놓으라고!”


박서완의 아비가 내 쪽을 향해 간단하게 턱짓했다.

신호였다.

그 기분 나쁜 고갯짓에 맞춰 교도관들이 나를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하아, 하아, 하아아학. 이게 나랑 대화하자고 온 거야!?”


박서완의 아버지는 무심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입에선 엉뚱한 소리가 나왔다.


“뭐, 하나 알려줄까? 사실 지금, 이 면담 대화는 녹취가 안 되고 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서완 아버지는 교도관을 향해 손짓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박서완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교도관들은 그대로 나가버렸다.


“수고하십시오! 판사님!”


나는 황당한 얼굴로 박서완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당신 미쳤어? 아니면, 이 자리에서 진짜 죽고 싶은 거야?”


박서완 아버지가 물끄러미 날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소설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축하한다.”

“뭐? 어쩌라는 거야. 도대체.”

“내 아들이 미술을 한다고 설치는 걸 막아라. 가서 한 마디 해. 공부나 하라고. 그러면 네가 소설가가 되든, 뭐가 되든 더는 방해 안 하지.”


뚱딴지같은 말이었다.

박서완의 꿈을 나보고 막으라고?

그러면 내 작가 생활을 방해 안 한다고?

가소로운 협박이었다.


나는 그에게 차분히 되물었다.


“이봐, 설마 지금 뉴스에 내 이름이 보도되고 하는 게 다 당신 짓거리야?”


박서완의 아비는 대답 대신 딴소리를 했다.


“시사탐정 엠씨가 내 같은 과 후배지. 군대도 같이 갔다니까? 군 법무관이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너는 소년범 출신이니 군대는 빠지겠구나. 나한테 고마워해야겠네.”


나는 박서완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래.

이제 겨우 이틀밖에 안 된 수상 소식이다.


고작 이렇게 단시일에 내 신상이 퍼지고, 유명 시사 프로그램에 보도된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하지만 뒤에서 누가 손을 썼다면 다 납득 가능한 일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서완의 아비랑 더할 말은 없었다.


“그 입 닥쳐. 다 알았으니까.”

“아, 내 말을 들어준다는 거야?”

“서완이는 서완이가 하고 싶은 걸 서완이 뜻대로 할 거야. 내가 부추겨서도 아니고, 당신이 말려서도 아니고 서완이가 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당신도 당신 그 옹졸한 마음처럼 날 파묻고 싶다면 알아서 해. 당신이 뭔 개수작을 부려도 난 그냥 글 쓰는 사람이니까.”


나는 면회실 문을 거칠게 닫고 나와버렸다.

'쾅' 하는 거센 소리가 교도소 전체에 울려 퍼졌다.


복도에 나온 나는 씩씩거리며 눈앞을 보았다.

내 앞엔 강정운 원장이 서 있었다.


“원장님, 왜요?”


강정운 원장은 어쩐지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뭐, 하나 알려줄까? 사실 이 교도소의 면담 녹취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나한테 있다.”


강정운.

이 센스쟁이 늙은이 같으니.


나는 강정운을 향해 미소를 씩 지었다.



**



나와 강정운은 의기투합했다.


우리의 대응 전략은 무엇이었냐고?

왜 봉준호 감독의 촌철살인과 같은 명대사가 있지 않는가.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다. 노 플랜.’


우리가 무려 보름 넘게 뉴스, 렉카유튜버, 인터넷 악플러가 날뛰게 놔두었다.


그 사이 나의 이야기는 인터넷상에서 더 격렬한 논쟁으로 타올랐다.


달바다촌을 무슨 갱단 집합소로 만든 렉카 유튜버가 있지 않나.

나를 서울 전체를 이끄는 폭력 조직의 대장으로 소개하질 않나.


헛소문과 망상이 끊이질 않았다.


그들의 입에서 나는 마약을 유통하고, 사람을 심심하면 폭행하고, 학교를 장악하고, 경찰과 검사에게도 발길질하는 무뢰한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현직 작가를 두들겨 팼고, 그 작가가 쓴 소설을 훔쳐서 상을 탔단 카더라까지 있더라.


그래도 나는 가만히 놔뒀다.

계속 들불이 활활 번지게.


급기야 무진 교도소 앞으로 기자와 렉카 유튜버가 줄지어 쳐들어오는 오늘까지 말이다.


교도소 문 바깥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바깥에 번진 소란이 안까지 이어져 원생들의 입방아도 분주했다.


“도대체 유동주가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야, 아까 병원 갔다 온 애가 그러는데 기자가 쫙 진을 쳐서 들어오는 데 1시간이 걸렸대.”

“미친 거 아냐?”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은 곧이어 오늘 있을 이벤트로 번졌다.


“야, 근데 우리 이따 희망의날이잖아. 괜찮은 거야?”


나는 미소를 지었다.


희망의날.

이름이 거창한 바로 이 행사는 요약하자면 그냥 ‘참관 수업’이다.


원하는 외부인, 학부모, 친구와 친지를 초청하여 무진 교도소의 활동 및 수업을 공개한다.


1년에 2번 있는 희망의날이지만 사실 참석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남쪽 가장 끝자락에 있는 무진, 무진에서도 가장 변두리에 자리 잡은 무진교도소였다.


대중교통으론 오기도 힘들고, 버스를 여러 차례 갈아타야 올 수 있는 곳.


게다가 죄다 불우한 가정 환경을 가진 소년원 애들인데 누가 참관 수업을 온단 말인가.


하지만 오늘은 얘기가 달랐다.


바깥에 손님이 잔뜩 대기 중이었다 그것도 질문을 한가득 준비한 채로.

카메라까지 대동하고.


몇 시간 뒤.

무진 교도소의 외부인 전용 출입문이 열렸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저마다 카메라를 든 채로 말이다. 그 무수한 늑대의 먹잇감은 바로 나였다.


운동장에 쏟아지는 인파를 향해 나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제가 바로 유동주입니다!!!!!!!!!!”


그 목소리에 기자, 렉카 유튜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특히나 유튜버들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와, ㅆ바 패기 보소! 형님들! 어린놈의 새끼가! 역시 이 정도 되어야 판사를 패나 봅니다!”

“이야아, 완전 깡패 새끼구먼! 팔뚝 보세요! 근육이 ㅆ바! 형님들!”


수많은 인간이 나를 향해 승냥이처럼 달려들었다.


어, 어, 어.

자, 잠깐 이렇게까지 많은 것은 예상 못 했는데.


“자, 잠깐 다 멈춰봐요! 내가 할 말이 있으니까!”


나의 목소리는 쏟아지는 플래시와 고함 속에 묻혀버렸다.

그자들은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인파에 내가 떠밀릴 뻔하던 그때, 내 앞을 강정운이 가로막았다.


“모두 진정하세요!!! 오늘은 우리 무진 학교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희망의날입니다!!!! 관련 없으신 분들은!!!! 으, 으아아악!!!!!”


내 앞은 막은 강정운이 나 대신 그 인파에 휩쓸렸다.


늙고 볼품없는 몸뚱어리가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몇몇 기자와 유튜버는 강정운의 팔다리를 실수로 밟기까지 했다.


“이, 이것들이!!!! 진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운동장 중앙에 있는 단상과 단상 위에 마이크가 보였다.


나는 기자들을 등진 채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빠르게 마이크를 휘어잡았다.


끼이이이이이익-!!!!!!


오래된 마이크의 싸구려 소리가 소년원 전체의 스피커를 울렸다.

마치 음공처럼 그 소리는 모든 인파를 진정시켰다.


“흐, 흐으으읍!”


나는 심호흡을 하며 기자들에게 선언했다.


“자, 오늘은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반전의 날입니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내 세 마디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작가의말

17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38화 +4 24.07.27 825 45 16쪽
37 37화 +5 24.07.26 886 36 13쪽
36 36화 +3 24.07.25 888 38 13쪽
35 35화 +8 24.07.24 992 43 15쪽
34 34화 +5 24.07.23 1,016 45 11쪽
33 33화 +9 24.07.22 1,131 52 20쪽
32 32화 +8 24.07.21 1,165 50 11쪽
31 31화 +6 24.07.21 1,209 54 13쪽
30 30화 +5 24.07.20 1,234 54 11쪽
29 29화 +3 24.07.20 1,263 48 12쪽
28 28화 +6 24.07.19 1,315 58 11쪽
27 27화 +12 24.07.19 1,379 62 11쪽
26 26화 +5 24.07.17 1,356 55 12쪽
25 25화 +5 24.07.16 1,382 48 13쪽
24 24화 +7 24.07.15 1,419 54 12쪽
23 23화 +5 24.07.14 1,404 49 12쪽
22 22화 +5 24.07.13 1,452 54 13쪽
21 21화 +6 24.07.12 1,469 53 11쪽
20 20화 +5 24.07.11 1,526 54 12쪽
19 19화 +9 24.07.10 1,549 55 12쪽
18 18화 +5 24.07.09 1,536 51 13쪽
» 17화 +6 24.07.08 1,534 53 12쪽
16 16화 +5 24.07.07 1,565 51 11쪽
15 15화 +5 24.07.06 1,612 49 12쪽
14 14화 +5 24.07.05 1,605 61 12쪽
13 13화 +4 24.07.04 1,626 57 11쪽
12 12화 +2 24.07.03 1,688 54 13쪽
11 11화 +6 24.07.02 1,719 53 11쪽
10 10화 +6 24.07.01 1,770 68 12쪽
9 9화 +6 24.06.30 1,822 6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