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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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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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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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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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DUMMY

23화

EP1 – 구칠월섬의 하늘


여기, 구칠월문학제를 찾아온 불청객 두 사람이 있다.


“아씨, 내가 이 촌구석까지 와야 해? 박 비서, 대체 뭐 하자는 건데.”


축제가 열리는 여름.

태양의 축복 속에서 짜증을 부리는 이 남자의 이름은 풍기영.


풍영그룹의 3세이자,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아는 흔한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생선 비린내······. 진짜 코가 썩는다. 썩어. 사람은 또 왜 이렇게 많아?”


앞좌석에 앉은 박 비서는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별 반응이 없었다.


그저 차분한 얼굴로 오늘 섬에서 벌어지는 행사에 관해 설명할 따름이었다.


“구칠월문학제 당일이라 그럴 겁니다. 오늘이 축제의 클라이막스니까요. 이따, 저녁엔 불꽃놀이도······.”

“불꽃놀이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다 불에 태워서 다 죽이고 싶다.”


박 비서는 나지막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도련님 뒤치다꺼리를 언제까지 해야 할는지.


그가 짐짓 마음을 다스리며 오늘 풍기영이 해야 할 업무를 브리핑했다.


“오늘 구칠월문학상 수상자인 유동주 작가가 경덕관 이사님 제자라고 합니다.”

“그거 확실한 거야?”

“문학나무 전 팀장한테 들은 얘기입니다. 사람이 경솔하긴 해도, 없는 말을 지어서 할 인물은 아닙니다.”


풍기영은 차창 바깥을 기분 나쁘게 쳐다보았다.


“그래. 그래. 맞아야지. 우리 풍영문고가 문학나무 책 팔아주는 게 몇 권인데.”


박 비서는 풍기영의 허세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풍영문고.

대형 서점이라고 해 봤자, 업계 서열 3위의 오프라인 서점일 뿐이었다.


업계 1위 KH문고의 5분의 1도 안 되는 규모.


사실 풍영그룹 자체가 선두 그룹들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군소 재벌이었다.


간신히 그룹 수준에 드는 재벌가의 말단.


원래 약한 개가 더 크게 짖는 법이라고, 풍기영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그 유동주인가를 뭔가를 꼬셔서 경덕관 이사님이랑 만남을 좀 가져보자, 이거지?”

“네. 경덕관 이사님은 KH에서 직접 불러도 오시지 않는 분 아닙니까. 별다른 지인도 없고요.”


풍기영이 관자놀이를 찌푸리며 박 비서에게 대꾸했다.


“그 대학 시절 제자들을 꼬시는 게 더 쉽지 않아?”

“아니요. 한국대에선 금지 사항으로 이미 유명하답니다. 그렇게 경 이사님께 접근했던 제자가 많아서요.”

“그래?”

“네. 사제 간의 연을 이용해 이상한 자리를 주선했다간, 국문과 명부에서 빼내겠다고 호언장담하셨답니다.”


풍기영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노망 난 늙은이야. 나 같으면 호의호식하고, 뇌물 받으면서 잘 살 텐데 왜 그러고 살까.”


풍기영은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경덕관에 대해 생각했다.


경덕관.

KH그룹 창업주의 단 하나뿐인 동생. KH에 유일하게 남은 1세대 어르신.


재계 서열 8위 그룹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장본인이었다.


고작, 풍영그룹 오너 자리를 갖겠다고 형, 누나들과 싸우는 풍기영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물이었다.


생각에 잠긴 풍기영에게 박 비서가 다시 말을 걸었다.


“아무튼 사장님. 꼭 뭘 할 필요도 없습니다. 경덕관 선생님이 인정한 본인의 직계 제자입니다.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오늘 수확을 거두는 겁니다.”


풍기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아무리 철없는 망아지라도 박 비서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았다.


“알았어. 경거망동 안 하고, 잘 접근해 볼게. 그나저나 KH에서 미디어시티 조성하는 건 확정됐어?”

“그룹 차원에선 이미 확정이고, 서울시랑 조정 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곧 아마 언론에도 발표가 날 겁니다.”


풍기영은 입맛을 다셨다.

KH그룹의 미디어시티는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조성되는 신도시였다.


풍영그룹이 만약 그곳에 늦게나마 숟가락을 얹는다면, 풍기영의 후계 순위는 아예 뒤바뀔 것이었다.


“그래, 형이나 누나들을 제치려면 이런 방법이라도 써야지.”


박 비서는 대꾸 대신에 뒷좌석으로 태블릿 하나를 건넸다.


“살펴보십시오. 문학제에 대한 간단한 안내입니다.”


풍기영은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태블릿을 살폈다.


“아이고, 구칠월청소년문학상이니, 뭐니. 시상식이 많기도 하네.”


박 비서가 건넨 정보를 풍기영은 건성으로 넘겨버렸다.


그렇게.

유동주의 얼굴, 나이, 신상, 대략적인 모든 정보가 스킵됐다.


곧이어 행사장 주변으로 박 비서가 차를 세웠다. 그가 난처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스읍······. 차가 지금 들어갈 수가 없나 본데요?”


박 비서가 안내원을 살폈다.

주차장 곳곳에서 행사장 도우미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금 문학제 주차장 입차까지 2시간 넘게 걸립니다! 차 돌려 나가세요!”


박 비서가 살피던 와중에 뒤로 몇 대의 차가 더 들어왔다.

꼼짝없이 길 한복판에 갇혀버린 풍기영과 박 비서였다.


“사장님, 이거 뭐 어떻게 할 수가 없겠는데요.”

“행사 시작 언젠데?”

“1시간 뒤입니다.”


풍기영이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아씨, 나 먼저 나가서 그 유동주인가 뭔가 찾고 있을게. 박 비서는 차를 버리든지, 그냥 세우든지 알아서 하고 와!”


풍기영은 차 문을 거칠게 닫고 행사장으로 나왔다.


사람들의 땀 냄새, 웅성거리는 소리, 바닷가의 물비린내.

모든 게 그를 짜증 나게 했다. 풍기영이 사람들을 밀치며 골목으로 마구 들어갔다.


“아씨, 나와. 나오라고요!”


성질 나쁜 남자의 호통에 사람들의 이목이 주목됐다.

풍기영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걸어 나갔다.


“일단 대행사장인가 뭔가에서 시상식을 한다고 했지. 그러면 유동주도 거기 있나?”


풍기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대행사장을 찾아 나섰다.

워낙 많은 인파가 쏟아져 도무지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대행사장, 대행사장, 유동주, 유동주, 유동주.”


풍기영이 머리에 총 맞은 사람처럼 유동주를 중얼거리던 그때, 한 사람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어, 저희 동주는 왜 찾으세요!? 여기, 여기로 나오세요!”


그 사람의 손짓에 따라 풍기영은 인파 속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람이 비교적 없는 한적한 골목이 행사장의 한편에 있었다.

대행사장까지 한 번에 바로 갈 수 있는 별도의 진입로였다.


“어, 어, 네. 네.”


풍기영이 어색한 표정으로 자신을 끌어당긴 사람을 보았다.

한 부부가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 남편이 풍기영에게 아는 체를 했다.


“어, 저기! 풍기영 이사님 맞으시죠?”


풍기영이 의아한 얼굴로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풍기영은 진심으로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사업상 만난 사람이었던가.

그렇다고 하기엔 행색이 초라해 보였다.


꾸민다고 입은 것 같은 양복은 브랜드도 잘 알 수 없는 보세였다.

게다가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광택과 빛깔도 바래있었다.

그 남자가 풍기영에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아, 그, 기억이 안 나시나. 저 현장에서 소장 노릇 하던 유상식입니다. 월변동 아파트 공사요.”


그렇다.

풍기영을 도운 것은 다름 아닌 유상식과 민주현이었다.


풍기영은 유상식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찬찬히 풍기영의 기억 속에서 공사장에서의 기억이 났다.


“아, 일전의 그 공사장이요?”


풍기영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월변동 재개발 공사장.

풍영건설의 이사를 맡고서 처음으로 찾아간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현장을 점검하던 중에 풍기영에게 소리를 지른 사람이 있었다.


공사 현장에 양복과 구두를 입고 들어오는 사람이 어딨느냐며.

안전화와 안전모도 없이 죽고 싶으냐며.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풍기영의 눈앞에서 자신을 반갑게 소개하고 있었다.


“아, 그 공사장에서 안전 수칙 강조하시던 소장님?”

“아, 네. 그 기억나시는구나? 일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풍기영은 유상식을 위아래로 기분 나쁘게 훑어보았다.


‘바빠죽겠는데 이런 버러지까지 일일이 상대할 필요 없지.’


풍기영은 몸을 휙 돌려 유상식 부부를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유상식은 무어라 계속 말을 걸었다.


“그 공사장 현장에선 잘렸습니다.”


상식의 맥락 없는 대화가 기영은 슬슬 성가셔졌다.

그가 상식을 대놓고 무시하며 대답했다.


“아하, 그 노가다도 잘릴 수가 있군요?”


노가다도 잘릴 수 있느냐는 대답에 유상식의 표정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사실 상식은 눈치가 없어서 그렇게 말을 건 것이 아니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던가.


자신을 부당한 이유로 현장에서 쫓아낸 장본인.

적어도 상식이 생각하기에 그 장본인은 풍기영이었다.


상식은 바로 그 작자에게 이 사실을 아느냐고, 사과할 의향이 있냐고 묻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상식이 확인한 사실은 하나 뿐이다.


‘이 자식 나를 진짜 기억도 못 했구나? 노가다도 잘릴 수가 있냐고?’


얼굴에 구김이 가는 상식을 주현이 잡아끌었다.


“여보, 가요. 우리 동주 수상하는 날인데 늦겠다.”


풍기영이 그런 두 부부를 향해 마지막 일침을 날렸다.


“아, 오늘 아드님이 청소년문학상을 타셨나 보죠? 축하드립니다. 잘 잘리셨네요. 덕분에 시상식도 직접 오시고요.”


풍기영의 비아냥에 유상식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가 화를 버럭 지르려던 그때, 아내 민주현이 어딘가로 소리를 질렀다.


“어, 어, 저기 봐. 저기 봐요. 여보.”


유상식은 민주현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한 남자와 함께 정말 반가운 얼굴이 서 있었다.


“동주야! 동주!”

“유동주! 우리 동주야!”


상식과 주현이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아들의 이름을 외쳤다.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반가운 이름이었다.


“엄마! 아빠! 오셨어요!?”


한여름 땡볕보다 환한 아이의 얼굴이 두 부부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땡볕의 정면에서 오만상을 찌푸린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풍기영.

오늘 경덕관 제자의 호의를 사러 온 불쌍한 한 남자였다.


“아드님, 이름이 유동주세요?”


풍기영은 짐짓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유상식에게 되물었다.

영문을 알 길 없는 상식이 기영을 쳐다보았다.


“네, 제 아들이 유동주입니다.”

“설마 그 탄다는 상이 청소년문학상이 아니라 그냥 문학상이에요?”


유상식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상식에게 기영을 상대할 시간 따위 없었기 때문이다.


“네, 이번에 구칠월문학상인가 그 상을 탄 게 바로 제 아들놈입니다.”


상식은 서둘러 몸을 돌려 동주에게로 뛰어갔다.


“그러면 저희 부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문학제 재밌게 즐기십쇼.”


풍기영은 달아나는 유상식의 뒤를 쳐다보았다.


망연자실.


그 네 글자가 그의 파리한 낯빛에 적혀있었다.

그리고 기영의 머릿속에 아까 박 비서의 한 마디가 울려 퍼졌다.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우선 오늘 수확을 거두는 겁니다.]


좋은 관계라.

좋은 관계.

좋은 관계라니.


풍기영은 오늘 맺는 관계가 분명 좋은 관계는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풍기영과 유 씨 가족의 뒤편에서 그 모든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마치 아버지처럼 유동주를 지키고 서있던 한 사람.


바로, 강정운이었다.

무진 교도소의 원장, 그리고 대문호 경덕관의 오래된 제자.


말하자면 유동주의 대사형.

강.정.운.


그가 핸드폰을 들고 스승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말씀 주셨던 애송이가 벌써 접근해왔습니다.]


강정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띠어졌다.


“감히 동주를 이용하려고 했겠다······.”



작가의말

23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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