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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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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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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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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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DUMMY

29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유동주가 무진에서 출소를 준비하던 그때, 일본에서는 타카시로 유리가 모처럼만에 외출을 했다.


“저, 저, 정말 내가 들어가도 되는 거야?”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오빠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있었다.

타카시로 히즈키가 커다란 정문 앞에서 그런 여동생을 달랬다.


“당연하지. 유리 너는 엄연히 자회사의 임원이야. 게다가 여기 교토문예출판의 등기 이사라고.”


히즈키는 유리의 직급과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하지만 유리는 불안한 듯 몸을 떨었다.


“그, 그, 그게 문제라고! 왜 아직도 내가 등기 이사인데!?”


타카시로 히즈키는 한숨을 내쉬며 정면을 쳐다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히즈키, 유리 남매는 명목 상의 등기 이사로 계속 등재 중이었다.


히즈키야 성인이 된 이후로 출판사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해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유리는 나가레보시 리터러시를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출판사 내에선 알게 모르게 견제를 받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가뜩이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유리를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히즈키가 유리를 잡아끌었다.


“그렇다고 널 이사에서 뺄 수는 없잖아. 그리고 애초 오늘 출간 회의 열자고 한 건 너 아니야!?”

“나는 빨리 유동주 작가 책을 내자고 했지.”

“그러니까 그 말이 회의를 잡자는 얘기야.”


일본풍으로 장식된 고풍스러운 대문 앞에서 두 남매는 가볍게 투덕거렸다.


타카시로 유리는 현실을 부정하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내가 교토까지 끌려온 거지? 한국에서 돌아온지도 얼마 안 됐는데!?”


타카시로 유리.

3년 간의 히키코모리 생활을 끝마친 일본의 젊은 시인.


근 3년간 거실과 방만 오가던 그녀의 행보에 쓰나미가 몰아닥치는 중이었다.


히즈키는 유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유동주란 작가를 이용하길 잘했군. 이렇게 계속 유리가 끌려 나오다니.’


혹시나 했던 마음으로 던진 떡밥에 여동생이 정말 끌려다닐 줄은 몰랐다.


물론, 단지 여동생을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였다면 회사까지 그녀를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유동주란 작가한테 뭐 얘기 들은 건 없어?”

“계약서 쓰고 왔지.”


유리의 단답에 히즈키가 황당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그가 유리를 독촉했다.


“유리야. 원고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됐는지 안 여쭤봤어? 정확한 원고 인도일은? 우리 오늘 회의해야 하잖아?”


히즈키의 질문 폭탄에 유리는 당황스러운 눈빛을 했다.


“그, 그, 말도 겨우 붙였는데 어떻게 그런 걸 의논해! 시상식 끝나고 유 작가님 바로 소년원 가버렸단 말이야!”

“아니, 그런 거 의논하라고 한국에 보낸 거 아니야? 하여간 일단 회의 들어가자. 곧 시작하겠다.”


히즈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매의 등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타카시로 유리! 아직도 그렇게 오빠 뒤에만 쫄래쫄래 따라다니고 있어!?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야!”


두 남매가 호통치는 남자 쪽으로 묵례했다.

유리는 언짢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안, 안녕하세요.”

“아주 안녕하지. 교토문예출판의 하나뿐인 무남독녀가 별안간 회의를 주최하는데 안녕하지 않을 리가 있나? 방안의 과자가 떨어졌나 보지?”


남자는 눈에 띄는 빈정거림으로 유리를 조롱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요시다 타케시, 교토문예출판의 부사장이자 두 남매의 대부였다.


히즈키가 부사장에게 정중히 대답했다.


“회의 늦겠습니다. 요시다 부사장님 어서 들어가시지요.”


요시다 타케시는 별다른 대꾸 없이 혼자 회사로 들어가 버렸다.

타카시로 유리는 그 남자의 등을 바라보며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저, 저, 아저씨는 은퇴도 안 해?”


타카시로 히즈키가 자기 여동생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 대부님이야. 게다가 부사장님이시고. 말을 가려서 해.”

“저, 저, 아저씨는 나보고 방에 과자 떨어졌냐잖아! 누가 교토 출신 아니랄까 봐 아주 대놓고 빈정거리네!”


유리의 머릿속으로 타케시와 얽힌 좋지 않은 과거를 떠올랐다.


[흥, 교토문예출판의 외동딸이 시를 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좋게 볼 것 같으냐!? 집안 빽으로 성공했다고 하지!]


[시는 너처럼 알량한 재주로 쓰는 게 아니야! 삶으로, 경험으로 쓰는 것이야! 너 같은 어린애가 무슨 시를 쓴다고!]


[나가레보시 리터러시!? 요행 따위 부리지 마라! 누가 인터넷 따위로 문학을 읽는다고! 회사 들어와서 경영이나 배워!]


요시다 타케시는 항상 유리의 성취를 부정했다.


일본대 입학도.

나가레보시 리터러시의 성공도.

시인으로서의 길도.


모두 아버지의 힘을 빌려 이룬 것처럼 말하는 그였다.


물론, 타카시로 유리의 성공을 헐뜯는 것이 비단 요시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유리가 느끼기에 요시다 타케시는 그런 자들의 간판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의 맹폭격을 들으며 성장한 유리였다.


양친이 모두 숨진 뒤, 요시다는 두 남매의 든든한 병풍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유리에게 그 병풍은 빠져나갈 수 없는 가시덩굴과 같은 것이었다.


[타카시로 유리! 네가 나 없이 무슨 결정을 한단 말이야!]


요시다 타케시의 남긴 호통은 아직도 유리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출판사 정문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리의 손목을 히즈키가 붙들었다.


“진정해. 너는 여기에 유동주 작가 출간 논의를 하러 온 거야. 나가레보시 리터러시의 임원이자 교토문예출판의 등기 이사로 말이야. 요시다 아저씨도 부사장으로서 온 거야. 그렇게 겁낼 필요 없어.”


타카시로 유리가 히즈키의 손을 밀쳐냈다.

그녀의 눈빛 안에 차분하고 고요한 결심이 들이차 있었다.


“알아. 나도 3년 전과는 달라. 더는 방 안에서 누구를 무서워만 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야.”


**


교토문예출판사의 대회의실.

팀장급 이상의 편집자들과 고위 임원들이 총출동했다.


본래, 외국 작가의 책을 번역할 때 이렇게 많은 인원이 동원되진 않는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달랐다.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한 작가, 심지어 발표한 시라곤 인터넷에 딱 한 편만 있는 작가.


그 작가가 오늘 출판 회의의 메인 검토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교토문예출판사의 후계자가 무려 3년 만에 주최한 회의의 중요 안건으로 말이다.


대회의실 한복판을 한 편집자의 목소리가 가로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출간은 다소 무리입니다. 한국에서도 경력이 없는 시인이에요. 저희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게 데뷔잖아요. 너무 모험입니다.”


목소리를 높인 건 요시다 타케시 쪽의 라인으로 널리 알려진 문학 3팀의 팀장이었다.


타카시로 유리가 그녀를 쳐다보며 나직이 반문했다.


“뭐가 모험이라는 거죠?”

“판매량이 예측이 안 되잖아요. 도대체 마케팅 타깃을 어떻게 설정하고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타카시로 유리가 히즈키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 눈짓에 따라 히즈키가 대회의실 한편에 피피티를 띄웠다.


“보십시오.”


모두의 시선이 피피티에 꽂혔다.

그 피피티엔 나가레보시 리터러시의 메인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히즈키가 현 상황을 브리핑했다.


“작품의 질과 조회수로만 판단하자고요. 조회수가 벌써 10만 회를 돌파했습니다. 단 한 편으로요. 게다가 이 댓글 반응을 보세요.”


[DongJu는 시 정신이라고 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어 그의 시를 더 보고 싶어]


[단 한 편을 보고도 전율이 일었다 자연과 사람 반성과 죄의 의미를 묻는 수작이야!]


[DongJu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윤동주를 떠오르게 해! 별과 바람과 나무를 예찬하는 그의 시는 희귀한 것이야!]


타카시로 히즈키가 쏟아지는 칭찬을 일일이 훑어나갔다.


“단 한 편으로 조회수가 10만 회. 댓글은 수천 개가 쌓였습니다. 판매량이 왜 예측이 안 됩니까? 작품의 수준도 보셨으면 다 알지 않습니까?”


히즈키의 말에 좌중이 고요해졌다. 그의 말이 맞았다.


고작 단 한 편일 뿐인데, 마치 원자폭탄과 같은 반응이 나가레보시를 강타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호응이었다.

게다가 작품의 수준 또한 마찬가지였다.


쏟아지는 댓글처럼 기존의 현대 시에서 쉬이 찾을 수 없는 품격이 있었다.


자연과 인간, 죄와 반성, 참회와 나아감을 묻는 자세가.


그때, 회의실의 정적을 꿰뚫고 화살 같은 비판이 다시 날아들었다.

그 화살을 던진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요시다 타케시였다.


“그래서 그 한 편 말고는?”

“네?”

“그 한 편으로 계약을 하자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것은 타카시로 유리의 역린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요시다 타케시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유리의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한 편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게 아니죠. 한 편만 쓴 거 아니에요? 그 뒤로 왜 아무 작품이 없습니까. 그리고 말이에요.”


요시다 타케시는 급기야 탁상을 두어 번 내리치기까지 했다.


탁-!

탁탁-!


둔탁한 소리가 회의실 전체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소년 흉악범이 작가라면서요? 도대체 이 작가의 성실성을 어떻게 담보할 겁니까?”


요시다 타케시는 타카시로 유리를 압박해 들어갔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자고로 시라는 건 정신으로 쓰는 겁니다! 정신은 연륜에서 나오는 거고요!”


요시다 타케시의 일갈에 타카시로 유리의 머리에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요시다는 과거 타카시로 유리가 시집을 출간했을 때도 똑같이 했던 일침을 날린 바 있다.


[시는 경험으로 쓰는 거야! 부잣집 무남독녀로 평생 자라놓고 어떻게 시를 쓰겠다는 거냐!?]


타카시로 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수그렸다.

요시다 타케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계약하고서 원고 인도가 안 되면요? 누가 책임질 건데요? 나가레보시 리터러시에서 책임질 겁니까!?”


타카시로 히즈키가 유리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이게 끝이었다.


이 회의 안건을 제시한 건 나가레보시 리터러시, 그리고 타카시로 유리였다.


그녀 자신이 이 상황을 타개하지 않는다면 유동주의 출간은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요시다 타케시가 마지막으로 회의실 전체에 선언했다.


“적어도 10편은 받아내지 않으면 안 돼요! 10편 정도는 받아와야 출간 검토를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시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타카시로 유리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그 진동은 천천히 유리 온몸의 떨림을 잦아들게 하는 위로와 같았다.


핸드폰에 도착한 라인 메시지를 유리는 천천히 읽어나갔다.


[저, 유동주입니다. 오늘 출소했습니다. 그리고 전달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메시지를 읽던 타카시로 유리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돌아왔다.

어느새 평온함을 되찾은 그녀가 요시다를 보며 반문했다.


“10편이요? 10편 가져오면 출간 검토하시겠다고요?”

“그래요. 최소 10편이요.”


타카시로 유리가 무언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자, 여기 유동주 작가님께 도착한 라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10편이 있으면 출간 검토하신다고 하셨죠?”

“그렇죠.”


타카시로 유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가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그 5배의 시를 지금 제가 받았다면요?”


모두의 시선이 타카시로 유리의 자신만만한 얼굴에 꽂혀들었다.


작가의말

이번 주말(20,21)에만 비정기적으로 1일 2회 연재하겠습니다! 오늘 10시에 올라갈 연재분은 동일하게 올라갑니다! 29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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