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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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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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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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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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DUMMY

30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나는 일본에 메시지를 보냈다.

타카시로 유리라고 했던가.

문학제 때 만난 수줍은 편집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대로 얘기도 못하고 일본에 보냈네.”


그녀가 내게 전한 이야기라곤 일본에서 시집을 묶어 출간해보자는 제안뿐이었다.


“그날 계약서에 싸인만 하고 그렇게 돌아갔는데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나는 불안한 마음에 이메일을 뒤졌다. 강정운은 고맙게도 내 시집을 PDF파일로 따로 보관해두었다.


[어쩌면 출판사랑 의논할 일도 있지 않겠느냐.]


역시 그는 오랜 경력을 가진 시인이었다.

나는 강정운이 선물해준 시집 파일을 일본에 전송했다.


“뭐, 이렇게 보내놓으면 되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바로 답신이 왔다.

마치 내 연락을 간절히 필요했던 사람처럼 말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본에서의 출간 일정이 순조롭게 풀리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내 덕분에라니.

작가가 원고를 보내는 일이 이렇게까지 감사받을 일인가.


“원고 주고 받는 건 처음이라 제대로 하는 건지 모르겠네.”


원고를 보내고서 한참동안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낮의 햇살이 기차의 창밖에 어렸다. 환한 빛 속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새로운 작품을 써야겠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어쨌든 끝난 일이야.”


그렇다.

구칠월문학상은 작가로서의 시작일 뿐이다.

일본에서 출간하는 시집도 사실 이미 다 엮은 상태였다.


이제는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야 할 차례였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소년원에만 있었더니 영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르는데.”


나는 다시 한 번 차창에 넋을 맡겼다.

이전 생의 기억과, 이번 생의 기억이 풍경 속에서 혼몽하게 뒤얽혔다.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긴 했어.”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크고 웅장한 건물숲이 펼쳐졌다.

달바다촌에만 평생을 산 내게 수도권의 대도시는 믿기지 않는 장관이었다.


“정말 달라졌다. 정말 많이. 100년만에 어떻게 이렇게 빨리.”


누군가 내 중얼거림을 듣는다면 필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두어 시간 정도 달린 뒤 열차는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역이 아닌 강남이 내 최종 목적지였다.


“이야, 유동주 출세했다. 강남도 다 와보고. 근데 여기 강남 맞아?”


분명히 수서역에 내리면 강남이라고 했는데, 강남치고는 그렇게 번화한 느낌은 없었다.


“서울 진입하기 전이 더 붐볐던 것 같은데?”


나는 수서역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여기 진짜 기차역 맞겠지? 나 맞게 온 거 맞나?”


역사 안은 무언가 지하철 같은 느낌이 났다.


“에이, 몰라. 마중 나온다고 했으니까 기다려야지.”


지하 역사에 앉아있는 내게 한 반가운 목소리가 찾아왔다.


“유 작가님! 여기예요! 여기!”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들어올리는 사람은 바로 경지연이었다.

경덕관의 손녀이자 구칠월문학제의 운영위원.

그녀가 내게 달려왔다.


“늦을까봐 막 뛰어왔다고요. 서울역에 도착하신다고 생각했지 뭐예요? 와, 진짜 큰일날 뻔 했어요.”


나는 그런 경지연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풉. 경덕관 선생님이랑 닮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네? 제가 할아버지랑 닮았어요?”

“네.”

“뭐가 닮았는데요?”


나는 대답 대신 그저 희미한 미소만 지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정신없는 게’ 닮았다고 할 수 없어서.


우리는 지상 주차장에 올라가 함께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앉으려는 나를 경지연이 뒷좌석으로 밀어붙였다.


“아닙니다. 작가님은 귀한 몸이시니 뒷좌석에 타세요.”

“아,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손님으로 모신 거라고요. 제 말 들으세요.”


그녀는 마치 어린애를 타이르듯 나를 뒷좌석에 앉혀버렸다.

그 모습에 나는 익숙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지연 작가님은 마치 우리 친누나 같네요.”

“칭찬인가요?”

“그렇게 받아주시면 고맙고요.”

“하하, 유 작가님의 누나분이라니 한 번 뵙고 싶네요. 어쩐지 곧 뵐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내일 오시나요?”

“글쎄요? 이상하게도 영 연락이 안 되네요.”


내 말을 들은 경지연은 쑥스러운 얼굴로 사과를 건넸다.


“가족분들 먼저 만나봬야 할 텐데 정말 죄송해요. 재단에서도, 출판사에서도 행사를 꼭 하자고 해서요.”


나는 경지연을 향해 손사레쳤다.


“아니에요. 독자와 만남을 가지게 해주셨는데 뭐가 죄송해요.”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해가 느엿느엿 지고 있엇다.


그렇다.

출소하자마자 내가 서울로 온 이유는 독자와의 만남이 잡혔기 때문이다.


경지연은 운전석에서 큰 목소리로 숙소를 안내했다.


“일단 큰바다문화재단의 초청이라서요. 숙소는 재단 측에서 무료 제공이에요.”

“그렇군요.”

“숙소는 이사장님이 직접 챙기셔서요. 저기 보이시죠? 저기에서 하루 묵으실 거예요.”


나는 경지연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첨탑이 있었다.


“저, 저건.”


서울 지리에 문외한인 나도 송파 한복판에 세워진 타워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KH타워네요? 그 100층짜리 빌딩? 저기에 제 숙소가 있다고요?”

“네, 당연하죠. 스테이엘 아시죠? 오늘 거기 호텔에서 묵으시는 거예요.”


나는 황당한 눈빛으로 KH타워를 쳐다보았다. 구름을 뚫고 선 아찔한 탑 하나를.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KH타워 아래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는 경지연의 인도를 따라 타워 안으로 들어갔다.

스테이엘이라고 적혀있는 문을 열자, 양옆에서 도어맨이 인사했다.


“어서오십시오.”

“어서오세요.”


그들이 건네는 구십도 인사가 불편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나는 주춤주춤 입장했다.


“지연 작가님, 여기가 진짜 제 숙소예요?”


그녀는 대답없이 내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잠시만요. 재단에서 분명 102층에 있는 프리미엄 스위트룸이라고 했거든요.”


나는 그녀의 뒤를 엉거주춤하게 따라갔다.

경지연은 능숙한 동작으로 102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는 숙소가 아니라 마치 궁궐 같았다.


“이, 이게 제가 묵을 숙소라고요?”


객실 문을 열자 바로 나오는 건 넓은 거실이었다.

맞은편엔 통창이 있었고 서울 전체가 그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경지연이 말했다.


“화장실은 저쪽 작은 방에도 있고, 여기 거실 앞에도 있으니까 편하게 쓰시면 되고요.”


나는 경지연의 안내에 따라 숙소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무어라 정리하기 힘들지만 이런 호의를 그냥 받을 순 없었다.


“이런 숙소는 제가 그냥 묵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까지 제공받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내 난처한 목소리를 들은 경지연이 미소를 띠어보였다.

그녀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크, 크흠. 고작 이 정도 방은 우리집의 다락방에 지나지 않으니 그냥 편하게 지내!”


그녀는 누군가를 따라하는 게 분명한 목소리로 내게 호통쳤다.

나는 경지연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 하시는 거예요?”

“큰바다문화재단의 이사장님의 말을 전해줬습니다.”

“이사장이 누군데요?”

“경덕관 작가님이요. 제 할아버지이자, 작가님의 선생님이요.”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어머니.

북간도에 계신 우리 어머니.


이 여자도 분명 문인입니다.

괴팍하기가 자신의 할아버지 못지 않습니다.


생각에 잠긴 나를 경지연이 얼른 꺼내주었다.

그녀가 씩 웃으며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나저나 제가 특별히 초청한 손님이 있는데요. 한 분밖에 못 모셔서 아쉽긴 하지만요.”


경지연은 손을 뻗어 객실 문을 가리켰다.

그곳엔 의외의 손님이 서있었다.


“누, 누나!? 동희 누나!?”


객실에 찾아온 것은 다름아닌 내친누나 유동희였다.


경지연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남매 간에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지연이 떠난 자리로 유동희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의 손엔 두부가 들려있었다.


“고생 많았어. 내 동생.”




30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모처럼만에 동생이랑 데이트를 다 하네!”


유동희는 그렇게 말하고 내 뺨을 잡아당기려 했다.

내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밀었다.


“아, 누나! 하지마!”

“어이구, 이거 봐라. 이제 다 컸다고 이 누나가 볼도 못 꼬집게 하네!?”


나는 그녀와 함께 KH타워 건너편에 있는 KH문고를 가는 중이었다.

유동희가 내게 말했다.


“동주, 너는 네 책이 서점에 깔려있는 거 처음 보는 거지?”

“나 오늘 출소했어.”

“자랑이다! 자랑!”


유동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성질을 내던 그녀는 아쉬운 눈으로 말했다.


“오늘 부모님이랑 동율이도 왔으면 좋았겠다. 그치?”

“부모님은 바쁘다면서? 형은 영장이 나왔다고?”

“응.”

“아니, 엄마랑 아빠는 일하느라 바쁘다고 쳐. 근데 형 영장 나온 거랑 서울 못 온 건 무슨 상관이야?”

“여자친구랑 놀아야 된대. 어휴, 썩을 놈.”


유동희가 얼굴을 구기면서 유동율의 말을 전달했다.


“소년범으로 군대도 안 가는 동생놈 얼굴 볼 시간 없다!”


유동희가 씩 웃어 보이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동율이가 그렇게 전해주래. 근데 정말 소년범은 군면제야?”

“나도 몰라. 나 이제 열여덟이야.”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누나와 시덥잖은 얘기를 주고받으니, 비로소 내가 사회에 나왔단 실감이 났다.


지하 상가를 조금 걸으니 KH문고로 통하는 문이 나왔다.

그리고 그 문엔 의외의 소식이 거대한 포스터에 적혀있었다.


[구칠월문학상 대상 - 유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북간도의 계신 어머니께 별을 읊조리면, 하늘과 바람과 계절이 대답했다.


독자와의 만남 진행!]


홍보 문구 옆에는 내 사진까지 박혀있었다.


“도, 도대체 언제 이런 걸 붙여놓은 거야?”


그 포스터에 나보다 더 기뻐하는 건 다름아닌 유동희였다.


“우와, 내 동생 완전 스타됐네!?”


유동희는 감격에 젖은 눈으로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을 뱉었다.


“와, 진짜 크다.”


천장까지 이어지는 책장.

참새떼처럼 바글거리는 사람들.

어디서부터 둘러봐야 할지 모를 거대한 규모의 서점이었다.


“나 이렇게 큰 서점은 처음 오는 것 같은데?”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윤동주로서 살 때엔 매일 뻔질나게 서점을 갔다.


하지만 유동주로서 삶에서 서점은 나와 인연이 영 없는 곳이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그때, 나는 순식간에 인파에 휩쓸리고 말았다.


“자, 잠시만요. 아, 아악, 미, 밀지마세요.”


정신없이 인파에 휩쓸리던 그때, 누나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야, 유동주. 여기 네 소설있다. 네 소설이야!”


나는 유동희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가 나를 이끈 곳은 베스트셀러 코너였다.


“봐, 네 소설이 몇 위인 줄 알아!?”


나는 믿기지 않는 순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이게 진짜야?”


작가의말

드디어 30화입니다! 30화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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