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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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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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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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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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DUMMY

32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정신이 없었다.

정준학을 만난 일이 모두 꿈만 같았다.


그를 집으로 돌려보낸 후, 나는 호텔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준학의 동생 준희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내 귓전에 맺혀있었다.


[이 멍청아! 일이 있으면 가족한테 알려야 할 거 아니야!]


서울까지 달려온 준희가 제 오빠의 가슴팍을 두들기면서 그렇게 외쳤다.


서울 근교 어딘가에서 놀고 있었다는 준희와 동율은 한 시간도 안 되어 금방 나타났다.


친동생 출소에도 관심없던 내 형 동율은 쏜살같이 달려와 여자친구 가족을 챙겼다.


[가자, 정준학. 데려다줄게.]


내가 어처구니 없는 눈빛을 쏘아보내자, 형은 무심하게 답했다.


[야, 대작가님을 내가 왜 챙기냐. 네가 나를 챙겨야지!]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만 남기고 동율과 정 씨 남매는 사라져버렸다.


“무슨 소동인지 다 모르겠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객실 냉장고를 열었다.


온갖 음료로 꽉 찬 냉장고 안에 경지연이 손으로 남긴 쪽지가 있었다.


‘객실에 있는 건 술 빼고 다 마음대로 드세요! 어차피 다 우리 할아버지 돈! ^^’


언제 이런 걸 다 남겼을까.

그녀가 나를 향해 보이는 호의가 기분 좋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했다.


“내가 이런 걸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나는 콜라에 손을 뻗으려다가 그 옆쪽의 맥주를 꺼내들었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나는 객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마치 누가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이쿠, 손이 캔을 따버렸잖아?”


나는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

얼마만의 음주인가.


사실 나는 이번생에서 술을 마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진짜로.

그러니까 이 맥주는 1세기 만의 술이었다.

단 한 캔인데도 불콰한 취기가 올랐다.


“이 누나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친누나 유동희는 서울에 있는 친구를 만나겠다며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10권 산 김에 오늘 다 나눠줘야겠다! 금방 올 테니까 누나 기다리지 말고 자고 있어!]


우리 가족 괜찮은 거 맞나.

나는 맥주를 쥔 채 슬랩스틱쇼를 한 번 더 했다.


“어이쿠, 만취해서 돌아온 누나가 맥주도 한 캔 마신 걸로 하면 되잖아!?”


별로 재미는 없었다.


형은 여친 가족이랑 사라지고.

누나는 친구 만난다고 안 들어오고.

나는 맥주를 마신다.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객실 창밖을 내려다보게 만들었다.

102층 스위트룸의 전망은 아득하고, 황망했다.


그곳에선 별이 빛났다.

하지만 그 별은 하늘이 아니라 땅 밑 아찔한 아래에서 빛났다.


서울에 별이 어디 있겠는가.

진짜 별을 모두 지운 거대한 도시.

그 도시는 밤거리의 불빛을 자신의 별무리로 거느리고 있을 뿐.


“돈이 많으면 별을 발 밑에 깔아두고 살 수 있구나.”


야경을 은하수로 누리고 있는 거대한 첨탑.

그 탑의 가장 꼭대기 객실에 바로 내가 있었다.


“나 왜 여기 있지?”


나는 내가 머무는 프리미어 스위트룸과 지하철 사이의 간극을 생각했다.


“고작 10분 거리일 뿐인데 정말 다르구나.”


나는 화려한 빛을 뿌리는 창밖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렇다.

노숙자 가득한 잠실 지하도와 수백만 원이 넘는 이 호텔의 물리적 거리는 고작 10분에 불과했다.


그 10분 남짓한 거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에이, 몰라!”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조금 작은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집무용 책상이 있었고, 책상엔 경지연이 놔두고 간 노트북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경쾌한 목소리가 내 머릿 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냥 마음대로 쓰셔도 돼요! 가지셔도 되고요!]


그녀의 호의가 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이 호텔에 들어오고 왜 계속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는지도.


<달바다촌의 꼴통, 유동주.


북간도의 습작생, 윤동주.


구칠월문학상을 수상한 천재 작가 유동주.>


그 셋 사이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불과 몇 달 전까지 길거리에서 판사를 팬 묻지마 폭행범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작가님 소리를 들으며 근사한 호텔에서 대접받고 있다.


그 몇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 수 없는 객실에서 쓸쓸하고 황량한 바람이 내 마음 속으로 밀어닥쳤다.


나는 그 바람에 떠밀려 천천히 노트북에 손을 뻗었다.


“써야 해. 써야 한다. 쓸 수 있을 거야.”


나는 한 자, 한 자씩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한 글자씩 저녁이 밀려나고, 동틀녘 창백한 아침 햇살이 나를 들여다볼 때까지.


그리고 아침.

반시체가 되어 책상에 엎드려 있는 내게 누나가 소리 질렀다.


“어머, 어머, 어머, 야, 유동주! 뭐야, 꼬박 밤을 새운 거야!? 미친 거 아니야!?”


눈 아래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운 내게 누나가 다가왔다.


“그, 그러는 누나야말로 언제 들어온 거야? 밤 샜어?”


누나는 빙그레 웃어보이며 내 등을 두들겼다.


“동주야.”

“응?”

“술 먹고 첫 차를 탄 건 밤을 샌 게 아니야.”

“그러면?”

“불타는 새러데이 나이트라고 하는 거야.”


나는 황당한 눈으로 내 누나를 쳐다보았다.


“누나.”

“응?”

“오늘 수요일이야.”

“그러면 불타는 웬스데이 나이트?”


나는 황당함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도저히 진지할 틈이 없었다.


“풉, 푸하하하. 그게 뭐야.”


누나의 말이 맞았다.

불타는 수요일 밤이었다.


까맣게 탄 간밤의 잿더미가 내 노트북에 글자가 되어 빼곡히 적혀 버렸다.




32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단상에 섰다.

초조했다.

이제 곧 독자와의 만남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긴장되세요?”


내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오늘 사회를 맡는 경지연이었다.


“조금요?”


나는 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 독자와의 만남이 진행되는 곳은 KH 문고의 큰바다홀.


그곳은 100명 남짓한 인원이 들어올 수 있다는 소극장이었다.

아늑하지만, 어쩐지 웅장한 분위기를 풍겼다.


“100명이 앉을 수 있는 거 맞아요? 더 많은 것 같은데?”

“제 마음 같아서는 1000명 넘게 들어오는 대극장으로 잡고 싶었어요.”


나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경지연이 짓궂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진짜 걱정마세요. 생각보다 단숨에 끝날 거예요.”


경지연의 말은 사실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나는 아무 말이나 뱉었다.


“작품의 구상을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아, 음, 제가 만약 윤동주라면 민족 시인이라기보단, 어, 음, 열심히 글을 썼던 한 청년으로 기억되고 싶을 거란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아, 음.”


중간에 도대체 몇 번이나 쓸데없는 추임새를 넣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간단한 작품 소개가 끝난 후엔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경지연이 독자를 둘러보며 질문을 받아냈다.


“혹시 질문하고 싶으신 독자님 계신가요?”


아무도 말이 없었다.


역시 한국인이었다.

질문을 시키면 손을 들지 않는 게 우리 민족의 국민적 합의 아닌가.


어색한 침묵을 뚫은 것은 맨 뒤에 앉은 한 남자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내게 물었다.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으셨던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


처음에는 단지 쓰고 싶었다.

이전 생에서부터 쓰던 이 작품을 반드시 완성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전 생에서는 왜 쓰고 싶었을까.


하지만 역시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내 마지막 삶을 걸고 단 한편의 글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더욱 쓰고 싶었다.


그렇다면, 작품을 다 완성한 지금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걸 나는 깨달았을까.


잠시 간의 망설임 후, 나는 청중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삶의 어떤 어려움도 반드시 결실로 만들 수 있다. 노력한다면 가난도 우리의 재산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후, 질의응답은 시덥잖은 질문들로 빠르게 끝났다.


"글을 쓰는 루틴은 어떻게 만드셨나요?"

"글쎄요, 감방에서 쓴 글이라 루틴에 대한 노력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웃었다. 나는 내 개그가 통해서 즐거웠다.


"글은 언제부터 쓰셨나요?"

"100년 전부터요."


이번엔 개그가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뭐, 즐거우면 됐지.


MBTI와 가족관계까지 모두 밝힌 뒤에 질의응답은 끝났다.

이후, 경지연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작가님, 질의응답 때 정말 잘하시던데요? 작품 소개할 때는 조금 긴장하신 것 같더니.”

“하, 하하하. 다행이네요.”

“이제 싸인을 원하시는 독자분들께 서명만 해주시면 끝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셀 수 없이 많은 독자들이 몰려와서 싸인을 요청했다.


“정말 잘 읽었어요. 윤동주에 대한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어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잘 생겼어요!”

“안 잘 생겼지만, 역시 감사합니다!”


독자에 대한 대처도 하다보니 느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싸인을 받는 독자 중엔 한 할머니도 있었다.

그녀는 급기야 내 손까지 붙들었다.


“고맙소이다. 고맙소. 나도 달동네에서 자랐어. 가난이 재산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어. 아주 어린 친구의 소설이 내 가슴을 울렸어.”


노파의 말이 오히려 내 가슴을 쳤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대답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또 보자고. 꼭 또 봐. 내가 오래 살 테니까 오래오래 글 쓰고.”

“네, 정말 감사해요.”


싸인을 받고 돌아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오래 쳐다보았다.

그녀의 조금 굽은 등이 남일 같지 않았다.


'이전 생의 내 조모가 떠오르는구나.'


그녀 눈가에 맺힌 눈물이 내 마음을 더욱 아리게 했다.


정신없이 싸인을 하고, 마침내 독자와의 만남이 끝났다.


그런데 극장 맨 뒤에서 조심스럽게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경지연이 그를 막아섰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는 가장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던 마스크를 쓴 남자였다.

나는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서, 설마?”


나는 그 남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네가 여기 웬일이야!?”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마스크를 벗었다. 그는 바로 박서완이었다.


“짜식, 형님 오니까 좋냐?”


평소라면 무슨 소리냐며 타박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당연하지, 인마. 걷는 건 이제 완전 괜찮은 거야?”

“뭐, 이 정도 걷는 건 괜찮아. 목발도 저기 있고.”


박서완은 고갯짓으로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 애를 꽉 끌어안았다.


“그래, 와줘서 고맙다.”


박서완은 그런 나를 굳이 밀쳐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잠시 간의 포옹 뒤, 박서완이 자신의 가방을 뒤졌다.


“기다려봐. 우리가 약속했던 게 있잖아.”

“약속?”


나는 의아한 눈으로 박서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생각났다.

우리의 약속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박서완, 너 설마?”


박서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몰아세웠다.


“야! 다음 작품은 나랑 같이 해야지! 잊었어?”


박서완이 그 말과 함께 가방에서 그림을 꺼냈다.

나는 그 애에게 소리쳤다.


“이야, 어떻게 이런 작품이 나왔지? 너 내 다음 소설 읽었어?”


작가의말

32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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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9 24.07.22 1,131 5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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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6 24.07.21 1,209 54 13쪽
30 30화 +5 24.07.20 1,234 54 11쪽
29 29화 +3 24.07.20 1,263 48 12쪽
28 28화 +6 24.07.19 1,315 58 11쪽
27 27화 +12 24.07.19 1,379 62 11쪽
26 26화 +5 24.07.17 1,356 5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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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5 24.07.13 1,452 5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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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5 24.07.11 1,526 54 12쪽
19 19화 +9 24.07.10 1,549 55 12쪽
18 18화 +5 24.07.09 1,536 5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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