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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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3 17:37
최근연재일 :
2024.08.2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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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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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3화

DUMMY

33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Y,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교토 거리 어딘가에서 나는 그 남자를 만났다. 비 내리는 이자카야 골목 어딘가였다.


닭꼬치 훈연 냄새 피워오르고, 취기 어린 남자들의 욕지거리가 흘러 다니는 한밤이었다.


새벽이었다. 아니, 한낮이었다. 아니, 사실 아무래야 상관없었다.

그저 시한부의 나날.


검은 유카타를 입은 사내는 조용히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폭우 속인데도 그 사내는 하나도 젖지 않았다.


마치 빗줄기가 그 사내를 피해가는 듯이. 하늘의 어딘가에서 그 사내를 피해서 내리는 게 자연의 당연한 법률이라도 된다는 듯이.


처음 보는 사내의 얼굴은 어쩐지 너무나도 익숙해서 나는 이렇게 묻고 말았네.


“저승사자군요?”


그건 기다리던 만남이었어.


나는 이미 시한부 판정을 받은지 오래되었거든. 하지만 담배도 끊지 않았고, 폭음을 했지, 주점을 흘러다니고, 사람도 때렸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

나는 평생 피땀 흘려 내 재산을 일궈왔어. Y, 자네야말로 알잖아. 근면과 성실. 그게 나를 대표하는 단어라는 걸 말이야.


전파상을 뛰어다니던 어린 소년이 일본 전자 업계를 주름잡는 사내가 되었지.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지.

아내와 자식은 모두 제 갈 길을 찾아 떠나고, 내게 남아있는 운명은 쓸쓸한 죽음 뿐이었어.


그런데 검은 유카타의 사내는 내게 다가와 읊조리는 거야.


“다시 시작하고 싶나?”

“네?”

“억울하다고 생각하나?”


영문 모를 말에 나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봤네. 저승사자라면 응당 내 남은 명줄을 베어가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아니었어. 그는 나의 생사에는 전혀 관심 없는 투로 중얼거렸네.


“네 성공이 모두 네 힘으로 일군 결과 같나?”


뜻 모를 질문에 나는 망설였어.

나의 성공이 모두 나의 힘으로 일군 결과 같냐니.


난 아직도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들어가 맨 처음 출근 도장을 찍어. 거대 기업의 사장이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거물이 된 한국의 대기업, 미국의 견제, 중국의 파죽지세 앞에서 일본을 떠받치는 건 바로 나 같은 50대들이야.


내 성공이 누구 덕이냐고.

내 힘으로 일궜냐고.


그건 나한테 물어볼 것이 아니지. 아니, 감히 내게 그런 걸 물어보아선 안 되는 거지.

나는 저승사자에게 따져물었네.


“당연하죠! 내 성공은, 아니, 이 나라 일본의 성공이 바로 제 덕입니다.”


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네. 저승사자는 내게 천천히 다가왔어.


“일단 나는 저승사자가 아니야.”


지옥에서 올라온 주절거림이 내 귀를 사로잡았네. 낮고, 무거운 음성이 내 귀를 파고들었네.


“나는 죽음이다. 다름 아닌 바로 너의 죽음.”


그 말과 동시에 남자의 얼굴은 가장 낯익은 누군가의 얼굴로 변해갔어.


그래.

그 남자는 바로 나였네.

나의 얼굴을 한 그는 단숨에 나의 목을 틀어 쥐었어.


“다시 시작해도 네 힘으로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은가.”


나는 목이 졸린 채 고개를 끄덕였지. 마구 끄덕였지. 미친 듯 끄덕거렸지.

내 목을 쥐고, 뼈마디를 부수고, 전신을 찢어발겨도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네.


사막 한복판, 정글 한복판에 떨어뜨려도 나는 다시 성공할 수 있어.

그런 '오야지'의 자신감이 있다고.


죽음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어.


“그래, 어디 한 번 기어와 보시지. 네가 지금 일군 재산의 5배를 다시 일군다면 널 다시 살게 해주마. 그것도 아주 건강히.”


그 말을 끝으로 모든 게 다시 시작됐다. 축 늘어진 나의 시체에 교토의 별빛이 무수히 쏟아졌다.




33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나는 경지연과 함께 호텔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그녀에게 서완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지연 작가님, 이거 그림 진짜 좋지 않아요?”


경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감탄을 했다.


“그러게요. 박서완 학생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그림 솔직히 별 기대는 안 했는데요.”

“그러니까요. 보통 아니죠. 아니,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렸지?”


나는 박서완의 그림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감탄을 몇 번이고 다시 뱉게 하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제가 새로 쓴 소설이랑도 너무 잘 어울려요.”


내 말을 들은 경지연의 얼굴에 총기가 돌았다.

그녀가 눈을 빛내며 나를 재촉했다.


“도대체 무슨 소설인데요? 궁금해 죽겠네. 아니, 시집도 낸다고 하지 않았어요?”

“시집은 사실 다 엮여진 상태니까요. 이제 새 작품, 새 소설 들어가야죠.”


나는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경지연이 그런 나를 또 다시 다그쳤다.


“어떤 작품인지 조금만 얘기해주면 안 돼요? 어디 가서 얘기 안 할게요.”


그녀는 애절한 표정까지 지어 보이며 내게 간청했다.

그 얼굴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풉, 푸하하. 그런 표정 짓지마세요. 아직 구상 단계예요. 초반만 일단 집중해서 썼어요.”

“그래요?”

“네.”

“그래서, 그래서, 어떤 내용인데요.”

“일단 도입부터 주인공은 죽고 시작합니다. 그런 내용이에요.”


내 말을 들은 경지연의 눈의 희번덕거렸다.

아니, 이젠 좀 무섭기까지 하잖아.


“이, 일단 저를 그만 노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작품 얘기부터 내놓으십시오!! 어서!!!”


아, 북간도에 계신 내 어머니.

제가 또 실수했습니다.

이 글쟁이란 작자들은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내놓으라 독촉 하는 족속인데요.


경지연은 이젠 나를 붙들고 흔들기까지 했다.

악, 어지러워.

어지럽다.


“그게 뭐예요! 빨리 제대로 다시 알려주세요! 빨리!”

“일단 여기까지! 기다리세요! 나 좀 그만 흔들고!”


경지연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에이, 좋다 말았네.”

“뭐가 좋다 말아요.”

“유 작가님 신작을 세상에서 처음 읽는 독자가 될 뻔 했는데.”


나는 경지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의아했다.

그녀가 언제부터 나의 열렬한 팬이 된 걸까.


“아니, 제 소설을 언제부터 좋아하셨어요?”

“구칠월문학상에 투고된 그날부터? 제가 조직위원이 아니라 심사위원이었으면 바로 결선 올렸을 걸요?”

“제 작품을 투고 때부터 보셨어요?”

“그냥 보기만 했게요?”


경지연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귓속말했다.


“아무리 봐도 박 선생님이 좋아할 글이라 슬쩍 그 앞에 옮겨놓기까지 했죠.”


경지연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것이 바로 문단의 지혜라는 겁니다. 후배님.”

“후, 후배님이요?”

“그렇죠. 문단 후배님이죠. 아닌가요.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니까 더 잘 대접해드릴까요? 이 바닥은 잘 나가는 게 선배니까, 유 작가님이 선배인 걸로!?”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 나를 놀리고 있는 것이다.


“악, 지금 저 놀리는 거죠!”

“반은 진담, 반은 농담. 어쨌거나 작가님 작품 좋아하는 건 일백 프로 진담입니다.”


나를 놀려먹던 경지연은 어느새 내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눈은 어느새 박서완이 그린 그림을 집요하게 훑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요.”

“그림이요?”

“아니요.”


경지연은 감탄하면서 박서완의 그림을 주시했다.


“박서완이란 친구요. 이렇게 유 작가님이랑 딱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을텐데.”


나는 박서완의 그림을 다시 보았다. 나랑 이 그림이 어울리나.


“저랑 이 그림이 잘 어울려요?”

“네.”

“어떤 부분이요?”


경지연은 그림을 천천히 손으로 훑어 내려갔다.


“여기 점점이 찍힌 흰색 물감은 빛인지, 비인지 모르게 처리됐잖아요.”

“그렇죠?”

“이런 부분이 잘 어울려요. 환함인지, 슬픔인지 모르게 처리되는 표현 기법이요. 비는 슬픔이지만, 빛은 환희잖아요. 그런데 그 어딘가의 애매한 경계로 처리하는 스타일이 작가님이랑 잘 어울리네요.”


나는 그 말에 박서완의 그림을 다시 보았다.

경지연의 말이 맞았다.


한 남자가 그림의 정중앙에 서있고, 그 남자 주변에 흰색 물감이 점점이 찍혀있었다.


그 물감은 비이기도 하고, 빛이기도 한 이중적인 처리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비하게도 이 남자는 빛과 비, 그 무엇과도 연관 맺지 않은 채 어딘가로 걷고 있었다.


빛이 와도 젖지 않고.

비가 와도 젖지 않는.


완전히 무관한 한 남자.


그림의 전체적 색조도 어두운 회색과 아득한 흰색 어딘가에서 결정되지 않은 감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연 작가님, 그림에도 조예가 깊으시네요.”

“에이, 저보다 조예 깊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요. 당장 오늘 독자와의 만남만 해도 그렇잖아요.”

“독자와의 만남이요?”


나는 의아한 마음에 경지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놀랐다.


“아니, 전혀 몰랐어요?”

“뭘요?”

“오늘 작가님 손 붙잡고 잘 읽었다고 하신 노인분 기억 안 나요?”

“아, 그 할머니요?”

“네, 그 분 그림작가세요.”

“그림 작가요?”

“네, 우리나라 최초로 잔데르센아동문학상 수상한 구희자 선생님이요.”

“아, 아니, 그렇게 대단한 분이었어요? 근데 왜 아는 척을 안 하셨어요?”


경지연은 말도 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선생님 그런 거 엄청 싫어하세요. 그냥 평범하게 다니시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저도 몇 번 먼 발치에서 얼굴 뵌 정도가 다? 그때마다 누구 혼내고 계셨어요.”


나와 경지연이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인자한 노파가 경지연의 입에선 호랑이 선생님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와, 진짜 알 수 없네요.”

“그쵸? 작가님한테는 엄청 따뜻하시던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림 작가라니.

그림책을 그리는 분이었구나.


그림책에서부터 내 생각의 흐름은 제멋대로 이어졌다.


나는 박서완의 그림을 다시 쳐다보았다.

어느새 의식의 흐름이 내 작품 첫 장에 이 그림이 들어간다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지연 작가님.”

“네?”

“제 책에 이 그림 삽입하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아예 소설에 박서완 그림을 넣는 거예요.”


내 말에 경지연은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쉽지 않을 걸요?”

“왜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경지연에게 되물었다.


“서완이 그림이 소설이랑 안 어울릴 것 같으세요? 아까 했던 말은 다 거짓말!?”


그녀가 나를 향해 손사레쳤다.


“아뇨, 아뇨. 그럴리가요! 아니, 유 작가님 무서운 사람이네!”

“하하, 그럼요?”

“우리나라 소설책에 그림이 삽입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표지 디자인이라면 모를까요.”

“왜요?”


그녀는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그녀가 엄지와 검지를 닿게 하며 돈 모양의 손동작을 했다.


“돈 문제죠. 책 만드는 단가가 오르니까요.”

“그래요?”

“네, 아동문학이나 그림책이 아닌 이상 삽화 삽입은 잘 안 해요. 못 한다고 해야 하나. 관례가 그렇죠.”


나는 낙담한 채 경지연을 바라보았다.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요? 글쎄요.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종이책으론 영 쉽지 않은 부분이라.”


그렇구나.

종이책으로 쉽지 않다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에 나는 낙담했다.

경지연이 그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에이, 너무 걱정마세요. 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지 않겠어요?"

"어떻게요?"


경지연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저도 모르죠. 푸하. 푸하하하하핳."


아, 북간도의 어머니.


경 씨 집안은 다 이상합니다.

할아버지도.

손녀도.




33화

EP2-교토의 별을 헤다 보면




유동주가 독자와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치룬 그날.

일본에선 타카시로 유리가 도쿄로 돌아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교토문예출판사 본사 옆에 딸린 게스트룸.

그 앞 도로에서 유리가 택시를 기다렸다.


“나 갈게. 오빠.”


유리의 오빠 히즈키가 그녀를 배웅해주었다.


“조심히 가. 아니면, 나도 같이 갈까?”

“됐어. 오빠는 교토에서 할 일 많잖아. 나 대신 일 해. 난 다시 방에 틀어박힐 거니까.”


유리가 생각없이 뱉은 농담에 히즈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타카시로 유리가 버럭 성질을 냈다.


“농담이야! 농담! 이제는 바깥 나올 거야.”


유리의 성화에 히즈키의 안색은 금세 밝아졌다.

그가 동생을 향해 말했다.


“그래, 유동주 작가님 시집 내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돼.”


유리가 그런 오빠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히키코모리다.

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자신을 꺼내기 위해 히즈키가 갖은 핑계를 댔다는 사실.

유 작가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


그걸 타카시로 유리가 왜 모르겠는가.


“유 작가님 아니더라도 밖에 나올게.”


뜻밖의 말에 히즈키의 낯이 화끈 달아올랐다.


“알고 있었어?”

“내가 바보야? 유 작가님 핑계로 나 집밖에 꺼내려는 걸 모르게?”


히즈키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했다.

유리가 그런 오빠를 달랬다.


“그래도 오빠 그러는 거 싫지 않아. 사실은 나도 밖에 나오고 싶었어. 유 작가님 글도 정말 좋고.”


말을 마친 유리가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차분한 고요가 두 남매 곁을 병정처럼 호위했다.


유리가 그 서걱거리는 침묵을 뚫고 간신히 한 마디를 뱉었다.


“고마워.”

“어, 응?”

“고맙다고 바보야!”


그런데 유리의 말에 대답을 건넨 건 히즈키가 아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장년의 남자가 걸어왔다.


“고마워야지. 당연히 네 오빠한테 고마워해야지. 네가 해야 할 일까지 교토에서 다 하고 있지 않느냐.”


불만스러운 눈초리가 유리를 압박했다.

그 눈의 주인은 요시다 타케시.

두 남매의 성질 괴팍한 대부님이었다.


“타카시로 유리.”


낮고 무거운 음성이 유리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네?”

“큰목소리로 대답 못 하겠느냐!?어휴, 교토문예출판의 후계를 도대체 어떻게 맡을려고.”


요시다 타케시의 폭언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런 심약한 성미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냐?”

“······”

“그렇게 입 다물고 서있겠다는 게야!?”


요시다 타케시의 이마에 한 줄기 핏줄이 솟아올랐다.


“출판사 일이란 결국 사람 관리야! 네가 한국 꼬맹이 시집을 내서 잘 된다고 쳐! 다음 작품을 그 작가한테 또 받아올 수 있어!? 교토와서 회의나 다시 할 수 있겠고!?”


유리의 오빠 히즈키가 옆에서 요시다를 말렸다.


“부사장님, 일단 유 작가님 시집 원고부터 받는 것에 집중을······.”


그러나 히즈키의 참견은 도리어 요시다의 성질을 돋우고 말았다.


“너는 또 네 동생 일에 참견이야!”

“차, 참견이 아니라.”

“네가 말해봐라. 타카시로 유리. 그깟 시집이 돈을 얼마나 벌어준다고!? 좋은 저자를 섭외하고, 관계 맺고, 지속적으로 책을 내는 게 출판사의 일 아니냐!? 이거 한 권 내고 끝낼 거야!? 그 작가랑 거기서 끝낼 거냐고!”


요시다 타케시의 윽박이 두 남매의 차분한 고요를 무찔렀다.

타카시로 유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결심한 듯 대답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무슨 아저씨야!? 부사장이라고 불러! 아직 출판사 앞인 걸 잊지 마라!”


유리는 고개를 처들고 요시다에게 답했다.


“아저씨야말로 여기가 회사 앞인 걸 잊은 것 같아서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예요.”

“뭐, 뭐라고!?”

“저한테 이렇게 막말하는 거 아무 감정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유리의 윽박에 요시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유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호통쳤다.


“옛날에 아저씨가 저보고 월반하지 말라고 다그쳤죠. 그 결과는 어땠어요? 저는 일본대에 갔고, 수석으로 졸업했어요.”


요시다 타케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유리는 다시 한 번 외쳤다.


“아저씨는 저 나가레보시 리터러시 창업하는 것도 반대했죠.”

“그래서.”

“하지만 지금 일본 최고의 순문학 플랫폼이 어디예요!? 나가레보시예요! 그게 아니었으면 신인 작가들이 교토문예출판을 거들떠나 봤을 것 같아요?”

"교토문예출판은 일본 최고의 출판사야."

"일본 최고의 고루한 출판사죠. 그 정도 사실도 몰라요?"


유리의 반문에 요시다 타케시가 매섭게 눈을 부라렸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래서 그 웹 따위에서 매출이 나와봤자 얼마나 나온다고 그러느냐.”

“눈에 보이는 매출이 다가 아니라······.”


요시다 타케시의 눈에 또 다시 핏발이 섰다.

그가 외쳤다.


“사업하는 사람이 매출이 다가 아니면 도대체 뭐가 다인데!? 웹에서 버는 매출이래봤자, 출판사 매출의 10분의 1도 안 되지 않느냐!?”


타카시로 유리는 다시 한 번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녀가 참았던 한 마디를 뱉었다.


“제 부모님이 죽은 건 제 탓이 아니에요.”

“뭐라고!? 뭐라는 거냐!?”

“제 부모님이 죽어서 제 부모님의 회사를 제가 물려받는 건 제 탓이 아니라고요.”

“똑바로 말해.”


타카시로 유리는 요시다 타케시를 노려보았다.


“아저씨가 평생 일한 회사를 제가 자식이란 이유로 가져가는 게 그렇게 싫어요? 아니면······.”

“아니면.”

“히즈키 오빠가 제 오빠가 된 게 싫으신 거예요?”

“지금 무슨 막말을 지껄이는지 알고나 있는 게야!?”


타카시로 유리는 요시다의 입을 틀어막듯 다시 말했다.


“저희 대부면 대부로 남으세요. 부모 행세하려 들지 말고요. 적어도 저랑은 아예 핏줄도 안 섞인 남이잖아요.”


요시다 타케시는 몸만 부들부들 떨었다.

얼굴이 마그마처럼 달아오른 그가 유리를 노려보았다.


이빨은 어찌나 꽉 깨무는지

어금니 하나가 입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유리는 눈을 꽉 감았다.

늘 저런 패턴이었다. 곧 있으면 요시다의 불 같은 호통이 들이닥칠 터였다.


'지긋지긋한 인간'


하지만 아니었다.

요시다는 어쩐 일인지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져버렸다.


타카시로 유리가 그의 뒷모습을 오래 노려보았다.


“저 미친 아저씨가 웬일이래.”


긴장이 풀린 그녀는 급기야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히즈키가 놀란 목소리로 유리를 일으켜 세웠다.


“야! 유리! 일어나! 맨바닥에서 뭐하는 거야!”


유리는 히즈키의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미안. 괜히 또 오빠가 중간에서 머쓱했겠네.”

“아니야. 요시다 아저씨도 잘 한 거 없는 걸.”

“그래도, 그래도 오빠 친아빠잖아.”


히즈키가 씁슬한 눈으로 땅바닥에 고개를 떨궜다.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의미야.”


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이 복잡한 인연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잡념의 끝은 결국 요시다의 말이었다.


요시다의 말은 거친 데가 있었지만, 틀린 건 아니었다.

나가레보시는 규모는 컸지만 그 규모만큼 제대로 된 매출이 나오고 있지 않았다.


종이책 시장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 출판계 특성 상 나가레보시의 행보엔 제약이 많았다.


유리가 말했다.


“나가레보시가 더 크려면 시장 판도를 바꿀 메가 히트작이 나와야 되는데.”

“히트작?”

“그냥 히트작 말고 메에에가 히트작.”


히즈키가 유리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불편한 자신의 마음을 누구러뜨리려 그녀가 부러 과장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히즈키는 유리의 머리를 쓸며 대답했다.


“그렇게 오버 안 해도 돼.”

“흥. 오버긴 하지만 진심이야. 뭔가 팍 터져줄 만한 게 이제 나와줘야 된다고.”

"팍 터지는 거?"

"응. 종이책만큼 웹에서 확 터져주는 거."


히즈키는 동생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나가레보시 리터러시가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선 유리의 말대로 판도를 바꿀 작품이 필요했다.


단순한 인기작이 아니라 시장 전체를 뒤흔들 어떤 작품이.


생각에 잠긴 히즈키가 유리를 향해 대답했다.


“웹에서만 가능한 연재를 하는 건 어때?”

“웹에서만 가능한 연재?”

“응. 그림 작가를 붙여서 중간중간 삽화를 넣는다거나.”

“그래?”

“응, 아니면 음악도 삽입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오디오북도 만들고.”

“뭔가 협업이 되게 중요하겠네.”


히즈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네 영혼의 단짝 같은 작가가 딱 나와주면 좋을 텐데. 삽화와 글이 환상의 호흡으로 돌아가는.”


두 남매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그림 작가랑 소설가 사이에 사이가 좋기가 쉽지 않은데."


타카시로 유리는 아득히 생각에 잠겼다.

기적 같은 인연이 자신 앞에 나타나주기를 소망하면서.


작가의말

33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중작 내용은 연재 분량에서 제외했습니다! 앞으로도 작중작 등장 시 이렇게 진행할 계획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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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3 24.07.20 1,263 48 12쪽
28 28화 +6 24.07.19 1,315 58 11쪽
27 27화 +12 24.07.19 1,379 62 11쪽
26 26화 +5 24.07.17 1,356 55 12쪽
25 25화 +5 24.07.16 1,382 48 13쪽
24 24화 +7 24.07.15 1,419 54 12쪽
23 23화 +5 24.07.14 1,404 49 12쪽
22 22화 +5 24.07.13 1,452 54 13쪽
21 21화 +6 24.07.12 1,469 53 11쪽
20 20화 +5 24.07.11 1,526 54 12쪽
19 19화 +9 24.07.10 1,549 55 12쪽
18 18화 +5 24.07.09 1,536 51 13쪽
17 17화 +6 24.07.08 1,534 53 12쪽
16 16화 +5 24.07.07 1,565 51 11쪽
15 15화 +5 24.07.06 1,612 49 12쪽
14 14화 +5 24.07.05 1,605 61 12쪽
13 13화 +4 24.07.04 1,626 57 11쪽
12 12화 +2 24.07.03 1,688 54 13쪽
11 11화 +6 24.07.02 1,719 53 11쪽
10 10화 +6 24.07.01 1,770 68 12쪽
9 9화 +6 24.06.30 1,822 6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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