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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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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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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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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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화

DUMMY

어둠이 짙게 깔린 늦은 밤 교복을 입은 두 여학생이 무서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 왜 귀신을 봤다는 사람은 많은데, 귀신 보는 능력이 있다는 사람은 없는 줄 알아?”


“글쎄···, 모르겠는데?”


“귀신을 볼 줄 안다는 건 그만큼 죽음과 가까워졌기 때문이래···”


“······”




꼴깍


듣고 있던 여학생이 침을 삼킨 그때.




“워!”


“꺄악!!”




“푸하하하! 얘는 놀리는 맛 나게 겁 진짜 많다니까!”


“아, 진짜 하지 말라고~”


“무섭지! 무섭지?”


“아 진짜···.”




이내 갈림길이 나오자 두 여학생은 인사를 나눴다.




"그럼 내일 봐, 라희쨩!"


"응~ 빠이!"




라희라 불린 여학생이 가방끈을 고쳐매며 암흑이 짙게 깔린 비포장도로로 걸어갔다.


방금 친구가 한 귀신 얘기 때문일까 더욱 겁에 질린 라희는 발걸음 속도를 올렸다.


자박자박 흙 밟는 소리가 고요한 밤사이로 퍼져나갈 때 음습한 기운이 라희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젠 겨우겨우 빛을 내던 가로등 하나마저도 팍 소리를 내며 완전하게 빛을 잃고 말았다.


앞으로 몇 개의 가로등이 있긴 하지만 하나 건너 두 개는 고장이 난 길이었다. 그나마 켜져 있는 가로등도 오래되었는지 침침하게 겨우 길을 밝혔다.




"으···. 민원을 몇 번을 넣어도 가로등 하나 안 고쳐주냐 진짜···."




라희는 괜히 무서운 마음에 혼잣말을 중얼댔다.


그동안 수없이 다니던 등하굣길 이었지만, 오늘따라 왜인지 더욱 스산하게 느껴졌다. 라희는 두 손바닥으로 팔을 비비며 솟아오르는 소름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이젠 애써 침착한 라희를 비웃기라도 하듯 눈앞에 한 가로등은 불빛을 깜빡였다.


점멸하고 있는 가로등 아래를 지나는 라희의 기분은 더욱 무서웠다. 하지만 어차피 지나야 할 길, 별일 없을 것이라 자신을 위로한 라희는 고장 난 가로등을 지나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매일 걷는 길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




라희의 그런 꿋꿋한 생각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짙은 어둠 속으로부터 마른 풀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삭-!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밤이어서 그랬을까, 코앞에서 들려온 소리는 마치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를 들은 듯 라희를 얼어붙게 했다.




순간 라희는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놀랐지만, 아직 집까지는 멀었기에 다시금 발길을 재촉했다. 자꾸 옆으로 쏠리려는 시선을 다잡아 정면을 바라본 그 순간.




"어···? 뭐지?"


"······."




아무도 없어야 할 탁 트인 길 위에 무엇인가 라희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은 아닌 것 같았다. 더욱 자세히 보니 목이 비정상적으로 길었고 다리가 네 개였다.




“산짐승인가···?"


”······."




라희는 머릿속으로 침착하게 생각했다.




‘가만있어 보자, 저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분명히 기억 속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형체였다.




문제가 있다면 그때는 환한 낮이었고, 지금은 온통 새까만 밤이라는 것.




실루엣뿐인 어둠 속의 생물을 알아차리기엔 그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라희가 열심히 정면의 무언가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 중인 와중에 그 새까만 무엇인가가 한 발자국 움직였다.


그러자 그것의 눈이 번뜩였다. 라희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눈앞의 형체가 고라니라는 걸 깨달은 그녀의 피부는 순간 깃털 뽑힌 닭처럼 소름이 돋았다.




"꺄아아아아아악!!!“




라희의 입에서 가녀린 듯하지만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라희를 가만히 뚫어지게 쳐다보던 고라니도 멍을 때리고 있었는지 가만히 있다가 라희가 비명을 지르자 그제 서야 길쭉한 주둥이를 열었다.




그 주둥이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맑고 유려한···.




"웨에에에에엑!!!!!!“




고라니 소리에 맞춰 라희의 비명이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웨에에에에에엑!!!!!”




고라니도 질 수 없다는 듯 연달아 소리를 내질렀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서로의 비명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성악의 대가, 조수미 선생님도 울고 갈 만큼 놀라운 이 합창이 수 초간이나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의 미성을 뽐냈을까. 먼저 정신을 차린 고라니의 위아래로 쭉 벌어진 입이 닫히더니 그의 동그란 눈이 빛났다.




“응? 방금 뭔가 빛났···"




고라니의 눈이 빛남과 동시에 온몸에 따듯하게 퍼져 가는 난생처음 겪는 이상한 느낌에, 라희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눈을 깜빡였다.




‘어? 왜 땅이 가까워지지?’




시야에 점점 가까워지는 땅을 바라보던 라희는 그대로 스르륵 눈을 감고는 중력에 몸을 맡겼다. 눈을 다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건 번득이는 고라니의 눈이었다.




'고놈 무슨 눈에 LED를 달았나···.‘




******




"으으···."




라희가 다시 눈을 뜬 곳은 집이 아닌 응급실 침대 위였다.




"라희야! 괜찮니? 정신이 좀 들어?"


"엄마? 뭐야 나 왜 여기 있어?"




라희는 병원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이내 교복을 대충 걷어 올린 자신의 팔에 연결된 링거 줄을 발견했다.




"이건 또 뭐야!"


"어떻게 된 건지는 네가 알아야지! 하도 안 오길래 너 찾으러 나갔는데 병원에서 전화 오더라! 고3이라 그런가, 얘가 안 하던 기절을 다 하네.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아휴···, 어쨌든 깨서 다행이지. 의사 선생님 모셔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따다다 잔소리를 몰아붙인 엄마가 침상 커튼을 젖히고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던 라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기절했다 깬 딸한테 저렇게 쏘아 대도 되는 거야? 근데··· 내가 링거라니, 기절이라니?!’




19년 외길 인생 살아오면서 수술은 물론 링거 한 본 맞아 본 적 없을 정도로 튼튼함의 대명사라고 자부해왔던 그녀다.




‘그까짓 고라니 하나 때문에 기절을 해? 대한민국 여고생으로 아침 8시 등교에 밤 10시 야자를 견뎌내는 내가?’




한껏 뾰로통해진 라희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짜증 나···."


"왜? 뭔 일 있어?"


"아 몰라! 고라니 때문에··· 몰라몰라! 쪽팔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라희가 대답했다.




"고라니가 왜?"


"왜긴 왜야! 고라니 자식이 내 앞에 길을 막고 소리를 지르ㄱ···, ···어···?"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은 듯, 자연스럽게 대답하던 라희의 말이 뚝 멈췄다. 그리고는 엄습하는 두려움에 그녀의 온몸이 경직됐다.




"소리를 지르 뭐?"




라희는 여전히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기 위해, 아니 그 존재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지금 이 병원 침대를 둘러싼 커튼 안에는 분명 자신밖에 없었다.




"왜 말을···."




여전히 가만히 있는 라희의 시야 안으로 검은 형체가 스르륵 들어섰다.




라희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한 채 정면만 바라보려고, 저 낯선 무언가에 시선을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라희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시야 정면을 검은 형체가 가득 채웠다.




"하다가 말아?"




갈갈이 찢기고 덕지덕지 기워져 태초에 어떤 옷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옷차림. 누렇고 중간중간 까만 치아가 훤히 보이도록 씨익 웃고 있는 입. 도려져 버린 코. 흰자 없이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검은 존재가 라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엄마, 엄마!!! 엄마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라희가 혼비백산하며 링거 줄을 뽑아 던지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무작정 달렸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팔에는 피를 흘리며 내달렸다.




그렇게 미친 듯이 내달리는 와중에도 검은 형체는 끝까지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왔다.




"어디가? 말은 끝내고 가야지~"


"오지 마! 오지 마아!!!"




라희는 온몸을 타고 피어오르는 스산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저 미친 듯이 앞으로 또 앞으로 내달릴 뿐이었다.




얼마나 도망쳤을까. 아예 병원 밖으로 뛰쳐나온 라희는 도로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늦은 밤이라 차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깔깔깔! 얼마 만에 보는 귀안이야! 너 나랑 같이 가자!“




검은 존재는 여전히 이상한 말을 주절거리며 라희의 주변을 맴돌았다.




철푸덕!




맨발에 피가 나고 돌이 박히는지도 모른 채 도로를 달리던 라희가 끝내 넘어지고 말았다.




"으윽···!"


"어머~ 아프겠다~, 얘~ 그러게 누가 도망가래? 깔깔깔!"


”꺄아악!!!“




라희는 몸에 잔뜩 난 상처는 생각할 틈도 없이 검은 존재를 떨쳐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주변에 널브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휘둘러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검은 존재는 라희를 비웃기만 했다.




"너··· 왜 자꾸 도망가?"


"너, 너 같으면! 너보고 도망 안가겠냐!?! 더럽고 못생기고 추악하게 생긴 주제에!!!"




라희는 잔뜩 겁을 먹은 와중에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깔깔깔! 너 재밌는 애구나! 더해 봐! 오랜만에 사람이랑 말하니 너무 좋다!"




그런 라희의 말에도 검은 존재는 그저 스산하게 웃으며 답했다.




"너, 너는 코도 없잖아! 이상해!"




눈을 질끈 감고 외친 한 마디에 뚝. 검은 존재의 웃음이 멈췄다. 무서웠다. 그는 조용해졌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왜인지 더 두려움이 증폭되는 것만 같았다.




소름 끼치는 조용한 침묵이 불러온 궁금증에 라희는 두 눈을 살그머니 떴다.




"뭐라고?"




어느새 라희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검은 존재가 밤을 집어삼킨 까만 두 눈동자로 그녀를 죽일 듯이 바라보았다.


그의 창백한 피부에는 시퍼런 핏줄들이 울룩불룩 돋아나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내 코가 뭐?"


"꺄아아아아··· 크흑···, 컥···!"




검은 존재가 갑작스럽게 라희의 목을 조였다. 라희는 목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 힘을 어떻게든 떨쳐내려 했으나 연기처럼 만져지지 않는 검은 존재를 떨쳐낼 수는 없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숨은 더 가빠왔고 몸은 점점 힘이 빠져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을 늘어트리며 다시 또 기절하려는 그때.




"내 코가 어때서! 네가 뭔데! 왜!"




"웨에에에에에에에에엑!!!!!!!!"




퍼억!




저 멀리서 마치 우사인 볼트가 달려오듯 고라니가 달려왔다.


고라니는 나비처럼 사뿐하게, 또 우아하게 날아 벌처럼 자신의 머리로 검은 존재를 가격했다.




"흐억!"




검은 존재는 비명 한 번 제대로 질러보지 못한 채로 나가떨어졌다. 그러자 드디어 숨통이 트인 라희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콜록! 컥! 하아!"




목을 가다듬으며 간신히 정신을 차린 라희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끼에에에에에엑!!!"




요란하고 소름 돋게 괴성을 지르는 검은 존재와 그를 씹어먹고 있는 고라니의 모습···.




사슴이 풀을 뜯듯이 고라니가 검은 존재를 뜯어먹고 있었다.




순간 라희의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고라니는 그것을 한참을 뜯어먹다가 다 먹어 치웠는지 고개를 들었다.




원래 고라니가 저렇게 무지막지한 캐릭터였나. 라희는 아파오는 머리에 잠시 이마를 짚었다.




고라니는 고상하게 식사를 마치고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라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라니가 앞발을 들어 탁탁 바닥을 찧었다.




그러자 고라니의 발끝부터 황금색의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여 저건 또??’




라희는 빛나는 고라니를 보며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하고 생각했다.




서서히 새어 나오던 빛은 어느새 고라니를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라희는 잠시 뇌를 꺼내 박박 빨아서 널렸다가 다시 끼워야 하나. 어디 가서 새 뇌를 사 와서 갈아야 하나 고심 중이었다.




그렇게 고라니를 가득 집어삼킨 빛이 잦아들고 나타난 건.




"사람···?!"




라희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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