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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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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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99,483

작성
24.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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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4화

DUMMY


쓰러진 할머니는 다행히 기절은 아니었는지 곧이어 정신을 차렸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라희...? 도사님?”


어수선한 분위기에 할머니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을 둘러싼 세명의 사람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지민이 친구 라희, 지민이 굿 해주신 도사님 그리고 외국인인가? 금발에 가까운 제임스의 갈색머리를 보고 할머니는 그를 외국인으로 오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또 그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


‘요즘 외국인들이 한복 체험 많이 한다더니...’


할머니는 제임스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단단히 오해를 받고 있는 제임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 사람 얼굴 다 알아보는 거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닌가 보오.”


한국말 잘하는 싹퉁 바가지 외국인. 할머니의 제임스 첫 인상이었다.


라희와 성현이 할머니가 어지럽지 않게 천천히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평상에 조심히 앉혔다. 할머니는 머리가 어지러운 듯 잠시 성현의 팔을 잡으며 움찔했지만 이내 곧 고개를 들어올렸다.


“좀 괜찮으세요?”

“그래, 조금 어지러운 것 말고는 괜찮구나.”


라희는 할머니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할머니,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응? 라희 아니냐. 왜 내가 너도 못 알아 볼까봐?”

“아, 아니에요.”


악령의 힘 때문일까. 도깨비의 도술이 풀린 할머니는 정상으로 돌아오신 듯 했다. 더 이상 라희를 지민이라 부르지도 않았고 보이는 그대로 알아보셨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라희는 속으로 숨을 골랐다. 할머니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근데 댁은 뉘시오?”


할머니가 제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곤 제임스의 뒤, 정확히는 살짝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너는 또 누구니?”

“...!”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잠시나마 있었던 악령의 힘으로 도깨비를 보게 된 것일까. 라희는 어떻게 해야하냐는 듯이 제임스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니? 이 할미가 무서우냐?”


도깨비의 모습을 단지 어린 아이로만 보는 할머니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서워서 어른 뒤에 숨어있어도 궁금하다고 고개 빼꼼 내미는 모습이 지민이 어릴 때와 똑 닮았구나.”


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히며 도깨비를 내려다보았다. 도깨비의 모습이 마치 지민의 어릴 적과 꼭 빼닮았기에 할머니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손녀를 앞세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남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지. 비통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 울지마.”


제임스 뒤에 숨어있기만 하던 도깨비가 할머니가 눈물을 보이자 잽싸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손을 들어 할머니의 눈가를 닦아주려는데 애석하게도 아이의 손이 스르륵하고 할머니의 몸을 통과했다.


“뭐, 뭐니?”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일에 할머니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어ᄄᅠᇂ게 된 일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성현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도사님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게 아니냐는 듯.


허나 성현은 말을 아끼고는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마치 설명을 떠넘기는 것처럼. 도깨비에 대해선 본인보단 훨씬 아는 게 많을 테니 말이다.


“그 아이는 댁이 아는 보통 인간이 아니오. 뭐 방금 상황으로 짐작은 했겠지만.”


할머니가 제임스가 신기한 듯 올려다 보았다. 마치 이렇게 한국 말 잘하는 외국인은 처음 본다는 듯이. 할머니의 눈빛이 점점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지자 성현이 중재에 나섰다.


“이 분은 저와 같은 박수무당입니다.”


위령굿을 지낼때는 본업에 충실하느라 할머니에게 반말을 했던 성현이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청년으로써 할머니를 존대했다.


“그게 무슨...! 아악!”


박수무당이라고 소개된 것에 화가 난 제임스가 뭐라 반박하려하자 라희가 ᄈᆞ르게 제임스의 허리를 잡아 꼬집었다. 그가 산신이란 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린다면 굳이 좋을 것이 없다는 라희의 판단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진짜 아픈지 제임스가 잠시 라희를 울먹이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꼬집힌 지점을 박박 문지르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제임스요.”

“제인? 역시 외국인이셨구만?”


평생을 한국 시골에서 살아온 할머니에게 제임스란 이름은 꽤 생소하고도 어려운 이름이었다.


“제임, 제임스! 내가 방금 제임스라 하지 않았소!”

“아아, 제이슨? 미안하오. 늙은이 귀가 안 들려서. 거 이름도 참 특이하네 그려.”

“이, 이 노인네가...!”


제임스가 얼굴 전체를 붉히며 씩씩거렸다. 아무래도 제임스가 도깨비에 대해 설명하기는 글러 먹은 듯 했다. 라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할머니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할머니, 이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예요.”

“뭐? 너도 이 할미를 놀리는 게냐? 이 할미가 아무리 정신이 없다지만 그런 식으로...!”


도깨비란 말에 할머니가 화를 내었다. 아무래도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할머니가 조용조용하게 역정을 내던 그 때 도깨비가 한 번 더 할머니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아이의 손이 할머니의 손을 통과했다.


할머니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손녀를 잃더니 드디어 정신을 잃었구나. 아까는 라희에게 지민이라 부르는 꿈을 꾸더니. 이제는 헛것까지 보는구나 싶었다.


“아냐, 그거 내가 한 거야.”

“...?”


조용한 가운데 도깨비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워낙 뜬금없는 말이라 할머니를 포함한 모두가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예상한 반응이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해. 너무 궁금해서 할매 속을 읽었어. 할매가 꿈이라 생각하는 그거 꿈이 아니라 진짜였고 내가 한 일이야.”


도깨비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는 건지 아니면 그냥 혼날까 무서운 건지 아니는 덜덜 떨고 있었다. 할머니는 미소지으며 아이를 불렀다.


“이리 더 가까이 와보겠니?”

“.......”

“그럼 내가 가마.”


아이에게 맞추어 평상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춘 할머니가 말했다.


“무서워 할 것 없단다.”


가만히 지켜보던 제임스가 도깨비의 머리 위에 손을 얹더니 황금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약간은 불투명했던 도깨비가 불투명하게 바뀌었다.


“잠시나마 만질 수 있을거요.”


제임스를 바라보며 싱극 웃어보인 할머니가 손을 들어 도깨비를 쓰다듬었다. 원래라면 할머니의 손이 도깨비를 통과 했겠지만 지금은 제임스의 힘을 빌어 아이를 만질 수 있었다. 예상치 못 한 스킨쉽에 아이가 깜짝 놀라며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덕분에 좋은 꿈을 꾸었어.”


할머니가 인자하고 상냥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로써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따듯한 말이었다.


“그럼 계속 꿈에서 살면 안 돼?”


도깨비는 마치 진짜 아이가 울상을 짓듯 하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손주가 할머니에게 앙탈 부리는 모양새였다. 할머니는 아이의 모습에서 마치 어릴 적 지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할미는 말이다. 슬퍼도 기억하고 싶단다.”

“왜? 기억 안 하면 행복할 수 있어!”


아이는 그저 일차원적인 ‘행복’만을 부르짖었다 할머니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아이의 의중을 알아챈 할머니가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이 기억이 나에겐 내 삶 자체란다.”

“.......”

“비록 슬프지만 내 삶을 거스르고 싶지 않단다. 이 할미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지민이를 기억할 거란다. 그게 삶의 이치이고 내가 삶의 이치대로 살다 갈 수 있도록 놔두어 주렴. 잠깐의 행복한 꿈으로도 난 괜찮아.”

“하지만...!”


아이는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아무래도 할머니를 위한다는 일이 할머니를 더 슬프고 힘들게 만든 것 같았다. 인간이 아닌 도깨비라도 아이는 아이였을까. 아이는 차오르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진짜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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