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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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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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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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그렇게 주말이 지났다. 저녁의 학교엔 야간 자율학습, 즉 야자로 학생들이 학교 책상에 머리를 박고 다들 한창 공부 중이었다.




딩 동 댕 동-




쉬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저들끼리 무리로 모여 지민이 이야기를 한창 해댔다. 지민이의 얘기는 이 지루한 학교생활에서 학생들을 자극하기에 딱 좋은 가십거리였다. 걱정하는 마음을 방패 삼아 그녀를 헐뜯는 학생들을 보며 라희가 치를 떨었다. 저 중엔 가해자도 있을 테니.




“대박 8반에 이지민이라고 자살한 거 알아?”


“야 조용히 해 담임한테 들킬라!”


“딴 반에선 이지메 살자 사건이라고 다 말하고 다니는데?”


“쌤들은 이거 다 쉬쉬하고 있잖아, 들키면 혼나!”




학교에 나오니 주말 동안 애써 잊고 있던 라희의 마음이 다시금 무거워졌다. 친구가 죽었고 그 친구를 다시 죽인 자와 주말을 보냈다.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집에 폐가 될까 참아봤고, 어릴 적부터 연약한 동생과 다툴 일로 화가 나도 참아왔다. 계속해서 참으며 바보같이 살다가 겨우 한 번 용기 내 부탁했는데 그 일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더 정신을 바짝 차렸었다면···'




라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급식실에서의 일도, 지민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일도 모두 후회투성이였다. 지민을 향한 후회와 미안한 마음에 라희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놀랐는지 몰려와서 다독였다. 하지만 이미 터져버린 눈물은 멈추지 않고 더 쏟아졌다.


때마침 아이들이 모여있어 그걸 본 선생님이 나타나 물었다.




“얘 너 어디 아프니?”




***




마음이 아픈 것도 아프다고 쳐주는 것인지 야자를 빠진 라희는 집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그러다 갈림길이 나오자 라희는 발걸음을 멈췄다. 집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면 됐지만, 오른쪽 길 끝엔 지민의 집이 있었다.


라희는 갈림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라희가 계속해서 길을 걷자 노을을 등진 한 집에서 요란한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치징칭치징치지징-




지민의 집 대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라희를 불렀다. 까만 상복 차림의 할머니였다.




“지민이 친구여?”


“······.”




라희는 고개를 떨구었다.




“지민이 친군갑네, 와줘서 고마워 들어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대문을 넘어 마당까지 끌려들어 온 라희의 눈앞엔 해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오색 찬란한 원색의 천들이 곳곳에서 펄럭였고 마당 한가운데에는 탐스러운 음식이 가득 차려진 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웬 장신의 남자가 새빨간 무속인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이 할미가 제주도 사람이라 우리 손녀 귀양풀이라도 하려고··· 좀 시끄럽지?”




울먹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라희의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초상집치고는 너무나도 사람이 없었기에 라희의 마음은 더욱 찢어지는 듯했다.


라희를 상에 앉히려는 때, 마침 무속인의 옷을 입은 남자가 동정심 하나 없는 차가운 눈으로 할머니에게 다가왔다.


웨이브 하나 없이 올곧은 흑발을 뒤로 넘긴 머리, 눈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새까만 눈동자와 칼 같은 콧대까지 그의 모든 이목구비에선 차가움이 묻어났다.




“할멈.”


“예, 도사님?


“못 해.”


“예?”


“이 굿, 못 한다고.”




남자가 냉정한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말을 내뱉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라희에게 까지 전해지는 차가움이었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싸늘하게 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혼이 없어. 이러면 굿 못해.”


“헙···!”




그의 말에 라희가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어떻게 알았지?’




라희가 소리를 내자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차가운 그의 눈이 라희에게 닿자 약간의 놀람을 보이더니 동물원의 원숭이를 바라보듯 흥미로운 눈빛으로 변했다.




“아이고, 도사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제발 우리 손녀 좀 어떻게 좀 해주세요. 이렇게 가기 억울한 아이란 말입니다!”




할머니는 그저 그의 팔을 붙잡고 절규할 뿐이었다. 라희도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눈을 피했다. 그리곤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할머니를 부축했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 손녀! 아이고!!”




라희가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방으로 모셨고,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는 대문 밖으로 향했다.


할머니가 계속해서 울고 있자 라희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자신이 무슨 행동이든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라희는 그대로 방을 나서 도사에게로 향했다.




“혼이 없는 곳에 날 불러? 나 못해. 지인이라고 잘해 주려 왔더니 졸지에 사기꾼 될 뻔했잖아. 난 이런 일 안 한다.”




라희가 통화하고 있는 도사의 등 뒤에 서서 말했다.




“저기요, 잠시만 저 좀 봐요.”




남자는 전화를 끊고는 뒤를 돌아 흥미로운 눈으로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이내 라희의 말에 남자는 무릎을 굽혀 그의 시릴 듯이 하얀 피부 위에 콱 박힌 보석 같은 새까만 눈동자를 라희의 시선을 맞췄다.




“학생, 혼을 위로하는 자리에 혼이 없는데 굿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깔끔하게 뒤로 넘긴 흑발의 잔머리가 이마를 따라 스륵 내려오자 그는 자신의 큰 손으로 머리를 넘기며 일어섰다. 그런 그의 모습을 잠시 넋 놓고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린 라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구나, 누구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잖아요! 그냥 좀 해주세요. 할머니 쓰러질 것 같으신 거 안 보여요?”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그건 사기야.”


“누가 그랬어요! 장례는 산 사람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


“죽은 사람을 잃은 산 사람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거라고! ···그러니, 그러니까 해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순간 남자의 눈이 유하게 풀어졌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같지만 그렇다고 순수하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안되는 건, 안돼.”


“제발···!”




그가 라희를 지나 다시 대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라희는 다급하게 그를 막아섰다.




“2천만 원!”


“···?”


“굿 해주는 조건으로 제가 2천만 원 드릴게요. 단, 할머니는 모르시는 거로.”




라희가 그의 입을 막기 위해 다급하게 큰 금액을 외쳤다, 지난번 제임스의 골드바를 팔고 남은 돈이 있기 망정이지 고등학생이 이런 딜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 짧은 와중에도 자신의 1년 치 학원비는 챙겨두고 부른 금액이었다.




“2천 받고 하나 더”


“네?”




2천도 엄청나게 큰 금액인데 그와 중에 뭔가를 더 바라다니. 라희는 ‘지금 이게 말장난하자는 건 줄 아나’라는 심정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그런 눈빛에도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2천 받고 하나 더, 콜?”


“그 하나 더가 뭔데요?”


“그건 비밀.”

“그걸 알려줘야 하죠!”


“싫으면 말고~”


“추가금은 아니죠?”


“돈은 아냐~”




라희는 심경이 복잡해졌다. 지민이의 할머니도 걱정되고 지민이에게도 미안했다. 그런데 큰돈까지 뜯기게 생겼으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학원비냐 내면의 작은 위로냐, 그렇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도사가 돈은 아니라는 말에 라희는 자신 있게 선택했다.




“그럼 해주세요!”




남자는 쿨하게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곧장 대문을 들어갔다. 그리고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울고 있는 할머니가 있는 방문을 열며 말했다.




“할멈, 손녀가 왔어. 바빠 죽겠는데 왜 이제야 온 건지. 얼른 나와!”


“아이고, 아이고! 정말입니까. 그게 참말입니까, 도사님! 아이고 다행이네, 다행이야!”




남자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희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걱정 말라는 신호가 느껴졌다.




하지만 라희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이 힘을 안전히 그에게 돌려주고 돈을 받아 입시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게 목표였다. 돈만 있으면 학원도 갈 수 있고 여차하면 재수도 할 수 있으니까. 순식간에 2천만 원이라는 돈이 사라지게 생겼으니 라희는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손으로 마구 헤집었다. 미친 사람같이 머리를 다 헝클어 놓고서야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지민이를 위한 거니까.’




어느새 시끄럽게 진행된 굿이 다 끝났다.


할머니는 남자의 손을 잡고 연신 감사하다고 하는 중이었고 그는 별 표정 없이 인사를 받았다.




‘제임스는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닌데.’




매정한 도사를 보며 라희는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제임스와 그를 비교했다. 한껏 오만한 산신이었지만 그래도 남의 눈치를 볼 줄도 알고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할 줄도 알았다. 하지만 저 남자는 오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차가웠다.




제임스와 비교하자니 마치 헤실헤실 웃고 있는 골든 리트리버와 고까운 표정의 시베리안 허스키를 두고 보는 느낌이었다.




‘아, 골든 리트리버가 아니라 고라니인가?’




“푸흡!”




귀가 축 처져서 낑낑거리던 고라니 모습의 제임스를 떠올리자 웃음이 터진 라희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할머니와 도사의 시선이 라희에게로 쏠렸다.




“크흠, 콜록!”




사레가 걸린 척 헛기침을 하며 위기를 모면한 라희가 자신의 머리를 헝클이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에서 웃다니 미친 사람으로 보일 게 분명했다.




“아이고, 도사님.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귀양풀이 비용은 제가 어떻게 해서든 갚을 테니···.”


“이미 받았어. 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예? 전 드린 적이···”




남자가 말하며 라희를 쳐다보았다. 그가 마치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라희는 이번엔 진짜로 사례에 걸려서 콜록거렸다.




“아무튼, 난 받았으니 알아서 하고. 난 이만 가봐야 해서.”




남자가 손목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높게 쳐진 천막 뒤로 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정장 차림의 멀끔한 모습을 보니 꽤 젠틀해 보이는 미남이었다. 채도 높은 화려한 무속인 옷 속에 진회색의 쓰리 피스 양복이 더욱 대비되어 보였다. 그의 흑발은 한층 더 새까매 보이기도 했다.




아직도 제사 비용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할머니를 뒤로 하고는 남자가 대문 쪽에 있는 라희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라희를 지나쳐 가며 말했다.




“네가 범인이지?”




도사의 말에 라희는 지민이가 자살한 이유의 범인으로 들렸기에 묘한 감정이 피어났다.


어쩌면 자신 때문일 수도 있고 괴롭힘의 가해자 때문일 수도 있기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 라희의 침묵에 남자가 다시금 물었다.




“저 집 손녀 혼을 없앤 거.”




라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자신 때문이 아니라 제임스 때문이었으니까. 순간 진짜 용한 무당이라 생각한 라희는 어떻게든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니, 전 평범한 고등학생이고, 무슨 혼을 어떻게···”




하지만 이내 라희의 말을 끊고 들려온 남자의 말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너 뒤에 숨은 신이 그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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