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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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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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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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화

DUMMY

제임스는 성현을 품에 안은 채로 환하게 웃으며 라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쥐를 잡아와 놓고는 속 뒤집어지는 보호자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칭찬해달라는 골든리트리버 같이.




“뭐야!”




성현은 멍하니 그에게 안겨있다가 정신을 차렸는지 발버둥을 쳐서 제임스의 품 안에서 벗어 났다.




그에게서 벗어난 성현이 제임스와 몸이 닿았던 곳을 병적으로 털어내었다.




“거, 구해준 거 고맙다는 소리는 못 할망정 섭섭하게 구오.”




성현은 제임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털어내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성현이 바라 본 곳에는 쭈글해져있는 제임스와 한껏 화를 내고 있는 라희가 보였다.뭔 일인가 싶은 성현은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왜 이제야 나타나요!”


“......”




라희가 성을 내자 제임스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지만 라희는 넘어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 지켜준다며!”


“나도 바빴소...!”




잠자코 라희의 말을 들어주던 제임스가 이대로는 억울했는지 고개를 팍 치켜올리며 대꾸했다.




“그렇게 안일하게 굴다가 내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그쪽은 힘 돌려받을 수 있는 줄 알아요?!”


“......”




하지만 라희 앞에선 어림도 없었다. 라희는 짜게 식은 표정으로 제임스의 손을 내려다 보다가 말했다.




“왔으면 악령부터 잡지 또 도망갔잖아요! 진짜 차기 산신 맞아?”




라희가 손가락으로 어느새 숨어버린 악령이 있던 자리를 가르켰다. 거대하게 몸을 부풀려 돌풍을 일으키던 악령이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린 잡다한 물건들만이 그 곳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악령? 저걸 악령이라 생각한 거요? 라희양 똑똑한 줄 알았더니...악!”




제임스가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올려 라희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남이 보면 꽤나 사랑스러운 커플 같았겠지만 모든 것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뭐요.”




안그래도 입시 스트레스로 가득한 고삼의 심기를 건드려버렸다. 제임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희가 그의 발을 강하게 밟아버렸다. 제임스는 진짜 아팠는지 한참을 발을 잡고 낑낑 거렸다.




“라희?”




그때 순간 존재 자체를 까먹었던 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현은 제임스의 기운을 느끼는 듯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성현의 눈빛은 순전히 호기심과 신기함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마치 성희롱이라도 당한 것처럼 기분이 나빴는지 얼굴을 종잇장처럼 구겼다. 그리고는 마치 엄마에게 ‘쟤 혼내줘.’하는 것처럼 라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 힘의 출처가 당신이군요.”




그런 제임스의 손을 유심히 쳐다보던 성현이 입을 열었다.




“힘의 출처?”




성현의 말을 천천히 곱씹던 라희가 그의 말을 눈치챘다. 하긴 라희의 몸에 있는 귀안력도 눈치 챈 무속인인데 차기 산신 자체가 나타났으니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신의 힘을 대리하는 인간이라. 그 신도 참 작은 그릇을 골랐소.”




제임스가 라희에서 성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고까운 톤으로 말했다. 뭐때문인진 모르겠으나 첫인상부터 그가 맘에 안든 것이 분명했다.




“뭐?”




성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둘 사이에 묘한 스파크가 튀며 신경전이 시작되던 그 때 라희가 분위기를 깨트리며 말했다.




“아니, 저 악령 도망갔잖아요. 어떡할 거예요!”


“아니, 악령이 아니라니까...”


“지민이도 놓치고 저 꼬마도 놓치고 산신이 될 사람이 이래서 산은 제대로 관리하겠어요?”




제임스가 뭔갈 말하려 해도 라희는 틈을 주지 않고 쏘아붙였다.




“아니, 악령...”


“자기 힘도 못 관리해, 영역관리도 못 해. 그래가지고 산신하겠냐구요!”




라희의 말이 화살이 되어 제임스의 가슴에 푹푹 박혔다. 라희의 독설에 시무룩해진 제임스가 입을 삐죽 내밀고 눈물을 글썽이기 직전까지 갔을 때 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악령이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이지?”




라희는 제임스를 혼내느라(?) 알아채지 못 한 그의 말을 성현이 캐치했다. 라희도 그제서야 언어 폭력을 멈추고 제임스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자 우울한 표정이었던 제임스가 다시끔 거만한 자세를 갖추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방금 그건 악령이 아니라 도깨비요.”


“도깨비?”




예상치 못 한 그의 대답에 라희가 되받아쳤다. 귀신, 악령에 이어 이젠 도깨비까지 나온댄다. 라희는 약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제임스에게 물었다.




“도깨비랑 악령이랑은 뭐가 다른데?”


“악령, 귀신은 동물의 혼으로부터 만들어진 존재요. 그대가 본 친구도 그 인간의 혼으로부터 만들어졌지.”




제임스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을 이었다,




“도깨비는 혼이 없는 물체에 누군가의 염원이 깃들면 생기게 되는 것이오.”




제임스가 마당에 널부러진 빗자루를 집어들고는 말을 이었다.




“인간 설화에 가장 흔히 등장하는 게 이 빗자루 도깨비이지. 예전엔 하루 종일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어대며 가장 많은 사념을 했다는 증거이지.”


“아하...”




어느새 제임스의 옛날 얘기에 푹 빠진 라희가 본분도 잊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어이없어 하던 성현이 입을 열었다.




“근데 왜 내 눈엔 보이지 않았던 거지?”




제임스는 라희와 오붓한 대화를 나누던 것을 방해한 성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라희도 궁금한 듯 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못 이기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섬기는 신은 인간의 염원으로부터 나온 존재들이요. 그러니 자연의 힘으로부터 생겨난 이들을 못 보는 것이 당연하지.”




성현의 질문에 대답하던 제임스가 갑자기 깨를 휙 돌려 집안을 쳐다보았다. 라희도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현관에 서있는 아까 그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미안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라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제임스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제임스가 무서운 듯 덜덜 떨었다.




“들어가서 얘기 좀 하지.”




제임스가 처음 듣는 차가운 말투로 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라희에게로 달려왔다. 눈물을 글썽이며 라희의 다리를 감싸 안으며 그 뒤로 몸을 숨겼다. 아까ᄁᆞ지만 해도 매섭게 공격을 하던 도깨비였지만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약하다 했지않은가. 라희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버렸다.




“라희양도 같이 들어오시오.”


“저요?”


“저 도깨비가 라희양 아니면 안 들어올 것 같아서.”




라희는 아이를 내려보다가 이내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에 서있던 성현이 라희를 따라 걸어오자 제임스가 그를 막아섰다.




“이건 인간 따위가 관여할 일이 아니오. 밖에서 기다리시오.”




제임스는 여전히 냉정한 톤을 유지한 채 성현에게 선을 그었다. 선형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묘한 제임스의 기운에 눌려 얌전히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그런 성현을 뒤로하고 들어온 집 안은 삭막하기만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주무시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제임스는 거실 가장 가운데 자리에 한복을 펄럭이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모습이 마치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선비같았다.




라희는 제임스의 옆에 앉으며 거실을 둘러보았다. 거실 벽에는 지민의 일생이 담긴 사진들이 걸려있었고 이곳 저곳에 지민이 받은 상장들이 전시되어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니 마음 한 켠이 아릿해져 왔다.




찔끔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고는 다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했다. 지금 중요한 건 이미 소멸된 지민이가 아니라 살아계시는 할머니였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겠나. 라희는 마주 앉아서 서로를 노려보는 아이와 제임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둘은 계속해서 눈싸움을 하며 대치중일 뿐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네가 먼저 시작하라는 기싸움인 것 같았다. 라희는 그런 둘을 보고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치매가 아니라는게 무슨 말이에요.”




그제야 아이에게서 눈을 떈 제임스가 라희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 애송이의 장난질이라고 할 수 있지.”


“장난질이라니!”




제임스의 말에 아이가 분노하며 몸집을 부풀리려 했다.




“이 집, 네가 그리 아껴 마지않는 할멈의 집인데 부시려고?”


“으윽...”




제임스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흥분했던 아이가 억지로 화를 눌렀다. 그리고는 심술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난 할매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그런거야!”


“치매가 무슨 행복이야!”




잠자코 듣고 있던 라희고 소리를 뺵 질렀다. 치매가 행복이라니 무슨 어이없는 소리인가.




“할매 행복해!”




하지만 아이는 행복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더 이상의 대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라희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지끄ᅟᅳᆫ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럼 이게 일반적인 치매랑은 다르다는 거에요?”


“본디 도깨비는 이매망량이라 불리던 존재들이오.”




제임스가 갑자기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어려운 사자성어를 내뱉었다.




“이매망량? 그게 뭔데요.”


“치미망량이라고도 하지. 치미,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지 않소? 치매의 어원이 되는 말이지. 치매 또한 도깨비의 짓. 병이 아니오.”




가만히 그의 말을 집중하며 듣던 라희가 의문을 품었다.




“아니 어쨌든 기억을 잃는 건 똑같은 거 아니에요!”


“그게 무엇이 중하지?”


“아니...!“




라희는 말문이 막혔다. 제임스가 아무리 산신이라지만 이정도로 꽉 막혀 말이 안 통했던가? 이상하게도 그가 매우 멀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산신이라해도 옆에서 장난만 치는 똑같은 존재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이런 일이 터지니 너무나도 괴리감이 들었다.




“기억은 소중한 거예요! 사람들은 추억으로 남은 생을 살아간다구요.”




라희는 마치 인간 대표로 말하듯 열변을 토했다.




“그건 당신이 겨우 인간이라서 그렇소.”




하지만 제임스는 무심하게 답할 뿐이었다. 그런 그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라희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뭐라구요?




라희는 머릿 속이 멍해졌다. 겨우 인간이라서? 기억을 소중히 대하는 게 겨우 인간이라서 그런다고? 그런 지는 얼마나 잘났는데?




상처 받은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라희를 바라본 제임스의 심장이 덜컹했다. 제임스는 이 기분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었으나 머릿 속에서 빨리 오해라고 말하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하지만 그보다 라희가 빨랐다. 상처를 가득 담은 눈빛으로 제임스를 바라보던 라희가 말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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