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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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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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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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DUMMY

성현은 집 앞까지 데려다주겠다 했지만 라희는 극구 거절하며 마을 앞 어귀에서 내렸다. 집까지 바이크를 타고 와서 내리는 모습을 엄마가 보기라도 한다면 당분간 외출금지는 기본, 사사건건 감시를 당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어둑해져 가는데 끝까지 데려다주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지 성현이 자리를 뜨지 않고 멀어지는 라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이마에 빠득- 힘줄이 섰다.




“라희양!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거요?”




멀리서도 존재감이 뛰어난 제임스의 등장에 성현이 기분 나쁘게 바라보다가 바이크를 몰고 사라져버렸다. 집에 가는 내내 기분이 나쁜 그였지만 성현 자신도 그 이유는 끝내 알지 못했다.




“제임스? 나 기다렸어?”


“당연하지! 오늘도 내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시오?”




라희가 아는 얼굴을 만나 반가운 것도 잠시 또 제임스는 제 할 말을 나불거리려고 하고 있었다. 라희는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다급히 그의 할 말을 막을 방안을 모색했다.




“제임스! 나 산 구경 안 시켜줄거야?”


“산... 구경?”




과연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싶지만 라희도 궁금하긴했다. 제임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등등.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오전에 데리러 오겠소!”


“내일... 알았어.”




내일부터 성현과의 과외가 있었지만 오전에 잠시 다녀오면 되겠다고 생각한 라희는 제임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는 라희를 집 바로 앞까지 데려다준 뒤 고라니로 변하여 멀리 겅중겅중 뛰어갔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에 라희가 자기 뺨을 꼬집었다.




“아야... 고라니 산신이라니...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라희는 집에 들어와 씻고 누웠다. 그리고 또 울려대는 전화기를 붙잡고 제임스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통화했다. 처음엔 그저 귀찮기만 했고 빨리 끊고 싶은 그의 전화였지만 이제는 언제 전화 오나 기다리고 있는 라희였다.




매일매일 그와 전화를 하다보니 이제는 하루 루틴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잠에 들기 전에 그의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지만 라희는 아직 그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라희는 오늘도 그의 조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웨에에에에엑!”




눈부신 아침 창가에서 들려오는 맑고 고운 종달새 소리가 아니라 고라니 소리가 그녀의 단잠을 깨웠다.




“하... 씨... 저 고라니 새x.”




그리고 라희의 입에선 아침 첫 마디부터 맑고 고운 욕이 흘러나왔다. 라희는 짜증에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침대 옆 협탁에 놔둔 알람시계를 확인했다.




[05:30AM]




“아이 미친 고라니가!!!”




미라클 모닝도 아니고 겨우 동이 튼 이 시간에 찾아온 제임스에 라희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부짖었다. 차마 곤히 자고 계실 엄마 때문에 있는 그대로 소리를 지르진 못했다.




“웨에에엑!”


“느근드그...”




라희는 어금니를 꽉 문 채로 창문을 열고 대답했다. 별로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제임스의 귀에는 들렸는지 담장 밖에서 황금빛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아마도 고라니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는 듯 싶었다.




제임스를 확인한 라희는 옷을 갈아입고 고양이세수와 양치만 한 채 방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어릴 때 통금시간 넘은 것을 안 들키려고 엄마 몰래 넘어 다니던 창문을 요즘들어 부ᄍᅠᆨ 많이 넘어 다니는 것 같았다.




‘이게 다 저 망할 고라니 때문이야.’




졸린 눈으로 담장마저 넘은 라희의 앞에 제임스가 보였다. 웬일로 조금은 간소해진 차림이었다. 비록 한복풍인 건 여전했지만 휘황찬란하던 평소의 옷보다는 많이 간편해보였다. 조금은 더 활동적인 느낌. 그리고 거기에 가미된 핫핑크의 핸드폰 목걸이까지.




“뭐야? 다른 옷도 있었어?”


“시찰을 돌 때는 조금 간편한 복장을 애용하는 편이오.”


“아, 간편...”




라희가 짜게 식은 눈으로 제임스의 복장을 위아래로 훑었다.




“왜 그렇게 보시오?”


“아니야.”




저번에 시내에 나가서 산 옷은 어따 갖다 버렸을까 의문이 생긴 라희가 제임스에게 물었다.




“제임스, 저번에 우리 같이 산 옷은 가지고는 있는거야?”


“잘, 잘있소! 나를 뭘로 보는 것이요! 내 보금자리에 잘 모셔두었단 말이오!”


“그래, 믿어줄게.”


“믿어 줄게가 아니라 진짜란 말이오! 가서 봐야 믿겠소?”




의심받는 것이 억울했는지 제임스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제임스 집? 내가 가볼 수 있어?”




하지만 라희의 초점은 다른데에 가있었다. 무려 차기 산신의 집이라니 너무나도 궁금했다. 어쩌면 초월적 존재의 집에 처음가는 인간이 아닐까. 라희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집? 인간의 기준으로하면 집일 수 있지. 한 번 가보겠소?”


“응!”




제임스는 라희의 대답을 듣자마자 고라니로 변하더니 라희에게 뒤에 타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풉.”


“웨엑?”




라희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어제는 성현의 바이크 뒤에 탔는데 오늘은 고라니의 등 뒤에 탄다. 이게 무슨 조합인지 웃기기만 했다. 심지어 둘 다 평범하지도 않은 존재들이었다.




라희는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고라니로 변한 제임스의 뒤에 올라탔다. ᄄᆞ뜻하고 포근한 그의 털이 라희를 감쌌다.




‘바이크보단 훨씬 안정감있네.’




차갑고 딱딱했던 바이크와 비교하며 고라니의 목을 감싸안았다. 라희가 자세를 잡은 것을 확인한 제임스는 뒷산을 향해 달렸다. 평소처럼 겅중겅중 뛰지 않는 것이 라희를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한참을 달려 산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동네 야산이라고 만만하게 봤던 산이지만 그 넓이와 높이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라희네 동네뿐아니라 꽤 많은 곳까지 뿌리가 ᄈᅠᆮ어나가듯 산자락이 길게 퍼져있었다. 정상에 올라 조그맣게 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보니 신기했다. 저 안에선 각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멀리서 보니 그냥 미니어쳐 마을 같아 보이는 것이 꽤나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저 안에선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고등학생이 여기선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다는게 어이가 없었다.




제임스도 복잡한 라희의 감정을 눈치챘는지 별말 없이 같이 옆에서서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처음엔 자신의 귀안력을 훔쳐간 그저 맹랑한 인간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제임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있었다. 물론 귀안력을 가져갔기에 붙어있어야 하는 점이 있었지만 그보다도 많은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게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자신은 보지 못하는 인간의 관점을 가진 라희가 신기했고 알고 싶었다. 제임스는 자신이 먼저 사과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라희양.”


“응?”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던 라희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정도로 키 차이가 났었나? 라희는 꽤 높게 올려다보아야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그대의 선택이 옳았소.”


“뭐가?”




제임스가 손에 들린 부채를 만지작 거리며 기어들어 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에게 겨우 인간이라 했던 거 말이오.”


“아, 그거. 잊고 있었는데 생각나버렸네.”




라희는 솔직히 다 잊어버린 건 아니었지만 지금 이런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냥 넘어가려고 흐르듯이 얘기했다.




“내가 너무 오만했소.”


“뭐야, 인정하는 거야?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대?”


“장난이 아니오!”




제임스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한껏 진지한 제임스의 외침에 라희가 웃으며 넘기려한 태도를 고치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는 뭐든지 제멋대로에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고 소리만 냅다 지르고 마음에 안 내키면 울어버리는 인간이라고 생각했...?”




인자한 미소로 제임스의 고해를 듣던 라희의 손이 어느새 그의 모가지에 가 있었다. 그의 목을 잡아 흔들기 직전 제임스가 그 살기를 느끼고는 말을 멈췄다. 라희는 살기롭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왜 멈춰? 더 말해봐~”


“손, 손은 치우고 말하시오... 거, 좀 무섭소.”




개미 눈꼽만한 눈치는 있었는지 제임스가 하던 말을 멈추고는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그래도 그대는 오만하진 않았소.”


“응?”


“내가 막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했을 무렵 산신님이 그러셨었소. 우리같은 존재는 오만을 조심해야 한다고. 그 말을 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실천은 하지 못했던 것 같소. 뜻만 알고 그 진정한 의미는 몰랐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대, 라희양과 지내면서 오만함이 무엇인지, 왜 산신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소.”




제임스의 진지한 고백에 라희는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이 사람 꽤 진중한 면이 있잖아?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서며 서있는 제임스. 자기 반성에 깊이 ᄈᆞ진 채 서 있는 그를 보자니 이 분위기를 어떻게 돌려야 할지를 모르겠었다.




“제임스 집은 여기서 멀어? 집 보여준다며.”


“아, 내 잊고 있었소. 좀만 걸으면 되오.”


“아 그래? 그럼 가자!”




분명 ‘조금만’ 걸으면 된다고 했다. 어째서 30분째 산을, 그것도 산책로도 없는 험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라희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디디며 숨을 헉헉 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더...!”


“다 왔소!”




그때 제임스의 다왔다는 외침과 함께 전혀 다른 공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한국 숲에서는 볼 수 없는, 아니 지구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판타지스러운 연못이 눈 앞에 펼쳐졌다.




맑다 못 해 투명한 에메랄드빛 물이 연신 조르륵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고 그 안에는 비단 잉어들이 우려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연못은 둥그렇게 키가 큰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고 정 중앙으로만 빛이 들어왔다.




“이런 데가 있었어? 이 정도면 티비같은데에 나왔을텐데?”


“이 곳은 신력으로 가득찬 공간인만큼 인간세계와는 분리되어 있는 곳이오. 고로 인간들끼리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이지.”






제임스가 콧대를 높이세우며 말했다. 저거 저거, 방금 전에 오만해서 미안하다고 하더니 또 오만해졌네. 라희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근데 집은 어디있어? 여긴 아무것도 없... 꺄악!”




제임스가 갑자기 라희를 뒤에서 힘껏 밀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라희는 속수무책으로 연못 속으로 빠져들었다.




“으아! 야! 너!”




물 때문에 어푸어푸 하느라 제대로 말도 못 있던 라희는 서서히 물 속으로 가라 앉았다. 시야가 희미해지기 전, 웃고 있는 제임스의 얼굴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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