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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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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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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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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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화

DUMMY

시린 바람이 불어오는 학교의 옥상 한가운데에 지민이 멍하니 서 있었다. 지민은 발걸음을 옮겨 난간 근처로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모래 지옥 속으로 끌어 당겨지듯 힘든 걸음이었다. 그런 더딘 걸음을 이겨내고 난간 위에 올라앉은 지민은 눈앞에 보이는 운동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바로 밑, 땅바닥을 보았다.




막상 난간 위에 걸터앉아 아래를 보니 겁이 났다.




‘내가 왜 죽어야 해?’


‘내가 죽으면 다 끝날 거야.’




지민의 머릿속에서 양가감정이 요동쳤다. 그때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며 지민을 뒤에서 살짝 밀었다.




“꺄악!”




하마터면 미끄러져 그대로 떨어질 뻔한 지민이 난간을 붙잡고 위태롭게 옥상 끝에 서 있게 되었다.




이제야 지민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느꼈다. 그녀는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이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빛 한 줄기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위태로운 옥상 끝에서 다시 난간을 넘어오려는 그 순간 어디선가 오싹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으려고?”


“누, 누구세요?”




짙은 어둠 속에서 위치를 특정할 수도 없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민이 겁에 질려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한 지민은 옥상 난간을 더욱 꽉 잡았다. 이 목소리가 마치 자신을 해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죽기 억울하지 않아?”


“너 누구야!”


“난 네 편이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이, 이게 뭐야!”




옥상 난간에 매달려있다시피 한 지민의 발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어느새 전신을 덮어버린 검은 연기가 지민에게 달콤하게 속삭였다.




“복수하고 싶지 않아?”


“복수···?”




알 수 없는 존재에게서 흘러나온 말을 뜻밖의 말이었다. 그리고 지민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그래, 복수. 널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걔들한테 복수하고 싶지 않아?”


“······.”




지민이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네가 여기서 갈등하는 이 순간에도 걔넨 하하호호 웃으며 집에 가고 있을 거야. 그게 맞다고 생각해?”


“아니···.”




지민이 대답을 했지만, 그녀의 의지인 것인지 뭔가에 홀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지민을 검은 연기가 더욱 짙게 둘러 쌓았다.




“복수 하고 싶지?”


“응···”


“억울하지?”


“···억울해.”




어느새 지민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말라비틀어진 줄만 알았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러나와 그녀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나는 알아. 지금 너가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한지. 나만 알 수 있어.”


“넌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알아?”


“당연하지. 내가 도와줄게.”




검은 연기의 목소리가 에덴동산의 뱀만큼 달콤하게 속삭였다. 지민은 그 목소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어떻게 도와줄 거야?”


“놔.”


“놔?”




검은 연기가 마치 사람의 손처럼 변하더니 난간을 붙잡고 있는 지민의 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난간을 꽉 쥐고 있는 지민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내기 시작했다.




미지의 검은 연기 속에서 지민의 오른손에 감겨있는 푸른빛의 팔찌가 반짝이는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놓으면 할 수 있어, 복수.”


“복수···.”




어느새 지민의 오른손은 다 풀려 힘없이 늘어져 버렸고 왼손의 두 손가락만 간신히 그녀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검은 연기의 존재가 마지막으로 지민에게 속삭였다.




“네가 억울해서 참 다행이야.”




흐릿한 지민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옥상에는 애초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어느 흔적 하나 남아있질 않았다.




******




야자가 끝난 야심한 시각. 한 여학생이 어두운 길을 헤쳐나가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드넓은 논밭 사이로 난 울퉁불퉁한 시멘트 길에는 가로등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여학생이 혼자 하교하기엔 제법 스산한 분위기였다.




“아씨 엄마는 뭐 한다고 안 데리러 오는 거야.”




매일매일 학교로 데리러 오던 엄마가 바쁜 일이 생겨 오지 않자 여학생은 어쩔 수 없이 이 길을 걸어야 했다. 고급 외제 차 뒷좌석에 몸을 맡기고 다니던 때와는 너무나도 상반된 길이었다. 그런 부모님의 감사함 따위는 알 리가 없는 여학생이 투덜거렸다.




“아앗!”




그나마 있는 가로등이 미처 비치지 못한 구덩이에 여학생이 발을 헛디디며 넘어졌다.




“아이씨!!”




넘어진 채로 있는 성질을 다 부린 여학생이 손과 다리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넘어져서 그런지 길이 더욱 스산하고 무서워 보였다.




온몸에 으스스 올라오는 닭살을 가라앉히기 위해 양팔을 비비며 구덩이에서 나오려는 그때.




팍!




가장 멀리 있던 가로등이 갑작스럽게 큰 소리를 내며 터졌다.




“꺄악!”




여학생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파바박!




이번엔 멀리서부터 가로등이 파바박하며 터지기 시작했다. 마치 맹렬히 달려오는 호랑이처럼 꺼져오던 가로등이 이내 여학생의 머리 바로 위까지 달려왔다.




“뭐, 뭐야!!!”




여학생이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꺼진 가로등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후 놀란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여학생이 일어나려는 찰나.




“어디 가려고?”


“누구야!”




어둠 속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말소리에 여학생이 주위를 빠르게 두리번거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짙은 어둠 속에선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좋았어?”




이번엔 여학생의 오른쪽 귀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괴롭히니까 좋았냐고···.”




이번엔 왼쪽 귀. 그때 여학생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이지민?”


“들켰네···?”


“야이 미ㅊㄴ아. 너 내가 장난 좀 쳤다고 지금 이런 무서운 장난 치는 거야? 나와. 야! 나오라고!”




여학생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 여학생은 아까 급식실에서 지민이에게 음식물을 부은 그 가해자였다. 제 발 저린 가해자의 외침에 지민은 다시금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진짜···? ···원해?”


“그래. 나와! 나오라고!”




가해자가 미친 듯이 소리치자 그녀의 시야로 지민이 서서히 나타났다.




“헉···!”




가해자의 앞으로 걸어 나온 지민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리곤 흰자 없는 까만 눈동자로 가해자를 노려보았다.




“왜? 아까처럼 또 괴롭혀봐!”




분노의 외침과 동시에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지민은 가해자에게로 돌진했다. 순식간에 다가오는 지민의 모습에 여학생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꺅!”




아직 사태파악이 안 된 여학생은 지민에게 소리를 치려다가 섬뜩한 지민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 있는 힘껏 달렸다.




“그래. 그렇게 도망쳐봐. 나는 못 해 본 발악 너는 하게 해줄게.”




계속해서 말로 겁만 주는 지민의 모습에 여학생은 무엇인가 눈치챘다는 듯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었다. 이젠 확신에 차 자신을 골리려는 지민의 장난이라 생각한 여학생은 뒤를 돌아 지민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야이 미ㅊㄴ아! 귀신분장 한다고 쫄 거 같아!? 너 내일 학교에서 보기만 해!! 넌 뒤졌어! 진짜!!”




가로등이 깨진 탓에 아무것도 없는 시야에서 지민을 피해 정신없이 달려갔던 여학생은 지금 자기가 차도로 나온 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소리쳤다.




“나와 ㅆㄴ아!! 나와보라고!!”




순간 옆에서 비춰진 불빛에 놀란 여학생은 자신의 시야를 가리며 빛이 나오는 방향을 쳐다봤다.




콰앙!




여학생은 그대로 허공을 날아 시멘트 길바닥으로 추락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여학생의 모습을 보고 지민은 광기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하!!”




지민은 어느새 쓰러진 여학생을 응시하며 어둠 속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은 너야···”




소름 끼치는 말소리와 함께.




***




때아닌 교통사고에 어두컴컴한 도로는 사이렌 소리로 울려 퍼졌다.


라희는 하굣길에 난리가 난 도로를 주시했다.


흰색 시트를 덮고 구급차에 실려 가는 누군가의 모습에 눈이 간 라희는 그것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교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설마···”




순간 지민이를 떠올린 라희는 냉큼 구급차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급차와 그대로 뒷문을 닫고는 출발해버렸다.


사건 현장에 있던 모든 차량이 구급차를 따라 사라졌다.




덩그러니 사건 현장에 혼자 남아버린 라희는 순간 뒤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라희가 돌아보자 그곳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지민이···?”




아직도 광기에 찬 미소를 짓고 있던 지민이 움찔거리더니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뒤를 돌아 라희를 마주했다.




“······.”


“지민아. 무사했구나! 괜찮아?”




주변이 어두워 아직 지민의 참담한 모습까진 보지 못 한 라희가 천천히 지민에게로 걸어갔다.




“라희야”


“지민··· 커흑!”




라희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간 그때, 지민이 갑자기 검은 연기를 내뿜더니 라희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지, 지민아···! 왜, 왜 이러는··· 윽!”




지민이 라희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너도 똑같아! 너 같은 X들이 더 악질이야. 알아?”




갑자기 바닥에 나뒹굴어 진 라희의 손바닥과 무릎에서 피가 났다. 그럼에도 지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시 박힌 말들을 쏟아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상관없는 척, 그놈의 착한 척! 너란 부류들이 하는 그 짓거리들! 날 무시했잖아!!”




라희는 자신의 목을 감싸며 일어나 지민을 응시했다.




“그게 무슨···”


“몰랐다고 말하지 마! 너도 다 알고 있었잖아! 뒤에서 나 괴롭힘당하는 거! 그래서 피했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지민아···, 괴롭힘이라니···.”




라희가 화를 내는 지민을 손을 뻗었다. 하지만 라희의 손이 허무하게 지민의 몸을 통과했다. 분명 앞에 있는 지민이 잡히지 않는다는 건··· 라희는 그제야 지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범벅인 모습과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모습을.




“너 설마···”




지민이 어떻게 되어버렸다는 걸 알아버린 라희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닥쳐! 위선자 주제에 이제와서 착한 척하지 마!”




분노에 가득 찬 지민의 검은 연기가 급속도로 몸짓을 키워나갔다. 이젠 웬만한 큰 나무만큼 커진 지민이 강한 돌풍을 일으켰다.




“너도 내 기분 느껴 봐!”




라희와 가해자의 공포심을 먹고 몸집을 키운 지민이 둘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라희의 앞으로 튀어나오며 지민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그 존재는 바로 차기 산신이라는 남자였다. 산신에게 목이 잡혀버린 지민의 검은 몸집은 순식간에 줄어들어 본래의 모습만큼 작아져 버렸다.




남자가 지민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가하자 콰드득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살을 파고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희가 놀라며 남자의 손을 잡아 내리려 애쓰며 소리쳤다.




“이거 놔요! 내 친구란 말이야!”


“친구?”




남자의 눈이 몹시도 차가웠다. 처음 보는 그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친구는 살아있을 때의 얘기지. 지금 이것은 악령일 뿐이오.”




이것. 그가 지민을 칭한 단어이다. 지민은 그의 말에서 단호함을 느꼈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남자가 지민을 뜯어먹어 없애버릴 것이라는 걸.




“안 돼! 안돼요! 지민이 그렇게 하지 마요!!”


“사람을 해쳐 물리력까지 행사하는 악령은 절대로 놓아줄 수 없소!”




‘어제···’




라희는 어젯밤 찾아온 지민이를 떠올렸다.




‘지민이의 얘기만 들어줬어도···.’




지민이 잘못된 이유는 자신의 탓이리라 생각한 라희는 필사적으로 남자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놔요! 제발 먹지 마세요!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이딴 악령을 곱게 성불이라도 시켜주라는 소리요?”




‘성불···?’




다급하던 라희의 머릿속엔 순간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드라마에서도 만화에서도 성불은 귀신들의 염원이 아니던가.


이내 라희는 무릎까지 꿇고 양손을 싹싹 빌며 남자에게 말했다.




“지민이, 지민이는 착한 애예요! 제발 성불시켜주세요!”


“못 할 건 없지만 이 혼령은 이미 산사람을 해쳐서 인과율을 어지럽히는 존재···”


“뭐, 뭐든지 해줄게요! 겨우 제가 뭘 해드릴 순 있을지는 몰라도 뭐든지 들어 드릴게요! 제발···!”




순간 라희를 바라본 남자의 눈이 반짝였다.




“뭐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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