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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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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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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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화

DUMMY

“꽤 재밌는 놈이라니?”




라희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성현을 쳐다보았다. 그가 아주 잠시 라희에게 눈길을 주었다가 이내 다시 집을 쳐다보며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질문에 대꾸도 안하고 쌩가버리는 그가 얄미웠지만 라희도 다급히 그를 따라 들어가며 계속해서 그에게 말을 건냈다.




“아니, 뭔데 도대체? 무당방울 꺼낸 거 보니 사람은 아닌 거 같고 귀신같은 거라도 있다는 거야?”


“아마도?”


“아마도라니?”




성현의 애매한 반응에 라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찡그렸다. 할머니 혼자 계시는 이 조용한 집에 귀신이라니. 그런 건 폐가에 있는게 아닌가. 라희는 괜히 오싹해진 마음에 팔을 마구 비비며 성현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마당에 널부러진 빗자루도, 장독대의 항아리들도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도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졌다.




성현이 집 안으로 들어가 안을 살폈다. 다행히 할머니는 어디 가시지 않고 안방에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한 성현은 마음 놓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무당방울을 흔들었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길 한참, 라희가 거실 한복판에 서서 슬슬 지루해져 하품을 쩍 할 무렵 그가 집 밖으로 나왔다. 라희도 그를 따라나오며 말했다.




“뭔데?”


“모르겠어.”


“뭐?”




심각한 얼굴로 집안 곳곳을 들쑤시며 다니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모르겠어.’였다. 라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되묻자 성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분명 뭔가 기운은 느껴지는데 없어. 안 보여.”


“으...”




성현이 무당방울을 자켓 주머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확실한 건 집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랑 할머니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똑같다는 거지.”


“그럼 이 알 수 없는 뭔가가 할머니한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거야?”




“응. 아무래도 할머니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신 것도 이 놈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럼 할머니가 치매가 걸리신 게 아니고 이거 때문이라는 거야?”




성현이 말없이 고개를 한두번 끄덕이고는 다시 무당방울을 꺼내서 눈을 감고는 흔들기 시작했다. 캐쥬얼한 복장에 무당방울이 꽤 언밸런스했다.




한참을 중얼거리던 주한이 눈을 뜨고는 라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그 힘으로는 보이는 거 없어?”


“보이는 거?”


“응. 너가 가진 그 신의 힘으로는 보이는 거 없냐고.”


“잠시만.”




라희가 조심스럽게 지민의 집과 마당을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 나올까봐 꽤 움츠러 있는 상태로 관찰했지만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안 보여.”


“이상하다...”




아무것도 없다는 라희의 말에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무당 방울을 흔들며 중얼거렸다. 또 한참을 해봤으나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지 주한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분명 뭔가 기운이 느껴지는데 잡아낼 수가 없어.”


“숨어있는 거 아냐... 꺅!”




라희가 말을 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그녀 옆 지붕 위에서 기와 한 장이 툭 떨어져 깨졌다. 라희가 조금만 더 앞에 있었더라면 머리에 정통으로 맞아 크게 다쳤을 것이다.




“뭐, 뭐야? 이거 그냥 우연인 거지?”


“글쎄.”




주한도 확답을 주지 못 한 채 계속해서 지금 이 기운이 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저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보기만 하던 라희의 등 뒤에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쳐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꺄악!”




허공에서 무언가가 라희의 긴 머리채를 잡아 끌었다. 라희가 잡아 당겨진 쪽으로 손을 휘적였으나 그 무엇도 잡히는 게 없었다. 그저 힘없이 머리가 잡혀 이끌리는대로 몸을 맡겨야 했다.




“꺄하하! 놀자! 놀자, 인간!”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라희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 곳엔 웬 어린 남자아이가 지붕 위에 앉아 박장대소를 하며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겨우 중심을 잡으며 자세히 보니 라희의 머리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야! 너 뭐야!”




끓어오르는 분을 참지 못 한 라희가 소리쳤다. 그러자 아이가 웃음을 뚝 그치고는 라희와 눈을 마주쳤다.




“인간, 내가 보이나?”




라희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이 힘을 처음 가졌을 때 보았던 악령이 떠올랐다. 그때도 자기가 보이냐며 달려들었었지. 라희는 저 악령도 자신에게 달려들겠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은 그때 주한이 입을 열었다




“뭐가 보이는 거야?”




아무래도 주한의 눈에는 저 아이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지붕 위에서 무릎을 꾸부리고 앉아 낚싯줄을 당기듯 라희의 머리카락에 이어진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저 악동 꼬마의 모습이.




저건 또 무슨 악령인가 했지만 꼬마의 모습은 여태 봐 온 두 악령과는 조금 모습이 달랐다. 두 악령은 주로 피를 흘리고 있다던지, 혐오감을 일으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꼬마는 귀가 조금 뾰족해서 특이한 것 말고는 평상시 사람의 모습과 다름 없었다. 그리고 검은 연기를 내뿜지도 않았다. 그리고 묘하게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지붕 위에 아이가 있어!”




라희가 잡아 당겨지는 머리 때문에 비틀거리며 말했다.




“아이? 아이 모습의 악령은 더 위험해!”




성현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는 라희에게 달려와 한 손으로는 딸려가는 라희의 허리를 감싸고 한손으로는 라희의 머리채가 당겨지지 않게 반대로 잡아 당겼다. 둘은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계속해서 당하기만 하며 비명을 지르던 라희는 순간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고라니 산신한테 원하지도 않는 이 힘을 강제로 얻고 난 후로 풀리는 일이 없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 아닌가.




“인간!”




계속해서 라희의 머리를 잡아당기던 악령이 멈칫하며 행동을 멈추더니 라희에게 말을 건냈다. 아이의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순수함이 절대 그를 악령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을 순 없지. 라희는 긴장한 채로, 하지만 처지는 울분을 감추지 않은 채 답했다.




“왜 이자식아!”


“지민이는 왜 안 와? 너는 지민이 친구!”


“뭐?”




순간 라희가 움찔했다.




‘저 악령이 지민이를 어떻게 알지? 그리고 내가 지민이 친구라는 것도?’




아이는 지붕 위에 앉은 채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아이의 모습은 언제 봐도 천진난만해 보였다.




“할매가 울어! 지민이가 없어서 그런 거 같아!”


“지민이는...”




라희가 아이에게 답을 하려는 그때 성현이 그녀와 악령의 사이를 가로 막았다. 여전히 악령이 보이지 않는 듯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고 있었지만 일단은 그녀를 보호하려는 듯 했다. 그의 듬직한 등을 보니 라희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저것들과는 말을 많이 석지 않는게 좋아.”


“응? 아, 응.”




성현은 계속해서 아이가 없는 곳만을 주시하며 악령을 경계했다.




“남자 인간! 저 사람 나쁘다!”




아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발을 쾅쾅 구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성현을 쳐다보며 씩씩거렸다. 라희는 혹시라도 저 악령이 성현을 공격하진 않을까 걱정 되어 그의 앞을 다시 막아섰다.




“뭐야?”


“위험해! 지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널 보면서 화를 내는 거 같아. 일단 나한테는 공격적이지 않았으니까 내가 해결하게 해줘.”




라희의 행동에 살ᄍᆞᆨ 놀란 표정을 짓던 성현이 뒤에서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지만 눈치챌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쁘다! 나빠!”


“왜 그러는 거야. 뭐가 나쁜데?”




라희가 최대한 침착하게 마음을 재정비한 후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는 악령에게 말을 건냈다.




“저 인간이 오고 울었다! 할매! 남자 인간! 나쁘다!”




‘할머니를 걱정하는건가?’




라희는 악령의 말을 들어보니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파악했다. 어린 외양에서 보이는 미숙함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악해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귀ᅟᅵᆫ이 악한 존재만 있는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라희가 아직도 분을 참지 못 하고 있는 악령에게 말을 꺼내려고 했다.




쿵!




라희가 입을 열려는 순간 악령이 쿵쿵 거리던 발에 걸린 기왓장 하나가 쿵하고 라희의 앞으로 떨어졌다.




“으앗!”


“라희야!”




놀란 성현이 라희를 뒤로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체크했다. 다행히 다친 곳이 없는 라희는 금세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성현에게 어ᄄᅠᇂ게 된 일인지 설명하려고 입을 열었다.




“난 괜찮...”




하지만 라희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성현이 마당에 있던 평상을 밟고 거의 날아오르다시피 지붕으로 훌쩍 뛰어 올라갔다.




“성현..!”




위에 올라선 성현이 자켓 주머니에서 웬 해리포터가 쓸 것만 같은 나무 지팡이를 꺼냈다. 그리고는 기와가 떨어진 자리, 정확히는 악령이 있는 자리를 지팡이로 휘둘렀다. 마치 검사가 무예를 하듯 강직하면서도 유려한 모습이었다. 그의 눈엔 악령이 보이지 않아서 있을 법한 곳을 고른 듯 했다.




하지만 라희의 눈에는 그 둘의 모습이 매우 또렷하게 보였다. 악령이 성현의 지팡이를 매끄럽게 피하더니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작은 남자아이의 모습이었던 악령이 뭉게뭉게 커지더니 꼭 옛날 궁궐 앞에 있는 해태 조각상처럼 모습이 변했다. 그리고는 그 주변으로 거센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주변이 온통 짙은 남색으로 물들었다.




성현은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과 먼지에 팔로 앞을 가리며 버텼지만 점점 거세지자 몸을 비틀거렸다.




“성현아, 위험해! 내려와!”


“저거 나뭇가지 맞았어? 어떻게 된 거야?”




성현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바람에 맞서고 있던 그때 해태 같은 모습을 한 악령이 성현에게 돌진했다.




“안돼!!”




악령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은 성현이 붕 떠오르더니 마당으로 ᄄᅠᆯ어지기 시작했다. 놀란 라희가 황급하게 달려갔지만 성현의 떨어지는 속도를 이기진 못 할 것 만 같았다.




‘안돼!!!’




라희가 끔찍한 결말을 미리 보기라도 한 듯 눈을 질끔 감았다.




‘응?’




그런데 눈을 감고 몇 초가 지났는데도 성현이 떨어지면서 나야 할 쿵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상함을 감지한 라희가 눈을 살며시 떴다.




“제임...스?”




그 곳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라희를 내려다보고 있는 제임스가 서있었다. 그가 서있는 곳은 저 악령의 위해가 닿지 않는 듯 그를 닮은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계약한 지 얼마나 됐다고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요, 라희양.”


“제임스!”




이렇게도 그가 반가운 적이 있던가. 그의 얼굴을 반갑게 쳐다보던 라희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는 제임스의 몸을따라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는 발견하고 말았다.




제임스의 품에 공주님 안기로 폭 안겨 있는 성현을.




라희는 반가움도 잠시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눈을 질끈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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