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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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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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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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DUMMY

딩~동~댕~동~




수업 시간을 끝내는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전교에 울려 퍼졌다.




공부뿐인 학교에서 학생들의 낙이 무엇이 있을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학생들이 물소 떼처럼 급식실을 향해 뛰어갔다.


라희도 아픈 발을 이끌고 급식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픈 발 따위가 점심을 막을 순 없었다.




급식실로 가던 중 운동장 한가운데 라희의 눈에 익숙하면서도 요상해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고라니?”




라희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휘황찬란한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라희양!”




자신의 이름까지 불러대는 통에 도저히 모른 척할 수가 없어 라희는 눈을 질끈 감고 남자에게 향했다.




한편 라희가 고라니를 만나고 있을 때, 급식실에선 되먹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촤악-




“어머! 손이 미끄러져 버렸네~ 괜찮니, 지민아?”


“......”




한 여학생의 머리 위로 음식물 찌꺼기가 쏟아졌다. 그것도 노린 듯이 바로 정수리 위로.




“왜 말이 없니, 지민아? 괜찮냐고. 너가 말이 없으니까 꼭 내가 괴롭힌 거 같잖아.”




누가 봐도 일부러 쏟은 여학생이 지민의 정수리를 검지손가락으로 툭 밀며 말했다. 지민은 그저 힘없이 밀리며 이 상황을 인내해야 했다.




“괜, 괜찮아.”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한 지민이었다. 그런 지민의 모습에도 여학생의 괴롭힘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응, 그래~ 그러게 왜 거기 앉아 있었어! 지민이 너는 꼭 나를 나쁘게 보이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다?”




표독스럽게 깔깔거리며 지민의 등을 툭툭 친 여학생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조롱했다.




“소미야 너 지민이 생각해서 덜어 준거잖아~”


“아~ 맞지맞지~”


“푸하하하! 쏭아 개웃겨 진짜!”




지민은 다 먹지도 못 한 식판에 흩뿌려진 음식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가 누굴 나쁘게 만든다는 건지. 지민은 속으로 비소를 흘렸다.




“······.”




소곤소곤 웅성거리는 주변 학생들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들은 절대 먼저 지민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없었다. 지민은 이제는 차오르지도 않는 말라버린 눈물을 마음속으로 삼켰다.




어차피 매번 당하던 일이다. 이제와서 운다고 저들이 하던 짓을 안 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저 흘리는 눈물을 보며 또 깔깔거리겠지. 아니면 오히려 역으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거나. 지민은 그것들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지민은 비릿하게 아파오는 마음을 애써 모른 척했다. 그리고는 아직은 깨끗한 부분의 밥을 떠먹으려고 숟가락을 들려는 찰나.




“뭐야뭐야?”


“어머 쟤 라희 아니야?”


“저기 저 남자는 누구야? 옷은 왜 저래? 배운가?”




급식실 창문 쪽에서 들려온 몇 학생들의 말에 가해자들과 지민을 눈치 보듯 웅성거리기만 하던 학생들도 급식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소란스러워졌다.


지민을 괴롭히던 무리도 창문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민은 안도했다. 바깥에서 일어난 일 덕분에 학생들의 흥미가 괴롭힘에서 다른 이슈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이 순간엔 자신이 이 서커스의 유일한 원숭이가 아니었다.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을 때 얼른 밥을 먹고 무대 뒤로 사라져야겠다고 생각한 지민은 숟가락을 들어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창문 너머로 쳐다보고 있는 학교 운동장에는 라희와 고라니, 아니 차기 산신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산신은 대낮에 학교를 찾아온 것도 모자라 어제 봤던 휘황찬란한 한복풍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이번엔 심지어 머리에 갓까지 챙겨 썼다.




“뭐에요! 또 왜 찾아왔어!? 아니, 그나저나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대?”




남자가 라희의 왼쪽 가슴 부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쓰여 있잖소. 어젯밤 빼고 내내 입고 있으면서. 옷이 이거밖에 없소?”


“그쪽이나 신경 쓰시죠!? 그 요상한 옷차림이나 좀 바꾸던 지하고 오지!”


“요상한 옷차림이라니. 이 옷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있는 만달산의 정기를 가득 담아 산신이 머무는 영험한 연못에서 무려 천일 간 달빛의 가호를 받아 만든···”




옷차림에 대한 지적에 눈썹을 꿈틀거린 남자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 대한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술술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남자,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았다. 그것도 이상한 부분에서.




“됐고! 또 그 귀안84인지 뭐시기 돌려달라고 왔죠!?”




저 말을 들어주다간 끝도 없을 것이란 걸 직감한 라희가 빠르게 그의 말을 끊어 먹었다. 남자는 기분이 상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이내 말을 내뱉었다.




“맞소, 그대가 훔쳐 간, 아니아니 내가 빌려준 귀안력, 돌려주시오!”




‘훔쳐 간’까지 말하다 표독스럽게 바뀌는 라희의 눈을 발견한 남자는 자연스럽게 단어를 고쳤다. 절대 쫀 거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턱을 치켜든 채.




라희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근데요?”


“그거에 대해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이리 찾아왔소.”


“겨우 그거 때문에 이 대낮에 그런 차림으로 학교까지 찾아와요? 그쪽 차기 산신이라면서요! 이렇게 막 나와 있어도 되는 거예요? 그 뭐냐, 근무 태만 그런 거 하는 건가!?”




기껏 대낮부터 사람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귀안력 때문이라니. 라희는 기가 막혔다. 안 그래도 대한민국의 고3 생활을 착실히 완수하는 중이라 피곤하고 짜증 나 죽겠는데 계속해서 산신이란 작자가 나타나 라희를 귀찮게 했다.




“근무 태만이라니! 이곳도 내가 관장하는 만달산의 정기 안에 있으니 이것도 다 일이오! 시찰. 그래, 시찰을 온 것이지!”




남자가 꼭 몰래 게임 하다가 엄마한테 걸려 변명하는 꼬마애 마냥 라희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라희는 그에게 또 뭔 말을 해야 이 작자가 얼른 사라질까 하고 생각하며 눈을 굴리던 중 급식실로 시선이 꽂혔다.




창문에 일렬로 달라붙어 자신과 남자를 바라보는 저 여학우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남자 볼 일이 극히 드문 여자 고등학교에선 모든 이목이 이쪽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잘생긴 남자가 여고 운동장 한가운데 있으니 한참 이성에 눈뜰 나이인 여고생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거 일주일은 물어뜯길 주제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라희는 일단 이 남자부터 돌려보내야겠단 결론에 도달했다.




“가, 가요. 일단! 이따가, 이따가 봐요! 나 찾을 수 있다고 했죠? 이따가 학교 끝나고 봐요. 아니 밤에! 해지고! 어제처럼! 아무도 없을 때! 그럼 진지하게 생각해볼게요!”




라희가 황급히 남자를 돌려세워 그의 등을 밀며 말했다. 하교 후에 보자고 하려다가 말을 바꾼 것은 하교하는 여학생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을 이 남자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려서였다.




그럼 일주일이 아니라 졸업할 때까지 가십거리가 될 게 뻔했다.




“그럼 오늘 해가 지고 그대의 기운을 따라 찾아오겠소. 이따가는 꼭 돌려줘야 하오!”


“알았으니 빨리 좀 가요!”




그렇게 겨우 남자를 돌려보낸 라희는 반짝이는 눈들로 가득한 급식실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라희~~”


“오오올~”




급식실이 라희의 친구들이 내는 조롱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라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닥쳐 미ㅊㄴ들아!”




아 물론 부끄러워서 붉어진 게 아니라 화나서 울그락불그락 해진 것이다.




깔깔거리는 여고생들의 사이로 밥을 받아와 앉던 라희가 혼자 앉아 있는 지민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오물범벅이 된 채로 밥을 먹고 있는 지민을 발견한 것이다.




“뭐야, 지민이 왜 그래?”




라희가 지민을 발견하고 소리치자 순간 급식실이 싸해졌다. 그리곤 모두의 눈이 일제히 지민에게로 향했다. 활발하고 밝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싸늘해졌다.




하지만 평소 눈치 없기로 소문난 라희는 그런 사소한 느낌까지는 알 리 없었다. 그리곤 다급히 지민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지민의 정수리에 쌓인 음식물을 조심스레 털어내며 말했다.




“이거 누가 그랬어?”




라희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걱정이었다. 서로 다른 반으로 찢어진 이후로 평소 지민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못 봤지만 그렇다고 괴롭힘당하는 모습 또한 보지 못했기에 라희는 이제야 발견한 지민의 다른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만해.”




지민의 교복을 열심히 털어주는 라희의 손을 지민이 매정하게 탁 쳐내며 말했다. 라희는 순간 놀랐지만, 다시금 손을 들어 지민을 챙겨주려 하는데.




“위선자.”


“···뭐?”




갑작스레 지민의 입에서 매섭게 흘러나온 말에 라희가 멍하니 지민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너도 똑같아.”




지민은 그런 라희를 바라보며 아프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라희도, 꾸역꾸역 말을 내뱉은 지민도 모두가 아픈 말이었다.




하지만 라희는 보았다. 매정하게 돌아서는 차가운 지민의 눈에서 느껴진 미안함과 절망감이. 그렇기에 라희는 다시 한번 지민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여학생들이 라희의 양옆을 꿰찼다.




“쟤 미친 거 아니야?”


“그니깐! 라희 네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어이 털리네?”




아까 지민의 머리 위로 음식물을 들이부었던 여학생들이 라희에게 달라붙어 지민을 욕했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라희는 그저 그들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때 급식실을 빠져나가던 지민이 뒤를 돌아 라희를 바라보았다. 가해자들의 가운데에 서서 웃고 있는 라희의 모습을. 지민은 그런 라희에게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라희는 지민의 마지막 눈빛에 기분이 복잡해졌다.






***






지민은 야자가 끝난 후 모든 학생이 교실을 비웠음에도 자리에 남아있었다. 공허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그 머릿속은 누구보다도 복잡해 보였다.




드륵-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난 지민이 한 책상 앞으로 향했다. 그 자리는 오늘뿐 아니라 평소에도 계속해서 지민을 괴롭혀 왔던 가해자의 자리였다. 말없이 그 자리를 텅 빈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지민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위태로워 보였다.




“왜 그랬어···.”




그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그 말을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은 명확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지금쯤 웃으며 하교하고 있을 생각에 지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왜···, 왜!!”




꽉 쥔 주먹으로 가해자의 책상을 마구 내려쳤다. 고운 손이 까지고 피가 날 때까지, 그 피가 눈물과 함께 책상에 번질 때까지 미친 사람처럼 책상만 때렸다. 어느새 책상은 붉게 물들어 참혹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내가 뭘··· 흐윽, 뭘 잘못했는데···”




한참을 책상 위를 때리던 지민이 힘없이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젠 눈물도 나지 않는지 멍하니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었다.




불이 다 꺼진 교실 속에서 홀로 남은 지민은 차라리 이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항상 시끌벅적하고 밝아서 이곳엔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같았던 그녀였다.




이제야 아무도 없는 이 어둠 속에서 진정한 혼자가 된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가 아닌 진정한 혼자.




지민은 한참을 앉아 있다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나 다른 반으로 들어간 그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어둠 속에서도 알록달록 자기 과시가 가득한 한 책상 앞이었다.




[라희 안뇽? 나 누구게! ㅎㅎ]


[라희짱! 사랑해♡]


[라희~! 나랑도 놀쟈아~ 왜 이렇게 바빠ㅠㅠ]




친구들의 애정이 듬뿍 담긴 낙서로 가득한 책상. 지민은 라희의 책상에 적힌 글자들을 만져보았다. 형형색색의 글자 위에 빨간 피가 그어졌다.




“···배신자.”




잠시 라희의 책상을 바라보던 지민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교실 밖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계단 앞에선 지민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결심한 듯 발을 내디뎠다. 1층 로비로 내려가는 계단이 아닌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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