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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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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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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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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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5화

DUMMY

“이불이 예쁘죠?”




어여쁜 한 새색시가 얼굴을 붉히며 남편에게 말을 건냈다. 혼수로 가져온 예단이불을 애정가득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게말이요. 꼭 그대를 닮아 분홍빛이 아름답소.”


“어머!”




젊은 신혼 부부가 하하호호 웃으며 꼭 껴안았다. 그런 그들의 기운을 느끼는 듯 이불이 기분 좋은 따스함을 머금었다.




“아잇! 이불에 재가 묻어버렸네요.”




방 안을 데우기 위해 들여놓은 화로에서 불똥이 튀어 이불에 묻었다. 닦아보려했으나 더욱 까맣게 번질 뿐 절대 지워지지 않았다. 새색시는 수건을 물에 적셔와 이불을 벅벅 문질렀다. 새신랑은 그런 색시의 손을 잡아 멈춰세우며 말했다.




“괜찮아요, 여보. 이깟 이불이 중요해? 당신한테 묻지 않은게 다행이지.”


“그래도 혼수인데...”


“내 혼수는 당신이면 족하오.”


“아잇, 이 양반이!”




부부가 이불 위로 풀썩 쓰러지며 방에 촛불이 꺼졌다. 둘이 무엇을 하는지 누구도 모를만큼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 후로 몇십 년이 지날 동안 이 집에선 아이가 태어나고 또 그 아이의 아이가 태어나 학교를 다녔다. 그때까지도 이불은 한자리를 지켰다. 남편과 자식 부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이불은 한자리를 지키며 이제는 늙어 곱지만은 않은 새색시를 위로했다.




새색시는 예단이불을 받아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잠에 들기 전 이불 위에서 기도를 드렸었다. 어떤 날에는 남편과의 백년해로를, 또 어떤 날에는 자식과 손주의 행복을, 또 다른 날에는 손녀가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랬었다.




기도가 끝나면 습관적으로 이불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이토록 애달픈 삶을 살면서도 뭐가 그리 감사하다는 것일까. 할머니는 버릇처럼 감사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애정을 받고 자란 물체에선 도깨비가 태어난다는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내려온다.




그리고 지금 이 곳에서 그 전설이 실현되었다. 이불 안에서 남자아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몇십 년을 한 자리를 지킨 예단이불에서 태어난 도깨비였다.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듯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곤히 잠을 자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으니 익숙한 향이 배어나왔다.




“찾았다!”




아이가 해맑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깜짝 놀란 듯 입을 막았다. 어두운 밤중에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자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소리가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듯 다시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매를 지켜줄게!”




할머니의 머리맡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내가 행복하게 해줄거야!”




******




스윽-




어둠이 물러가는 조용한 새벽, 은밀하게 남자아이가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은 불투명한 모습이 그 아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이는 곧바로 방문 앞으로 가 앉았다. 그 앞에는 지민의 할머니가 두 손을 꼭 모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천지신명님, 우리 아가 좀 잘 보살펴 주세요. 우리 아가, 애미 애비 없이도 잘 살아나갈 수 있게, 제 한 몸 부서져도 좋으니 제발 부탁드립니다.”




남자아이는 지민의 할머니가 기도를 하는 동안 그 앞에 앉아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는 듯 했다.




지민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침밥을 차리는 할머니를 따라 남자아이가 졸졸 쫓아다녔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이의 존재를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꿋꿋하게 ᄄᆞ라다니며 조잘거렸다. 어린 손주가 어른의 관심을 갈구하듯이.




드륵-!




할머니가 미쳐 제대로 닿지 못 한 항아리 뚜껑이 떨어지려 하자 아이가 재빠르게 받아 제대로 닫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소리가 안 들렸던 건지 관심이 없던 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아이는 자신을 봐주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뒤를 졸졸 쫓았다. 마치 할머니를 따르는 시골 똥강아지 손주처럼.




손녀를 학교에 보내고 빨래를 탈탈 털며 빨랫줄에 걸고 있는 할머니의 뒤로 아이가 쫑쫑 뛰어다녔다. 할머니가 빨래를 널다가 손녀의 교복 와이셔츠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우리 아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엊그저께인데 벌써 고등학교 졸업을 앞뒀구나. 이 할미는 소원이 없어요.”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소원이 없다고? 그럼 나는 이제 뭐하지?’




아이가 침울하게 바닥을 바라보며 훌쩍였다. 아무래도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그의 삶의 낙인듯 했다. 할머니가 내뱉은 무의식적인 말에도 일희일비하는 아이의 모습이 퍽 귀여웠다.




아이는 혼자 토라져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방 한 가운데에 놓인 이부자리로 가더니 그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허나 그 모습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민아, 우리 똥강아지 학교 가야지~”


“학교 가기 싫어요, 할머니.”




지민이가 따스한 이불 속에서 엎드린 채 말했다. 밤새 울어 퉁퉁 부어버린 눈을 할머니에게는 절대 보여줄 수 없다는 듯이 절대 몸을 돌리지 않았다.




“으잉? 학교가 왜 가기 싫으냐, 우리 아가?”


“그냥 싫어요.”




지민의 절규를 그저 귀여운 투정으로 받아들인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 오늘 학교 다녀오면 이 할미가 맛있는 불고기 해줄게 그래도 학교가기 싫으냐?”


“알았어요...”




지민은 긴 머리카락으로 부어버린 눈을 가리며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옆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도깨비가 입을 뾰루퉁 내밀었다.




“나도 할매 음식 먹을 줄 아는데!”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짜증만 내는 지민이 이해가 가지않는 아이였다. 자신이 인간이었다면 할머니에게 항상 웃으며 대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평범한 하루가 지속되었고 지민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다음 날 경찰로부터 지민이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까무러치며 쓰러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본 아이가 안절부절했다.




도대체 이 집 손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길레 기절까지 한단 말인가.




다행히도 그 소식을 전하러 왔던 경찰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 후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이는 마당에 나와 다람쥐와 장난도 치고 흙바닥에 낙서도 해봤지만 할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겨우 돌아오고 며칠 동안 아이는 다시 그녀를 웃게 하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여기저기 있는 종달새를 잡아와 지저귀게도 하고 온 힘을 다해 나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계절에 맞지 않는 꽃도 활짝 피게 만들었다. 그러한 노력에도 할머니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잔뜩 시무룩해진 채로 할머니의 옆자리에 앉았다. 비록 그녀가 자신을 보지 못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할머니의 손자라도 된 듯 무릎을 배고 누웠다.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자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집 손녀는 지금쯤 저 곳에 갔을까. 아이는 이내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마당을 채우고 있었다.




“뭐야?”




아이가 주변을 둘러보자 웬 멀대같은 흑발의 남자가 화려한 옷을 입고는 요란스러운 방울을 흔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방울소리가 자신을 깨운듯 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아이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채 고개를 휙휙 돌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아이의 눈길이 닿은 곳은 할머니였다. 저 장신의 남자에게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모아 굽신거리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왜 저 인간 앞에 무릎꿇고 있는거지? 저 인간이 뭔데? 아이의 머릿 속이 물음으로 가득찼다. 남자에 대한 경계는 더 심해질 뿐이었다.




자신은 20년을 넘게 할머니를 지켜봐왔다. 그런데 제 모습은 한번도 안 봐줘놓고 저렇게 생전 처음 보는 놈에게 굽신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이다니 아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곤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 이불 안으로 몸을 숨겨버렸다.




다시 이불 밖으로 나왔을 때는 멀대의 남자가 사라진 후였다. 드디어 사라졌구나 이상한 인간! 아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허나 그 장난끼 가득한 발걸음은 곧 조심스럽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바뀌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울음을 삼키지 못하여 끅끅거리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가··· 아가···흐흑.”




아이는 조용히 할머니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등을 조심히 토닥여주었다. 아이의 손길은 세상 무엇보다도 조심스럽고 따듯했지만 할머니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이는 화가 났다.




“옆에 있는 건 난데. 옆에서 내가 위로 해주고 있는데 왜 보지 못하는거야?”




그렇게 외친다고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었다.




“우리 아가 불쌍해서 어떡하지··· 이 할미만 남겨놓고 가면 어떡하니···”




할머니가 품에서 정장 자켓을 꺼내며 말했다.




“아가, 너 주려고 사둔건데··· 수능 끝나면 어른 됐다고, 이제 고생 다 끝이라고 주려 했는데, 어딜 그리 급하게 갔어, 이것아.”




“이 할미 놔두고 가니 좋더냐? 응? 그렇게 갈거면 이 할미가 너 없이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갔어야지···”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고 하늘도 같이 봐야 아름다운거라고 이 할미에게 가르쳐놓고 혼자 가버리면 난 어떻게 살아 이것아.”




“가르쳐주지나 말것이지··· 다 가르쳐줘놓고는··· 흐흑.”




아이는 조용히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잊고 싶어?”


“다··· 다 잊고싶어.”




할머니는 아이의 말을 들을 수 없었지만 마치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이가 슬픈 미소를 띄며 말했다.




“내가 다 잊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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