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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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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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83

작성
24.07.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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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화

DUMMY

학교 자신의 책상에 앉은 라희는 붕대로 칭칭 감겨진 발을 바라보며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귀신을 보질 않나 사람으로 변하는 고라니를 보질 않나.




무엇보다 남사스럽게 공주님 안기로 병원까지 옮겨진 일이 떠올라 얼굴이 터질 듯이 화끈거렸다. 병원에선 가벼운 찰과상과 수험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기절이라기에 금방 퇴원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등교했지만, 어젯밤의 일 때문에 수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공책 한가득 [고라니, 고라니, 고라니?!]만 적어 놓고 있을 뿐이었다.




“고라니, 고라니, 고라니?”


“쌤···!”




낙서만 주구장창 하는 모습을 발견한 선생님이 수업 도중 라희의 자리까지 왔다. 그러나 다른 생각에 잠겨 선생님의 발걸음을 알아채지 못한 라희는 그대로 공책을 뺏겼다.




“너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따라와.”




운도 지지리도 없게 하필 담임 선생님께 걸린 라희는 교무실로 소환당했다.




“고라희, 요즘 모의고사 성적도 점점 떨어지고 수업 시간엔 집중도 못 하고 무슨 일이야? 뭐 남친이라도 생겼니?”


“아니요.”


“너 이 성적으론 인서울 못 가. 아니면 요즘 뭐 힘든 일 있어?”




힘든 일은 아니지만 요상한 일이라면 있을지도라는 딴생각을 하는 라희였다.




“아얏!”


“요게 그새 또 딴 생각하지?”




라희가 집중 못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담임 선생님이 라희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너 이제 고3이야. 보니까 고2 1학기까지만 해도 상위권이었는데 2학기부터는 수학을 아예 놓은거야?”


“어려워서요.”


“수학 단과 학원 같은 거 좀 다녀보지 왜.”


“......”




라희는 속으로 학원 다닐 돈이 어디 있겠나 하며 딴청을 부렸다.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홀로 아픈 동생의 병원비까지 대가며 밤낮으로 일하며 겨우 버티고 계시는데 어떻게 자신까지 무거운 짐을 올리겠는가. 라희는 그저 자동 응답기 마냥 ‘네.’만 반복하다가 교무실을 나왔다.




교실로 돌아온 라희의 책상에 지난달 치룬 모의고사 성적표가 올라와 있었다.




[국어 3, 수학 6, 영어 2, 사탐 2, 사탐 1]




라희는 아무 말 없이 수학 성적을 손가락으로 가렸다. 수학만 가리면 훌륭하진 못해도 괜찮은 성적표였다. 학원도 못 다니고 그 흔한 사설 인강도 제대로 못 들어본 채 혼자 공부해서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2학년 2학기가 지나자 수학은 혼자만으론 벅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라희는 부모님께 한 번도 부탁은커녕 투정도 부려보지 못했다. 심지어 아픈 동생을 케어하느라 바쁜 부모님들은 라희의 성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하아, 인생~”


“왜 뭔데?”




라희가 크게 한숨을 쉬며 성적표를 구겨버렸다. 그러자 옆 짝꿍이 말을 걸어왔다.




“넌 성적 괜찮게 나왔어?”




라희가 짝꿍에게 물었다.




“어. 나 요즘 영어랑 수학 학원 끊었잖아. 2등급이나 올랐어! 이 정도면 인서울 가능할지도~”


“좋겠다.”


“엥, 라희 너는 공부 잘하잖아. 뭐가 좋겠다야.”




짝꿍의 말에 라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




야자를 끝마친 늦은 밤, 라희가 집에 왔다. 라희의 엄마는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소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어?”


“엄마 오늘 일찍 왔네? 엄마 있잖아. 혹시···”


“응 눈치챘구나, 엄마 야간 알바 잘렸어.”


“아···”




이 시간에 집에 계시는 엄마를 오랜만에 본 라희가 반갑게 맞으며 학원에 관한 얘기를 꺼내려는 찰나 라희의 엄마가 한 발 더 빨랐다.




“요즘 물량이 없다고 나이 있는 사람부터 다 잘라내더라. 근데 그 손에 든 건 뭐니?”




라희 엄마의 시선이 라희 손에 들린 성적표로 향했다.




“아, 이건 이번에 본 모의고사 성적표.”


“아 진짜? 잘 나왔어?”




라희는 순간 엄마 앞에서 주눅이 들었지만, 그동안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을 겨우겨우 꺼내버렸다.




“엄마···, 혹시 수학 학원 좀 보내주면 안 돼? 아니면 인강이라도! 인강은 두세 달 학원비로 졸업 때까지 계속 볼 수 있어!”


“······.”




라희의 엄마가 침묵을 유지하며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잠시 뜸을 들이더니 라희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달 말까지 라훈이 병원비가 300이야. 그다음 달엔 또 수술 있어서 더 들어갈 거고.”


“아···”


“너 여태까지 혼자 잘해왔잖아? 성적도 좋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성적를 보고도 저런 소리가 나올까 라희는 생각했다. 서운한 마음이 가슴 한가운데 자리 잡았지만 어쩌겠는가, 동생이 아픈 것을. 자기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 것을. 라희는 애써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냥 더 잘해보고 싶어서 욕심부려봤어. 미안! 이만 들어가서 잘게. 엄마도 주무세요.”




라희는 힘없이 인사를 한 뒤 방으로 향했다. 라희가 주눅 들어 방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라희의 엄마는 라희의 방문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본 채 술잔을 기울였다.




방에 들어와 씻고 옷을 갈아입은 채 책상에 앉은 라희가 수학 문제집을 폈다. 한참 문제를 들여다보고 공식들을 바라봤지만,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짜증이 난 라희가 문제집을 팍하고 덮어버렸다.




작년부터 동생이 크게 아프기 시작하면서 라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당연히 공부에도 흥미를 잃었고 겨우 마음을 다잡았을 때는 이미 수업 진도를 놓친 후였다. 혼자서라도 다시 따라가 보려 했으나 수학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기만 했다.




라희는 한숨을 푹 쉬며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때 창문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탁!




“응?”




탁!




무언가 계속해서 작은 돌멩이 같은 것들이 날아와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뭔 일인가 싶어서 라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역시! 아직 안 자고 있을 줄 알았소! 전에 못한 얘기를 마저 나누러 왔소!”


“에엥?”




고라니, 아니 차기 산신이라는 자가 담장 너머에서 라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수북한 돌멩이들을 들고서. 아마 라희가 창문을 끝까지 안 열었더라면 저 많은 돌을 다 던졌을 것 같았다.




“뭐예요?”




거실에 계신 엄마의 눈치가 보여 라희가 작게 속삭이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럼 잠시 실례 좀 하겠소!”




라희가 왜 속삭이는지 대충 눈치챈 듯한 남자가 거의 자기 키만 한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리곤 라희가 있는 창문까지 단숨에 다가왔다. 라희가 저지할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고라니라더니 엄청 날래네.’




“내 귀안력 돌려받으러 왔소!”


“네?”




남자가 손바닥을 내밀며 다시금 말했다.




“그대에게 넘어간 내 귀안력 말이오. 그거 당장 주시오.”


“뭐라는 거예요.”




라희가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남자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귀안력이 없으니 내 관할구역 관리가 전혀 안 된단 말이오! 어서 내놓으시오!”




남자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거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희야, 누구 왔니?”




라희가 다급하게 창문 밖으로 몸을 빼 남자의 입을 막으며 소리쳤다.




“아, 아니! 인강 틀어놔서 그래! 소리 줄일 게, 하하! 쏘리 맘~”


“으읍! 읍!”




엄마 때문에 안 되겠는지 라희가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남자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따라와요!”




드디어 대문 밖으로 나온 라희는 오늘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담아 남자에게 소리쳤다.




“난 그쪽이 자꾸 뭘 내놓으라고 하는지 모르겠고 지금 기분도 별로니까 나중에 오시던지, 아니 오지 마요 그냥!”


“아니 귀안력은 줘야 할 것 아니오!”


“아 자꾸 뭘 달라는 거야!! 자꾸 이러면 경찰부를 거에요!!”




결국, 참다 참다 폭발한 라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원래라면 그냥 다독여 돌려보냈겠지만 라희는 이미 입시 스트레스로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였다.


남자는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라희 말을 맞받아쳤다.




“차기 산신이 뭐! 인간의 공권력 따위를 두려워할 거 같소!?”




라희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빼 들자, 순간 눈이 동그래진 남자는 잠시 주춤하더니 라희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려 다독였다.




“일단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건강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소. 나는 이만 돌아가야겠군, 들어가서 편히 쉬시오.”




공권력 어쩌구하며 자신만만하던 남자의 갑작스러운 상반된 반응에 라희는 묘하게 약이 올랐다.




“그러니까 찾아오지 말라고···”




라희가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남자가 고라니로 변신하더니 겅중겅중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뭐야 진짜?”




그가 다독인 자리가 따뜻했지만, 괜히 기분이 이상해서 신경질적으로 털어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창문 앞에선 순간, 철제 대문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라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대문 쪽으로 걸으며 소리쳤다.




“돌아간다면서요!!”




이내 신경질적으로 대문을 연 라희의 눈앞엔 익숙한 소녀가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얼굴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지민이?”




작년까지 같은 반이어서 한참을 붙어 다녔던 이지민이었다. 3학년에 올라오며 반이 갈라져 자연스럽게 멀어진 후로 집 앞에선 오랜만에 보는 그녀였다.


지민이 대문 앞 어둠 속에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어?”


“응, 이 시간에 웬일이야?”


“할 말이 있어서···.”




‘할 말’이란 단어에서 라희는 순간 짜증을 느꼈다. 오늘 하루 왜 이렇게 기분이 별로인지. 지민이가 뭔 말을 할지 몰랐지만, 라희는 그저 들어가서 자고 싶었다.




“지민아 미안한데 내가 지금 졸리거든. 야자도 그렇고 신경 쓸 게 많아서. 내일 얘기하자.”


“···응, 미안해 잘자···.”


“응, 잘 가!”




힘없이 돌아서는 지민의 뒷모습이 이상하게 초췌해 보였지만 라희는 지금 그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라희는 발에 감긴 붕대를 손으로 툭툭 털어내고는 다시 창문을 넘었다.


어두운 방 안에 다시 혼자가 되자 어젯밤이 생각났다.




애써 괜한 생각 말자고 생각한 라희는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며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엔 지나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하고 웃을 여고생이 아니라 시험과 입시에 찌든 학생이 있었다. 거울에 비친 눈 밑 그림자처럼 짙게 진 다크써클과 생동감 없이 텅 빈 눈동자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 눈에 문제가 생긴 걸까?’




또 이상한 것을 보게 될까 봐 라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업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귀신까지 보게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별일 아닐 거야··· 그냥 뭐···.”




그렇게 한참을 불안함에 떨던 라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에 누워 겨우 단잠에 빠져들었다.




라희가 잠든 그때, 지민은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비포장 길을 걸었다. 희미한 가로등이 비춘 지민의 팔과 다리엔 멍자국과 상처가 가득했다. 아까 라희의 집 앞은 어두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텅 빈 시골길 위에 왠지 모를 슬픔이 가득한 지민을 검은 연기로 자욱한 존재가 몰래 뒤를 밟고 있었다.


검은 연기의 존재가 훌쩍이며 걷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곤 혼자 나지막이 속삭였다.




“찾았다. 새로운 인형.”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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