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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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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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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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화

DUMMY

“뭐든지?”




남자의 말에 라희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든지요!”




남자는 아까의 냉랭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화색을 보이며 말했다.




“그럼 그 귀안력 나한테 돌려주시오.”


“네? 하지만··· 어떻게요?”




다시 시작된 남자의 강요에 라희의 눈가를 촉촉이 적시던 눈물이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자신에게 갑작스레 떠넘겨진 귀안력인데 이걸 돌려달라는 남자의 말을 들어줄 수 있을 턱이 있나.


그런 라희의 속마음까지 읽을 것인지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라희에게 말했다.




“날 따라 해보시오.”




이젠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티비에서나 볼법한 도인들의 기체조를 흉내 내듯 이상한 자세를 잡은 남자가 심호흡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자 이렇게 내면의 영압을 끌어올려서, 스읍~ 내면에 느껴지는 귀안력을 계속해서 느끼면서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후···”




라희는 어느새 남자의 생쇼를 바라보며 넋이 빠졌다. 못 볼 걸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라희가 남자의 몸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말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남자는 한껏 진지했다.




“자 얼른 따라 하시오!”




남자의 말에 어설프게나마 자세를 잡은 라희가 남자의 동작을 따라 하며 물었다.




“하··· 진짜. 아니, 이거 뭐에요 이게?”




라희의 어이없다는 듯한 태도에도 남자는 꿋꿋이 동작들을 이으며 말했다.




“단전에서부터 영압을 끌어모아서 귀안력을 손바닥으로 배출한다는 느낌으로!”




슬슬 짜증이 오른 라희는 이내 못 참겠다는 듯 소리쳤다.




“아! 안 되잖아요!!! 이게 뭐예요!! 쪽팔리게!!”


“아니··· 그냥 넘겨주시면 되는 문제를···.”




라희의 호통에 한 풀 기가 꺾인 남자는 눈을 내리깔며 소심하게 머리를 긁었다.




“아니 그쪽이 가져가요! 그럼 되잖아요!!”


“안되오.”


“왜 안되는데요.”




남자는 라희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 애써 외면하며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어쨌든 안되오.”


“못하시는구나?”




라희의 물음에 정곡을 찔렸는지 양손을 휘적거리며 필사적으로 변명을 펼쳤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되는 것이오!”


“그게 그거죠!”


“아니···”




당당하게 맞받아치는 라희의 한껏 시무룩해진 남자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곤 갑자기 고개를 흔들더니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귀안력을 되찾아오는 것이 안 되는 듯하니 방법을 찾을 때까지 나와 함께 행동해줘야겠소.”


“제가 왜요?”


“방금 뭐든지 들어준다고···”




남자의 말에 라희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쳇.”


“어어? 내가 잊을 줄 알았소!? 방금 한 얘기인데!? 누굴 붕어로 아시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그쪽하고 항상 붙어 다닐 수도 없고.”




라희의 부정적인 태도에 남자는 가뜩이나 없는 공감 능력을 쥐어 짜내서라도 라희를 설득해야만 했다.




“그대는 내 귀안력을 가져갔으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혼령들을 볼 것이오. 그들에게 귀안력을 가진 인간은 유용한 장난감이나 다름없소. 그것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전에 병원 앞에서 겪어봤으니 잘 알 것이고···.”




남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라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 남자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한데, 지금 나에겐 귀안력이 사라져서 혼을 볼 수가 없소. 그나마 지금 이렇게 그대가 곁에 있으면 다시 혼을 볼 수 있는데···, 그대도 내 옆에 있어야 안전하고, 나도 그대가 있어야 그들을 처치할 수 있으니 함께 행동해야 하지 않겠소?”


“그렇네요···”




벌써 두 번의 원혼을 겪은 라희는 남자의 말이 솔깃하게 다가왔다. 어쨌든 지금은 첫 만남처럼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으니 이 기회를 한껏 이용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알았어요, 일단 지민이를 성불시켜주세요. 그러면 그때 생각해 보는걸로.”




라희가 남자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좋소.”




남자는 라희의 새끼손가락을 잡고는 악수를 하듯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제임스요.”


“엑?”




남자의, 아니 제임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전혀 상상도 못 한 이름에 라희가 외마디 말을 내뱉었다.




“뭐가 문제 있소?”


“제임스요? 외국 사람이에요? 아니, 그··· 외래종인가?”


“외래종이라니! 토종 혈통의 산신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미, 미안해요.”


“거! 편견이 많으신 편이구려!”




‘별걸 다 갖고 난리다.’라고 말하려다 제임스의 표정이 꿈틀거리자 라희는 하려던 말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럼 계약은 성립된 것 같으니, 어디 이 악령을 한 번 성불 시켜 볼ㄲ··· 엥?”


“···?”




그제야 제임스는 깨달았다. 라희와 열띤 토론을 펼치느라 자신도 모르게 지민이를 잡은 손을 풀었었다는 걸. 지민이 있던 자리엔 이미 아무것도 없이 휑한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민이 어떡할 거예요!!!”




제임스는 처음 보는 멍청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라희의 원망 어린 비명만이 암흑을 뚫고 울려 퍼졌다.




******




한 여학생이 너무 어둡지만은 않은 아파트단지 안을 걷고 있었다. 아까 급식실에서 지민을 괴롭히던 주동자 중 또 다른 한 명이었다.




끼릭-




여학생이 걸어가는 방향에 위치한 아파트 10층의 에어컨 실외기 나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풀어지고 있었다. 여학생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집을 향해 걸었다.


그러던 한순간.




쾅!




“꺄아악!!!”




여학생의 바로 앞으로 실외기가 떨어졌다. 아주 간발의 차이로 여학생은 무사했다.




“아깝네···”


“뭐, 뭐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여학생 앞으로 지민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분명 걸어오고 있는데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지민···? 너! 이거 너가 이런 거야?”


“응. 나사를 너무 빨리 풀었네. 아까워라.”


“야 이 미친년아! 사람 뒤질뻔했잖아!!”




열 받은 여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민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지민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손을 뻗은 그 순간.




“으악!”




하지만 지민의 몸이 손에 잡힐 리 없었고 여학생은 달리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 넘어졌다.




“풉! 푸하하하하!”




지민이 배를 잡고는 미친 사람처럼 웃어 재꼈다. 지민의 웃음소리가 칠판 긁는 듯한 소리로 느껴진 여학생은 다급하게 귀를 막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가?”




그러나 이미 사람이 아닌 지민에게 잡히기엔 충분한 거리였다.




“꺄아악!”




지민이 역으로 여학생의 머리칼을 붙잡고 공중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자신의 머리칼에만 의존한 채 같이 떠오른 여학생이 발버둥을 치며 소리쳤다.




“왜, 왜 이래! 아파! 이거 놔!!!”


“왜 그러냐고? 몰라서 물어?”


“내가 뭘 잘못 했는데!!”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여학생에게 속삭이던 지민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리곤 오싹하게 피를 뒤집어쓴 얼굴을 잡힌 여학생의 얼굴 앞으로 드리우며 다시 속삭였다.




“네가 뭘 잘못 했는지··· 정말 몰라···?”




여학생의 태도에 화가 솟구친 지민이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는 곧 여학생을 감싸더니 고통스럽게 옥죄였다.




“넌 알아야지!!!”




“지민아!!”




지민이 소리 난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쪽에선 라희와 제임스가 자신을 올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귀안력을 꽤 잘 다루시는구려!”




스산한 느낌을 따라온 라희를 쳐다보며 제임스가 칭찬했다. 눈치 없는 제임스를 뒤로한 채 라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민과 여학생을 바라봤다.




“지민아, 그러지 마··· 송아를 놔줘 제발.”


“위선자년.”




지민이 라희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검은 연기에 옥죄여 기절해버린 여학생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제임스가 다급히 떨어지는 여학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쿵!




여학생을 받느라 쓰러진 제임스의 모습을 본 지민은 그 순간을 노렸다는 듯 라희를 향해 돌진했다.




“컥! 히미나···”




순식간에 지민이 라희의 앞으로 나타나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라희는 그저 컥컥거리며 힘없이 발버둥을 칠 뿐이었다.




“닥쳐··· 닥쳐!!”




지민이 분노에 못 이겨 더욱 크게 힘을 주자 몸이 늘어지려는 느낌이 온 라희는 이내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이렇게 죽는 건가···’




라희의 정신이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그 순간.




“흐읏!”


“컥!”




그렇게 그녀의 시야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을 즈음. 누군가는 숨이 돌아오는 소리를, 또 누군가는 다시 한번 숨이 끊어지는 소리를 내었다.




“내 귀안력을 해치려 하다니···”




제임스가 한 손으론 라희의 허리를 잡고 한 손으론 언제부터 손에 들고 있었던 건지 부채로 지민의 목을 그었다. 그러자 지민의 모습이 검은 연기로 흩어지다 제임스의 부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라희는 제임스의 품에 안긴 채로 그를 올려다봤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봤던 그의 얼굴 중 가장 차가운 얼굴이었다. 그저 냉정하다기보단 무언가 혐오의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차가운 얼굴을 내려 라희를 바라본 제임스가 다른 한 손으로 라희의 목 언저리를 만졌다. 붉게 달아오른 자국이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다. 라희가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자 제임스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지민이는···? 제임스, 지민이는요?”




제임스는 지민을 그저 지긋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성불했나요, 지민이?”




제임스가 침묵을 유지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라희는 제임스의 말에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믿기 싫었는지 재차 제임스에게 물었다.




“그럼요?”


“소멸시켰소.”




라희가 시선을 돌려 방금까지 지민이 있었던 허공을 바라봤다. 이미 지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게 무슨···”




라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방금까지 있던 친구의 모습이 사라졌다. 비록 원혼의 모습이었지만 친구였다.




“사람을 둘이나, 아니 셋이나 해쳤소. 이 자는 성불을 할 가치가 없는 존재요.”


“그래도···”




라희의 눈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리곤 제임스의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쳐대기 시작했다.




“내 친구란 말이에요! 흑···”


“···이미 죽어버린 친구요.”


“성불시켜주기로 했잖아요!”




라희가 계속해서 제임스의 가슴팍을 쳐댔다.




“미안하오. 내 귀안력을 잃을 순 없었소.”




어느새 라희의 눈물로 제임스의 한복이 천천히 젖어갔다.




***




집 근처 카페에서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여학생이 있었다.




“내년에도 우리 같은 반 됐으면 좋겠다. 고3에 다른 반 되면 만나기 힘들 거 아냐.”


“맞아. 우리 혹시 다른 반 되더라도 쉬는 시간마다 놀러 가기! 어때?”


“아 그런 말 하지 마. 재수 없어진다고! 빨리 퉤퉤퉤 해!”


“퉤퉤퉤!”




지민이 불안한 마음을 담아 말하자 라희가 장난스럽게 반응했다. 여느 여고생들과 다를 거 없이 활짝 웃으며 떠들었다.




“잠깐만.”




라희가 지민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카운터로 향했다. 지민이 라희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하지만 라희의 등에 가려져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없었다. 한참을 카페 직원과 대화를 하던 라희가 무언가를 받아 들고는 다시 지민이가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라희의 손에 들린 건 작은 면적 위에 수북하게 18개의 초가 꽂힌 조각 케이크였다.




“생일 축하해, 지민아! 내가 너 선물 사느라고 케이크 살 돈이 없었어. 미안해.”


“뭐야아!”




이미 라희에게서 학생치고는 비싼 팔찌를 받은 지민은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에 눈물을 글썽였다.




“헤헤, 케이크가 너무 작아서 초가 한가득이네.”




라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싱긋 웃었다. 긁적이는 라희의 손목에서 지민과 같은 푸른 빛의 팔찌가 반짝였다.




지민도 자신의 팔에 걸린 푸른 빛의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울음을 애써 삼켰다.




“진짜 고마워. 난 너뿐이야, 라희야.”


“나도! 나도 지미니뿐이지롱!”




두 여학생의 맑고 청량한 웃음소리가 카페 안을 기분 좋게 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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