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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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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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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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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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0화

DUMMY

”할머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치매인가? 라희는 매우 당황했다.


‘할머니는 지민이 외에는 가족이 없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하지?’


사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든 말든은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라희는 지민에 대한 죄책감에 이러지도 조로지도 못하고 있었다.


‘치매라면 병원에 연락해야 하는건가?’


라희는 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내 멈칫했다. 치매로 가는 병원은 어디 병원에 무슨 과를 가야하고, 가도 보호자 자격이 있는지,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다. 어른들도 갑자기 이런 상황을 당한다면 우왕좌왕 할텐데 학생에 제대로 병원도 다녀 본 적도 없는 라희는 더더욱 눈앞이 캄캄했다.


‘제임스!‘


제임스라면 도와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차기 산신이라는 사람이고 아는 것도 많을테니까. 제임스에게 연락하려고 전화번호부를 뒤지던 라희가 멈칫했다. 제임스의 전화번호를 받아둔 적이 없다. 심지어 그가 폰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산신도 폰을 가지고 다니나?’


이럴거면 저번에 폰이나 하나 쥐어줄 걸이라고 생각하며 라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지민이 뭐해? 언넝 들어와서 밥 먹거라!“


지민의 할머니가 현관 문을 열고 나오며 라희에게 여전히 지민처럼 대하며 말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라희는 지금은 이럴때가 아니라고 그를 찾아나서야 겠다고 다짐했다.


”할머니, 저 친구랑 약속이 있는 걸 깜빡했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뭐? 밥 다 해놨는데···“

”금방 올게요. 집에 계세요! 꼭 집에만 계세요. 어디 나가시지 말고!“


라희는 할머니의 손을 맞잡으며 집에만 있으라는 당부를 해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산으로 가야하나?’


라희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지민의 집 뒤에 산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신이라 했으니 산에 있겠지.’


단순한 사고회로를 잠시 돌린 뒤 라희는 뒷산으로 향했다. 평소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나무로 빽빽한 산을 힘겹게 올랐다. 중간중간 경사를 따라 비스듬히 난 나무에 등을 대고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멀리서 보기엔 분명 흔해빠진 낮은 야산이었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떨어진 밤송이에 발목을 찔리고 기어가는 송충이에 비명을 지르고 푹 꺼진 땅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가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쉬어가려고 만든 팔각정이 있었다. 라희는 팔각정에 올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대자로 뻗어버렸다.


“하, 산신 찾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가.”


산 정상까지 올라왔지만 제임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막상 올라오긴 했는데 그를 어떻게 찾아야할지 막막했다. 거친 숨과 팔딱이는 심장이 잦아들때까지 누워있던 라희는 진정이 좀 되자 몸을 일으켰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지.”


라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그리곤 팔각정 밑으로 내려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팔각정을 기분으로 오른쪽과 왼쪽 길이 있었다.


“음, 오른쪽으로 가자.”


단순히 오른손 잡이여서 오른 쪽 길을 고른 라희가 몸을 움직였다. 빽빽한 나무 사이사이를 지나며 라희는 이 산이 이렇게 나무가 많았나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분을 더 걸었을까 또 다시 두 갈래 샛길이 나왔다.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몰라.“


이미 충분히 많이 왔지만 여기까지 온 게 억울해서라도 라희는 제임스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이번엔 왼쪽길은 선택해 발을 움직였다. 샛길이 갈수록 험해지더니 길이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았다.


”이 쪽으론 사람이 별로 안다니나?“


산길은 본래 등산객들이 다니며 밟아놔서 생기는 것인데 지금 이 길은 사람의 발길이 별로 없는 듯했다. 아무래도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리는데 자그마한. 공터가 라희의 눈에 들어왔다.


길도 제대로 없는 이 곳에 웬 공터가 있나 설마 제임스의 집이 있는 곳인가 싶어 라희는 그쪽으로 향했다. 공터에 들어서니 아무것도 없이 휑한 가운데에 오래되어 가지만 초라하게 남은 나무가 있었다. 몇백살은 먹었는지 그 크기가 매우 컸다. 나무 주변으로는 언젠가 사람들의 발길이 있었던 것처럼 큰 돌들이 탑을 이루듯이 둘러져 있었고 낡아빠진 천들이 이곳저곳 걸려있었다.


‘당산나무 그런건가?’


당산 나무, 민속 신앙의 일종으로 나무에 신이 깃들어져 있다고 여겨 모셔지는 신격화 된 나무를 뜻한다. 나무 주변에 놓여진 무너진 돌탑들과 색이 바랜 천들이 이 나무가 이전에 어떤 취급을 받고 있었는 지 알게 해줬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주변물들 때문일까 아니면 늙어서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저 거대한 나무때문일까. 라희는 과할정도로 오싹함을 느꼈다. 괜히 저 나무를 보고있는 것만 해도 기분이 나빴고 무서워졌다.


마침 해가 기울기 시작해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그 무서움은 배가 되었다. 라희는 제임스고 뭐고 일단 산을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물쭈물 할 거 없이 단번에 행동으로 옮긴 라희는 올라올 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왔다.


중간중간 넘어질 뻔했지만 큰 상처는 생기지 않았다.


“뭐야, 여긴 어디야?”


허겁지겁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곳이었다. 작은 산이라고 얕봤지만 막상 올라올때와 다른 곳으로 내려오니 전혀 다른 동네였다. 라희는 일단 큰 길로 나가 대충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는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슈왁!


”허억!“


라희가 눈을 감음과 동시에 아까보았던 나무가 순식간에 확 다가오는 장면이 보였다. 깜짝 놀란 라희가 헉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생 드디어 인난거야? 아니 얼마나 피곤했으면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

”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가 라희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라희가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 창문 너머로 줄 지어 서있는 버스들이 가득했다. 버스 창문에 기댐과 동시에 잠에 빠져 종점까지 온 듯 했다.


”아, 죄송해요. 조금 피곤했나봐요.“

”그래, 학생. 집에는 갈 수 있겠어? 지금 막차도 방금 출발해서 버스도 없는데.“

”네, 괜찮아요!“


딱히 집에 갈 방법도 없었고 무엇보다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지만 일단 라희는 괜찮다며 버스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종점을 둘러보니 정말 모르는 동네였다.


’어떡하지?‘


라희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엄마는 동생케어에 일에 힘드실거고 딱히 전화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폰을 내려 놓을까 하는 그때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주성현]


라희는 자신도 모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첫 신호음이 가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라희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그때 그의 음성이 먼저 들려왔다.


”뭐냐?”

“······”


전화도 참 예쁘게 받는 그였다.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하지?”


정말 예쁘게 볼래야 볼 수 없는 그런 말투였다.


”나 좀··· 데리러 오면 안될까?“

”지도에 위치 찍어서 보내.“


당연히 헛소리 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어 버릴 줄만 알았던 그가 위치를 보내라더니 잠시 후 정말로 데리러 왔다. 그것도 오토바이를 끌고. 검은 라이더 자켓에 진청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누가봐도 무속인이 아니라 멋부린 남자였다.


벙찐 채로 바라보는 라희에게 성현이 익숙한 듯 뒷자리에 있는 헬멧을 꺼내 씌웠다.


”타.”

“학생이 이런 거 타도 되는거야?”

“면허 있으니까 걱정말고 탈래? 아님 두고 나만 갈까?“

”아니, 아니! 탈게!“


그제야 정신을 차린 라희가 후다닥 성현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성현이 라희의 손을 끌어 자신의 허리춤을 잡게 했다.


”떨어지기 싫으면 꽉 잡아라.“

”응.“


라희는 그의 자켓을 생명줄마냥 꽉 잡았다. 성현은 그런 라희를 뒤돌아보다가 피식 웃더니 이내 출발했다.


성현은 라희의 부탁으로 그녀를 지민의 할머니 집 앞에 내려주었다. 라희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헬멧을 벗어 그에게 건내주며 말했다.


”저기, 너 치매 병원 같은 거 어떻게 가는지 알아? 나라에서 지원해준다던가 그런 건?“

”갑자기 그런 건 왜?“

”그게···“


라희는 아까 낮에 지민의 할머니가 보였던 행동들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오토바이에 기대어 듣고 있던 성현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갑자기?“

”그치? 나도 놀랐어. 치매라는게 그렇게 갑자기 오는건가 싶기도 하고 지민이 일때문에 충격 먹으셔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아냐.“

”응?“


성현이 오토바이에 기댄 몸을 일으키더니 지민이네 집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치매가 아닌 것 같아.“

“치매가 아니라니?”


그가 오토바이 뒷자석에서 무당구슬을 꺼내어 흔들며 지민의 집 주변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오토바이에서 저런게 왜 나와?’


라희는 이 어이없는 광경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꽤나 진진한 그의 태도에 말을 아끼고는 성현의 행동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꽤 재밌는 놈이 숨어있는 것 같은데.“


성현이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리며 말했다.


”꽤··· 재미있는 놈?“


라희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나는 눈치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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