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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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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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9,483

작성
24.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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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9화

DUMMY

철퍼덕-


“으으...!”


물 속에 가라앉은 것도 잠시 라희는 어떤 낯선 곳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힘에 무릎이 살짝 까졌지만 일단은 살았다는 안도감에 큰 숨을 내쉬었다.


“이런, 무릎이 까졌소? 거 조심 좀 하지!”


숨을 고르고 있던 그때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뒤에서 웃고있었다.


“야! 너!”


그에게 화를 내기 위해 몸을 벌떡 일으켜 뒤를 도는데 이상한 것이 라희의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 있는 이 방의 한쪽 벽이 물처럼 보였다.


물? 말 그대로 연못이 벽에 있었다.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고, 비단 잉어들이 돌아다니는 게 아까 그 연못이었다. 할 말을 잃은 라희가 홀린 듯이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손을 뻗어 벽에 손가락을 조심히 대어 보았다.


톡 하고 물방울이 라희의 손가락에 묻어 나왔다. 한 방울의 물방울이 라희의 손 끝을 적셨다. 적셔? 그제야 정신 차린 라희가 자신의 몸을 휙휙 둘러보았다. 어딜 봐도 뽀송뽀송한 자신의 모습에 라희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읺는다는 얼굴. 제임스는 라희의 표정을 보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밝고 크게.


"뭐!"

"그대가 그대의 표정을 봤어야했소!"


제임스는 그저 웃긴듯 한참을 포복절도했다. 라희는 놀림당하는 기분에 화가 났다. 하지만 이 신비로운 광경이 더 신기했다.


"이 곳은 이전 어느 대인진 모르나 산신이였던 분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곳이요. 그 뒤로 대대로 산신이 기거하는 곳이 되었고. 지금 산신님은 답답하다고 다른 곳에 묵고 계셔 이 곳은 내가 쓰고 있지."

"진짜 신기해..."


라희는 물로 된 벽 앞에서서 톡톡 만져봤다가 손을 쑤욱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깊게 손을 넣었다가 빼도 손은 물론 옷까지도 뽀송했다.


"그렇게 신기하오?"


라희는 말없이 물로 된 벽을 바라보았다. 그때 연못 속의 비단잉어가 라희와 눈을 마주치더니 그녀에게로 쏜살같이 돌진했다.


"꺄악!"


잉어는 라희를 놀리듯 그녀의 바로 앞에서 방향을 획 돌려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이미 놀라버린 라희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발이 꼬여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방바닥에 넘어지기 직전 팔을 허우적 거리던 팔에 무언가 잡혔고 라희는 그것을 있는 힘껏 잡아 당겼다. 그리곤 눈을 질끈 감았다.


찌이익-


'찌이익'?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라희의 귓구멍을 울렸다. 그리고 라희는 등뒤로 넘어지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감았던 눈을 살그머니 떴다.


라희가 넘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달려온 제임스가 라희를 한 팔로 받아주어 그녀가 넘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거의 땅바닥에 닿기 직전에 구해준 제임스 덕분에 라희는 무사했다.


"와, 나이스 타이밍! 이거 잡아도 넘어지는 거 같아서 무서웠는데...응?"


라희는 손에 들린 천쪼가리를 들어올리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근데 가만보자...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천 조각인데?


라희는 왠지 익숙한 천조각을 바라보다가 제임스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그의 품에 반쯤 안긴 상태라 고개만 살짝 돌리면 되었다.


그의 가슴팍에 천조각을 대어보았다. 원래부터 그 곳이 이 천쪼가리의 자리라는 듯 딱 들어 맞았다. 라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천을 때어내보았다.


그러자 하얗고 맨들맨들하고 근육이 적당히 자리잡은... 제임스의 새하얀 가슴팍이 보였다. 너무나도 가깝게 라희의 시야를 꽉 채웠다.


"...꺄아아아아악!!!"

"왜, 왜그러시오!!"


철퍼덕-


갑작스런 라희의 비명에 제임스가 놀라며 그녀를 잡은 손을 뺐다. 덕분에 라희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꺄아아...! 컥!"

"라, 라희양!"


제임스가 많이 놀랐는지 방바닥에 널부러진 라희를 안아들고는 침대로 가서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침대 밑에 꿇어앉아 당혹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폭신한 침대에 몸을 누이자 정신이 돌아온 라희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리곤 아직도 가슴팍을 열어제끼고 있는 제임스를 아무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그, 그 옷 좀 갈아입어요! 언제까지 입고 있을거야!"


라희의 말에 제임스가 자신의 넝마가 된 옷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이건 그대가 잡아서..."

"아, 알았으니까 갈아입어요!"


제임스는 도대체 뭔 변덕인가 싶은 표정으로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꿇어앉아 있는 채로 입고 있는 저고리의 고름을 스윽 풀었다. 그러자 매듭이 풀리며 이미 많이 상해버린 저고리가 스르륵 흘러내려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느새 제임스는 바지만 입은 채 라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침대 위의 라희의 얼굴은 가을 뙤약볕에서 진하게 익은 홍고추보다도 더 빨갛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야이, 야이 변태 고라니야!!!"


아까와 똑같은 모습. 침대 위의 라희와 침대 밑에 무릎 꿇은 제임스. 하지만 제임스의 옷차림이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벌서듯 두손도 들은 상태로.


그의 차림은 지난번 라희와 쇼핑한 캐쥬얼 복장으로바뀌어 있었다. 침대 위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는 라희가 그를 잔뜩 노려보며 말했다.


"손 똑바로 안 들어?"

"거 너무하오. 옷을 갈아입으려며뉴벗어야 하는게 당연지사..."

"쓰읍!!"


급 억울해진 제임스가 벌서는 손을 스리슬쩍 내리며 말하자 라희가 고라니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처럼 눈을 강렬하게 뜨며 경고를 했다. 라희의 기에 깨갱한 제임스가 다시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라희는 제임스를 한 번 노려봐준 후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두리번 거렸다. 전통적인 한옥 느낌의 인테리어였다. 산신 대대로 써서 그런지 생활감이 느껴지는 나무들로 각종 가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라희의 뒤로 제임스가 손을 스리슬쩍 내리고 있었다.


"다 보인다. 올려라."

"힝..."


마치 한밤중에 티비 앞에 자고 계신 아버지가 리모컨만 들면 '아빠 안 잔다.'라고 하듯 라희가 말했다. 그 탓에 제임스는 다시 울며 겨자먹기로 손을 번쩍 들어야했다.


방 곳곳을 탐방하던 라희가 벽에 걸린 족자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은 텅빈 족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특이한 광경에 라희는 족자로 걸음을 옮겼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아래에 뭔가 두 글자가 한자로 적혀있었다.


"무슨... 록? 제임스! 이거 푸를 록 맞지? 앞에 껀 뭔 말이지? 앞에 글자는 너무 어려운데? 제임스... 으앗!"


멀리 침대 언저리에 있던 제임스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라희를 옆으로 밀고는 벽에 걸린 족자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아주 차가운 얼굴로 조용히 족자를 돌돌 말아 끈으로 강하게 묶었다.


"제임스?"


그는 여잔히 묵묵부답인 채로 족자를 옆에 서랍에 넣고는 닫았다. 그리고 여전히 본 적없는 시릴정도로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함부로 읽지 마시오."

"아니 나는..."

"인간이란 족속들은 기회만 노리는군."


라희의 이성이 툭 끊겼다. 아니 잘 나가다가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그리고 아까 사과한 거 아니었어?


"뭐라구? 제임스 지금 뭐라 그런거야? 말 다했어?"

"오늘은 이만 가보는게 좋겠소. 데려다 줄테니 다음에 연락하겠소."

"아니, 야!!!"


라희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제임스는 그녀의 팔을 잡고 끌어당겨 물로 된 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무심히 한마디를 남기고는 라희를 툭 밀었다.


"조심히 가시오."


라희는 또 다시 연못 속으로 빠져들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그녀는 외쳤다.


"야 이 새x야!!!"


벌떡-


어느새 바뀌어버린 풍경. 익숙한 장소의 침대 위에서 라희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응?"


방금까지 분명 제임스의 보금자리에 있지 않았나? 꿈인가? 뭐지?? 라희는 혼란스러운 머릿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띠링-


그때 울리는 문자소리에 라희가 폰을 집어올렸다. 자기 전 뇌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핸드폰을 보며 라희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과외말고 다른 일 보러 좀 같이 가자.]


성현의 문자였다. 시간을 보니 오전 8시. 평소 눈을 뜨는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방금까지의 그 상황들은 꿈이었나라고 생각한 라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칫솔에 치약을 쭉 짜고 입에 문 채 거울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거울에 손가락을 살며시 대었다. 물로된 벽이라니. 연못 속 벽이라니. 그런게 존재할리가 있나. 라희가 피식 웃었다.


요즘 산신이다 귀신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것들을 보다보니 꿈도 참 희안한 꿈을 꾸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런 차가운 표정의 제임스라니 말도 안되지 않나. 그 어리버리 산신이? 라희가 제임스 생각에 살짝 미소를 띠며 양치에 집중했다.



******


울음으로 가득한 곳. 한 장례식장에 상주자리에 앉아있는 한 남학생이 분위기와 맞지 않게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폰게임을 하고 있었다.


"야 이놈의 새x야! 네 애미가 죽었어. 네 애미가!!!"


그 모습을 보다 못 한 할머니가 그 학생에게 다가와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아이씨... 뒤졌으면 끝이지. 왜 나한테 지x인데요!!"

"뭐...뭐?! 아이고... 이런 것도 자식이라고 놓고 갔냐, 아이고오!!!"


맞은 뒤통수를 매만지며 할머니를 노려본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 장례식장을 박차고 나갔다.


"x같네 진짜."


남학생이 사라진 자리에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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