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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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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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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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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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DUMMY

라희가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마침 어제가 금요일이어서 망정이지 오늘도 학굘 가야 했다면 라희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려 박박 씻어도 보고 밥도 왕창 먹어 봤지만 나아 지지가 않았다.


이럴 때, 만큼은 고3이라는 신분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방구석에 틀어박힐 수 있으니 말이다.




탁탁-




라희는 자신의 방문 노크 소리인 줄 알고 문을 쳐다봤지만, 소리는 반대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확인한 순간 두 귀가 쫑긋 솟아오른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웨에엑.”


“······.”




창문 밖에서 한껏 의기소침한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라희는 그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웨엑···”




라희가 반응이 없자 더욱 소심해진 울음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가세요.”




라희의 차가운 말소리에 제임스의 실루엣이 움찔했다. 잠시간의 정적 후 창문 너머로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의 일은 유감이오.”




제임스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한 행동임을 라희도 알고 있지만, 그가 미웠다. 정확히는 밉다기보단 슬펐다. 친구의 죽음도 모자라 그녀가 한 번 더 죽었다는 사실이 라희를 더욱 슬프게 했다.


게다가 자신의 친구를 한 번 더 죽인 자가 제임스라는 사실이 라희에겐 그를 피할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기다리겠소.”




창문 너머로 들려온 제임스의 목소리가 기운이 없었다. 그리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기다리고 있소.”




그리고 또 3분도 가지 않아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




“아직도···”


“아 쫌!!”




라희가 제임스의 말에 참지 못하고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담장 너머로 귀를 축 늘어트리고 있던 고라니 모습의 제임스가 귀를 쫑긋 세우며 창문을 바라봤다.




라희와 눈이 마주치자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앞발을 구르는 제임스를 보자 라희는 무거웠던 마음이 어딘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저 얄밉지만, 어쨌든 은인인 제임스를 어찌 미워하기만 할까.


라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못 이기는 척하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라희는 다시 창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은 뒤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밖을 나서자 담장 앞에 의기소침하게 서 있는 인간 모습의 제임스가 눈에 들어왔다.




“왜요···?”


“···그, 미안하다는··· 아니, 풀어주려고···.”


“···네?”




제임스가 커다란 키에 맞지 않게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대 기분을 좀 풀어주려···.”




그녀의 눈앞에 친구의 원수이자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제임스가 미웠지만 귀여워 보이는 모습에 순간 라희는 할 말을 잃었다.


여자의 약점을 어떻게 이리 귀신같이 알았는지 제임스의 모습에 살짝 기분이 풀려버린 라희가 아직은 화났다는 듯 냉랭한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어떻게, 풀어줄 건데요?”




사실 지난밤의 사건이 제임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밤새 깨달았고 속으로 용서도 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의 라희에겐 그걸 표현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제임스가 먼저 다가와 줘서 고마움이 커졌지만, 아직은 저 모습이 꽤 귀엽다고 느꼈기에 조금 골려주기로 했다.




“그··· 난 방법을 모르오, 그저 그대의 뜻을 들어봐야···, 아니면 하자는 대로 따라야···.”


“뭐든지?”




‘뭐든지?’라는 말에 제임스가 깜짝 놀라며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더욱 울상이 되어 말했다. 지난밤 자신이 한 말이 생각난 것이다.




“···뭐든지 말이오.”




땅이 꺼진 듯 파고드는 제임스의 모습을 보고 라희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쪽, 돈은 좀 있어요?”




누가 보면 삥뜯는 듯한 말로 들렸겠지만, 라희는 그저 자신도 미안한 마음에 생색도 낼 겸 ‘돈 없지? 내가 밥 사줄게’ 하려 했던 레파토리였다.


하지만 라희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제임스에게서 튀어나왔다.




“있소!”




제임스가 자신 있게 품 안에서 꺼내 보인 것은 각종 보석과 골드바였다. 보석이야 그렇다 쳐도 도대체 산신이 한국은행 넘버가 적힌 골드바가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놀란 마음에 라희는 골드바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이게 왜 있어요?”


“뭐~ 산신은 금도끼를 도술로 뿅하고 만드는 줄 아시오?”


“예?”


“은도 있소. 보시오.”




제임스가 다시 품속을 뒤지자 은괴도 한 덩이가 튀어나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놀란 라희의 반응도 무시한 채, 제임스는 어느새 자기 얘기만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그 도술로 마구마구 찍어내면 질량보존의 법칙에 위배 되오.”




제임스의 말에 어이가 없는지 라희도 신기함 따위는 뒷전으로 물러나 버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과학적인 얘기로 따지면 귀신도 말이 안 되지!”


“원래 인간들은 저들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소.”




제임스가 우쭐대며 말했다. 그런 그를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던 라희가 약이 올랐는지 그를 골려주기 위해 말했다.




“이거 써도 돼요?”




하지만 이번에도 돌아온 대답은 라희가 원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쓰시오! 마음껏 쓰시오! 더 써도 되오!”


“아, 아니 이거···”




제임스의 경제관념은 라희의 생각으론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학원도 끊을 수 있고 심지어 고액과외도 가능했기에.


계속해서 온갖 금은보화를 다 퍼주려는 제임스를 말리느라 라희는 진땀을 뺐다.


라희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제임스를 이끌고 시내에 나갔다.


이내 이들이 시내에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금은방이었다.


왜인지 보증서까지 꼼꼼하게 가지고 있는 제임스 덕분에 당당히 금은방에 입장하긴 했지만···.




“저기··· 이거 팔러 왔는데요···.”




위풍당당하게 들어올 땐 언제고 막상 금은방 사장 앞에 서자, 금세 마음이 졸린 라희는 목소리가 개미 기어가는 소리 마냥 작아졌다. 금테 안경을 낀 금은방 사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라희와 제임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저 이거···.”




금은방 사장은 라희의 손에 들려진 골드바를 보곤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이거 학생 거 맞아요?”


“마, 맞는데요? 여기 보증서도 있잖아요.”




보증서까지 있으니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한 금은방 사장이 보증서와 금괴를 받아들었다.




“흠··· 그럼 확인 좀 해볼게요.”




이내 금은방 사장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사장이 전화를 끊고는 활짝 웃는 얼굴로 라희에게 다가섰다.




“아이고 고객님~ 금 시세가 지금 이런데~ 내가 이만큼 쳐 드릴게요~”




갑자기 친절해진 금은방 사장이 계산기를 두들겨 보이더니 다시 한번 두들긴 계산기를 라희에게 내밀었다.




“어때요? 그램 수 보니까 3천 정도면 될 거 같은데.”


“삼, 삼천이요?”




라희가 기절초풍을 하며 제임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그저 멀뚱히 라희를 바라볼 뿐이었다. 금값을 제대로 알 리가 없는 라희는 3천만 원이라는 큰 액수에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금 더 있으면 또 가지고 와요, 학생!”




금은방 사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라희와 제임스를 배웅했다.


라희는 자신이 바가지를 쓴지도 모른 채 냅다 은행으로 달려가 고1 때 엄마 따라가 만든 자신의 용돈 통장을 갱신했다.


일평생 보지도 못한 0이 잔뜩 붙은 통장 잔고를 바라보고 휘둥그레진 라희는 연신 자신의 볼을 꼬집어봤다.


모든 마음의 병엔 금융치료가 약이라 했던가.


아까 전 언제 슬펐냐는 둥 활짝 웃어 보이며 라희가 제임스에게 말했다.




“좋아요! 이제 뭐든지 하러 가볼까요?”




제임스를 데리고 먼저 도착한 곳은 대형 아울렛의 의류매장이었다. 휘황찬란 존재감을 내뿜는 그를 데리고 여기까지 들어오느라 꽤 창피하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를 평범하게 변신시킬 차례였다.




“이거 꼭 입어야 하오···?”




가장 먼저 평범한 청바지와 회색빛 맨투맨을 건넸다. 받은 옷을 들고 인상을 찌푸리는 그를 보며 라희가 소리 없이 입만 움직였다.




뭐. 든. 지.




제임스가 조용히 울상인 표정으로 탈의실로 향했다.




“이, 이것도 말이오?”




라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탈의실을 향해 말없이 손가락질했다.


한참이나 그렇게 패션쇼를 마친 제임스는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의 양손에는 옷 한 보따리가 잔뜩 안겨있을 뿐이었다.




“손님, 결제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라희는 자신 있게 용돈 통장에 연계된 자신의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할부는 어떻게···”




이젠 블랙카드 부럽지 않은 자신의 체크카드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인 라희가 옷가게 직원에게 윙크하며 말했다.




“체크카드에요!”


“아··· 네, 손님.”




어느새 베이지색 슬랙스와 흰 셔츠 그리고 연갈색 계열의 가디건으로 톤온톤 패션이 된 제임스가 두 번째 가게 앞으로 끌려왔다.




[라이언 헤어]




비싸다고 평소에는 발도 못 붙이는 이름난 미용실 간판을 바라본 라희. 그녀는 이내 있는 힘껏 제임스를 가게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찌나 가기 싫어하는지 한참을 고생했지만, 어느새 제임스의 부스스 길기만 했던 머리가 짧아졌다. 왁스 칠을 해 뒤로 깔끔하게 넘겨진 머리에 얼굴이 한층 더 빛이 났다.




“이제야 좀 평범해 보이네!”




라희가 자신의 작품(?)을 앞에 두고 연신 손뼉을 쳤다. 제임스는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였거늘··· 어찌···.”


“조용조용!!”




라희의 호통에 입만 댓 발 나온 제임스가 울상으로 물었다.




“히잉···. 배 안 고프오···?”




꼬르륵-




제임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희의 배에서 알람시계가 울렸다. 순간 창피해진 라희가 억지로 말을 빨리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제임스 꾸며 주느라 아무것도 안 먹었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혹시 산신이라서 고기는 안 먹어요?”


“고기를 왜 안 먹소? 없어서 못 먹는데···.”


“그··· 고라니는 채ㅅ···.”




라희의 마음속 깊이 남아있던 동심이 와장창 깨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다 똑같이 먹고사는 문제인 것을.




“잘 먹겠소!”




미디움 레어로 윤기 있게 구워져 나온 스테이크 앞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앉은 산신이라니. 라희가 헛웃음을 지으며 자기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어느새 스테이크에 파스타까지 야무지게 쓸어 먹고, 카페에서 음료까지 테이크아웃 해 나온 그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데이트 풀코스인지도 모른 채 근처 공원을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그··· 귀안력 말이에요.”




라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못 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라희의 말에 제임스가 걸음을 멈추고는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하루 동안 볼 수 없었던 진지한 눈빛이었다.




“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는 산신이 될 수 없소. 또 귀안력을 가져간 그대는 평생을 악령들의 장난감으로 살다가 죽겠지.”




제임스의 말에 라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단 며칠, 겨우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악령을 본 것뿐인데 생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어버렸다. 어떻게든 제임스에게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한 라희는 입을 열었다.




“근데 그쪽은 내 부탁 안 들어줬는데 불공평하지 않아요?”


“그, 그건···”




제임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라희를 바라보았다.




“돈!”


“네?”


“내가 가진 금은보화 말이오! 그거 다 주겠소!”




라희의 동공이 커졌다.




“산신이 된다면 어차피 인간의 물건 따위는 필요 없소. 내가 그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산신이 되고 나면 그대가 좋아하는 금은보화를 모두 주겠소.”


“예? 갑자기 무슨···”




물론 학업을 위해 돈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라희의 솔직한 마음은 그저 지민이와 같이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지민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래서 더이상 억울한 원혼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자신이 스스로 제임스를 도우려 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친구의 사건 때문에 무언가 느낀 게 있어서 스스로 날 돕기라도 하려 했소?”




찍어서 맞춘 것인지 독심술을 쓴 것인지 모를 제임스의 말에 순간 라희가 당황했다.




“아, 아니? 돈 때문에 하는 거예요!!”


“옳거니! 역시 인간을 다스릴 때는 재물이 최고구려!”




좋아하는 제임스의 모습에 라희는 못마땅했는지 한 번 더 토를 달았다.




“그··· 목숨이 위험한 일이니까, 그 정도는 받아야 하는 것뿐이라고요! 크흠.”




라희가 슬쩍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좋소!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동업자요!”




제임스가 활짝 웃으며 라희의 손을 맞잡고 붕붕 휘둘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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