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고라니가 집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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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대순
그림/삽화
프레첼존맛
작품등록일 :
2024.07.03 08:57
최근연재일 :
2024.07.22 0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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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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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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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0화

DUMMY

“이걸 왜 자꾸 틀리지?”




성현이 잘 빠진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문제집을 노려보고 있었다. 맞은 편에는 라희가 풀이 죽은 채 그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라희는 오늘도 어김없이 성현의 집에 와서 수학 일대일 과외를 받고 있었다. 유독 약한 유형의 문제를 몇 번이고 풀어봤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았다. 성현은 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머리가 아팠다.




성현이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여 가르쳐 주려는 그때 그의 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손님 받을 시간이네. 다녀올테니까 일단 풀고 있어봐.”


“응.”




예약 손님이 올 시간이 되자 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 편 집으로 향했다. 혼자 남은 라희는 답 풀이를 보며 열심히 문제를 익히려고 했다.




맞은 편 집, 신당으로 건너온 성현은 무속 옷을 입으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잠시 후 들어온 손님은 꽤 정정해보이는 할머니였다. 허리도 곧고 입은 옷도 값비싸 보였지만 얼굴에 가득한 수심이 비싼 옷빨을 망쳤다.




성현은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열에 백이 걱정근심으로 오는 사람이었으니까. 온ㄹ은 또 무슨 이야기를 들고 왔으려나 하며 빨간 부채를 펴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왜 왔어?”




무심하게 한마디를 내뱉자 할머니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내가 최근에 딸 아이를 잃었는데..”


“위령굿이라도 해주려고?”


“아니 이미 천도제는 지내서 걱정 없다만...”


“그럼 뭐가 문젠데.”




성현은 자존심이 상했다. 무속인 생활 길게 한 건 아니지만 손님이 오는 족족 첫마디에 그 목적을 맞췄었기에 방금은 좀 아마추어 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기분을 생각할 바에야 손님 의중이나 떠보는 게 더 중요했다.




“말을 해야 알지.”


“저, 그게... 딸아이가 아들이 하나있는데 그 놈이 글쎄...”




듣다듣다 답답해진 성현이 앞에 책상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거 말 할거면 하고, 안 할거면 돌아가! 내가 뭐 심심풀이 말 들어주자고 시간 낸 줄 알아?”


“아유! 아닙니다! 그저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어서 그럽니다. 어이가 없어서.”




어서 말해보라는 듯 성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말을 할ᄁᆞ 말ᄁᆞ 한 번 더 고민하더니 성현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글쎄 지 애미가 죽었는데 실실 쪼개면서 웃질 않나. 잘 죽었다고 소리를 치질 않나. 애한테 귀신이 들린 것 같아요.”


“......”




성현은 뭐라 말해야 할 지를 몰라 순간 멍을 때렸다. 그런 성현의 반응을 본 할머니가 아차 싶었는 지 들고 온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아휴, 내가 별 소리를 다 하죠? 늙어서 뭔 주책이래.”


“잠깐. 부적 하나 써줄테니 그거 가져가.”




성현은 할머니의 눈가에 맺힌 진심 어린 눈물을 발견했다. 가정사에 가담할 순 없으니 딱히 해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플라시보 효과를 가장한 액운 부적이나 하나 써주려고 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도사님. 감사합니다.”


“그냥 주는거니까 갖고 그냥 가.”


“아이고, 아니에요. 아이고.”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고 성현은 신당을 정리한 뒤 다시 라희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라희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잡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이 놈의 문제는 도대체 왜 풀어도 풀어도 틀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문제와 싸우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더니 성현이 들어왔다.




그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성현을 쳐다본 순간 라희는 들고있던 펜을 놓치고 말았다.




“성...현?”


“왜? 뭔데 그렇게 귀신 본 듯한 얼굴이야.”


“맞는데 귀신...”


“뭐?”




성현의 주위로 희미하지만 확실한 기운이 라희의 눈에 보였다, 이건 분명 검은 존재, 즉 악령의 기운이었다. 여태까지 봐온 악령들과 똑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진하지 않고 연했다. 아마도 방금 다녀간 손님의 영향이 아닐까.




“방금 다녀간 손님 뭐 이상한 거 없었어?”


“이상한 거?”




성현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지금 너한테 악령의 기운이 느껴져. 아주 희미하게.”


“뭐?”




성현은 놀랐다. 악령의 존재가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못 느낀 것을 라희가 알아채서 놀랐다. 이게 바로 산신의 힘인가. 성현은 빠르게 자신의 몸을 훑었지만 어떤 기운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아까 할머니에게서도 느낀 것이 없었다.




“난... 난 느끼지 못했어. 아무래도 아까 손님한테서 옮아온 것 같은데.”


“그럼 잡아야하는 거 아니야?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내가 제임스한테 전화할테니까.”


“아니.”




라희가 폰을 ᄁᅠᆫㅐ 제임스의 번호를 누르려는데 성현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이건 내 손님이니까 내 책임이야. 내가 해결할게.”


“하지만, 알겠어.”




라희는 반박해보려 했지만 굳은 결심을 보여주는 성현의 눈동자에 굴복했다. 성현 또한 무속인이니 위험하겠으랴.




둘은 바로 밖으로 나와 시내로 나가는 길을 쫓아 내려갔다. 멀리가지 않아 걸어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저기 계신다!”




성현보다 라희가 할머니를 먼저 찾아내었다. 얼굴이나 옷차림은 본 적도 없는 사이였지만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검은 기운 때문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현도 라희의 손끝을 쫓아 보니 그 할머니가 맞았다. 성현은 라희의 능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눈을 씻고 다시 할머니를 봐도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그런 느낌은 뒤로하고 성현은 할머니에게로 달려갔다.




“할머니!”


“에구 깜짝야! 누구신지... 도사님?”




할머니는 캐쥬얼한 복장의 낯선 청년이 말을 걸자 놀라다가도 얼굴을 자세히 보니 곧 성현인 것을 알아차렸다.




“왜, 왜그러시죠? 무슨 일이라도...?”


“그, 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성현이 우물쭈물 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라희가 나서며 말했다.




“저희 유능하신 도사님께서 할머니 가시고 나서 점을 쳐봤는데 아무래도 가정방문을 한 번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셔서 이렇게 다급하게 쫓아왔습니다!”


“아이구, 그래요? 어머나, 유능하시다더니 정말이신가보네~”




성현은 거짓말을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라희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라희는 일단 넘어갔으니 된 거 아니냐며 눈을 찡긋했다.




그렇게 셋이서 할머니의 집까지 오게 되었다. 아직 아파트 단지를 들어선 것 뿐이었지만 라희는 할머니의 집이 어디인 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아주 강하게 느껴지는 검은 존재 덕분이었다. 라희는 검은 존재가 느껴지는 집의 층수를 세고는 성현에게 조용히 전해주었다.




“1003동 14층”


“뭐?”


“거기라고. 일단 말해봐.”




라희가 재촉하자 성현은 어ᄍᅠᆯ 수 없이 그대로 따라 내뱉었다.




“1003동 14층.”


“네? 아이구야! 우리 집은 또 어떻게 아셨데??”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라희는 이때다 싶어 빙긋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희 도사님 용하시다니까요~ 기운만 보시고 다 아시는거죠!”


“에구 세상에나! 도사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렇게 할머니의 무한 신뢰를 받으며 라희 일행은 1003동 14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도어락을 열고 라희ᄁᆞ지 그 집에 입성한 순간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던 검은 존재가 싹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정도의 강한 존재의 움직임은 성현 또한 느꼈는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 라희를 돌아보았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자신들이 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 도사님 뭐라구요?”


“있는 게 맞아 악령이.”




성현이 한껏 폼을 잡으며 말했다.




“악령, 악령이요? 귀신도 아니고 악령이요? 아이고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럴줄 알았어어! 아이고야!!!”




성현의 입에서 나온 ‘악령’이라는 단어에 할머니의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맨 뒤에 서있던 라희는 이 상황을 보며 머리를 짚었다. 산신놈이고 도사놈이고 제대로 하는게 없는지. 라희는 그저 야속한 자신의 운명을 탓했다.




겨우겨우 할머니를 달래놓고 일단은 준비를 더 하겠다는 명목하에 해산을 했다. 성현은 곧바로 신당으로 향했고 라희는 집으로 향했다. 성현의 집에 두고 온 짐들이 있었지만 어차피 내일도 과외를 받으러 갈테니 안 가져와도 상관이 없었다.




라희는 버스를 타고 더 이상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집 근처에서 내려 논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제임스가 전화가 없네? 어디 아픈가?”




제임스와의 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 라희는 오늘 하루 제임스를 본 기억이 없었다. 맨날 붙어있거나 전화로 조잘 거리는 통에 귀찮기만 했는데 막상 아무 말도 없으니 괜스레 보고 싶었다.




라희는 폰을 꺼내 제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후 제임스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오.”




물음표도 아니고 온점. 차가운 그의 목소리에 라희는 순간 아까 꿈에서의 냉정하던 제임스가 떠올랐다.




“아니, 나 집에 들어가는 중인데 심심해서... 오늘은 왜 전화도 없어?”


“바빴소.”


“아니 근데 지우 있잖아, 도깨비. 나랑 있기로 한 거 아니었어? 요즘 안보이던데.”


“내가 가르칠 일이 있어서 데리고 있소.”


“아하.”




보통 같았으면 먼저 질문도 하고 자기 얘기도 재잘재잘 떠들었을 제임스가 대답만 뚝뚝 하는게 낯설었다. 너무 말이 많아서 탈이었던 그가 막상 말이 없으니 뭔가 아쉬웠고 허전했다.




“아니 오늘 성현이 집에 갔거든? 근데 내가 거기서 뭘 본줄 알... 흐윽...! 커억!!!”


“라희양? 라희양!”




어디선가 갑작스레 날아온 검은 연기가 라희의 몸을 관통하고 나왔다. 라희는 갑작스럽게 맞은 살에 숨을 고통스럽게 들이쉬며 폰을 놓치고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라희가 컥컥 거리며 땅바닥을 기었다.




힘겹게 기어가는 라희의 등을 무엇인가가 강하게 짓눌렀다.




“흐어억!”




라희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고통에 숨을 들이킬 수도 내쉴 수도 없었다.




“귀찮은 인간.”




검은 존재에게서 들린 것 같은 칠판 긁는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귓구멍을 파고 들었다. 라희는 서서히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라희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여보세요! 라희양!”




바닥에 ᄄᅠᆯ어진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제임스의 다급한 외침은 끝내 라희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쓰러진 라희를 두고 검은 존재는 유유히 자리를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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