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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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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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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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장. 남겨진 도깨비-1

DUMMY

1

소낙비가 이슬이 되고 산불도 재가 되어버리는, 심장의 박동이 안식을 누리는 무덤에서 한 소년이 남아 있었다. 앳되어 보이는 소년은 허리까지 오는 곰방대를 입에 문 채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다. 흐르는 시간을 관망하는 마루에는 옻칠의 광택이 햇살을 따라 물결쳤다. 빛의 파편들이 하루 두 번 되풀이되는 조수를 겪는 동안 소년은 자리를 지켰다. 그의 시선은 정면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끝엔 문이 서 있었다. 문의 높이는 소년의 다섯 배는 넘었고 너비는 소년의 걸음으로 열 배는 넘는, 소년의 크기에 맞지 않는 문이었다. 문에는 경첩과 문고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판자를 고정하기 위한 못이나 그림도 없었다. 소년은 어떤 것도 남겨져 있지 않은 문을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마루에 남은 불티들이 남김없이 타올라 무덤에 안식이 침전될 때 소년은 자신의 할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걸어갔다. 그가 문 앞에 서자 소년과 문의 크기는 더욱 대비되어 보였다. 그는 양손을 문에 가져다 대고 밀었다. 박달나무의 차진 저항이 그를 밀어냈다. 마른 흙밭에 발을 욱여넣고 쓰러질 듯 온몸을 문에 붙였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의미를 알 수 없는 함성을 내지르며 문을 밀었다. 하지만 문은 소년이 들이는 힘과 정확히 같은 세기의 반응만 줄 뿐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의 몸은 눈더미가 쌓인 가지처럼 느리게 고꾸라졌다. 잠시 후엔 양팔만 문에 매달린 채 바닥에 파묻혀 있었다. 그는 흙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소리쳤다.


"어르신, 도대체 저 보고 무얼 하라는 겁니까!“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힘을 다 쏟은 그는 그 자리에 지쳐 쓰러졌다. 그도 이렇게 열릴 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술도 못 쓰는, 도깨비도 되지 못한 놈이 용쓴다고 열릴 문이 아니었다.


끼익


그 순간 그의 머리맡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또다시 환청이구나.’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머리맡에선 항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의 모두가 자신만을 남겨두고 떠날 때 들었던 그 소리. 그는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거의 평생을 바랐던 소리였다. 그 시간만큼 희망을 품었으며 그만큼 낱낱이 부서졌다. 다시 한번 실망한다면 객기로 엉겨 붙인 의지는 산산이 흩어질 것만 같았다.


끼이이익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바리공주의 자손, 길형 인사드립니다!"


당찬 목소리였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다. 열린 문틈 사이로 빛이 비쳐 들어와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비치는 윤곽 속에서 두 개의 푸른 불꽃이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년을 향해 걸어올 때마다 점차 모습이 드러났는데, 그 모습은 집을 털러 온 걸인이나 강도의 행색이었다. 허리춤까지 오는 머리카락은 모진 학대에 각자 제 갈 길을 떠난 듯 뻗쳐 있었고 손에는 키의 반절만 한 넓적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위협적인 형태와 다른 쪽 손엔 꽃대를 쥐고 있었는데 그 끝엔 흐드러지게 핀 꽃망울이 달려 있었다. 소년은 그 꽃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 꽃은 문 뒤의 불빛에 언뜻 비칠 때마다 별을 쏟아냈다. 문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에 비쳐 그녀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드러났다. 길형이 쥐고 있는 것은 꽃이 아니라 무령 무당이 사용하는 방울

이었다. 자루에 매달린 방울은 모두 작은 연꽃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몽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신칼 무당이 굿할 때 쓰는 칼

이었다. 날이 벼려진 칼날이 소년의 눈길에 따라 번뜩였다.


"여기 너 혼자 있니?"


길형이 물었다. 무령에 정신이 쏠려 있던 그는 그제야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러면 네가 문 도깨비구나!"


길청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대답하면서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그는 목젖을 당겼다.


"말을 할 수 없으면 아무 어른이나 데려와 줄래?"


"말할 수 있어요."


그의 대답에 두 사람은 모두 놀랐다. 길형은 소년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소년은 누군가 자기 말을 듣는다는 것에 놀랐다. 길형은 한 손을 가슴에 올린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문 도깨비를 찾아왔단다. 여기가 문 도깨비의 본가인 이향이 맞니?”


"이향은 맞는데 헛걸음하셨어요. 여기에는 문 도깨비가 없는걸요."


길형은 소년을 가리켰다. 소년은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다 자신을 가리켰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도깨비가 아닌걸요."


그의 대답에 길청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박힌 신칼에 몸을 겨우 기댄 채 길청은 생기 없는 눈동자로 소년을 바라봤다.


"넌 누구길래 버려진 도깨비집에 남아 있는 거야?"


"저는 낙천, 문 가문이 버린 영체입니다.”


소년의 담담한 대답을 듣고선 길청은 얼이 빠진 듯 중얼거렸다.


"그러면 여긴 아무도···."


"네, 여기엔 아무것도 없어요."


낙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문 도깨비가 전쟁을 나간 후, 이곳을 찾는 영체는 없었다. 여기에 멀쩡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헛걸음하셨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길형의 몸은 옆으로 고꾸라졌다. 낙천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그녀를 살폈다. 옷 밖으로 드러나 있는 부분엔 모두 크고 작은 상처가 있었고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인간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곰방대에 새겨진 기억에서 이런 인간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섯 마디를 넘기지 못하고 쓰러졌었다. 낙천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은 채 의식을 잃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밤이 지나도 또다시 아침이 찾아와서야 낙천은 일어섰다. 그는 뭔가를 결심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고 길청을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직 빛이 들지 않는 집안으로 그녀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2

서늘한 산들바람이 길청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공기의 흐름은 느리고 축축한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냉기는 목 아래로 내려가진 못했다. 약간은 갑갑할 정도로 두꺼운 솜이불과 온돌의 온기에 그녀는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녀는 누워있는 채로 자기 몸이 녹아버렸을 수도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길청이 도착한 곳은 도깨비굴이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열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찔거린 후에야 안심했다.


"온돌 온기는 적당하신가요?"


이불 속에서 움찔거리는 몸짓을 확인한 낙천이 말을 걸었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니?"


길청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녀는 움직일 때마다 부러진 뼈마디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이불 밖으로 나온 부분은 얼음 가시가 박힌 바람이 상처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낙천의 반대쪽으로 돌렸다.


'여긴 도깨비의 구역이다. 몸이 성치 않은 걸 절대 들켜선 안 돼.'


심호흡을 내쉬자 겨우 표정을 감출 수 있었다. 그녀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낙천을 바라보았다.


'꼬마 도깨비잖아?'


소년은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걸쳐있는 모습이었다. 도계에서 보기 힘든 어린이의 모습에 길청은 자신의 아이가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저번엔 경황이 없었습니다. 저는 바리공주의 후손, 길형 도사입니다. 먼저 지친 몸을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청은 인사들 드리며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 이 아이 말고 느껴지는 영체는 없었다. 기력을 감추기 위한 결계도 없었다.


"도사? 도사는 무엇입니까? 그러면 당신은 무당이 아니라는 건가요?"


낙천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의 표정엔 의심과 경계가 가득했다. 길청은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무당 중에 일부 사람들을 도사라고 부르다 보니 제가 실수를 저질렀네요. 무당이자 도사인 길청, 은인에게 인사드립니다."


길청은 말하며 낙천을 살펴봤다. 도사라는 소리를 듣고도 그는 두려움에 휩싸이거나 공격하려는 태세가 없었다.


"무당을 직접 보셨던 적이 없으신가요?"


그녀의 질문에 낙천의 표정은 굳었다. 눈을 굴리며 잠시 머뭇거리던 낙천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직접은 없습니다."


'생각하는 바가 바로 드러나는 도깨비구나.’


길청은 긴장을 풀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제야 이 집의 기이한 구조가 보였다.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길청의 눈에 보이는 모든 방은 문이 없었다. 지금 누워있는 이 방의 한쪽 벽의 가장자리엔 문지방이 있지만, 창이나 문 없이 다음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일어나기 전에 느꼈던 서늘한 바람은 저쪽으로 불어온 것 같았다. 이 집이 원래부터 문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문 도깨비들은 자신의 본성을 문지방에 세워두고 각자의 방을 지켰을 것이었다.


"여기가 문 도깨비의 본가라고 들었습니다. 여기 다른 문 도깨비는 없나요?"


길청은 의식이 있을 때 들었던 사실을 되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낙천은 고개를 위아래로 느리게 끄덕였다. 애써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길청의 입에선 옅은 한숨과 조소가 나타났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도, 가족들과 떨어져 도계와 인계를 돌아다니며 보낸 9년의 세월도 부질없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네가 마지막 남은 문 도깨비라는 것이냐?“


급한 마음에 반말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 길청은 체면을 차릴 생각이 없었다. 무너진 하늘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듯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낙천의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저는 낙천입니다. 도깨비가 되지 못한 자이자 문도 못 여는 한심한 놈이죠."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낙천의 얼굴은 죽을죄를 짓기라도 한 것처럼 굳어있었다. 길청은 낙천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지키는 도깨비 하나 없는 버려진 도깨비굴이니 자신이 살펴보면 되었다. 길청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어긋난 듯 관절이 삐걱거렸다.


"제가 무당인 줄은 어찌 아셨습니까?"


길청의 질문에 낙천은 대답으로 방의 끝을 가리켰다. 낙천이 가리킨 곳에는 자개함이 놓여 있다.


”푸른 기력이 담긴 물건을 가지고 오셨잖습니까. 저런 것들은 무당의 물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개함은 넝쿨에 휘감아져 있었다. 길청이 다가가자 나전으로 만들어진 넝쿨은 무지개색으로 빛을 발하며 번쩍였다. 신칼과 무령은 넝쿨에 휘감긴 채 자개함 위에 올려져 있었다.


”우리는 그걸 무구라고 부릅니다. 조상님이 점지해주시는 귀한 물건이죠."


길청은 무구에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자개함을 휘감고 있는 넝쿨들은 길청이 다가가자 더욱 바짝 몸을 조여왔다.


"이 주술을 풀고 무구 좀 꺼내주지 않겠어요? 이렇게 예쁜 나비를 부수고 싶진 않아서요."


길청은 넝쿨 위에 튀어나온 나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전으로 이루어진 나비는 날갯짓할 때마다 오색빛깔로 반짝였다. 길청이 다가갈수록 나비의 날갯짓은 거세졌고 넝쿨들도 자개함을 더욱 조여왔다.


"무구를 꺼내주면 저를 죽이실 거죠?"


낙천이 물음에 길청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양손에 자신의 키만큼 기다란 막대기를 쥔 채 길청을 노려보고 있었다. 막대기 끝에 달린 청동 대통이 길청을 향해 번득였다.


'무술을 실제로 배운 적이 없구나.'


어설프게 초식을 따라 하고 있지만 조그만 힘만 줘도 넘어질 모습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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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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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장. 신주 굿판-1 24.07.19 1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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