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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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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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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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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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장. 남겨진 도깨비-3

DUMMY

이향의 솟을대문에서 길청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모습은 만신창이였다. 입고 있는 의복은 남루하여 거적때기보다 많이 찢어져 있었고 의복으로 가려지지 않은 곳은 긁히고 벌어진 상처가 곳곳에 나 있었다. 그는 의식이 없는 그녀를 사랑방에 눕히고 중얼거렸다.


"당신이 찾는 것은 여기 없어요.“


길청이 본가의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낙천은 길청이 무슨 목적 때문에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르신이 있을 때도 이 집을 찾아온 손님들은 있었다. 그들의 방식은 다양했다.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보여주며 감정에 호소할 때도 있었고 대군을 이끌고 억지로 겁박하려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 요구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같았다.


'문 도깨비는 전쟁에 참전해라.'


하지만 그들은 모두 어르신에 의해서 문전박대를 당했고 다른 문 도깨비들은 바깥세상에서 온 그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 낙천도 그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집안의 어떤 문도 열 수 없었다. 99개의 방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고, 문 너머엔 도깨비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그가 온갖 수를 써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던 것은 문에 귀를 기대 목소리를 엿듣거나 문에 비친 그림자로 상황을 엿보는 것뿐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이 집안의 모든 도깨비가 그를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를 말리지 않았으며, 그가 눈앞에 있어도 보지 않았고 그가 하는 말을 듣지도 않았다. 그의 몸이 닿아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무시했다. 이 집에서 그에게 허락된 것은 온전한 자유로 이뤄진 고립이었다.


"저희라고 싸우고 싶겠습니까? 우리의 후손들이 무당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영체로서 마고의 천지 위에 자손들이 떳떳하게 자랄 수 있고자 싸우는 것 아닙니까."


거친 숨소리와 탁한 음성. 그가 살아온 시간과 장소가 얼마나 거칠었는지 성토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사랑방의 창호 문에 비치는 그의 그림자가 널뛰었다. 낙천은 외부인들이 어르신의 방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저들은 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낙천은 저들이 자신을 혼내주기를 바랐다. 예의 없게 방 안을 엿보고 있는 이 모습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다. 바깥세상은 넓으니 자신에게 말을 거는 영체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향 밖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문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이미 전쟁은 이룰 바를 다 이뤘네. 도깨비들의 나라도 세웠고 무당들도 수도 줄어 더는 도깨비를 멸시하지 못할걸세."


어르신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곰방대에 매달려 있는 나비 그림자가 날아갈 듯 일렁였다.


"시주님이 잡수셔야 잡수셨나 하는 겁니다! 도사를 완전히 잡기 전엔 무당 놈들은 끝없이 일어설 것입니다."


"호랑이가 사라지면 사슴이 번성하고, 사슴이 늘어나면 초목이 죽고 결국 산이 죽어버리지. 본래 모든 것에는 그 이유와 쓸모가 있는 것이야. 멋대로 멸족하려 들었다간 끝없는 윤회로도 갚지 못하는 업보가 돌아올 걸세.”


어르신은 손님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이러다간 너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저주. 손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뭔가?"


"전멸한 착호갑사 부대가 마지막에 기록한 기억입니다. 몸을 숨기고 있던 허깨비 시종이 목숨을 다해 전달하여 겨우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르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들은 이미 이긴 싸움에 젊은이들의 생명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어."


"헛되지 않았습니다."


손님은 그의 손에 쥔 것을 어르신의 쪽으로 건넸다. 그것은 상자였다. 어르신과 손님의 사이에 놓인 상자의 그림자는 호롱불을 받아 쉴새 없이 일렁였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담뱃잎 타는 소리와 들이쉬는 거친 숨소리만이 이어졌다. 한참의 침묵 후에 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당은 이 세상에 남아 있어선 안 됩니다."


손님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문으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올수록 문에 비치는 그의 그림자도 점차 커졌다. 문 앞에 다다르자 그의 그림자는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흐릿한 그림자였지만 낙천은 그것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을 하려는 순간 그 그림자는 방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어르신의 그림자만이 남아 있었다. 어르신의 그림자는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이 집에 찾아온 마지막 손님이었다. 그가 찾아온 이후 구별할 수 없는 여러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서재에서 눈을 뜬 낙천은 햇볕을 쬐러 대청마루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은 모든 것이 달랐다. 집안의 모든 방이 열려 있었다. 원래라면 방들이 가로막고 있어 대청마루로 가기 위해선 어지럽게 꼬여 있는 복도각을 지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 낙천의 앞엔 가로막는 것 하나 없이 방들이 이어져 있었다.

낙천은 방들을 가로질러 대청마루로 향했지만, 그곳엔 이미 누군가가 서 있었다.


"자네들은 제일 위험한 곳에, 제일 먼저 가게 될 거네. 전장에서 평생 이용만 당하다가 죽을 게 분명하지."


어르신의 목소리였다. 그의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처음이었기지만 낙천은 그가 어르신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왼쪽 손엔 상체만 한 길이의 곰방대가 쥐어져 있었다. 목까지 내려오는 뒷머리는 같은 길이로 자란 수염과 같이 덮여 있었다. 낙천은 그림자에 비친 모습 때문에 항상 모자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르신은 한 올도 빠짐없이 넘긴 앞머리에 손을 짚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집이 전체에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모든 문 도깨비들은 도계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바쳐주게!"


어르신은 마당에 빼곡하게 서 있는 도깨비들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낙천은 그들을 살펴봤다. 평생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모두 낯선 도깨비들이었다.

그림자로 상상했던 모습을 가진 도깨비는 아무도 없었다.


"존명 받들겠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낙천은 처음 보는 그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아낙네, 중년, 노인, 청년 등 책에서만 보던 모습들이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낙천은 처음 마주한 그들을 살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들은 모두 떨고 있었다. 팔다리 할 것 없이 흔들리는 다리를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낙천이 그들의 옆에서 아무리 서성거려도 그들의 시선은 어르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루에서 걸어 나온 어르신의 발걸음은 대문으로 향했다. 낙천도 대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생 열리는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문은 어르신이 손을 가져다 대자 부드럽게 열렸다. 낙천이 수없이 밀고 두드렸을 땐 오래된 벽과 같았던 문이었다.

문이 열리자 마당에 줄지어져 있던 도깨비들은 약속된 듯 줄을 맞춰 열린 문 사이로 걸어갔다. 문 앞에 선 도깨비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이며 얼굴에 자신감으로 가득 찬 도깨비도 있었으며, 발이 땅바닥에 붙은 듯 흙먼지를 일으키며 걸어가는 도깨비도 있었다. 문 앞에 멈춰선 채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있었다.


'왜 머뭇거리지? 평생 여기 있을 거야?'


낙천은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명치 쪽의 본성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들 사이를 해치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를 막아 세우거나 도깨비는 아무도 없었다. 문 앞에 다다르는 순간 그의 발이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낙천 님은 여기에 계셔야 합니다."


넘어졌다는 아픔보다 놀라움이 컸다. 낙천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기에 그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지도 몰랐다.

그의 양 발목엔 짙은 연기가 감싸져 있었다. 연기를 떨쳐내기 위해 손을 휘저었지만,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갈 뿐이었다.

연기는 어르신이 쥐고 있는 곰방대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오색빛깔이 일렁이는 연기는 살아있는 것처럼 느리게 꿈틀거렸다. 당황하고 있는 낙천을 향해 어르신이 걸어왔다.


"낙천 님은 문을 열 수 없지 않습니까?"


어르신과 시선을 마주치고 나서야 그는 '낙천'이라는 것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낙천은 입을 뻥긋거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점차 자라난 연기는 그의 몸을 뒤덮었다. 어르신은 곰방대 끝으로 얼굴만 나와 있는 낙천을 가리켰다.


"도깨비가 아닌 자는 이 집의 문을 지날 수 없습니다."


와중에도 다른 도깨비들은 문을 나서는 중이었다. 활짝 열려 있던 문은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닫히고 있었다.


"저는···제 본성은 원래 망가져 있었어요! 태어나 보니 망가진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도깨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급해진 낙천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낙천의 목에선 자신도 놀랄 정도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에겐 평생 누군가와 눈을 맞춘 적도, 대화해본 적도 처음이었다. 낙천이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그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이제 집에 남은 것은 어르신과 낙천밖에 없었다. 열린 문 사이로 나오는 빛은 이미 종잇장처럼 얇아져 있었다. 밟으면 흐트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어르신은 문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도깨비가 되어 문을 열 수 있을 때 저를 찾아오십시오."


문 앞에 도착한 어르신은 곰방대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낙천을 향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낙천을 한참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무릎을 수그렸다. 그리고 머리를 땅에 찧었다. 낙천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낙천은 어르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어르신···고개를 드십시오. 고개를 들고 저를 풀어주세요!"


"저는 손가락 끝에서 낙천 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더 머리를 더 찧고 나서야 자리를 일어섰다. 낙천은 마지막으로 기대했다.


'내가 문을 통과하지 못할까 봐 이렇게 묶고 데리고 가려는 건가 보다.'


어르신이 신묘한 주술로 자신을 같이 데려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그대로 문을 나섰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닫힌 대문의 앞엔 낙천과 곰방대만이 남아 있었다. 문이 닫히자 낙천을 옥죄고 있던 연기는 바람에 흩날리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튀어나가 대문에 몸을 날렸지만, 굳게 닫힌 대문은 벽처럼 단단했다. 이제 이 집에 남은 것은 버려진 것들뿐이었다.


"도깨비가 떠났는데 주술이 유지가 되고 있다고?“


낙천의 설명을 듣던 길청이 물었다. 길청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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