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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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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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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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장. 신주 굿판-6

DUMMY

낙천에게 말을 걸었던 도깨비가 다시 말했다. 낙천은 그제야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비녀였다. 한 올 빠짐없이 당겨 묶은 머리에는 아무런 장식도 달리지 않은 옥색 비녀가 꽂혀 있었다. 도계에서 이런 머리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낙천의 시선은 옥비녀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선을 돌릴 생각이 없으시네요.“


조소 섞인 목소리가 들리자 낙천은 그제야 시선을 얼굴로 돌렸다. 살짝 당겨 올라간 눈이 낙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본 머리 형태여서요."


낙천은 자신이 실례를 저지를 것을 깨닫고 변명했다. 도계에 오고 나서 자주 하는 실수였다. 영체를 물건 살펴보듯 관찰하는 것이 무례라는 것은 오래전에 배웠다. 하지만 본가의 문 도깨비들과 비슷한 머리 모양을 마주하자 낙천은 자신의 시선을 의식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요즘에도 쪽 머리를 하시는 분이 있으신가 봐요. 어디서 보셨는데요?“


그녀는 그런 시선이 뒷머리를 살짝 어루만지며 물었다. 낙천은 본가에서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행 중에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여기 온 지 정말 얼마 안 됐나 봐요? 성인이 된 지도?"


그녀의 물음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자신을 얕잡아보는 질문이 분명했다. 그나마 예의를 차리려는 몸짓이었다. 그 여인은 낙천이 쥐고 있는 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봉 도깨비가 제사 예절도 몰라서 허둥대는 모습 때문에요. 성인식도 못 치르고 온 애가 굿판에 잡혀 들어왔다고 생각했어요.“


"잡혀 와요?“


"영향력 있는 집안은 급하게 호적에 등록한 대타를 보내잖아요. 그 정도 능력이 없으면 서열에 밀린 늙은이를 보내거나···.“


"저는 잡혀 온 게 아니에요!"


낙천은 말을 급하게 자르며 말했다. 낙천은 자신의 본성을 고치러 여기까지 온 여정을 부정하는 듯한 그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 상관없이 말을 이어갔다.


"저는 거짓말 하는 아이가 제일 싫거든요. 그게 거짓말인 걸 알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낙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더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뭐하러 온 거예요? 잡혀 온 것도 아니고 능력 없는 집 대타로 온 것 아니면?“


낙천은 떠나는 발걸음을 멈춰섰다. 이건 질문이 아니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한 여유로운 말투로 나에게서 그 답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성인식도 안 치른 새끼 도깨비한테 뭐가 그리 궁금하십니까?“


잠깐의 정적 속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름이요. 뭐라고 부르면 돼요?“


맥이 풀리는 말이었다. 낙천은 순간 자신이 잘못 판단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다른 이름을 댈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에 대해 알고 있으면 숨겨도 의미가 없을 것이었고, 그저 생각 없는 도깨비라면 숨길 이유가 없었다.


"낙천입니다.“


"나는 옥잠이야. 옥비녀라는 뜻이지.“

낙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 꽂혀 있는 비녀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저게 본성이라고?‘


보통 본성은 인간의 육체와 마찬가지이기에 숨기기 마련이었다. 도깨비가 육체를 두르는 것은 인간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보통 제사를 지낼 때가 아니면 본성은 육체 안에 넣고 다녔다.


"이건 내가 좋아해서 들고 다니는 거야. 내 본성은 여기 있고.“


낙천의 시선을 확인한 옥잠이 양손을 자신의 가슴팍에 꽂아 넣고 벌렸다. 상체가 연기처럼 일렁이며 흩어지고 그 안엔 그녀의 본성이 들어있었다. 소나무가 새겨진 옥색 펜대에 금색 촉을 가진 만년필이었다. 낙천은 옥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얼굴이 벌게져서 고개를 돌렸다. 옥잠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나를 만든 조상이 전통적인 걸 좋아해서. 본성에서 굳이 옛날 것을 찾아서 이름을 지었거든. 그래서 본성이랑 이름이 다르지."


낙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도깨비는 그저 남을 속이고 위에 서 있는 걸 좋아하는 영체였다. 다시 발길을 돌아서려는 낙천의 등 뒤로 옥잠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훔쳐 쓰고 있는 그 본성처럼. 그 본성 이름은 낙천이 아니거든.“


낙천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고 있었다. 한 손에 거대한 톱을 들고 있는 그는 반테 안경 너머로 푹 꺼진 눈동자로 낙천을 노려다 보고 있었다. 낙천은 사찰에 있는 도깨비들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들은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모두 한 패인 것이 분명했다.


"당신들 누구야? 이 본성에 대해서 알아?“


낙천은 품 안에서 봉을 꺼내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던 옥잠이 비웃으며 말했다.


"원래 주인도 못 알아보고 쓰는 도둑놈이라니. 생각보다 더 멍청하네.“


그리고 낙천을 가로막고 있던 남자는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그의 복부에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뒤늦게 뒷걸음친 낙천은 그의 손에 들린 것이 책이라는 것에 안심했다.

"우린 목단설. 정감록을 믿고 도깨비의 자유를 위해 행동하는 영체들이야.“


그의 등 뒤로 옥잠이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등으로 무언가가 닿고 있었다. 이번엔 금방이라도 복부를 뚫을 정도로 날카롭게 벼려 있는 것이었다. 옥잠이 속삭이며 말했다.

"다른 사찰로 갈까? 거긴 좀 조용한데. 여기서 발목을 자르고 싶진 않거든."


19

사원을 나오자 수많은 도깨비가 중앙의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원에서 제사를 마치고 나오는 도깨비와 사찰의 입구로부터 들어오는 도깨비의 행렬이 엉켜있는 혼란 속에서 세 명의 도깨비가 인파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 일행 중에는 낙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자신을 옥잠이라고 소개한 여자가 길을 트고 있었다. 납치라고 하기에는 낙천을 구속하거나 위협하고 있는 것은 없었다.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야?‘


그는 앞장서고 있는 옥잠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지금 여기서 인파 속으로 내달리면 도망갈 수 있을까? 낙천은 잠시 떠올랐던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내 안에 있는 막대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유일한 영체잖아. 나를 헤칠 거였으면 사원을 나서지 전에 헤쳤겠지.“


인파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낙천은 점차 숨이 트이기 시작했다. 사원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도깨비의 수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크고 빛이 드는 앞쪽의 사원들을 놔두고 인파를 거스르고 올 이유가 없었다. 빛이 희미해져 가고 주위에 도깨비들이 더는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옥잠은 입을 열었다.


"도착했어.“


낙천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봤다. 그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눈앞만 겨우 분간될 정도로 짙은 어둠이 덮여 있는 사원의 구석이었다. 두리번거리는 낙천의 앞으로 한 청년이 걸어 나왔다. 그가 느리게 움직일 때마다 등 뒤에 매달린 거대한 톱이 얼마 남지 않은 빛을 반사하며 번들거렸다. 그는 짙은 어둠에 뒤덮인 벽 앞에 섰다. 한 치 너머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손을 집어넣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는 어둠 속으로 손을 몇 번 휘두르더니 톱을 꺼내 공중에 휘둘렀다. 톱이 닿는 궤적을 따라 어둠이 연기처럼 흩어지고 그 안으로 낡은 사원이 드러났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 곰팡내와 이끼 냄새가 낙천의 코를 찔렀다. 사원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세월 속에 버려진 채 낡아가는 중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기둥들은 군데군데 파먹힌 채 먼지와 거미줄이 뒤엉켜 있었고 바닥은 짚을 때마다 낙천의 속을 긁는 듯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사상의 크기는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중앙에 놓여 있는 윤장대 때문에 더욱 비좁게 느껴졌다. 윤장대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 덕분에 옥잠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거 어디서 난 거야?“


옥잠은 비녀로 낙천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끝의 떨림엔 힘겹게 누르고 있는 화가 새어 나왔다.


'이 본성이 그만큼 중요하단 거겠지. 이게 있는 한 날 어찌하진 못할 거야.'


낙천이 옥잠을 살펴보던 중-


"거해, 멋대로 움직이지 마.“


옥잠의 말에 낙천은 뒤를 돌아봤다. 제사장의 앞엔 자신에게 톱을 겨눴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인기척도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옥잠은 고개를 내젓고 말을 이었다.


"허깨비, 네가 멋대로 훔쳐가서 쓰고 있는 그 본성. 이제 돌려주렴.“


옥잠은 낙천을 향해 미소 지었다.


"이게 필요하면 저를 죽이고 가져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되지.“


낙천의 물음에 옥잠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옥잠은 그들 옆에 서 있는 거해를 향해 고갯짓했다.


"거해는 네 사지를 자르고 본성을 꺼내 데려가자고 했으니까. 그게 더 안전하고 들고 나가기도 편할 테니까.“


낙천은 거해를 살폈다. 그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허락만 주어진다면 그럴 만한 영체가 분명했다. 첫 만남에 목에 톱을 겨눈 놈이었다.


"그 말은 제가 당신 때문에 살아있다는 거네요?"


낙천이 옥잠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가 우리랑 같이 이 굿판을 나가서 목단설에 합류한다고 약속해. 본성은 살아있는 게 훨씬 유용하니까 바깥 놈들을 설득할 수도 있을 거야."


옥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장이라도 낙천을 데려갈 듯했다. 낙천은 주위를 살펴봤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했다.


"지금 당장 나갈 수가 없어요. 이 본성엔 도술이 걸려 있어요.“


"거해, 확인해봐.“


옥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거해는 등 뒤에 매달린 톱을 집어 들더니 낙천의 몸에 가져다 댔다. 톱날이 그의 몸을 짚을 때마다 안경 뒤로 타오르는 붉은 불꽃이 낙천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긴장되는 침묵 끝에 거해가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어떤 결계인 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낙천과 옥잠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자묘 그 년이 결계를 안 걸어뒀을 리가 없지."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보름 남았습니다.“


옥잠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낙천의 눈앞으로 다가오더니 그의 명치에 비녀를 가져다 댔다. 낙천은 배에 맞닿은 비녀 끝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옥잠은 낙천의 몸 곳곳을 찌르면서 중얼거렸다.


"자묘 그 년이라면 본성이 죽었을 때도 완전히 파괴되도록 걸어놨겠지. 그러고도 남을 년이니까.“


그녀의 태도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전까진 살기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이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낙천은 그녀의 손길에 온몸을 난도질당할 것만 같았다. 옥잠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사원을 나섰다. 사원의 입구에 멈춰 선 옥잠이 말했다.


"보름 안에 네 본성에 걸린 결계를 풀어라. 그걸 풀면 너를 같이 데려갈 거고 아니면 내가 너를 직접 죽일 거야.“


"분명 필요하다고···.“


"그 년 손에서 이렇게 농락당하고 있을 바에야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훨씬 나아.“


옥잠은 거해를 향해 고갯짓했다. 그러자 거해는 품 안에서 종잇조각을 꺼내더니 낙천을 붙잡았다. 버둥거리는 낙천의 입안으로 구긴 종잇조각을 쑤셔 넣으며 건조하게 말했다.


"창귀다. 우리랑 있었다는 걸 드러내려는 순간 창귀가 독기를 내뿜을 거다. 본성뿐만 아니라 네 기력도 순식간에 부패할 거다.“


낙천은 겨우 거해를 밀쳐냈다. 그리고 이미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옥잠을 향해 소리쳤다.


“이 본성이 뭐길래 이래요?”


낙천의 외침에 옥잠은 멈춰섰다. 낙천은 경공술로 내달리며 옥잠을 향해 소리쳤다.


"죽을 놈한테 그건 말해줄 수 있잖아요!“


"여의다. 네가 함부로 입에 담을 이름이 아니야.“


옥잠은 고개를 돌아보고 말했다. 낙천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멈춰섰다. 옥잠의얼굴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눈에서 불타오르는 붉은 불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낙천을 태울 것만 같았다. 옥잠과 거해는 낙천을 그 자리에 남겨두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낙천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사원은 이미 어둠 속에 덮여 사라졌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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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장. 신주 굿판-8 24.08.07 5 0 13쪽
17 2장. 신주 굿판-7 24.08.05 5 0 15쪽
» 2장. 신주 굿판-6 24.08.04 12 0 13쪽
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3 0 12쪽
14 2장. 신주 굿판-4 24.07.22 11 0 10쪽
13 2장. 신주 굿판-3 24.07.22 12 0 11쪽
12 2장. 신주 굿판-2 24.07.21 11 0 12쪽
11 2장. 신주 굿판-1 24.07.19 13 0 13쪽
10 1장. 남겨진 도깨비-10 24.07.18 14 0 9쪽
9 1장. 남겨진 도깨비-9 24.07.18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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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장. 남겨진 도깨비-6 24.07.16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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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장. 남겨진 도깨비-4 24.07.14 14 0 15쪽
3 1장. 남겨진 도깨비-3 24.07.13 14 0 11쪽
2 1장. 남겨진 도깨비-2 24.07.13 13 0 12쪽
1 1장. 남겨진 도깨비-1 24.07.12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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