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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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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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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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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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장. 신주 굿판-5

DUMMY

17

낙천의 손에 든 것과 얼굴을 번갈아 보던 노앵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네 정성이야?“


노앵설은 팔을 뻗어 낙천의 손에 올려진 좁쌀 덩어리를 가리켰다. 몇 알 되지 않은 좁쌀은 떨어진 깃털에 덮였다.


"제가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


"영물한테 복을 바랄 땐 한 톨 한 톨 고른 쌀로 밥을 갓 지어서! 수북이 쌓아놓고 빌어도 해줄까 말까 하는데!“


그녀가 혀를 찰 때마다 맑은 꾀꼬리 소리가 낙천의 귓가를 울렸다. 이 굿판에 온 지 5일 된 날, 그는 기도를 드리고자 사원을 찾았다. 그에게 치우는 책방에 있던 옛날 설화 이상의 의미가 있진 않았지만, 여기서 봉 도깨비처럼 보이기 위해선 그들의 생활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굿판에서 길을 찾기는 산림에서 지정된 이파리 하나를 찾는 것만큼 어려웠으므로 그가 물어볼 곳은 신당수의 안내원, 노앵설밖에 없었다.


"담엔 제삿밥을 만들어 와. 나 지금은 여기에 묶여 있어도 예전엔 인기 많았어.“


노앵설은 낙천의 손에 올려놓은 좁쌀을 집어 먹으며 중얼거렸다. 그럴 때마다 낙천은 앞이 안 보여 걸음을 멈춰섰다. 그는 그녀와 함께 신당수 안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굿판의 중앙에 산의 바닥부터 정상까지 자라나 있는 이 나무는 신당수라고 불렸다. 신당수는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살아있는 영체라기보다는 인공적인 탑에 가까웠다. 나무의 안쪽은 비어있고 나선형의 계단이 나무의 줄기 안쪽에 붙어 있었다. 돌탑과 다른 점은 이것들을 이루는 재질이 모두 나무껍질이 겹겹이 쌓여있고 징검다리처럼 띄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둘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특히 노앵설이 새 형태의 다리로 계단을 짚을 때마다 탄력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발아래의 계단을 보랴, 앞을 보랴 정신이 없었다.


"날개 달렸다고 퍼덕거리다 범 아가리에 들어가야 정신을 차리지.“


누군가 그들 앞에서 혀를 차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노앵설은 급하게 날개를 접었고 낙천은 그제야 온전히 앞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앞엔 토끼가 서 있었다. 단안경 너머로 빛나는 까만 눈동자로 그들을 훑어보며 앞발로는 막자사발로 뭔가를 갈고 있었다.


"옥묘님, 제가 그 말 하지 말랬죠? 그 말 듣기 싫어서 걸어 올라왔잖아요!“


노앵설은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그들은 3층의 약제실에 도착했다. 탑을 오르는 계단 중 몇몇은 줄기에서 길게 뻗어 있는데, 사방에서 뻗어져 나온 긴 계단들은 줄기의 중앙에 소용돌이처럼 모여 얽힌다. 얽힌 나무 계단들은 중앙으로 갈수록 빽빽해져 여러 겹의 거미줄이 모인 것처럼 튼튼한 바닥을 이뤘다. 굿판에 사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하나의 층이라고 불렀다. 3층에는 층 전체를 덮는 돔이 있었는데 바닥에서 뻗어져 나온 담쟁이 식물들이 서로 엉켜 올라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산 지팡이의 후손, 낙천입니다.“


낙천은 급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옥묘는 신당수 안의 굴에서만 상주한다고 전해 들었을 뿐 실제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옥묘는 그의 코 양쪽으로 나 있는 토끼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너는 무당 놈처럼 인사를 하는구나?“


낙천은 그제야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급인계에서 배운 습관이 튀어 나와버렸다.


"제가 선조를 일찍 여의고 예를 무당님한테 배워서 그랬습니다.“


"도깨비가 무당한테 예를 배운다고? 말하는 남생이 같은 일이군.“


옥묘는 코를 벌름거리며 낙천을 바라봤다. 하지만 곧바로 노앵설이 시간이 없다며 끼어들자 그는 질린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뭐하러 저 촉새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냐? 걸어온 것을 보아하니 기가 흐트러진 거나 본성이 망가진 것은 아닌 거 같고.“


"향 사러 왔어. 기도하러 간데.“


낙천이 입을 떼기도 전에 노앵설이 끼어들었다. 옥묘는 아까보다 더욱 격정적으로 코를 벌름거리며 낙천을 바라봤다.


"도깨비가 향을 안 들고 왔다고?“


"저번 사변 때문에 도깨비 수가 엄청 줄었잖아. 고향에서 정신없이 차출되었다고 하더라고. 진짜 아무것도 없이 왔다니까.“


노앵설은 낙천이 할 말을, 좀 더 살을 붙여서 말했다. 그녀의 감정적인 항변에 낙천을 바라보는 옥묘의 눈빛은 호기심에서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눈물이 차오른 듯 빛나는 눈망울이었다. 낙천은 어린아이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기분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옥묘는 뭔가를 다짐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불쌍한 것. 도깨비 향만큼 오래가진 못할 테지만 내 최선을 다해 만들어주마.“


그는 낙천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굴을 뛰어다녔다. 뻗어 나온 담쟁이에 매달린 나무 상자들이 그의 손에 닿을 때마다 격정적으로 흔들렸다. 그가 책상을 한 번 오갈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 부품들과 가루들이 책상에 올라왔다. 여러 종류의 약초와 광석인 것으로 보이는데 형태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예전에 향을 만들 때 쓰던 재료란다. 지금이야 천량암 뼈대에 쑥과 사각 가루를 써서 평생 쓰지만, 옛날엔 이렇게 만들기도 했단다.“


옥묘는 널브러진 금속 구조물들을 익숙하게 끼워 맞추었다. 완성된 구조물은 손바닥 크기의 책상처럼 보였다. 다만 다른 책상과 다르게 책상 위엔 여러 구멍이 뚫려 있었다. 종이를 접고 자른 것처럼 대칭으로 구멍이 뚫린 철판은 거미줄 같았고 철판의 네 귀퉁이를 사슴 다리처럼 생긴 얇은 막대가 지탱하고 있었다.


"여길 허구한 날 들르던 바퀴 도깨비가 약값 대신 준 거야. 메밀로 술을 만들기 위한 장치인데 나야 술을 안 마시니 이렇게 쓰고 있지.“


옥묘는 금속 구조물의 중앙에 박힌 구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책상의 중앙에는 거미줄에 걸린 새벽이슬처럼 투명한 유리 구체가 박혀있었다. 옥묘가 구슬을 손으로 돌리자 구체는 반으로 쪼개졌다. 그는 약포에 담긴 가루들을 차례로 넣고 다시 구슬을 돌리니 구슬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아무런 틈새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네 기를 여기다 넣으면 된단다. 그러면 네 본성에 맞춰 향이 완성될 거야."


옥묘가 낙천에게 손을 내밀었다. 낙천은 장치에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이 장치가 본성을 알아본다면 문 도깨비인 내가 써도 되는 것일까. 문 도깨비라고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이 영물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 낙천이 손을 거두기도 전에 장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상다리들이 각자 다른 높이로 움직이자 책상은 물결치기 시작했다. 유리 구체는 붉게 타오르다가 점점 밝은 주황색으로 변해 타올랐다. 낙천은 작은 태양같이 타오르는 구체에서 자묘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그녀의 눈은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며 낙천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너를 죽을 때까지 이용할 것들과 끝까지 죽이려 드는 놈들만 남을 거야.“


데워진 공기에서 나는 소리에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어떻게든 이 장치를 멈춰야 하나 고민하던 중-


"고향 것보단 별로겠지만 적응하렴.“


옥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앞엔 손바닥 길이의 커다란 바늘이 있었다. 꼭 맞는 틀에 박혀있는 바늘을 가져 들자 따뜻한 기운이 그의 손으로 흘러들어왔다.


"가마가 가열되는 모습에 눈을 떼기가 힘들지?“


낙천은 가마를 다시 바라봤다. 붉은색으로 달아오른 가마의 안에는 가루들이 쌓인 채 출렁이고 있었다. 소복이 쌓인 재 안에 무언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영감, 이제 가면 되는 거지?“


기다리다 참다못한 노앵설이 끼어들며 말했다. 노앵설은 금을 꺼내려는 낙천의 팔을 잡아당기며 굴 밖으로 나왔다. 옥묘는 그 둘을 말리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굴 밖으로 나온 후 낙천이 물었다.


"돈은 어떻게 하고요?“


"아저씨가 괜찮데. 말 바꾸기 전에 빨리 나왔지."


낙천은 옥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앵설이 팔을 잡아당겨 끌려가다시피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걸으며 낙천은 생각했다.


'고향을 떠나왔다니까 나를 안쓰러워했구나.‘


여기 있는 영물 대부분은 자신이 살고 있던 곳에서 이곳으로 왔다. 노앵설도, 옥묘도 그랬을 것이었다.


'그게 노앵설이 나를 챙겨주는 이유겠지. 그들이 느끼는 그리움과 내 감정이 똑같을까? 나는 고향을 부수고 왔는데.‘


낙천은 괜찮다고, 나는 그곳에서 나오고 싶었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저 계단을 위태롭게 내려오는 데 집중했다.


18

사원은 밀도 높은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원의 안에 있는 모든 것의 행동들과 소리는 절제되어 문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지금 이 장소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낙천과 사원을 가득 채운 연기밖에 없었다. 사원 안에 오래도록 축적된 연기는 형체가 있는 생물처럼 열린 문틈 사이로 기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사원 밖으로 몸을 빼낸다고 해도 이것의 기원이 사원 안에 있는 한 그것은 완전히 문밖을 나설 수 없었다. 이것의 길게 늘어트린 꼬리는 사원 중앙에 있는 구조물로 이어져 있었다.


'저게 윤장대구나. 책에서 본 것보단 크네.‘


팽이처럼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밑면과 팔각기둥 형태의 구조물엔 작은 원통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팔각기둥 위쪽의 열린 구멍으로 연기가 몸을 비집으며 피어올랐다.

낙천은 사원의 문턱에 선 채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저기까지 가지?‘


봉 도깨비의 기도 방식은 알고 있었다. 이향의 책방엔 봉 도깨비의 기도 방법에 관한 책도 있었다. 윤장대의 원통에 자신의 향을 끼운 뒤, 바닥에 앉아 자신의 기를 향에 불어넣는다. 그러면 향이 돌아가며 원통과 부딪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기도 방식이었다. 다만 책에는 사원의 구조만 그려져 있었지 그 안에 기도를 드리고 있는 수많은 도깨비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의 앞엔 온갖 종류의 창, 칼, 도끼부터 쇠파이프, 철근 등의 건축 자재들이 바닥에 빼곡하게 박힌 채 서 있었다. 사원 전체를 가로막은 이것들은 모두 봉 도깨비의 본성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일주일 째 어느 시간에 어느 사원을 가도 똑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긴 진짜 안 붐비는 시간이 없구나.’


한정된 공간에 수많은 봉 도깨비가 비슷한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기도 시간도 겹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원은 언제나 심각할 정도로 붐볐다. 도깨비들 사이를 밀치며 지나가야 할 텐데 날이 서린 냉병기들과 사원을 가득 채운 밀도 높은 정적에 낙천은 발이 안 떨어졌다.


'뭐 하는 거야, 낙천아! 넌 이제 봉 도깨비라고. 저들과 다를 게 없어!‘


낙천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낙천은 자신이 한심해져 얼굴이 붉어졌다.


"여긴 무섭게 생긴 본성들이 많죠?“


갑작스러운 물음에 낙천은 네! 라고 크게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가 조용한 사찰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처음 오신 거 같은데 저 끝에 가면 한적한 사찰이 있어요. 거긴 낡고 멀어서 많이 안 오거든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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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장. 신주 굿판-7 24.08.05 5 0 15쪽
16 2장. 신주 굿판-6 24.08.04 12 0 13쪽
» 2장. 신주 굿판-5 24.07.23 14 0 12쪽
14 2장. 신주 굿판-4 24.07.22 1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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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장. 신주 굿판-2 24.07.21 11 0 12쪽
11 2장. 신주 굿판-1 24.07.19 13 0 13쪽
10 1장. 남겨진 도깨비-10 24.07.18 1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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