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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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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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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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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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장. 신주 굿판-3

DUMMY

"이 아이가 삼신의 저주를 풀게 해줄 열쇠야!“


길청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자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금 전국 팔도의 굿판이 몇 년을 달라붙어도 못 푸는 저주를 도깨비 하나로 풀 수 있다고?“


"말은 똑바로 하자. 여기 말고 이제 저주를 풀려는 굿판이 어디 있다고? 황해도의 만구대택굿판도 부산의 별신굿판도 이미 자기들 왕국 세우느라 관심도 없잖아. 사방팔방 나라가 쪼개지기 전에 뭐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냐?“


길청의 울분 섞인 외침에 일순간 화원이 조용해졌다. 낙천은 처음 보는 길청의 모습이었다. 이향을 나오고 길청은 도계 어디서나 예를 갖췄으며 모든 영체에 존경받는 모습만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부서트릴 듯한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대장···. 너를 대장이라고 부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


자묘는 그런 길청의 모습이 익숙한 듯 보였다. 깊은 한숨과 침묵 후에 자묘는 품 안에서 막대기를 꺼냈다. 자묘의 팔 길이 정도 되어 보이는 막대기의 양 끝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금장식이 달려 있었다. 자묘는 그 막대기를 쓸며 말을 이어갔다.


"전쟁 때 너한테 목숨을 빚진 사람이 수천 명은 되겠지. 네가 없었으면 나랑 수정도 황야 밖의 요기가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을 거야.“


그녀가 막대기를 쓸어내리자 막대기는 순식간에 낡아 버렸다. 옻칠이 벗겨지고 황금 장식은 청동처럼 진갈색 녹이 끼었다.


"도깨비 하나로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돼. 그게 가능했다면 우리가 이미 방법을 찾았겠지.“


자묘의 말에 길청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하지만 난 널 믿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너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았으니까.“


자묘는 낡은 막대기를 낙천에게 건넸다. 낙천은 자묘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줄 것이라고 생각도 못 해서 당황했다.


"네가 문 도깨비라는 걸 숨겨야 한다.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너를 죽을 때까지 이용할 것들과 끝까지 죽이려 드는 놈들만 남을 거야.“


낙천은 자신의 손에 들린 막대기가 천근 추처럼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들고 있는 막대기의 무게가 무거워진 게 아니었다. 그의 온몸에서 힘이 빠져 그렇게 느껴진 것이었다. 그는 자묘의 두 눈에서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걸 봤다. 그 불꽃을 보는 순간 그는 자묘가 금방이라도 자신의 혼을 부숴 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한 번도 의심받은 적 없어.“


길청이 낙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낙천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막대기를 살펴볼 수 있었다. 막대기에 닿은 손바닥이 차게 얼어붙었다. 본성이 부서진 것처럼 기운이 터져 나와 막대기로 폭포처럼 흘러 들어갔다. 온몸이 찌그러져 막대기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혼이 문과 막대기에 외줄 타기 같이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서 있는 것을 느꼈다. 집중을 푸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떨어질 듯한 외줄 타기였다. 그는 호흡을 들이 내쉬며 말했다.


"이거···다른 도깨비의 본성이잖아요.“


자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곤 옅게 웃었다. 하지만 낙천은 정신을 집중하느라 그녀를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허깨비가 쓰는 방법이지. 죽어서 혼이 사라진 도깨비 본성에 자신의 기운을 넣는 것.“


낙천은 그 말을 듣자 막대기를 던져 버리고 싶었다. 도깨비에게 혼이 사라진 본성은 사람의 사체와 같은 것이었다. 낙천은 도계에서 이런 것들을 본 적 있었다. 길청과 함께 남해안의 섬에 들렀을 때였다. 인간이 거의 없는 그 섬에는 이런 것들이 산처럼 쌓인 해변이 있었다. 해변의 양쪽으로 굽이 지른 듯한 높은 절벽이 통발처럼 해류에 휩쓸린 물건들을 가두고 있었다. 햇빛과 바람을 허락하지 않는 해변에는 질식할 정도로 부패한 요기가 쌓여있었다. 낙천은 저것들이 금방이라도 기어와 짓누를 것만 같았다. 자신도 이렇게 죽고 썩어들어갈 것이라는 공포였다. 굿판에 쓰기 위한 요기를 가지러 온 새끼무당이 그를 불렀을 때 그는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죽은 도깨비 거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라는 거네요.“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지. 싫으면 당장 여기를 떠나든가. 봉인을 걸어 둬서 밖으로 나가진 못하겠지만.“


그녀는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이 굿판의 어르신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쓸모없는 자신을 내쫓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길청 도사님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저는 이제부터 봉 도깨비인가요?“


낙천은 외줄 타기를 하는 느낌을 유지하며 다시 본성으로 모습을 바꿨다. 낙천의 입에서 나온 연기는 순식간에 그를 뒤덮었고, 연기가 걷히자 낡은 막대기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바닥에 수직으로 세워진 막대기는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나뒹굴었다. 낙천의 몸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생선처럼 바닥에서 펄떡거렸다. 사지가 이리저리 뒤바뀐 것처럼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몸을 가눌 수 있게 되면 자리 남는 신청 여러 무당이 역할을 나누어 조직된 단체

에 배정될 거야."


자묘는 쓰러져 있는 낙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15

낙천이 배정받은 일은 동굴에 있는 선착장에서 화물을 내리는 것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주 굿판은 도깨비와 무당 간의 전쟁터 위에 세워진 굿판이었다. 낙천은 이곳에 오기까지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도깨비와 무당들의 시체가 썩어 요기만이 가득 찬 황폐해진 평원에서 그는 일주일 동안 풀 한 포기나 물 한 모금도 볼 수 없었다. 음양초만이 자라는 암벽 산에 배가 들어올 선착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낙천이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으니 노앵설은 새가 지저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처음 온 신입 같으니 이번에만 봐줄게. 다음엔 좁쌀이라도 갖고 와.“


노앵설은 낙천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더니 기다란 발톱으로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갑절 크기의 낙천을 들어 올려 어딘가로 날아갔다. 굿판 중앙에 박혀있는 거대한 나무를 타고 올라가듯 휘감아 올라가던 그녀는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었다. 그리고 깎아 내지른 절벽을 향해 돌진했다. 순식간에 회백색 암석에 나 있는 금까지 보일 정도로 다가간 순간 낙천은 조금이라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리고 노앵설이 바닥에 내려놓을 때까지도 발버둥은 계속됐다. 노앵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3층 24번째 족자야. 아까 보니까 네 숙소는 백호 5관 3층이더라. 2층에 10번째 족자로 들어가면 돼. 족자 위에 백호 명판이 새겨져 있으니까 설마 거기는 찾을 수 있겠지."


꾀꼬리 같은 맑은 목소리를 듣자 낙천은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진회색 하늘이었다. 하늘에는 커다란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빛을 비추고 있었다. 일어서서 주위를 살펴보니 오른쪽에는 그의 키 정도 되는 상자들이 줄지어 쌓여있고 왼쪽에는 검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바다 쪽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길이 나와 있고 그 사이로 두어 명 정도 탈 만한 크기의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길청과 인계를 돌아다니며 봤던 선착장의 모습이었다.


"여기 들어오는 배는 육지도 달릴 수 있는 건가요?“


그것이 낙천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낙천은 이향의 책방에서나 인계에서도 그런 배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굿판에 온 며칠 동안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장소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협소했는지 깨닫고 있었다. 산의 안쪽을 깎아서 만든 이 굿판의 중앙에는 지면부터 정상까지 있는 신당수가 세워져 있다. 신당수로부터 가지처럼 뻗어진 복도는 굿판의 벽면으로 이어져 있고, 벽면의 안쪽에는 또다시 개미굴처럼 수많은 방이 이어져 있다. 그 복잡한 구조를 외운다고 해도 이 굿판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각 방에는 족자가 걸려 있는데 족자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 다른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평생을 규칙적으로 설계된 문 도깨비의 대감 집에서만 살던 그는 결국 이 장소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 배가 어디 있겠니? 자묘 님의 신묘한 도술로 바다를 연결해 놓은 거야.“


노앵설은 빠른 속도로 날아오르더니 하늘에 박혀있는 별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녀가 매달린 하늘은 암벽이 겹겹이 쌓인 천장이었고 별은 천장에 박힌 야명주였다. 동굴의 천장이 너무 높아서 하늘처럼 보일 뿐이었다. 천장의 끝쪽에는 야명주 말고 다른 것도 박혀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금빛으로 빛나는 선들은 동굴의 벽면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선들을 따라 직교하는 은빛 선들이 벽면을 가로질렀다. 이만한 크기는 본 적이 없지만, 그에게 이 창살 구조는 익숙한 형태였다.


"문이네요. 동굴 벽면 전체가 바다로 이어지는 문.“


"그게 보여? 이 도술을 알아본 도깨비들은 거의 없었는데.“


노앵설의 말을 듣고 낙천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안내서에서 본 거 같다고 변명하려 했지만, 노앵설은 낙천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말을 이어갔다.


"때에 맞춰 문이 열리면 이 호수로 배가 들어올 거야. 네가 할 건 그 배에서 물건을 내리고 검수하는 거야. 동해, 남해, 황해 굿판에서 들어오는 품목이 다 다르니까 절대 헷갈리지 말고."


노앵설이 낙천 주위를 돌며 말했다. 낙천이 고맙다고 말할 새도 없이 노앵설은 계속 말했다.


"너희 교육하는 게 내 일이니까 고마워할 필요 없어. 원래는 무방수날에만 신입 교육을 하지만 너는 도사님이 특별히 요청한 경우니까.“


낙천은 노앵설이 말한 '특별히 요청한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는 일인지 궁금했다. 만약 없다면 이곳에 적응하는 게 훨씬 더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이향에선 평생 누군가와 대화를 해본 적이 없고 인계에 있을 때도 필요할 땐 길형 도사님이 일을 처리했다. 처음에는 낙천은 자신도 돕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길형은 누군가 문 도깨비를 알아볼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최대한 막았다. 그에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은 문지방을 넘는 것만큼 힘든 일이었다.


"거의 없어. 도깨비들을 움직이려면 손 없는 날을 골라야 하니까.“


노앵설의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이런 질문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속마음을 읽는다고 생각한 순간-


"네가 뭔 생각을 하는지 대충은 알 수 있거든. 그게 내 주술이야."


그녀는 당황하는 낙천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안 가르쳐주면 다음번에도 물어볼 거 아니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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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장. 신주 굿판-7 24.08.05 5 0 15쪽
16 2장. 신주 굿판-6 24.08.04 12 0 13쪽
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4 0 12쪽
14 2장. 신주 굿판-4 24.07.22 11 0 10쪽
» 2장. 신주 굿판-3 24.07.22 13 0 11쪽
12 2장. 신주 굿판-2 24.07.21 11 0 12쪽
11 2장. 신주 굿판-1 24.07.19 13 0 13쪽
10 1장. 남겨진 도깨비-10 24.07.18 14 0 9쪽
9 1장. 남겨진 도깨비-9 24.07.18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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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장. 남겨진 도깨비-5 24.07.15 12 0 12쪽
4 1장. 남겨진 도깨비-4 24.07.14 14 0 15쪽
3 1장. 남겨진 도깨비-3 24.07.13 14 0 11쪽
2 1장. 남겨진 도깨비-2 24.07.13 14 0 12쪽
1 1장. 남겨진 도깨비-1 24.07.12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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