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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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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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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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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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장. 남겨진 도깨비-5

DUMMY

5

매일 천지를 내달리고 온 시간은 항상 수천 개의 기와로 이루어진 무덤에 도착해 왔다. 반복되는 하루 끝에 원래라면 아무 방이나 들어가 잠을 청했을 때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시간은 안식처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며 돌아오길 주저했다. 낙천은 머릿속이 어지러워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낙천은 허리까지 닿는 거대한 쇳덩이들을 바라보았다. 세월 속에 잊힌 무덤에 자라난 잡초처럼 무성한 쇳덩이들은 낙천의 시간이 흐르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뭐한 거예요?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낙천은 여러 겹 쌓여있는 칼날을 방석 삼아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대청마루에 박힌 칼들을 치워내고 겨우 마련한 앉을 자리였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오는 길청에게 물었다. 굿이 끝난 후 길청은 갈아입을 옷을 요청했다. 그녀가 입고 온 무복은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넝마와 다름이 없었다. 낙천은 아무 방에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이곳은 모든 물건이 풍족했다. 수십 개의 방은 가로막는 것 하나 없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고 광에는 옷과 먹을 것이 가득 쌓여있었다. 어차피 여기 있는 물건들은 모두 주인을 잃어버린 것들이라는 첨언과 함께였다.


"도깨비 주술에 나 있는 틈을 찾는 거지.“


길청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시퍼런 칼날들은 갈대처럼 휘어졌다. 칼날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길청에 닿기도 전에 몸을 피했다. 길청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낙천의 옆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았다.


"도깨비 주술이요?“


낙천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묻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이 집 전체에 걸린 주술 말이야. 그래서 여기까지 뚫고 오는 데에도 적잖이 애를 먹었지.“


길청은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낙천은 말하려는 것을 몇 번을 멈칫하다 겨우 물었다.


"어르신이 길청 님을 이곳으로 부른 게 아닌가요?“


길청은 낙천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서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참 그를 바라보던 불꽃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면 왜 이곳에 오신 건가요?‘


낙천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켰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낙천은 어르신이 자신을 위해 그녀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매일 마당에 쏟아지는 볕의 기운을 최대한 그러모아 문을 밀면서도 낙천의 머릿속은 의심이 들었다.


'나 혼자 이 문을 열 수 있을까?‘


가능할 리 없었다. 어르신의 허락 없이 저 문을 열고 들어온 존재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대문이 열리고 길청이 걸어왔을 때 낙천은 어르신이 그녀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어르신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한참을 생각했다.


'어르신도 내가 문을 열지 못할 것을 알고 이 자를 보냈구나.‘


하지만 그녀는 어르신이 보낸 존재가 아니었다.


'길청은 문 도깨비가 필요해서 여기에 왔다. 문 도깨비가 무슨 필요가 있길래 여기까지 온 것일까?“


머릿속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는 어둠 속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낙천은 말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이 집을 나갈 수 있을까. 나가서 내 본성을 고칠 수 있을까. 길청에게 필요한 문 도깨비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문 도깨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낙천은 자신이 그녀의 기대를 못 채울까 봐, 그래서 다시 버려질까 두려웠다. 어느새 지쳐 잠든 길청의 옆에서, 낙천은 여전히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시간을 바라보았다.


6

해가 다시 떠오르고 이향의 마당에 햇살을 쌓아 올렸다. 햇살이 마당을 길게 넘을 때까지 길청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문에 기대앉아 있었다.

길청은 그림자가 어둠에서 구분될 때가 되어서야 아침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집안 곳곳에 박혀있는 칼날에 빛들이 부딪쳐 사방이 밝게 빛났다.


"문 도깨비를 찾으러 이곳까지 오신 거죠?“


낙천이 물음에 길청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도계에는 문 도깨비가 남아 있지 않은 건가요?“


길청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말을 하길 망설이던 낙천은 건조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무당들이 모두 죽였나요?“


마지막 질문에 길청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곰방대에 적혀 있지 않아?"


"기억을 새기는 건 오랜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의식이에요. 죽는 순간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진 않아요.“


그렇게 말하며 낙천은 자신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곰방대를 살펴봤다. 혹시나 했지만, 어르신은 그런 기억을 남기질 않았다.


"나도 모르겠다."


길청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이 무당은 지금까지 자신이 죽였던 도깨비들을 헤아려본 것일까 라고 낙천은 생각했다. 그 명부에 문 도깨비들이 없다는 것에 그나마 감사해야 할 것인가.


"이곳의 모든 문 도깨비들은 제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눈을 마주쳐도 보지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붙잡아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뿌리쳤습니다. 문도 못 여는 그들에게 저는 이 집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겠죠."


낙천은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길청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도 아니었다. 평생을 되뇌던 혼잣말을 입으로 되새기는 중이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기에 혼자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의 도깨비들에게 거슬리지 않기 위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도깨비들이 이곳을 떠난 후엔 생각을 내뱉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 이건 이 모든 것에 속하지 않는 이 인간에게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는 의식이었다.


"제가 마지막 문 도깨비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도깨비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요?“


낙천은 그녀의 손 위에 그의 손을 얹고 물었다.


"이곳을 나가서 본성을 고치면 저도 쓸모가 있을까요? 길청 님이 사는 세상에선 제가 필요한가요?"


길청은 자신 앞에 뻗어진 손과 낙천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봤다.


"일단 나가자.“


"이 집을 부수고 싶어요. 바깥세상에서 저를 기다리는 어르신을 만나고 묻고 싶어요."


7

꽃씨들임-거부춘심

서천 꽃밭 디 꽃씨 들이러 가자

서천 꽃밭에 꽃씨 들연 보난

거부춘심을 하난

큰 가지에 잎이 나고 날개가 났구나.

꽃을 꺾어다 좌우로

신여청 불르라. 궁녀청 불르라.


그것은 흙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물이었고 담을 넘어서는 파도였다. 길청은 신칼을 휘두르며 독경을 읊기 시작했다. 그러자 길청 주위의 바닥에 꽂혀 있던 칼들이 휘청거렸다. 강쇠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금방이라도 뽑힐 듯 보였다. 독경을 중간쯤 외웠을 땐 칼들은 산비탈의 낙엽처럼 공중에 속절없이 떠다녔다. 질서 없이 펼쳐진 난장 속에서도 하나의 규칙만은 존재했다. 칼날의 끝은 모두 길청을 향해 있었다. 칼날을 감싸고 있는 기운이 시위에 걸은 화살처럼 당겨져 있었다.


"불러다 팔선녀 신녀청 불러다 서천 꽃밭 꽃놀이하였습니다."


길청은 외침과 함께 신칼을 쥔 왼손을 들어 올렸다. 팔과 일직선으로 뻗은 신칼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공중에 떠다니던 칼날의 방향이 모두 신칼을 따라 해를 향했다. 수천 개의 칼날이 일시에 신칼을 향해 날아갔다. 두 갈래로 나뉘어 하늘을 가를 듯 치솟은 칼날은 하나의 거대한 줄기로 합쳐져 신칼을 향해 내리꽂혔다. 비늘을 잔뜩 세운 기센 거대한 구렁이 같은 모습을 한 기세는 신칼에 닿는 족족 사라졌다. 항아리에 빨려 들어가는 뱀처럼 맹렬한 기세로 자결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길청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였지만 길청은 고개를 들고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려오는 빛의 폭우를 직면하고 있었다. 아지랑이 같은 궤적만 남기고 칼날은 모두 사라졌다. 굿을 마친 길청은 신칼을 쌈지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 수묵화의 밑그림

소하도는 얼추 그려졌네.“


낙천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길청이 독경을 외우기 시작할 때 낙천은 무지막지한 회오리가 집안을 휩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껏 사방에 날려놓은 칼을 다시 거둬드렸다.


"칼로 초토화하는 게 아니었나요?“


낙천은 물음을 참지 않았다. 자신의 질문을 들어주겠다고 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이제 호기심을 삼킬 이유가 없었다. 낙천의 질문에 길청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설픈 주술이면 도술을 쏟아부어 가능하겠지. 하지만 이런 도깨비 주술은 그렇게 했다간 기력만 날릴 뿐이야. 특히 지금처럼 기력을 채울 귀물이 없을 땐 신중해야 해.“


길청은 낙천의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을 보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의 두 눈은 음영이 진 눈두덩이와 대비되어 더욱 빛나 보였다. 길청은 새끼무당에게 강의하던 내용을 읊었다.


"대부분은 도깨비 주술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고 신묘하고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생각하고 푸는 걸 포기하지. 하지만 잘 만들어진 주술일수록 명료하고 간단한 원리로 움직이지.“


길청이 집 곳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집 곳곳에는 아직 칼날들이 남아 있었다. 낙천은 그것들을 보자 칼날들이 그저 어지럽게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박혀있는 칼날들은 일렬로 이어져 선을 이루고 있었다. 선들은 갈라졌다 합쳐지기를 반복하며 집 전체와 마당에 그림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 선은 길청의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을 살펴보던 낙천의 등 뒤로 길청이 말을 이어갔다.


"여러 개의 주술을 이어 결계를 만들다 보면 틈이 생길 수밖에 없어. 원래부터 하나였던 결계가 아니다 보니 기력의 흐름이 어긋나기 마련이거든. 네가 말했던 대로 누군가 해체와 복구를 할 수 있을 진영이면 그 틈이 무조건 생길 수밖에 없어.“


길청은 마당에 남아 있는 칼날들을 살펴보더니 그중 하나를 집었다.


"그 사이에 결계의 중심인 혈을 찾아 비틀고 쪼개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길청이 한 손으로 칼날을 밀어 넣자 칼날은 부드럽게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집 안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다. 그 소리에 낙천은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길청은 낙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점점 더 심해질 거야. 집 안에 들어가서 대들보를 부수는 것과 같은 형국이니.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이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길청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면 바로 부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길청은 칼날을 집어 들려는 낙천을 급하게 붙잡았다.


"잘못 부수면 이 집이 무너지며 우리도 삼켜질 거거든. 이 집 전체에 새겨진 진영의 구조를 파악하고 어떤 순서로 부숴야 할지 파악해야지.“


길청은 막막함에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무기를 보내 집안을 살폈을 때 길청은 이 집에 새겨진 진영에 압도되었다. 수없이 많은 진영을 봤지만 이렇게 구조를 알 수 없는 진영은 처음이었다. 처음과 끝없이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 거미줄 위를 거니는 느낌이었다.


"있어요, 이 집의 구조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


고민에 잠긴 길청의 옆에서 낙천이 소리쳤다. 그는 제자리에서 두 발을 구르며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했다. 길청이 의아해하며 길청을 바라보자마자 낙천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 집에서 문이 없던 유일한 공간. 그에게 허락되었던 유일한 공간을 향해 낙천은 내달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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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장. 신주 굿판-6 24.08.04 12 0 13쪽
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4 0 12쪽
14 2장. 신주 굿판-4 24.07.22 1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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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장. 신주 굿판-1 24.07.19 1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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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장. 남겨진 도깨비-2 24.07.13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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