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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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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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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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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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장. 남겨진 도깨비-8

DUMMY

낙천은 등 뒤에 매고 있는 곰방대를 꺼내 들었다.


"어르신이 그 곰방대를 평소에 어디에 놔뒀는지 아니?“


길청은 곰방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자식 도깨비에게 가문의 기억을 계승시키는 것은 중대한 의식이다. 부모 도깨비가 지식과 주술뿐만 아니라 가문의 뜻을 지금 막 만들어지는 자식 도깨비에게 잇게 하는, 사람으로 치면 출산과 교육이 동시에 이뤄지는 과정이었다. 그런 곳에 중요한 혈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더군다나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보통 도깨비들의 대장에 붙이는 호칭이었다. 길청은 낙천의 머릿속에서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뽑아내는 중이었다.


"큰 궤짝 안에 보관하는 것 같았어요. 자기 전에 항상 그림자가 그 근처로 갔었거든요.“


낙천은 곰방대를 집어 들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때 처음이었지만 어르신은 저에게 말을 걸어준 유일한 도깨비였어요. 그렇게 냉정하게 떠나버린 게 믿기지 않아요.“


낙천은 애써 울음을 참으며 밝은 목소리로 주제를 돌렸다.


"밖에 있을 때도 굿을 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나요?“


길청은 어르신의 방에 대해 더 묻고 싶었지만, 질문을 입안으로 삼켰다. 겨우 울음을 참는 어린아이를 닦달하고 싶진 않았다. 낙천은 바깥세상 이야기 중 무당들이 여러 명 모여 협업하는 이야기를 제일 좋아했다. 길청은 낙천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득수법, 간룡법, 정혈법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런 정혈법같은 경우는 최소 세 명이 하지. 진영을 탐색하는 심혈꾼, 혈 자리에 말뚝을 박아넣는 정혈꾼, 말뚝에다 힘을 가하는 차력꾼. 이 무당들이 모인 것을 수색조라고 해.“


길청은 자신이 또다시 새끼 무당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것 같았다. 눈을 빛내며 지식을 탐닉하는 낙천의 모습에 길청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낙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왜 같이 오시지 않았어요? 그러면 훨씬 빨리 여길 나갈 수 있지 않았어요?"


"도계에선 이곳의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거든. 도깨비들도 거의 설화라고 치부할 정도니까. 그리고 이곳까지 오는 길이 너무 험난하고 오래 걸리기도 하고. 하지만 자묘와 수정 둘 다 각자 자리에서 살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여기 걸린 주술을 풀고 있다고요?“


낙천의 물음에 길청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 아이에게 말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내 그는 생각을 바꿨다. 이 아이가 나중에 무얼 위에 죽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게 희생양이 될 아이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삼신의 저주를 풀려고. 지금 바깥세상은 죽어가고 있거든.“


담담한 말투와 대비되는 내용에 낙천은 고개를 갸웃했다. 낙천은 삼신에 대해서 읽어 본 적이 있었다. 영체를 태어나게 만든다는 전설 속에 나오는 존재. 하지만 전설 속의 존재가, 그것도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신적인 존재가 저주를 내린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다.


"삼신의 저주요?“


낙천의 질문에 길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도계엔 새 영체가 태어나고 있지 않아. 태어난 모든 아이의 영안이 닫혀 있지. 이대로 가다간 무당이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질 거야.“


"그걸 삼신이 했다고요?"


길청이 설명하는 내용은 믿기지 않았지만, 저주를 설명하는 그녀의 말투는 차분하고 건조했다.


"처음엔 도깨비가 했다고 믿었지. 하지만 도깨비들도 같은 저주에 걸렸다는 걸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 지금 도계에선 무당과 도깨비가 힘을 합쳐 저주를 풀고 있어.“


길청은 말끝에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도깨비와 무당이 힘을 합칠 날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 무당은 도깨비의 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길청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낙천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당이 도깨비의 적이라는 기억만 계승된 이 아이에게 바뀐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길오라고 너만큼 자란 딸이 있어. 삼신의 저주를 풀고 나서 같이 딸을 보러 가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길청은 그 말을 내뱉고 곧바로 후회했다. 아무리 도깨비에게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길청은 자신이 도깨비굴에 너무 오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근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분명 바깥세상엔 저보다 훨씬 쓸모있는 도깨비들이 많을 텐데."


"도깨비야 많지. 하지만 공간을 열어주는 문 도깨비는 없어. 삼신이 있는 신계로 가기 위해선 네 도움이 필요해.“


길청은 낙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낙천은 신계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그림밖에 없었다. 책에서 읽었던 선계는 그런 모습밖에 없었다. 낙천은 길청의 손을 잡고 삼신을 마주하는 상상을 했다. 삼신을 만나면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왜 자신의 본성을 이렇게 만들었냐고. 삼신은 모든 아이를 사랑하던 거 아니었냐고 묻고 싶었다.


"삼신을 만나고 나선요? 어떻게 저주를 풀어달라고 할 거예요?“


갑자기 대화가 끊겼다. 낙천은 되묻기 위해 길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청의 눈에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던 길청이 입을 열었다.


"빌어야겠지. 치성을 다 해 빌어야겠지.“


낙천은 그 방법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길청의 푸른 불꽃으로 주제를 돌렸다.


"길청 님, 제가 길청 님의 푸른 불꽃을 볼 때 무슨 기분인지 알아요?"


낙천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도깨비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었다.


"두려움과 증오예요. 지금도 느껴져요. 길청 님이 푸른 불꽃을 낼 땐 제 본성이 온 힘을 다해 떨어요. 아마 곰방대에 기록된 기억 때문에 그러겠죠.“


낙천은 눈을 감고 바깥세상을 상상했다. 책에서만 봤던 바깥세상이 종종 꿈에서 나타날 때가 있었다. 그는 항상 그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과 도깨비가 평화롭게 지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하지만 빨리 나가서 그런 세상을 보고 싶어요.“


"아직 완벽한 세상은 아니야.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모두 노력하는 거니까.“


낙천은 길청의 말을 들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 날은 꿈을 꾸지 않았다.


10

처마 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마지막 빛도 흩날려 사라지고 이 집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시작되었다. 범인(凡人)의 눈으로 봤을 때 그들은 빛 한 점 없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길청의 눈에서 타오르는 두 개의 푸른 불꽃만이 집안을 떠다녔다. 그들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푸른 불꽃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길잡이가 문지방 앞에서 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다.


"무슨 일 있어?“


길청은 신칼을 감싸 쥐었다. 어르신의 방은 이 집의 중심에 있다. 이중으로 주술이 걸려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길청의 긴장이 무색하도록 낙천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서 있었다.


"인간도 제사를 지내나요? 지내면 어떻게 하나요?“


낙천은 방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길청은 갑작스러운 낙천의 질문에 의아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망자를 보내줄 땐 많은 것이 필요하지. 하지만 지금같이 아무것도 없을 땐 들고 있는 꽃을 건네고 두 번 절 해. 지극한 치성이 담긴 절은 상제에게도 닿는다고 하니까.“


낙천은 들고 있던 곰방대를 문지방에 올려놓고 말했다.


"곰방대에는 많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어요. 이 집의 구조, 물건, 문 도깨비들의 역사나 문화 등 정말 다양한 것들이 적혀 있어요. 하지만 떠난 문 도깨비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는 없더라고요. 온몸에 진흙이 달라붙었는데 어떻게 떼어낼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


길청은 인간의 방식대로 두 번 절을 했다. 그가 무릎을 꿇을 때마다 방울 소리가 반 안으로 울려 퍼졌다. 반향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낙천은 뒤를 돌아서고 말했다.


"밤은 짧은데 시간을 오래 끌었네요.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나가죠."


낙천이 방에 들어가서 무령을 흔들자 어둠에 침잠되어 있던 벽에 푸른 빛의 물결이 퍼져 나갔다. 낙천은 한 손에 무령을 든 채 독경을 외며 방을 살폈다.


군문열림

서강베포땅문 열러줍서. 연양당주문도 열려줍서.

고맙수다마는 군문을 줍서. 애둘루지 마랑

애돌지 맙서. 잘허젠 햄수다.


방의 넓이는 한 영체가 지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넓다 못해 황량한 느낌마저 들었다. 방 안에 넓은 간격으로 놓인 가구들은 공간감을 더욱 강조했다. 무령에서 퍼져 나가는 불빛 대부분은 공간을 가로질러 멀리 떨어진 벽에 부딪혔다. 방의 끝에 놓인 병풍과 이부자리 이외에는 영체가 살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주술의 흔적을 살피던 낙천은 병풍 앞에서 걸음을 멈춰섰다. 정갈하게 놓인 이부자리 옆에는 쇠로 만들어진 호롱대에 조그마한 호롱이 얹혀 있었다. 낙천은 호롱대 끝에 걸려 있는 나비를 어루만졌다. 그가 손을 얹자 나비의 날개가 펄럭이며 차가운 기운이 그의 손끝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날개를 장식하고 있는 보석들은 오래전 광택을 잃은 채 무령의 불꽃을 삼켰다.


'분명 그림자로 봤을 땐 엄청 커 보였는데.'


낙천은 마지막으로 이 방을 들렀을 때를 떠올렸다. 그들이 이곳을 떠난 후 그는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집을 돌아다녔다. 제일 익숙한 경로의 끝에는 어르신의 방이 있었다. 그 방의 앞에 서자 그는 문 도깨비가 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허락받지 않은 도둑은 그의 눈에 당장 보이는 것을 집어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청동빛을 발하는 곰방대를 집어 든 채 그는 방을 뛰쳐나왔었다. 이제 낙천은 어둠에 침잠된 것들을 살펴보고 있다.


"곰방대는 어디에 있었던 거야?“


길청은 기억 속에 잠겨 있던 낙천을 끄집어냈다. 갑작스러운 참견에 낙천은 독경을 멈추고 길청을 쳐다봤다. 길청은 어느새 그의 옆에서 병풍을 살펴보고 있었다.


"주술의 흔적은 저보고 찾으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마지막 굿을 위해 기력을 아껴야 한다면서요.“


낙천은 집중을 흩트린 길청을 쏘아보았다. 길청은 그에 아랑곳 앉고 말을 이어갔다.


"이런 곳에 주술의 혈을 설계할 거 같진 않아서 말이야.“


길청의 말이 맞았다. 이부자리에서 무령을 아무리 흔들어도 주술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저기일 거예요.“


낙천은 무령으로 병풍 쪽을 가리켰다. 병풍 옆에 반쯤 가려져 있던 나무 관이었다. 길청의 키 크기의 나무 관은 뚜껑이 열린 채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만약 처음 이곳에 와서 이것을 봤다면 길청은 저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방치된 가구가 이 집의 진영과 관련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방을 돌아다니며 길청은 이 집과 진영을 설계했을 게 분명한 '어르신'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이 어르신이라는 도깨비는 중요한 것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숨기지 않는다. 그저 인식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곳에 툭 놓아둘 뿐이었다.


'주술을 짤 때는 집중을 하므로 법사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래서 법사 한 명이 여러 주술이 얽힌 복잡한 진영을 설계할 때는 오히려 모든 주술의 혈을 일시에 드러나는 꼴이 된다. 하지만 어르신이 설계한 혈은 매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신묘한. 이라고 중얼거리려던 길청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찌 됐든 간에 결국 도깨비집의 끝에 다다랐다. 길청은 낙천이 나무관 주위에서 독경을 외는 것을 바라봤다. 길청의 예상이 맞았다. 나무관의 위로 여러 갈래로 나뉜 다홍색의 글자들이 선을 이뤄 감겨 있었다. 갈래 뻗어 나간 주술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모여 관의 끝에선 한 줄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의 꼬리는 방금까지 낙천이 살피고 있던 이부자리로 향해 있었다.


"분명 없었는데?“


낙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술의 선을 따라갔다. 선은 이불의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둘은 모두 허탈감에 빠진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길청은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르신, 너는 끝까지 눈속임인 거냐.“


이불을 들치자 다홍색 빛이 옅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술의 혈은 바닥의 아래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돌 아래에 새겨져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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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장. 남겨진 도깨비-2 24.07.13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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