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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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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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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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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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장. 남겨진 도깨비-10

DUMMY

12

두 개의 혈 앞에 도착하자마자 낙천은 주저앉았다. 낙천은 감각이 없는 자신의 다리가 신칼에 흡수됐는지 확인했다. 다리는 말을 안 들을 뿐 존재했다. 이 칼은 껍데기가 망가지지 않을 정도만큼만 기력을 흡수하는 듯했다. 그 직전까지 숙주의 기력을 긁어내는 게 문제였다.


"차력꾼 맞네. 차력꾼.“


낙천은 이전에 길청이 이야기했던 세 명의 수색조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혈을 확인했다. 두 개의 혈은 한데 뭉쳐 여전히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그 뒤 낙천은 등에 메고 온 북을 바로 옆에 내려놓았다. 이 진영을 부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몸 하나도 건사하기 어려울 상황에 북을 준비하고 치는 데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낙천은 길청의 조언을 되뇌었다.


'억지로 힘을 가하지 말고 흐름을 찾아라. 흐름에 너를 적시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거야.‘


낙천이 양손에 쥔 칼을 혈을 집어넣자, 칼날은 유연하게 휘며 빨려 들어가듯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힘을 가해 밀어 넣는 것이 아니었다. 질주하려는 야생마를 길들이기 위해 고삐를 잡는 느낌이었다. 칼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르신의 방도 뒤틀리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가구들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위아래로 뒤집히는 것이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보였다. 낙천은 당장에라도 멈추고 싶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혈의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칼날의 속도를 늦추는 게 최선이었다. 이제 방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었다. 그 순간 낙천은 엄습하는 불안감에 뒤를 돌아봤다.


'방의 입구는?‘


어르신의 방이 우그러지자 입구도 형체를 알 수 없게 비틀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낙천이 지나갈 정도의 공간은 남아 있었다. 낙천은 금방이라도 쥐고 있는 칼을 놓고 저 구멍으로 튀어나가고 싶었다.


'그러면 평생 마당에 남아 있겠지. 끝없이 맴돌이치는 공간에 갇혀.‘


이질적인 속삭임이었다. 그의 목소리였지만 말투가 달랐다. 그것이 뭔지 묻기도 전에 칼날은 끝에 도달했다. 단단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유리 같은 질감이 칼을 타고 손끝으로 전해졌다. 낙천은 자신이 주술의 핵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온 힘을 다해 칼자루를 내리쳤다. 청명한 방울 소리와 함께 칼날은 완전히 박혔다. 그 순간 낙천은 방의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놓아둔 북으로 고개를 돌렸다. 북은 저 멀리 떨어져 어둠에 덮여 있었다. 방의 입구도 거의 보일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공간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낙천의 몸이 누군가 민 것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낙천의 눈앞에 북이 놓여 있었다. 북을 집어 든 낙천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거의 보이지도 않는 입구에 집중했다. 낙천의 몸은 순식간에 튕겨 나가 겨우 몸을 구겨 넣어야 할 정도의 입구로 빠져나왔다. 복도에 나뒹군 길청은 뒤를 돌아봤다. 입구는 이미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낙천은 한 손으로 북을 집어 들고 손바닥으로 북을 치며 울부짖었다.


"날려요! 당장 굿 시작해요!"


북을 치자마자 저 멀리서 칼날이 날아왔다. 저번의 굿보다 확실히 적은 숫자였다. 칼날들은 종잇장같이 얇은 입구 안쪽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망치로 철판을 내리치는 듯 둔탁한 소리가 낙천의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달려야 한다.‘


누군가의 속삭임에 낙천은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칼날들이 복도를 내달리며 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칼날이 들어간 방에선 여지없이 쇠가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머리가 휘청거릴 폭음 속에서 낙천은 울부짖으며 북을 쳤다. 모든 방과 복도가 물 밖에 던져진 생선처럼 펄떡거렸다. 낙천은 굽이치는 바닥을 내달리며 북을 찢을 듯 내리쳤다. 공포와 후회가 형용할 수 없는 형체로 그의 뒤를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 야차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목 놓아 절규했다. 복도를 달릴수록 점점 더 많은 칼날이 낙천과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칼날이 만들어내는 공기 가르는 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그 소리를 묻어버리기 위해 북을 더욱 세게 쳤다.


'출구다!‘


어둠에 뒤덮여 있던 복도의 끝에 환한 빛이 칼날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저 멀리 길청의 무복이 휘날리고 있는 것도 보였다. 길청을 향해 나아가던 순간, 낙천의 머리 쪽으로 칼날이 다가왔다. 몸을 피하려는 순간 길청이 했던 조언이 머릿속에서 들렸다.


'무섭다고 몸을 급격하게 틀면 안 돼. 피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부딪히는 수가 있어.‘


멈칫하자 칼날은 눈앞까지 다가왔다. 칼날은 명백하게 낙천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복도가 뒤로 밀리며 낙천은 넘어졌다. 낙천을 빗겨 난 칼날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생각할 새도 없이 낙천은 한 손으로 북을 감싸 안은 뒤 세 발로 기어 마당으로 몸을 날렸다. 얼굴에서 나오는 온갖 타액과 마당의 흙이 뒤섞였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정신없는 와중에 길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으로 진영 푼 거 축하해, 차력꾼.“


낙천은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자신이 나온 집을 돌아봤다. 이미 집은 그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온갖 서까래와 대들보 기와 등이 이리저리 뒤엉켜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있었다. 낙천이 나왔던 대청마루도 곧바로 구겨져 형체가 남지 않았다. 구멍 하나 보이지 않는 집을 향해 길청은 칼날을 날리고 있었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 터지는 소리, 부서지는 소리가 뒤섞여 솟아 올라있는 집의 잔해에서 메아리처럼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낙천은 그 소리가 구슬피 우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너도 나왔으니 마무리해볼까!“


전보다 더 많은 칼날이 집 안을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길청의 목소리는 흥에 겨워 있었다. 마치 축제라도 즐기는 듯 웃고 있는 길청의 얼굴은 한없이 천진난만했다. 낙천은 그녀의 목소리가 집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뒤덮을 정도로 거세다고 생각했다.


"천 리 땅 만 리 길 만리땅 천 리 길이로구나."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소리가 일순간 사라졌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던 탑은 형체를 잃고 잔해더미로 무너져 내려앉았다. 지푸라기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가 퍼져 나갔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거대한 구렁이였다. 수많은 칼날로 이루어진 구렁이가 중천에 떠 있는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낙천은 책에서만 봤던 이무기가 떠올랐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구렁이는 방향을 틀어 그들을 향해 추락했다.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수천 개의 칼날이 햇빛을 받아 별처럼 빛났다. 낙천은 별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자, 손 꼭 잡고 있어!"


길청의 목소리가 저 멀리 들리는 것 같았다. 그의 몸은 붕 떠오르더니 칼날 위에 올라왔다. 길청은 그를 한 손에 쥔 채 은빛으로 빛나는 뱀에 올라탔다. 그리고 낙천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환청으로 들었다고 생각했던, 익숙한 소리였다.


끼익


분명 대문은 저 멀리 있었다. 하지만 낙천은 그 소리가 그의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문이 열렸다.‘


낙천은 고개를 돌려 대문을 바라봤다. 길청의 칼날이 박힌 부분이 뜯어져 나간 대문은 경첩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문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처음 보는 색깔로 가득했다.


"가자꾸나. 강제로 살을 풀어냈으니 곧 무너질 거야.“


대문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붙어 있던 담들과 기와들도 쓰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길청은 감탄한 채 멈춰 있는 낙천의 손목을 잡고 문으로 걸어갔다.


"잠깐만요!“


낙천은 소리치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그는 급하게 자신의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내 마당에 던지듯 놓았다. 어르신의 곰방대였다. 낙천은 길청의 손에 매달린 채 폐허가 된 집터를 향해 소리쳤다.


"어르신, 본성을 고치고 진짜 도깨비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길청은 낙천을 집어 올려 허리를 잡은 채로 구렁이와 함께 문밖을 내달렸다. 낙천이 도계를 향해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1장. 남겨진 도깨비 끝

2장. 신주 굿판에서 계속


작가의말

분량이 애매해서 연참합니다.

내일부터 2장 신주굿판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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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아이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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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감사인사 24.07.12 26 0 -
18 2장. 신주 굿판-8 24.08.07 5 0 13쪽
17 2장. 신주 굿판-7 24.08.05 5 0 15쪽
16 2장. 신주 굿판-6 24.08.04 11 0 13쪽
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3 0 12쪽
14 2장. 신주 굿판-4 24.07.22 11 0 10쪽
13 2장. 신주 굿판-3 24.07.22 12 0 11쪽
12 2장. 신주 굿판-2 24.07.21 11 0 12쪽
11 2장. 신주 굿판-1 24.07.19 13 0 13쪽
» 1장. 남겨진 도깨비-10 24.07.18 14 0 9쪽
9 1장. 남겨진 도깨비-9 24.07.18 10 0 11쪽
8 1장. 남겨진 도깨비-8 24.07.17 11 0 13쪽
7 1장. 남겨진 도깨비-7 24.07.16 11 0 11쪽
6 1장. 남겨진 도깨비-6 24.07.16 11 0 11쪽
5 1장. 남겨진 도깨비-5 24.07.15 12 0 12쪽
4 1장. 남겨진 도깨비-4 24.07.14 14 0 15쪽
3 1장. 남겨진 도깨비-3 24.07.13 14 0 11쪽
2 1장. 남겨진 도깨비-2 24.07.13 13 0 12쪽
1 1장. 남겨진 도깨비-1 24.07.12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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