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225
추천수 :
0
글자수 :
96,418

작성
24.07.21 13:18
조회
11
추천
0
글자
12쪽

2장. 신주 굿판-2

DUMMY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낙천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났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엔 자신보다 한 자는 커 보이는 키의 여자가 서 있었다. 낙천은 처음에 그녀가 도깨비나 영물이라고 착각했다. 그는 인세로 온 이후에 이렇게 온몸의 살을 에는 듯한 기운을 내는 인간은 본 적이 없었다.


"길청, 이게 네가 말했던 도깨비야?“


그녀는 허리를 수그려 낙천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낙천은 자신의 피부가 곱게 벼려낸 얼음송곳으로 긁히는 듯한 오한을 느꼈다. 잠깐이었지만 낙천은 앞에 서 있는 여자가 자신의 혼까지 긁어낼 것 같은 두려움마저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화원에서 하자. 여긴 듣는 귀가 많아.“


길청이 고개로 손짓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옹이에 걸려 있는 족자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 족자에는 아무런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녀가 족자에 손을 대자 손에서 검은 기운이 먹물처럼 퍼져 나갔다. 족자에는 검은 물결들이 비단처럼 출렁였지만 어떤 형태도 보이지는 않았다.


"자묘, 아직 이 영체한테 자기소개를 안 했는데.“


족자 안으로 걸어가려는 자묘를 길청이 불러세워 말했다. 자묘는 낙천을 흘끗 쳐다보고는 곧바로 족자로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자청비의 후손, 자묘야. 내가 있는 이 성주 굿판에선 몸가짐을 조심해야 할 거야.“


족자 안으로 들어가는 자묘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봤다. 그 불꽃을 마주하자 낙천은 심장에 냉수를 들이부은 듯 온몸이 떨려왔다. 조상의 혼에 새겨진 감정이었다. 도사를 향한 이 증오를 이겨낼 수 있을까. 낙천은 한숨을 내쉬며 족자 안으로 들어갔다.


14

족자가 이어진 곳은 버려진 듯한 폐허였다. 석재로 이루어진 몇몇 주초 기둥을 받치는 하부 구조물

만 이리저리 난립하고 음양초가 병 걸린 동물의 피부처럼 듬성듬성 자라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구조물들은 음양초에 거의 뒤덮여 얼핏 보면 커다란 풀더미처럼 보였다. 낙천의 눈길은 손바닥 크기의 한 돌덩이에 멈춰섰다. 이 폐허에 버려진 돌조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낙천은 그 돌덩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낙천의 온 신경이 거기로 향했다. 그것이 낙천을 발견하자마자 갈고리를 박아넣은 듯, 낙천은 돌덩이를 향해 끌려갔다. 살아 숨 쉬는 듯 일렁이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자묘의 목소리가 들렸다.


"몸가짐을 조심하랬지?“


급하게 손을 거두는 낙천을 바라보며 자묘가 말했다.


"역시 문 도깨비 눈은 못 속이네."


"저희 가문을 아세요?“


낙천은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선 입을 틀어막았다. 이향을 나오면서 길청과 약속한 것이 세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절대로 자신이 문 가문의 도깨비라는 것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가문 사람들에게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기에 자신이 문 가문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족자 이동술을 만들 때 너희 주술을 많이 참고했지. 물론 무당들도 쓸 수 있게 내 도술이랑 합친 거긴 하지만.“


낙천은 자묘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길청의 눈치를 살폈다. 길청은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다.


"괜찮아, 자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낙천은 자기 가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불타오르는 파란 불꽃을 보는 순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사에 대해 새겨진 공포는 길청과 지내면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묘 앞에서 낙천의 혼은 훨씬 강렬한 감정을 내뿜어내고 있었다. 낙천은 자묘가 어떤 형태로든 자기 가문에 대해서 자기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낙천, 여기서 무엇이 보이니?“


길청이 묻는 순간, 낙천은 지금 자신이 시험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인간들의 도시에 들르거나 굿판을 갈 때도, 산이나 바다를 지나갈 때도 그녀는 낙천에게 이 질문을 던졌었다.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낙천은 그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곧 길청은 어떤 대답을 하든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끄덕이고 미소를 짓기만 할 뿐이었다. 이런 문답이 몇 번 반복되고 난 후엔 낙천은 새로운 장소에 올 때마다 모든 것을 관찰하는 습관이 몸을 벴다.


"장막이 처져 있어요. 주위의 모든 공기가 물에 잠긴 듯 일렁이고 있고요.“


낙천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폐허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투명한 비닐 같은 것이 뱀처럼 폐허 전체를 감싼 채 일렁이고 있었다. 다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여 오랜 시간 집중해야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저 장막 밖으로 나갈 수 있겠니?“


길청이 물음에 낙천은 다시 한번 장막을 뚫어지게 살펴봤다. 그것은 여전히 넘실거릴 뿐이었다. 낙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장막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한 걸음까지 닿을 거리까지 가까이 다가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낙천은 두려움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건 길청의 시험이 분명했다. 이걸 위해서 그곳에서 자기를 꺼내오고 여기까지 데려온 게 분명했다. 낙천은 그녀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수만 겹의 업화가 자신을 덮치거나 얼어붙어 형체도 남지 않고 부서지더라도 이걸 지나가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자묘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낙천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장막은 여전히 그의 눈앞에서 차분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발을 앞으로 뻗었지만, 분명 이젠 몸을 기울여서 달려나갔지만, 장막은 여전히 낙천의 눈앞에서 흔들렸다.


"문도 못 여는 문 도깨비라니. 쓸모가 없잖아!“


낙천을 멈춰 세운 것은 자묘의 일갈이었다. 온 힘을 다해 뛰느라 연기가 되어버린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는 주저앉았다. 모든 영체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던 곳, 이향에서 끊임없이 되뇌었던 말이었다. 가문의 도깨비들이 나에게 아무런 말도,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은 문을 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내가 문 도깨비로서 쓸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낙천, 네 본성을 보여줄 수 있니?“


발바닥이 닿지 않는 깊은 호수에 잠겼을 때 낙천을 끄집어낸 것은 길청의 목소리였다.


"여기선 괜찮아. 네 본성을 보여줘.“


길청이 낙천에게 속삭였다. 이향의 사랑방에서 속삭였던 것처럼. 그 말을 듣자 낙천은 박혀있던 쐐기가 뽑힌 것처럼 단번에 바닥에서 일어났다. 낙천이 숨을 들이 내쉬자 형형색색의 연기가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연기가 그의 피부에 닿자 물에 젖은 면포처럼 달라붙으며 그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연기에 완전히 뒤덮이자 그의 형태가 변했다. 몸통이 넓어지며 팔이 몸에 붙고 어깨가 올라가 상체는 곡선의 형태를 이뤘다. 다리도 몸통과 같이 옆으로 늘어져 같은 넓이가 되었다. 연기가 걷힌 후 그가 있던 자리에는 문이 세워져 있었다. 그는 둔갑을 풀고 그의 본성으로 변했다. 얼굴이 없지만, 그는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 옷을 입는 것처럼 도깨비에겐 둔갑이 서로 간의 예를 차리는 행동이기에 만난 지 얼마 안 된 인간한테 본성을 곧바로 보여주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이게 도대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이라는 거지?"


검붉은 두 개의 문짝을 양옆으로 열어젖힐 수 있는 여닫이문이었다. 그의 앞으로 다가온 자묘는 상기된 표정으로 문을 짚어가며 살폈다. 청판 대문을 구성하는 나무판자

은 옹골차 두꺼운 쇠를 미는 것 같았다. 박혀있는 못을 짚자 불규칙한 우둘거림이 느껴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조각이 못 머리에 새겨져 있었다.


"열 수 있겠어?“


길청은 이마가 닿을 정도로 문을 살펴보던 자묘의 뒤에 서서 물었다. 자묘는 길청을 보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이런 문 도깨비는 처음 보는데. 보통 문의 나사에 조각을 새겨놓지는 않잖아?“


길청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안 한 것은 자묘의 집중력을 흩트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자묘는 무아지경에 빠질 때 종종 질문을 던지는데 대부분은 그녀 자신이 세운 논리를 재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을 감싸듯 양팔을 길게 뻗어 문을 짚고 살폈다.


"도네두정, 고리, 경첩, 대접쇠, 감잡이쇠···. 쇠가 들어가는 모든 곳에 조각을 새겨놨어."


그녀는 문고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문고리에는 이마의 눈을 포함하여 세 개의 눈을 가진 늑대 머리가 새겨져 있었는데 길게 튀어나온 어금니가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이건 문이라기보다는 비석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네.“


"무슨 말이야?“


"문에 갖다 댄 모든 부분에 뭔가를 새겼어. 나도 모르는 언어니까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도깨비들의 사어일 수도 있고 독자적으로 만든 암호문일 수도 있겠지. 그림까지 그려져 있으니 해석이 더 어려워.“


자묘는 문의 중앙에 걸려 있는 빗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길청은 빗장에 새겨진 그림을 알고 있었다. 이향에서 길청은 낙천에게 자신과 같이 도계로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낙천은 자신은 열리지 않아 쓸모가 없다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문을 보여줬었다. 그때 길청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 빗장에 새겨진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그녀는 낙천을 무슨 수를 써서든 이곳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결심했다.


"모두 금이 가 있으니 억지로 열었다간 부서질 거야. 생긴 형태는 문이지만 뭔가를 기록하려고 만든 비석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자묘가 중얼거렸다. 낙천은 그 말을 듣고 인간 모습으로 둔갑했다. 낙천은 도사들이 이 자리에서 자신을 부서트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길청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옆에 서 있는 자묘는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한테 연락하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도계에 이 정도 봉인을 풀 수 있는 굿판은 여기 밖에 없을 테니까.“


길청은 자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웃어 보였다. 자묘는 어이가 없다는 듯 길청과 자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전쟁 끝나고 9년 만에 찾아와서 부탁하는 게 도깨비 소원 들어주기야?“


길청은 아무 말 없이 자묘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자묘는 그 손을 뿌리치고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조금 전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 터져 폭발한 듯 보였다.


"남아 있는 무당들은 버리고 사라져놓고. 이젠 쓸모도 없는 도깨비가 불쌍하니 고쳐주자고?“


낙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어렸을 때는 문을 여는 방법을 찾기 위해 자신의 본성에 온갖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문을 열려고 할 때마다 온몸의 경첩이 괴성을 지르며 부서질 듯 어긋났다. 그가 정신을 잃고 일주일을 쓰러져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책방 구석에 쓰러져 있는 동안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문을 여는 것을 포기했다.


"이 아이가 삼신의 저주를 풀게 해줄 열쇠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깨비의 아이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부 완 24.08.09 5 0 -
공지 감사인사 24.07.12 26 0 -
18 2장. 신주 굿판-8 24.08.07 5 0 13쪽
17 2장. 신주 굿판-7 24.08.05 5 0 15쪽
16 2장. 신주 굿판-6 24.08.04 12 0 13쪽
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4 0 12쪽
14 2장. 신주 굿판-4 24.07.22 11 0 10쪽
13 2장. 신주 굿판-3 24.07.22 13 0 11쪽
» 2장. 신주 굿판-2 24.07.21 12 0 12쪽
11 2장. 신주 굿판-1 24.07.19 13 0 13쪽
10 1장. 남겨진 도깨비-10 24.07.18 14 0 9쪽
9 1장. 남겨진 도깨비-9 24.07.18 11 0 11쪽
8 1장. 남겨진 도깨비-8 24.07.17 11 0 13쪽
7 1장. 남겨진 도깨비-7 24.07.16 12 0 11쪽
6 1장. 남겨진 도깨비-6 24.07.16 12 0 11쪽
5 1장. 남겨진 도깨비-5 24.07.15 12 0 12쪽
4 1장. 남겨진 도깨비-4 24.07.14 14 0 15쪽
3 1장. 남겨진 도깨비-3 24.07.13 14 0 11쪽
2 1장. 남겨진 도깨비-2 24.07.13 14 0 12쪽
1 1장. 남겨진 도깨비-1 24.07.12 26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