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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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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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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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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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장. 신주 굿판-1

DUMMY

13

높새바람이 굽이치는 산길을 빠져나오자 고원에 구름이 펼쳐졌다. 고원에 올라선 사람과 도깨비는 숨을 들이쉬며 주위를 바라봤다.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 반듯하게 깎아 내지른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것은 무당, 그 길을 만드는 것은 도사다.“


도깨비는 비석에 쓰여있는 문구를 짚어가며 읽었다. 그것의 이름은 낙천이다.


"참으로 오만한 문구야. 제대로 도착했나 보네.“


기가 찬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녀의 이름은 길청이다. 길청의 말을 듣고 낙천은 땅을 짚어 남아 있는 기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 고원에는 날카롭게 깨진 돌덩이밖에 없었다. 낙천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도사님, 약도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도깨비들의 주술 흔적이나 하물며 요괴들의 요기도 없습니다.“


"여긴 전쟁터였는데 요기가 없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거지.“


"얼마나 죽었던 거예요?“


낙천의 질문에 길청은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황폐해진 고원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회한에 잠겨 있었다.


"인간은 110명, 도깨비는 약 1300구.“


낙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끝난 전쟁. 인간과 도깨비 사이의 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


"내가 기억하기론 이 근처에 이런 산이 없었어.“


길청은 펼쳐진 구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은 인간들이 쓰러진 곳이겠지.


"도사님은 여기 왔었던 거예요?“


"내가 지휘관이었어.“


길청이 쌈지에서 무구를 꺼내며 말했다. 왼손에는 신칼 무당이 쓰는 검

, 오른손에는 주령 무당이 쓰는 방울

을 쥔 그녀의 모습에 낙천은 소름이 돋았다. 조상의 혼으로부터 각인된 두려움이었다. 수많은 도깨비가 저 모습의 길청에게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었다.


"도깨비는 도사가 원망스럽지?“


길청은 낙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낙천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성에 새겨져 있는 감정이니까요.“


길청이 칼등에 주령을 맞닿자 청명한 방울 소리가 고원에 울려 퍼졌다.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심장에 냉수가 닿는 듯한 떨림이 온몸으로 퍼졌다.


"언젠간 끊어낼 수 있겠지.“


길청은 겨우 들릴 듯한 목소리로 말한 뒤 칼을 하늘을 향해 던졌다. 칼자루에 주령이 매달린 신칼은 뱀처럼 휘어지며 고원을 가로질러 가 고원 중앙에 파묻혀 있는 커다란 바위에 박혔다.


"이 하늘에 이 금이 생겨나 대명천지 밝은 날 되어 옵니다. 동성개문 수성개문 삼경개문입니다."


길청이 독경을 외자 돌은 두부처럼 맥없이 잘렸다. 바위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냄새에 낙천은 급하게 코를 틀어막았다. 부패하는 피 냄새, 매캐한 돌가루 냄새와 비린 풀냄새가 진하게 퍼져 나왔다. 낙천은 주술을 펼쳐 독기를 겨우 틀어막았다. 하지만 독기가 닿자마자 낙천의 주술은 물에 적신 종이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길청은 품 안에서 무선 무당이 사용하는 부채

을 꺼내 독기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독기가 새벽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걸 만든 사람은 도깨비를 수도 없이 죽여본 사람이네요.“


낙천이 중얼거렸다. 독이 되는 성분을 뭉쳐 놓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도깨비들에 특히 유독한 물질들이 시간 간격을 두고 반응하여 대처할 새도 없이 주술을 깎아내렸다. 도깨비 주술에 대한 깊은 지식과 어떻게든 해를 끼치겠다는 집념이 담겨 있었다.


"우리 도사들은 모두 수많은 도깨비를 죽였거든. 이 연구소를 만든 내 친구들도 그랬었고.“


길청이 족자 앞에 선 채 손을 뻗자 그의 손이 족자 안의 그림처럼 변했다. 몸이 반쯤 족자 안에 들어간 채 길청이 낙천을 향해 손을 뻗으며 물었다.


"그래도 우릴 도와줄 수 있겠니?“


"도사님께 도움이 된다면요.“


낙천이 그의 손을 잡았다. 족자 안으로 들어가자 낙천은 그의 몸이 실타래처럼 낱낱이 흐트러졌다. 약간의 울렁거리는 속 쓰림과 몸의 모든 말단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는 주술이었지만 그에겐 익숙한 느낌이었다. 깊은 바다 아래의 바닥을 딛고 걸어가듯 걸음을 떼자 그의 몸이 족자를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도사님, 이 주술은···.“


"축지술을 최대한 따라 한 거야. 여러모로 제한이 있긴 하지만.“


족자 밖은 기다란 복도로 이어져 있었다. 복도의 양 끝을 따라 자라나 있는 나무들은 천장까지 줄기를 뻗은 채 이어져 있었다. 낙천이 복도를 따라 걷자 그의 머리 위로 연분홍 복숭아꽃이 만개했다.


"거기 멈춰라!“


두 개의 커다란 목소리가 일시에 복도 끝에서 터져 나왔다. 그곳에는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한 크기의 두 거인이 있었다. 왼쪽 사람은 갈대로 만든 사슬을, 오른쪽은 나무줄기를 뗀 듯한 몽둥이를 든 채 복도 끝에 나 있는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수문대감 분들, 강녕하셨습니까. 바리공주의 후손, 길청 인사드립니다."


길청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두 거인은 멀리서 길청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당황하며 몸을 수그렸다.


"도사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자묘랑 의논할 게 있어서 왔어. 미리 말은 했는데 자묘가 자네들한테 언질 주는 걸 잊었나 보네.“


공손한 말투와 다르게 길청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문 앞으로 걸어갔다. 길청을 뒤따라가는 낙천의 앞을 두 거인이 막아섰다.


"도사님, 외람되지만 도깨비는 이 길로 출입이 어렵습니다. 산 아래에 도깨비 전용 통로가 있으니 그쪽으로 오시죠.“


"내가 도깨비굴에 가면 도깨비들도 불편하지 않겠나?“


"그러면 이 도깨비라도 따로···.“


"그게 어려우니 이 아이도 나랑 같이 왔지.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네.“


길청이 웃으며 말했다. 두 거인은 서로를 마주 보며 당황해했다. 한참을 우물거리던 두 거인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길청 도사님, 성주 굿판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낙천은 문을 들어서자마자 머리 위가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드니 고원에서도 보지 못 했던 햇살이 뇌리 쬐고 있었다. 천장을 가득 덮은 나뭇잎들에 부서지는 빛들은 포슬눈처럼 머리맡에 내리 앉았다. 이파리들은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줄기에 매달려 있고, 그 줄기는 더 큰 줄기로 이어져 모두 하나의 큰 줄기에서 돋아나 있었다. 줄기는 한눈에 전경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서 낙천은 자연이 빚어낸 절벽과 같았다. 낙천이 서 있는 다리도 나무 넝쿨에 감싸아져 줄기에 매달려 있었다. 낙천은 갓 풀어놓은 말처럼 줄기를 향해 내달렸다. 연기로 변해 순식간에 1리를 내달리거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리저리 탐색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 도깨비의 모습이었다.


"다른 것들의 이목을 끌 수 있으니 너무 놀란 티는 내지 말아라.“


길청이 낙천의 머리를 주령으로 두드리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낙천은 몸 안쪽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규칙적인 박동을 따라 줄기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도깨비들이 엄청 많아요!“


그들이 있는 곳은 천장이었다. 나무의 가장 높은 줄기에서부터 이어진 나선형의 복도는 나무를 중심으로 뱀처럼 똬리를 트는 모양새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복도에는 수많은 영체가 각자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인간들의 혼에서 나오는 푸른 불꽃과 도깨비들의 붉은 불꽃들이 점점이 떠다녔다. 길청을 따라 여러 도시나 굿판을 돌아다닌 낙천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도깨비와 인간들이 한데 모여 있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낙천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영체들의 불놀이처럼 보였다.


"도깨비와 무당이 힘을 합쳐야지만 이 굿판을 완성할 수 있으니까.“


길청의 말에 호기심으로 빛났던 낙천의 얼굴이 굳어졌다.


"도사님,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낙천이 물었다. 그에겐 바퀴 도깨비들처럼 기기를 제 몸처럼 다루는 성정도, 봉 도깨비처럼 여러 도깨비가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훈련을 받지도 못했다.


"도깨비로서 할 줄 아는 게 없잖아요. 조상님들이 뭐라도 가르쳐 줬다면 저도 이 굿판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


낙천은 가문 사람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가문 일원들의 마지막 모습은 그를 이향(離鄕)에 남겨둔 채 문을 열고 떠나는 뒷모습이었다. 도깨비로서 뭔가를 배우기도 전에 그는 본가에 혼자 남겨졌었다. 문을 여는 방법도 알지 못한 채 그는 멈춰버린 시간에 박제되었다.


"옥황상제님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한 이유가 있지 않겠니?“


길청은 낙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낙천은 그녀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도사님은 그를 세상으로 인도해 준 사람이었다. 본가의 문이 더는 열릴 일이 없다고 체념할 때 길청은 본가의 문을 열고 낙천을 만났다. 인간인 그녀가 어떻게 이향을 넘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도사님을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길청을 따라 도계(人界)로 오고 전국의 굿판을 같이 돌아다니는 동안 그녀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것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다. 만약 길청이 오해했다면, 자신이 길청이 원하던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이 기대가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어서 가자꾸나. 자묘는 이미 우리가 온 걸 알고 있을 거야.“


길청은 가지에 연결된 다리를 따라 나무줄기로 걸어갔다. 줄기에는 길청 키 크기의 나무 옹이들이 파여있고, 각각의 옹이에는 고원의 바위 안쪽서 봤던 족자들이 창처럼 걸려 있었다. 족자들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제각기 달랐다. 길청이 족자를 향해 걸어가자 길청의 몸이 순식간에 먹물로 변하더니 족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낙천은 길청을 놓칠세라 바쁘게 그 뒤를 따라갔다.


"부산 별신굿판에서 보급품 도착했으니 각 부서에서는 주문 수량 받아가세요. 금혈어와 탄주어 등 위험 영물들은 내자시 호조에 소속된 기관으로 각종 잔치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던 산하기관

에 신고하고 가져가야 하는 거 명심하시고요!“


족자를 나오자마자 낙천은 귓전을 때리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목소리는 낙천이 방금 나온 줄기 안에서 울려 퍼졌다. 낙천이 옹이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살펴보니, 온몸이 새하얀 깃털로 덮인 새가 앉아 있었다. 나무 아래로 길게 늘어진 두루마리를 날개로 잡은 채 그것은 고개를 연신 까딱거리며 순식간에 두루마리에 쓰여있는 것들을 읽었다. 초목, 물고기와 육지 고기부터 육아상의 상아, 비녀 등의 물건까지 온갖 종류의 품목들이 쓰여 있었다. 그것이 두루마리에 쓰여 있는 품목들을 읽을 때마다 그것의 머리 위에 달린 검붉은 닭 볏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대부분이 본가에 쌓여있던 책에서 읽어봤던 것이었지만 벽사수나 노골 (顱骨) 등 낙천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대관랑님, 항상 일이 많으시네요.“


잠시 후 품목 읽는 것을 멈추자 길청이 닭을 향해 인사를 했다. 닭은 길청을 보자마자 날아갈 듯이 날개를 퍼덕이면서 말했다.


"도사님, 저 같은 미물에게 고개를 숙이실 연유가 없습니다."


"영물을 봤으면 인사를 드려야죠. 자묘와 수경한테 일정을 마치고 복귀했다고 전해주세요."

길청이 말하자 닭은 아까보다 더 빠르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낙천은 저 닭의 모가지가 떨어져 나가는 건 아닐지라고 생각했다. 닭은 몇 번 부리를 맞부닥치고 말했다.


"방금 전해드렸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길청이 닭과 말을 하는 동안 낙천은 주위를 둘러봤다. 낙천은 자신의 발아래에 거친 나무껍질의 감촉을 느꼈다. 줄기 아래쪽으로 뻗어 나온 뿌리들이 곳곳에 드러난 채 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봤던 수풀들이 까마득한 높이의 천장에 드리워져 있었다. 족자를 통과하자 나무의 꼭대기에서 뿌리가 박힌 바닥으로 내려온 듯했다. 차진 흙으로 덮여 있는 지상은 나무의 크기에 걸맞을 정도로 넓은 광장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도깨비가 광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바글거렸다. 도깨비들은 바쁘게 줄기로 오더니 무언가가 새겨진 손바닥 크기의 나무판을 받아들고는 옹이에 매달린 족자 안으로 들어가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족자 밖으로 나오는 도깨비들은 한 짐 가득 보따리를 매거나 수레를 끌고 각자 광장의 끝에 나 있는 수많은 방으로 들어갔다. 너무 많은 도깨비가 낙천의 시야에 들어오자 숨이 가빠왔다. 머리와 명치가 불타는 듯 뜨거워져 이가 부러질 듯이 앙다물었다. 길청에게 이런 모습을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너구나, 내 진영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난리 치던 놈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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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아이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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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감사인사 24.07.12 27 0 -
18 2장. 신주 굿판-8 24.08.07 6 0 13쪽
17 2장. 신주 굿판-7 24.08.05 6 0 15쪽
16 2장. 신주 굿판-6 24.08.04 12 0 13쪽
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4 0 12쪽
14 2장. 신주 굿판-4 24.07.22 12 0 10쪽
13 2장. 신주 굿판-3 24.07.22 13 0 11쪽
12 2장. 신주 굿판-2 24.07.21 12 0 12쪽
» 2장. 신주 굿판-1 24.07.19 14 0 13쪽
10 1장. 남겨진 도깨비-10 24.07.18 14 0 9쪽
9 1장. 남겨진 도깨비-9 24.07.18 11 0 11쪽
8 1장. 남겨진 도깨비-8 24.07.17 12 0 13쪽
7 1장. 남겨진 도깨비-7 24.07.16 12 0 11쪽
6 1장. 남겨진 도깨비-6 24.07.16 12 0 11쪽
5 1장. 남겨진 도깨비-5 24.07.15 13 0 12쪽
4 1장. 남겨진 도깨비-4 24.07.14 15 0 15쪽
3 1장. 남겨진 도깨비-3 24.07.13 15 0 11쪽
2 1장. 남겨진 도깨비-2 24.07.13 14 0 12쪽
1 1장. 남겨진 도깨비-1 24.07.12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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