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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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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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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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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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장. 남겨진 도깨비-9

DUMMY

온돌이 필요한 도깨비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길청은 이 끝없는 놀음에 지친다는 듯이 신칼을 내리쳐 바닥을 부쉈다. 낙천은 혹시나 혈이 부서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지만, 길청은 그 와중에 혈이 드러날 때까지만 힘을 조절했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혈이 영롱하게 타올랐다.


"드디어 찾았네.“


길청은 치켜 들은 신칼을 곧바로 혈에 꽂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길청은 낙천의 잠시만 기다리라는 외침에 손을 멈췄다.


"전에 봤던 혈이랑 달라요! 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해요.“


길청은 혈을 다시 살펴봤다. 혈이라는 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술의 선을 고정하는 말뚝이다. 기를 한 점에 응축하고 숨겨야 하기에 혈은 눈여겨봐야 보일 정도의 점으로 만드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이 혈은 엄지손가락만 크기의 혈이었고 눈에 띌 정도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낙천은 혈의 주위에서 훑어내듯 무령을 흔들었다. 길청이 부서트린 판자 더미 위에서 옅은 주술의 선들이 군데군데 드러났다. 나무관에 연결되어 있던 선과 반대쪽으로 또 다른 선이 희미하게 나 있었다. 그 선은 병풍 뒤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길청이 거칠게 병풍을 무너트리자 오른쪽에 있는 것과 똑같은 나무관이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길청은 이제 확신했다.


'이놈은 우리랑 놀이하고 있구나.'


이 혈을 감추려고 했으면 나무관으로 해놓을 필요가 없었다. 양쪽에 주술의 선이 매인 두 개의 나무관이 있다는 걸 본다면 누구나 이 관들과 주술의 연관성을 알아차릴 게 분명했다. 이건 한쪽 혈만 보고 성급하게 굿을 하려는 영체에 뒤늦게 이것을 보여줘 비웃게 하려는 의도였다. 오른쪽의 나무관과 다른 점은 이 관은 굳게 닫힌 채 밀봉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뚜껑에는 시선 높이에 '琴'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길청은 여전히 바닥의 혈을 바라보고 있는 낙천을 소리치며 불렀다.


"이거 바로 살펴봐 줘!“


낙천이 독경을 외자 관 전체가 붉은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관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싼 주술이 내는 색이었다. 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고 촘촘하게 여러 겹 쌓인 주술이 어둠 속에서 눈이 멀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길청은 관에 감싸 있는 주술을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축지술이구나. 서재에서 봤던 것과 같이 몇 겹을 쌓았는지 짐작할 수도 없는···.“


신칼에서 칼날을 뽑아내 내리쳤지만, 칼날은 주술에 닿자마자 그 자리에 멈춰섰다. 보기에는 눈앞에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칼날과 관의 거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을 게 분명했다.


'마지막 결계의 혈 자리는 이 거문고갑 안에 있겠구나.‘


길청은 이것이 어르신이 준비한 마지막 놀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길청님, 혈이 이상해요.“


"나도 알아. 두 개의 주술을 하나의 혈로 묶어놨잖아.“


"한 점이 아니에요. 선이에요.“


길청은 낙천이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바닥에 박힌 혈을 가리키고 있는 낙천의 눈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신기하고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아이의 얼굴을 한 요청에 길청은 떠밀리듯 낙천을 따라갔다. 다시 봐도 크기가 약간 클 뿐 보통의 혈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낙천은 혈에 거의 닿을 듯이 엎드리고 말했다.


"전에 가르쳐주실 때 혈은 한 점에서 모인다고 했었잖아요. 두 개의 다른 주술이 묶여 있는 건 처음 봐서 살펴봤거든요. 빛 멍울 때문에 점처럼 보이는 것뿐이에요! 자세히 살펴보면 길게 이어진 선이 규칙적으로 회전하며 모이고 있어요.“


낙천의 말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길청은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그와 같은 시선으로 혈을 바라봤다.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의 붉은빛을 거둬내니 얇게 그려진 두 개의 선들이 나란하게 그려져 하나의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그리고 있었다. 칭찬을 바라는 듯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낙천을 향해 길청이 물었다.


"그게 보였니?“


낙천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저는 어르신의 말 때문에 지금까지 문을 열려고 했어요. 저 같은 도깨비한테도 방향을 제시하는 분인데 누구든 상대를 끝없이 절망시킬 분은 아니거든요.“


그건 네가 도깨비니까 라는 말이 길청의 목 끝까지 차올랐다.


"축지술이야. 혈 주위의 공간을 늘어트려 선으로 만든 거다. 그리고 그 선들이 겹치지 않도록 꼬아놓고.“


"주술의 혈에 주술을 거는 게 가능해요?“


"가능은 하겠지. 저 점 주위의 선을 건드리지 않고 주위의 공간만 축지술을 걸고, 원래 주술에 영향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 정도를 조절하고 두 개의 주술이 부딪치지 않게 한다면. 내가 말해놓고서도 가능하다는 말이 생경하군."


말을 마친 길청과 낙천의 머릿속엔 같은 의문이 들었다. 왜 그런 복잡한 방법을 만들었을까. 오히려 복잡한 과정으로 진영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마치 누군가 부서트려주길 바라듯이.'


길청은 중얼거리다 헛웃음을 지었다. 말이 안 되는 가설이었지만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축지술로 비틀어진 공간을 따라 칼을 집어넣으면 돼. 칼이 공간을 따라 휘면서 혈 자리에 닿을 거야.“

길청은 말을 하면서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축지술 안쪽의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는 바가 없었다. 낙천도 당황해하며 물었다.


"그게 가능해요?“


길청도 몰랐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야 했다.


"다만 두 개의 칼날을 동시에 집어넣어서 완전히 부셔야 할 거야. 두 개의 혈이 매우 가깝게 있으니까 좀만 어긋나도 문제가 생길 테니까.“


길청은 낙천을 바라봤다. 낙천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길청은 굳어있는 낙천의 어깨를 잡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이건 네가 해줄 수 있겠니?“


"제가요?“


"저렇게 복잡하게 꼬여 있는 혈을 동시에 부쉈다간 바로 진영에 반응이 올 거다. 굿을 준비하고 나머지 자리에 굿을 날리기엔 너무 늦어.“


길청의 부탁에 낙천의 얼굴은 이제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흙빛으로 변했다. 낙천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도 이 집을 나가고 싶었다. 바깥세상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네 도움이 필요해."


길청이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낙천은 자신의 고개가 절로 움직이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후회하진 않았다. 그는 다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11

마당에는 아직 어둠이 깔려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를 때까지 1 시진도 남지 않았다. 무복으로 갈아입은 길청은 낙천을 바라봤다. 낙천은 길청에게 지시받은 사항을 끝없이 읊조리고 있었다.


"지금 이 집 구조는 축지술로 꼬아놓은 고무줄에 도깨비 주술이란 말뚝으로 형태를 고정해놓은 거다. 칼을 박아 넣는 순간 집 구조가 순식간에 꼬인다. 집에 무슨 일이 나든 눈을 믿지 말고 감각을 믿고 뛰어야 한다."


길청은 무릎을 수그려 낙천과 눈을 맞추고 양 볼을 쓰다듬었다. 길청의 손이 닿자 낙천의 눈과 코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저만 내버려 두고 가려는 거 아니죠?“


"손을 주렴.“


길청이 낙천의 손목을 감싸자 방울이 매달린 금줄이 손목에 나타났다. 길청이 손짓하자 금줄은 삭은 짚처럼 힘없이 끊어졌다.


"내가 마당에서 쏘아 보낸 칼날들은 모두 방울로 향할 예정이야. 마지막 혈에 칼을 박아 넣고 곧바로 자리를 피해 마당으로 뛰어나와.“


길청이 예전에 낙천에게 밝혔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낙천이 마당 안전한 곳에 자리를 피한 후 굿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낙천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칼날들을 떠올리자 온몸이 떨려왔다.


"분명 칼날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닐 텐데 제가 그걸 어떻게 피해요?“


길청은 낙천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쌈지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양면이 상아색 가죽으로 당겨져 있는 북이었다. 연꽃 그림이 새겨진 북의 중앙에는 새하얀 노끈들이 사선으로 연결되어 가죽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북을 치면서 독경을 외렴. 북소리를 듣고 칼날의 방향을 바꿀 거니까.“


낙천은 길청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북과 길청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번 굿 때는 칼날로 비늘을 이루는 거대한 이무기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많은 칼날을 일그러지는 공간에서 조절해 피하겠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낙천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이것도 건네주셨던 방울처럼 피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 방울은 내 무구니까 가능했던 거야. 그건 나의 팔다리와 같아서 숨을 쉬거나 걷는 것처럼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이건 단순하게 너의 기력을 나에게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야."


낙천은 그 말을 듣자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렸다. 그의 머릿속엔 번뜩이는 칼날이 자신의 본성을 관통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니 크게 소리치렴. 그래야 내가 네 위치를 알기 쉬워.“


길청은 낙천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낙천의 팔을 뻗어 길청의 다른 쪽 손에 가져다 댔다.


"네가 나에게 손을 뻗는거야."


도깨비도 아닌 내가 할 수 있을까? 기력을 집 밖까지 전달하고 그걸 끊지 않을 수 있을까? 낙천은 길청의 손목을 부러질 듯 붙잡고 소리치듯 물었다.


"저를 믿는 거예요?“


"나를 믿는 거야. 나는 할 수 있어.“


길청은 자신감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많이 해봤냐는 질문이 떠올랐지만, 낙천은 목울대를 삼켜 말을 끊었다. 낙천은 자신의 팔에 전해지는 길청의 온기에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도사님을 믿을게요.“


낙천은 길청이 복사한 신칼을 건네받았다. 한 손에 쥐자 낙천은 생각지도 못한 무게에 휘청거렸다. 길청을 사랑방으로 옮길 때 들어본 적 있었지만, 그때보다 훨씬 무거웠다. 낙엽처럼 휘날리는 모습과 다르게 비슷한 길이의 망치를 쥔 것 같았다. 쥐고 있을수록 자신의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수챗구멍에 물을 부은 것처럼 기력이 순식간에 신칼 쪽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칼날을 복사하는 것도 기력을 사용해서 만들어내는 것일 터였다. 신칼을 양손에 하나씩 쥐자 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졌다.


"긴장하지 말고 나를 믿어. 북소리가 들려오면 그때부터 시작할 거니까 혈에서 최대한 떨어지고 북을 쳐.“


낙천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 어둠이 뒤덮인 집안으로 발걸음을 뗐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다리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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