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229
추천수 :
0
글자수 :
96,418

작성
24.07.22 21:32
조회
11
추천
0
글자
10쪽

2장. 신주 굿판-4

DUMMY

16

굿판에 온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낙천은 15년 생애 동안 들었던 소리보다 많은 소리를 들었다고 확신했다. 그는 온몸을 때리는 뱃고동에 귀가 닳아 없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유선형의 육중한 뱃머리가 선착장에 거의 부딪힐 듯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낙천은 처음 그 배를 봤을 때는 철판으로 이어진 거대한 물뱀이 떠내려온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아무리 높이 쳐들어도 갑판이 보이지 않았다. 배는 아주 느린 속도로 떠내려오며 선착장에 몸을 붙였다. 강바닥에 박힌 듯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곧이어 동굴에서 힘 빠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방지신 규격 5호 정박 완료했습니다. 작업 시작해주세요."


화물선 갑판 위에는 도깨비들이 금줄에 몸을 묶은 채 일렬로 서 있었다. 갑판 위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화물선 위의 도깨비들은 일제히 입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오색 연기가 걷히자 철제 사다리로 변한 도깨비들이 작은 배와 화물선에 몸을 걸쳤다. 그다음은 끝없이 이어지는 반복작업이다. 사다리를 타고 온갖 생선, 고기뿐만 아니라 광물, 내장, 약초 등 온갖 종류의 품목들이 선착장으로 쏟아져 내려왔고 낙천은 물건들을 받아 옮겼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낙천은 그들을 보며 자신의 처지가 더 낫다고 위안했다. 고정된 자리에서 움직이는 낙천과 비교해, 사다리 도깨비들은 쉴 새 없이 갑판을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화물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판마다 화물이 도착하는 창고가 달라서 창고에 맞게 품목을 분류해야 했다. 만약 물건을 잘못 보내면 온 창고를 뒤져야 하는데 모든 창고가 너무 넓어 한 번 잘못 들어가면 거의 못 찾는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족자로 보내기 전에 무조건 품목 확인하고 보내라. 힘들다고 대충 확인했다가는 창고에서 못 나올 줄 알고 있어!“


이 일을 시작한 첫날에 작업반장이 낙천을 뚫어지듯 쏘아보며 당부했던 말이었다. 해풍에 삭은 닻줄이 본성인 그는 걸핏하면 눈에 붉은 불꽃을 내며 화를 내는 도깨비였다. 낙천은 하루 일하자마자 자묘가 왜 자신을 여기에 배정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은 할 줄 아는 주술이 없는 도깨비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작업반장도 붉은 안광을 낼 뿐 주술을 펼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본성을 숨겨야 하는 낙천에겐 다행스러운 환경이었다. 여기 있는 도깨비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고 낙천도 만족했다.


"낙천, 이번엔 제웅 짚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고 그 안에 주술적 물건을 집어넣는 인형

이 진짜 많이 들어왔어. 희생제를 할 건 가봐!“


같이 일하는 팀원만 제외하면 그랬다. 그는 한 손에 제령을 들고 낙천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낙천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네요. 어쩐지 내장 종류도 많이 들어 왔더라고요."


그는 관심이 참 많은 도깨비였다. 못 보던 화물이 들어오면 꼭 감탄하며 의견을 덧붙였다. 대부분은 굿판에서 하는 제사를 상상하는 대화였고 꼭 낙천의 동의를 구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그의 관심은 굿판에 있는 모든 것들, 제사나 물건만 아니라 도깨비와 무당까지 이어졌다.


"저번 주에 기수 무당이 승노 반장님을 따로 부르더라고. 저번 주에도 작업장에서 안광 켰다고 징계받은 것 같더라. 주술도 못 쓰는 양반인데 불꽃 좀 냈다고 참···.“


그의 관심은 영체를 가리지 않았고 낙천도 예외가 아니었다.


"낙천 씨는 어디서 왔어? 어느 물건에서 살다 온 거야?“


그를 만난 첫날 의미 없이 던진 질문에 낙천은 강원도 산골에서 버려진 지팡이라고 둘러댔다. 미리 준비했던 대답이었다.


"멀리서도 왔네. 근데 봉 도깨비 가문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그는 뭐가 그렇게 놀라웠는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소리쳤다. 일하는 중이었기에 낙천은 누군가 들을까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동굴 전체가 화물 내리는 소리, 경적으로 가득 차 그의 목소리는 빠르게 묻혔다. 아니면 다른 도깨비들도 소음에 익숙해져 무시하는 것일 수도. 그는 낙천의 생각은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봤던 봉 도깨비 애들은 깍쟁이 스타일이었거든. 뭔 말만 해도 안 된다고만 하고 무게만 엄청 잡고.“


그는 붉은 눈썹을 찡그리며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낙천이 넘기는 화물을 보지도 않고 분류했다. 그가 말을 하며 일하는 속도가 낙천이 온 힘을 일에 쏟는 속도가 비슷했다. 오히려 끊임없는 수다가 신경 쓰여 그가 화물을 기다리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직계 가문 애들은 말 잘 못 하면 사지를 비틀어버리는 주술도 쓴다며? 치우천왕 님이 보면 분기탱천할 거야!"


그는 얼굴을 최대한 비틀며 누구도 듣지 않는 대화를 이어갔다. 턱 전체에 나 있는 수염과 짙은 눈썹 때문에 온몸이 비틀리는 것이 제대로 표현되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론 마명조의 꼬리들을 상자에 말아 넣고 다른 손으로는 품목표를 확인했다.


"정금 씨, 죄송해요. 제가 일이 느려서 폐를 끼치네요.“


정금을 만난 지 3일째, 아직 그의 수다가 질리지 않았을 때 낙천은 새참을 먹고 누워있는 정금에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취미인 드러누워 배 두드리기를 하며 말했다.


"사람마다 잘 하는 게 다른 거지. 나는 도르래 도깨비로 태어났고 너는 지팡이 도깨비로 태어났으니까. 산에서 영체들을 부축하는 건 나보다 네가 훨씬 더 잘하겠지.“


그는 밝고 오지랖이 넓은 도깨비였다. 굿판에서 사는 도깨비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걱정할 뿐이었다. 물론 봉 도깨비에 대해 험담을 할 때는 뺀 경우였고 그게 수다의 반은 차지한다는 게 문제였다. 덕분에 이향에서 책에서 읽었던 것보다 봉 도깨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지식 대부분은 정금의 편견이 담겨 있었고 황당해 보이는 것도 많았다.


"봉 도깨비 직계 가문에 가면 백두산 야차보다 큰 탑이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탑이 뭐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


정금은 이 말을 할 때 입에 담지 말아야 할 것이라도 삼킨 듯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 물론 양손은 빠르게 화물을 처리하고 있었다.


"다른 봉 도깨비들을 쌓아 만들어졌데. 가문 승계에 실패한 애들을 죽이고 탑을 만든 거야. 전쟁 때는 그걸 무기로 썼다고 하더라고. 다른 도깨비들을 도구처럼 쓰는 거지!“


그 말을 들었을 때 낙천은 자신이 본성을 떠올렸다. 문 도깨비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쓰고 있는 이 막대기. 이곳에 오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막대기를 종종 살펴봤다. 변장한 본성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였지만 쓸 때마다 의문점이 들었다. 자신도 남의 본성을 도구처럼 쓰고 있었다.


'아무렇게 쓰다가 버려진 막대기가 아니야.“


막대기의 재질은 유연하고 옹골찼으며 겹겹이 칠한 옻칠로 인해 움직일 때마다 윤택이 났다. 세월의 흔적이 몸에 새겨져 있지만 낡지 않았다. 본성으로 쓰고 있으니 눈으로 살펴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 혼이 사라진 게 아닌 게 분명했다. 낙천은 이 막대기의 주인이 죽는 모습을, 자묘 도사가 혼을 강제로 뽑아내고 그걸 자기에게 건네는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래도 요즘은 목단설 무리가 안 쳐들어와서 다행이야. 그놈들 오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니까.“


정금의 수다를 반쯤 듣고 흘리다 보면 일하는 시간이 끝나갔다. 낙천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향에서 소리는 절제되었다. 종종 창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말소리 이외에는 그곳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식의 계승이 없었다면 그는 말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었다. 숙소로 복귀할 때도 그는 말을 이어갔다. 여기선 일을 같이하면 숙소를 같이 쓰게 되어 있었다. 낙천은 복에 겨운 이 수다에 어안이 벙벙해질 때가 있었다. 본가에서 그에게 유일하게 말을 해주고 대답하는 것은 책방의 책뿐이었다.


"그러면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그 말을 끝으로 정금은 입을 멈췄다. 아직 정금은 잠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요에서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았다. 그는 이 시간이 될 때마다 그는 기도했다. 말 많고 표정 변화도 많던 정금은 그 순간만큼은 주위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가 입고 있는 작업복도 바스락거리지 않은 채. 낙천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첫날에 그 모습을 따라 하려고 했지만, 정금은 정색하며 낙천을 막아섰다.


"바퀴 도깨비는 륜의 방식대로, 봉 도깨비는 봉의 방식대로.“


정금은 봉 도깨비가 우리의 방식대로 기도하는 것이 불쾌하다고 일단락했다. 그렇게 단호한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낙천은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봉 도깨비와 바퀴 도깨비들은 섬기는 신도 기도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것은 책에서도 봤었다. 바퀴 도깨비는 사찰은 있지만 정해진 장소에서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정해진 시간에 무조건 모두 사찰이 있는 방향으로 기도를 한다. 봉 도깨비는 그와 반대였다. 정해진 시간은 없었지만, 기도하기 위해선 사찰에 직접 가야만 했다.


"치우를 위한 사찰은 백호관에 6번째 방에 있어. 봉 도깨비들이 자기네 사찰은 꼭 거기에 지어야 한다며 난리 쳐서 그 구석에 있는 거야. 그게 자기네 풍수에 맞는다고.“


정금은 사찰이 있는 곳을 알려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봉 도깨비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면 항상 한숨을 내쉬는 습관이 있었다.


"나도 기도를 드리러 가볼까?“


길청도 사찰로 발걸음을 뗐다. 이제 여기서 그는 봉 도깨비로 살아야 했다. 바깥세상에 최대한 빠르게 적응해야 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깨비의 아이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부 완 24.08.09 5 0 -
공지 감사인사 24.07.12 27 0 -
18 2장. 신주 굿판-8 24.08.07 6 0 13쪽
17 2장. 신주 굿판-7 24.08.05 5 0 15쪽
16 2장. 신주 굿판-6 24.08.04 12 0 13쪽
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4 0 12쪽
» 2장. 신주 굿판-4 24.07.22 12 0 10쪽
13 2장. 신주 굿판-3 24.07.22 13 0 11쪽
12 2장. 신주 굿판-2 24.07.21 12 0 12쪽
11 2장. 신주 굿판-1 24.07.19 13 0 13쪽
10 1장. 남겨진 도깨비-10 24.07.18 14 0 9쪽
9 1장. 남겨진 도깨비-9 24.07.18 11 0 11쪽
8 1장. 남겨진 도깨비-8 24.07.17 11 0 13쪽
7 1장. 남겨진 도깨비-7 24.07.16 12 0 11쪽
6 1장. 남겨진 도깨비-6 24.07.16 12 0 11쪽
5 1장. 남겨진 도깨비-5 24.07.15 12 0 12쪽
4 1장. 남겨진 도깨비-4 24.07.14 15 0 15쪽
3 1장. 남겨진 도깨비-3 24.07.13 14 0 11쪽
2 1장. 남겨진 도깨비-2 24.07.13 14 0 12쪽
1 1장. 남겨진 도깨비-1 24.07.12 27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