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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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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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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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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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남겨진 도깨비-7

DUMMY

9

도깨비집에서 도깨비가 무당의 무구를 들고 집을 살펴보는 기묘한 광경이 매일 반복되었다. 한 손에 무령을 든 낙천은 방을 돌아다니며 독경을 중얼거렸다. 도깨비는 주술을 쓸 때 독경을 읊을 필요가 없다고 길청이 말했지만, 낙천은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길청이 기력을 쓰는 법을 아무리 가르쳐 줘도 낙천은 도구 없이 주술을 쓸 수 없었다. 노래 부르는 법을 알아도 목구멍이 막혀 말을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무구를 쥐고 독경을 외면 막혀 있던 기력의 흐름이 그쪽으로 흘러나갔기에 낙천은 이 방법을 훨씬 즐겼다.


'내가 살면서 무구를 쓰는 도깨비를 볼 줄이야.‘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한 채 방울을 흔들고 있는 낙천의 모습에 길청은 웃음이 나왔다. 그는 방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주술을 이루는 선을 찾을 때마다 맑은 웃음을 지었다.


"찾았어요, 47번째 혈이에요!“


낙천은 재밌는 것이라도 발견하듯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길청의 차례가 왔다는 신호였다. 길청은 신칼을 뽑아 들고 칼자루에 방울을 달았다. 그리고 낙천이 가리킨 그 자리에 칼을 꽂아 넣었다. 맑은 방울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이제 하나 남았구나.‘


오늘까지 98개의 방을 살폈다. 낙천의 도움 덕분에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는 머릿속에 이 집의 모든 공간이 들어있는 듯 보였다. 마당에 그려놓은 집의 구조는 당연하다는 듯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길청은 이렇게 문 도깨비를 오래 마주한 적이 없었다. 지치는 과정에서 길청을 일으켜 세운 것은 관찰할수록 흥미로운 문 도깨비의 모습이었다.


'조급해하지 말자. 여기 오기까지의 과정에 비하면 찰나야.‘


길청은 칼자루에 달린 방울에 귀를 기울였다. 맑은 방울 소리 끝에 유리가 갈라지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길청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했다.


"오늘 하루도 끝이구나. 더 했다간 집이 무너지고 말 거야.“


이런 식으로 도깨비 주술을 푸는 것은 길청에게도 처음이었다. 길청이 도깨비 주술로 이뤄진 방진을 무너트리는 방식은 성벽을 무너트리듯 강한 힘을 여러 곳에 주는 것이었다. 방진 안의 도깨비는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방진 안에 완전히 갇혀 있는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아무리 길청이어도 무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주술도 제대로 못 쓰는 어린아이가 버틸 리는 만무했다.


"그래도 하나 남았네요. 곧 있으면 나갈 수 있다는 거잖아요!“


낙천은 어느새 길청의 옆에 서 있었다. 이 아이는 도깨비면서 도깨비의 주술보다 길청이 쓰는 도술에 훨씬 관심이 많았다. 기력을 아끼기 위해 이 아이에게 무구를 맡긴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낙천은 이 집을 살펴보고 무령으로 주술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열정이 넘쳤다. 굿 초반엔 하루에 박아넣을 수 있는 칼날의 개수에 제한이 있다는 걸 이해시키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영을 분석하고 있는 길청의 옆에서 자신만의 진영을 흙바닥에 그리며 놀았다.


"그래, 해가 뜨기 전에 빨리 끝내자."


굳게 쌓인 성벽을 하나씩 빼듯 조심스럽고 정확한 힘의 균형이 필요했다. 이 도깨비집은 수십 개의 주술이 묶여 하나의 목적을 위한 방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괴상한 집 구조도 각자의 주술이 한 곳으로 집중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길청은 낙천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낙천의 길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 없었다. 낙천은 자신도 모르게 축지술을 펼쳐 대청마루 향하고 있었다. 낙천이 걷는 대로 길청 혼자서 걸었다가는 집안에 바로 갇혀버릴 게 분명했다.


"벌써 동이 트고 있어요!“


어느새 대청마루에 도착한 낙천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짙은 안개를 사포에 문지른 듯 탁한 푸른색에 선명한 붉은 물결이 차오르고 있었다. 구름을 물들인 물결은 돌담에 얹힌 기와 위로 넘실거렸다. 낙천은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참 그럴싸하게 만들었네.‘


여기 있는 모든 것은 단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매일 이곳에 떠오르는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집에 걸려 있는 진영을 살펴보던 때였다. 낙천은 매일 대청마루에 앉아 햇볕을 쐬었다. 낙천은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길청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낙천을 볼 때마다 길청은 자신 딸이 떠올렸다. 길오가 저리 자랐을 것으로 생각하니 조급해져 집중할 수 없었다.


"기다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쉬렴. 아마 며칠 정도는 더 걸릴 거 같구나.“


길청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낙천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안 돼요. 지금 기력을 모으는 중이거든요.“


마당으로 걸어 나온 낙천은 양팔을 넓게 펼치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햇볕이 내려주는 기력을 모으고 있거든요. 굿 시작하면 기력을 많이 쓸 거니까 최대한 모아둬야죠.“


어린아이의 상상력이 끌어낸 모습이라고 치부하려고 했다. 하지만 낙천은 하늘 위로 시선을 고정한 채 무언가를 분명하게 눈으로 좇고 있었다.


'그래, 어린아이의 모습을 했지만 엄연한 문 도깨비야. 여긴 도깨비굴이고. 상식을 바라는 건 사치지.'


길청은 기력의 흐름을 보기 위해 눈을 밝혔다. 그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낙천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본 길청은 그 자리에서 굳었다. 붉은 소낙비가 세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붉은색의 기력 흐름이 폭포처럼 마당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낙천은 그 비에 조금이라도 더 젖기 위해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의 몸에 기력이 닿을 때마다 마른 솜에 물이 젖듯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들어간 기력은 그의 몸 중앙에 있는 문 모양의 본성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 진영을 유지하고 있는 귀물을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길청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더욱 높이 쳐들었다. 기력은 하늘 위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늘 위에 걸린 거대한 붉은색 덩어리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도계의 해는 기력을 쏟아내지 않는다.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은 해가 아니라 귀물 덩어리였다. 들어온 모든 것을 가둬버리는 이 무덤을 유지하는 동력원. 길청은 처마 밑에서 자신의 손을 뻗었지만, 기력은 팔에서 흘러내렸다. 오직 도깨비만 받아들일 수 있는 기력이었다.


'이 집의 결계도 기력을 받아들일 수 있나?‘


그녀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마당에 박혀있는 칼을 뽑았다. 그리고 벌어져 있는 틈을 살펴보았다. 햇빛이 틈에 닿자마자 결계가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기력을 보충하고 알아서 수복하고 있었다.


'어르신이라는 도깨비는 자신이 없어질 것까지 예상하고 만들었나 보네.‘


길청은 그 순간 새로운 방법이 떠올랐다. 길청은 낙천을 대청마루로 부른 뒤 말했다.


"지금은 집안이 무너질까 봐 혈 자리를 살펴보고 순서대로 박아넣고 있지만, 이 방법은 너무 위험해.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진영이 뒤틀릴 위험이 크지. 그러면 우린 갇혀버리는 거고.“


낙천은 길청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혈 자리를 찾았지만 이게 지금 부숴도 안전한 혈 자리 인지는 다른 문제였다. 길청은 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밤에 혈 자리를 박아넣고 햇빛이 기력을 내리쬐길 기다린다. 그러면 박아 넣은 부분에 신칼이 고정될 거야. 그리고 모든 혈 자리에 신칼을 박아넣고 굿으로 칼날을 정확한 위치에 날리면 한 번에 무너질 거야. 이렇게 하면 구조도 순서도 상관없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낙천의 물음에 길청은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길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이었지만 그렇기에 시도해 볼 만하고 생각했다.


"나는 가능해.“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들의 일과도 끝이 났다. 박아넣은 칼날 주위의 결계가 아물기를 기다리며 낙천은 길청과 함께 서재를 갈 때도 있고 기력이 부족하면 대청마루에서 기력을 받아들였다. 길청은 낙천의 옆에서 책들을 펼치고 읽는 것으로 그들의 하루는 저문다. 낙천은 길청이 여러 책을 펼쳐 두고 읽고 있으면 낙천이 다가와 말했다.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제가 말씀드릴 텐데요.“


"나도 아직 뭐가 필요한지 모르니까. 그걸 찾을 때까진 내가 직접 찾아봐야 할 거 같아.“


이곳의 서재는 길청이 지금까지 봤던 서재의 책을 모두 합친 것보다 양이 많았다. 그만큼 들어있는 지식의 종류도 다양했다. 도계뿐만 아니라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삼계 전반에 대한 생태, 도깨비 가문의 종류와 고유문화는 도계의 무당이 가진 모든 지식보다 방대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무당들의 문화와 조상에 관한 것들도 꽤 자세히 적혀 있었다. 길청은 무당의 적이었던 도깨비 가문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자료를 모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이 서재는 원래 이랬어요. 저는 모든 집안이 이 정도는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낙천에게 이 책들의 출처를 물었지만, 의미 없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길청은 이내 그것을 단념하고 이 집을 이루고 있는 구조와 주술에 대한 찾기 시작했다.


"그런 건 없었어요. 제가 그걸 봤으면 이미 풀지 않았을까요?“


이 집을 이루고 있는 주술에 대해 낙천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하지만 길청은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봤어도 모를 수 있지. 너는 굿에 대한 경험이 없었으니까.“


낙천이 굿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봤다고 해도 결국 그는 그 지식을 조합할 수 없었다. 길청은 낙천에게 필요한 내용을 묻고, 낙천은 관계된 책들을 모두 찾아주었다. 하지만 그 범위가 너무 넓었기에 아무리 구체적으로 물어도 낙천은 수많은 책을 가지고 왔다.


'숲에서 나무를 찾는 격이구나.‘


호수에 돌을 던지듯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읽기가 매일 이뤄졌다. 길청은 아득한 지식의 양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낙천은 그 모습을 흘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내일은 어르신의 방에 가요. 사랑방 중에서도 제일 넓은 방이죠."


갑작스러운 낙천의 설명에 길청은 그를 바라봤다. 그는 보통 방에 관해 설명하지 않았다. 방의 개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낙천이 방에 기거하던 도깨비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도 했다. 그래서 마당에 그려진 지도에 각 방에 번호를 붙여 놓고 몇 번 방이라고 하는 게 다였다. 간혹 부엌이나 곳간 등 공용 공간에 들어갔을 때 간략하게 설명할 뿐 개인 방에 대해 입을 여는 것은 처음이었다.


"도깨비들이 모두 이 집을 나서고 모든 문이 사라졌을 때 제일 먼저 갔던 방이에요. 이곳에 저만 남겨뒀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집을 돌아다녔거든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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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장. 신주 굿판-6 24.08.04 12 0 13쪽
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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