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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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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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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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장. 신주 굿판-8

DUMMY

22

발을 내딛을수록 곰팡내와 사향이 섞인 독특한 향냄새가 진해졌다. 어느 시간에도 사찰의 빛이 들지 않는 이곳에 가까워질수록 낙천은 불안감에 당장 발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도움받을 수 있는 건 이 영체밖에 없어.'


낙천은 마음을 다잡고 어둠으로 뒤덮인 벽 앞에 섰다.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있습니다.“


낙천이 말이 끝나자마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서늘한 톱날이 튀어나와 낙천의 목에 닿았다.


"옥잠 님은 지금 제사를 지내는 중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데 하루라도 빨리 시도해봐야 합니다!“


낙천이 소리쳤다. 어둠이 순식간에 걷히고 옥잠과 거해가 낙천의 앞에 나타났다.


"결계 밖에서 말을 높이지 마라. 듣는 귀가 많아."


옥잠이 손짓하자 거해는 낙천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고 사원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거친 손찌검과 다르게 그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거해는 품 안에서 부적을 꺼내더니 자리에 묻었다.


"공포에 질려서 찾아와 아무 말이나 할 거면 침묵해라. 거해의 말대로 제사를 중간에 그만두고 나왔고 나는 그걸 매우 싫어하거든.“


옥잠은 자신의 손에 들린 향을 보이며 말했다.


"도깨비의 주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요. 저에게 주술에 관해 가르쳐주세요.“


낙천은 고개를 돌려 거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해는 낙천의 요청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저는 굿으로 결계를 부술 수 있어요. 굿판을 그리고 읽는 법, 결계의 혈자리를 찾는 법, 기력의 흐름을 다루는 법. 하지만 제 안의 기력을 뽑아 쓸 수 없습니다. 도깨비의 주술은 귀물에 있는 기력을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깨비의 주술과 무당의 도술을 결합한다면···. 도사의 결계라도 능히 파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낙천은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수없이 되뇌었던 내용을 토해내듯 쏟아냈다. 너무 급하게 말해 말의 끝은 숨이 가빠올 정도였다.


'수많은 귀물을 도깨비의 주술로 다루고, 그 기력의 흐름을 거대한 굿으로 운용한다. 이곳에 세워진 굿판도 그렇게 굴러가고 있는 거야.'


낙천이 기록된 기억에서 눈을 떴을 때 든 생각이었다. 길청 님처럼 무지막지한 기력은 없지만, 주술과 결합한다면 조그마한 굿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주술은 모르는데 굿은 할 줄 아는 도깨비라. 굿은 어디서 배웠지?“


예상한 질문이었다. 옥잠의 질문에 낙천은 준비한 대답을 읊었다.


"길청 도사님한테 배웠습니다. 길청 님도, 자묘 님도 제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를 죽이고 손상된 본성을 가져간다고 해도 그들은 끝까지 저와 여의를 추적할 것입니다.“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도사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수많은 도깨비를 죽였다. 그들에 대한 공포심은 모든 도깨비에 새겨져 있을 것이었다.


"너 같은 허깨비가 여의를 어디서 구했나 싶었는데···.“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냉랭한 반응뿐만 아니라 한기가 사원을 뒤덮었다. 거해를 쳐다보니 그의 눈에서 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옥잠은 흥미로운 듯 낙천을 찬찬히 훑어보며 물었다.


"그러면 왜 그놈들한테 우리를 보고하지 않고?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그놈들한테 말하고 온 건가?"


"그런 비겁한 짓은 안 해요. 저도 도깨비인걸요.“


낙천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놀랐다. 그는 아직도 자신을 도깨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가를 나와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문은 망가진 채 열리지 않았고 도사님들은 그때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고 본성을 고치기 위한 아무런 치료도 없었다.


"저도 알고 싶어요. 저한테 멋대로 집어넣은 이 본성에 대해서요. 이 본성에 걸린 도술 때문에 여기를 나서면 저도 죽는다고 했단 말이에요!"


낙천은 자신의 마음이 들키기 전에 황급히 준비했던 거짓말을 이어 말했다. 이 굿판 밖을 나서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이 본성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건 진심이었다.


"알고 싶다고? 겨우 그것 때문에 죽을 길을 선택한 거야?“


옥잠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낙천을 한참 바라보았다. 옅은 웃음을 짓거나 한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눈동자는 낙천을 향해 있지만, 그녀는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술은 내가 가르칠 거야. 저놈은 주술을 자주 쓰진 않거든.“


침묵이 끝나고 옥잠이 입을 열었다. 거해가 당황하며 말하려는 것을 옥잠이 손짓으로 막았다.


"어차피 보름 동안 할 일도 없잖아. 굿판 전체에 깔린 자묘의 도술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리고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겨우 두 번째 그녀를 마주했지만 한 번도 보지 못 했고 냉담한 그녀의 얼굴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웃음이었다. 거해도 그녀의 웃음에 당황한 듯 보였다.


"나도 여의를 다시 잃고 싶지 않거든. 어차피 바깥 놈들은 내부 상황을 모르잖아.“


낙천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길청과 자묘 도사님을 알고 있다고 했을 때 죽을 것도 각오했다. 다행히 계획을 시작할 순 있게 되었다.


"굿을 할 장소는?“


"이미 알아놨어요. 아무도 안 올 곳이에요."


낙천은 결계 앞에 섰다. 묘시가 끝날 시간이었다. 바로 선착장으로 가도 빠듯할 시간이었다. 거해가 결계를 풀어주길 기다리고 있는데 낙천의 뒤로 옥잠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밌느냐?“


낙천은 돌아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못 하면 죽인다고 해놓고 이번엔 재밌냐고?‘


"네 표정을 보고 하는 말이다. 보름 뒤에 죽을지도 모르는데도 얼굴은 웃음을 참질 못하는구나. 설명할 때도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고.“


옥잠이 비녀로 낙천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웃고 있었나?'


긴장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지금도 저놈들이 마음을 바꾸고 내 사지를 자를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 안에 있는 문이 두근거렸다. 여의가 아니라 문에서의 반응은 오랜만이었다.


"알고 싶습니다!“


결계가 풀렸다. 그들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낙천은 일터를 향해 내달렸다.


23

구수한 밥 냄새와 아늑한 보금자리는 운석으로부터 벼려낸 검의 날도 녹슬게 만든다. 신당수 안쪽에 있는 노앵설의 방에선 참선 수행 중인 고승도 일으킬 정도로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했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낸 앉은뱅이 소반엔 제삿밥이 놓여 있었다. 노앵설은 열반에 이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입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렸다. 앞에 앉아 있는 낙천은 먹어보라는 한 마디 빈말도 없는 그녀에게 잠깐 서운했다. 물론 그녀가 권유해도 독이 든 성배를 먹진 않을 것이었다.


"제삿밥은 이래야지. 아기 궁둥이 닦듯이 한 톨씩 정성스럽게 닦아 밥알이 생동감 넘치게!“


그녀는 나무젓가락으로 쌀 한 움큼을 들고 귀한 보석을 바라보듯 눈을 빛냈다.


"끝에 이 연주의 절정이라니까. 며칠 전만 해도 제사 지낼 향도 없던 애가 어디서 이런 쌀을 구한 거야?"


"쌀바위에서 나온 쌀이에요. 역시 제삿밥으로는 최고의 쌀이죠?“


낙천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노앵설은 그 자리에서 젓가락을 떨어트렸다. 아까운 쌀알이 바닥에 뒹굴었지만, 노앵설은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그러면 이거 굿판에 쓸 물자라는 거야?“


"알고 계신 줄 알았죠.“


노앵설은 낙천의 말을 듣자마자 얕게 헛구역질을 했다. 당장이라도 뱉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이 천상의 맛을 무례하게 게워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소용없는 짓이었다. 최상급의 쌀답게 목 뒤로 넘기자마자 초봄의 눈송이처럼 녹아버린 밥알은 기력이 되어 노앵설의 온몸을 돌고 있는 중이었다. 노앵설은 낙천을 흘겨보며 물었다.


"쌀바위 쌀로 제삿밥 짓는 법은 어떻게 알았고?“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본가의 서재에 이에 관한 책이 있었다. 그 책을 집필한 영체도 상당한 미식가였는지 쌀바위 쌀을 다루는 법과 그 맛에 대해서 자세하게 써놓았다. 그 설명이 워낙 휘황찬란해서 잊을 레야 잊을 수가 없었다. 어제 하역한 물자 중에 마침 쌀바위 쌀이 있었던 것은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그는 행운을 마주하자마자 자신의 쌈지에 급하게 쑤셔 넣었다. 마음을 읽는 노앵설한텐 이 정도 물건이어야지만 앞뒤 안 가리고 받을 것이었다.


"너 어쩌려고 그래? 굿에 쓸 물건이 사라졌다는 게 알려지면···."


"화원은 어떻게 갈 수 있어요?“


낙천은 노앵설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굳어져 있던 노앵설의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건 도대체 어디서 들은 거야? 너 들어오자마자 뭘 하는 거야?“


"전에 도사님이 데려다줬어요.“


"나도 몰라.“


노앵설은 고개를 내저으며 물러섰다. 낙천은 그녀의 양팔에 돋아난 날개를 붙잡았다.


"제삿밥까지 먹어놓고 이러기예요?“


"이것까지 먹었는데 눈치 볼 게 있어? 그곳은 다른 영체들이 접근 못 하게 아예 통로를 막아놨다고!“


낙천은 노앵설의 표정을 살폈다. 원망에 가득 찬 눈초리였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노앵설은 낙천의 손을 뿌리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알 만한 놈이 있어. 굿판에서 누군가 듣고 있으니 말조심하라는 말 들어본 적 있지?"


노앵설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여러 영체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둘이 있을 때도 누군가 듣고 있다는 듯이 말을 멈췄다.


"듣고 있는 거 맞아. 이 굿판이 지어질 때부터 숨어든 허깨비가 있거든.“


"자묘 도사님도 알고 있어요?“


자묘가 불청객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자신을 재단하는 그 서늘한 눈동자가 잊히지 않았다. 노앵설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도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보였다.


"여기서 살게 해주는 조건으로 도사 님이랑 약속했다고 해. 첫 번째는 절대 다른 영체한테 모습을 들키지 말라는 것. 두 번째는 불온한 목소리를 듣게 되면 보고하라고.“


"그런 존재를 어떻게 찾아요?“


낙천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노앵설은 품 안에서 종잇조각을 꺼냈다.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너덜거리는 낡은 한지였다.


"그 모습을 나한테 들켰거든. 도사님한테 보고하지 않는 대가로 두 가지를 약속받았지. 첫 번째는 나와 내 둥지 쪽 소리는 절대 듣지 않겠다. 그리고 이 주문을 외면 굿판 어디에서든 찾아오겠다고.“


노앵설은 조심스럽게 종잇조각을 펼쳤다. 먹물이 휘발되어 군데군데 흐려졌지만 겨우 읽을 순 있었다. 외우기 위해 중얼거리는 낙천의 입을 노앵설이 급하게 틀어막았다.


"나 없는 곳에서 부르라고! 그 음침한 놈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녀는 경멸에 가득 판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세차게 떨었다. 도대체 그 영체가 누구냐고 물어보려는데-


"배신자 거구귀. 도깨비들한텐 워낙 유명하니까 들어봤었지? 전쟁 때 제일 먼저 도깨비를 배신하고 무당 편에 붙었다고 하는 허깨비.“


노앵설이 먼저 대답했다. 읽어본 적 있었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허깨비로서는 량국의 병조판서까지 지낸, 그러고서도 평생 본성을 구하지 않고 허깨비로 산 괴짜라고 기록된 영체였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전쟁 초기의 갑작스러운 배신이었다. 군사적 대외비를 모두 넘긴 배신자 허깨비.


"그래서 이곳에 있는 거군요. 량국 뿐만 아니라 도깨비의 눈이 닿는 곳 어디든."


전쟁이 끝나고 배신자가 살 곳은 없을 것이었다. 도사들이 지키는 굿판이 그나마 도깨비의 수사권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다만 그런 정치범을 숨긴 게 자묘의 독단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조심해. 무슨 주술을 썼는지 새까매서 생각을 읽을 수가 없네."


고민하고 있던 낙천을 향해 노앵설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낙천은 자신도 모르게 명치에 손을 올렸다.


'거해가 넣었다고 한 창귀라는 것 때문이겠지.‘


낙천은 잠시 잊고 있던 자신의 처지를 되새겼다. 그는 이 굿판에 위협이 될 도깨비를 돕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노앵설한테라도 이 사실을 말해야 했다.


'그러고 나면? 주술은 어떻게 배우고 그 결계는 어떻게 부숴? 평생 짐 내리는 일만 하러 여기 온 건 아니잖아.‘


낙천은 고개를 가로젓고 노앵설의 둥지를 나섰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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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신주 굿판-8 24.08.07 6 0 13쪽
17 2장. 신주 굿판-7 24.08.05 5 0 15쪽
16 2장. 신주 굿판-6 24.08.04 12 0 13쪽
15 2장. 신주 굿판-5 24.07.23 14 0 12쪽
14 2장. 신주 굿판-4 24.07.22 11 0 10쪽
13 2장. 신주 굿판-3 24.07.22 13 0 11쪽
12 2장. 신주 굿판-2 24.07.21 12 0 12쪽
11 2장. 신주 굿판-1 24.07.19 13 0 13쪽
10 1장. 남겨진 도깨비-10 24.07.18 14 0 9쪽
9 1장. 남겨진 도깨비-9 24.07.18 11 0 11쪽
8 1장. 남겨진 도깨비-8 24.07.17 11 0 13쪽
7 1장. 남겨진 도깨비-7 24.07.16 12 0 11쪽
6 1장. 남겨진 도깨비-6 24.07.16 12 0 11쪽
5 1장. 남겨진 도깨비-5 24.07.15 12 0 12쪽
4 1장. 남겨진 도깨비-4 24.07.14 14 0 15쪽
3 1장. 남겨진 도깨비-3 24.07.13 14 0 11쪽
2 1장. 남겨진 도깨비-2 24.07.13 14 0 12쪽
1 1장. 남겨진 도깨비-1 24.07.12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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