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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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최근연재일 :
2024.08.07 00:3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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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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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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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남겨진 도깨비-2

DUMMY

“이럴 거였으면 내가 쓰러져 있을 때 죽이지 그랬니.”


길청은 두 손을 들어보인 채 낙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벌벌 떨고 있는 낙천을 향해 길청이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하긴. 날 죽이고 싶은 사람이 천지에 널렸는데, 너 같은 놈도 날 죽일 수 있었으면 이미 골백번 죽었겠지.“


”칼끝도 들어가지 않더군요. 몸에 걸려 있는 그건 무슨 주술인 겁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궁금하니? 네 앞에 도사가 앞에 있는데도?“


낙천은 길청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지만 몸짓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길청을 향해 있었다. 길청은 그런 모습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주술이 아니라 도술이라는 거다. 인간은 너희 도깨비처럼 주술을 쓰지 못하거든.“


그녀가 깊게 숨을 들이 내쉬자 그녀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그리고 그 불꽃은 길청의 온몸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세차게 타오른 불꽃은 점차 옅어지더니 길청의 몸 주위에 아지랑이같이 일렁였다. 낙천은 그 불꽃을 보자 숨이 가빠졌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낙천은 길청의 몸을 휘감고 있는 푸른 화염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덮칠 것같이 두려워졌다.


”쓰러져 있을 때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잖아. 설마 지금은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길청의 물음에 낙천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두 다리는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낭창거렸다. 그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길청을 향해 있었다.


”그러면 불나방처럼 죽고 싶은 거냐? 평생 칼을 쥐어본 적도 없는 놈 같은데.“


”도깨비가 되어 죽고자 합니다.“


”너, 도깨비가 아니야?“


낙천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길청의 앞에 다다른 낙천은 막대를 휘둘렀다. 휘두르는 막대기에 몸이 따라 나가며 기우뚱했다. 길청은 가볍게 피하며 되물었다.


"칼도 안 쥔 사람에게 무기를 겨누는 게 도깨비의 예의인 거니?“


”저는 도깨비가 아닙니다!“


낙천의 공격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빈틈이 많았다. 길청은 그의 주위를 돌며 귀안으로 그의 몸을 살폈다. 명치에서 붉게 타오르고 있는 본성과 그것을 덮고 있는 육체는 도깨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길청은 그 모습을 살펴보곤 중얼거렸다.


”너, 주술을 못 쓰는구나?“


명치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육체로 퍼지지 못했다. 낙천이 아무리 움직여도 그의 안에 있는 기력은 본성에 갇혀 있었다. 기력이 발하지 못하니 주술을 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말을 들은 낙천의 얼굴은 더욱 벌게졌고 자세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쓰러질 것만 같았다.


”너 지금 주술을 못 쓴다고 자기가 도깨비가 아니라는 거야?“


여전히 낙천은 말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초식에 걸려 제풀에 넘어지는 것으로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분에 차 힘이 들어간 자세는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게 너한텐 그렇게 수치스러운 거야?“


길청이 자개함을 향해 손을 뻗자 자개함이 넝쿨과 일격에 쪼개졌다. 갇혀 있던 무구들이 그녀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빨리 죽여주세요. 무당은 도깨비를 죽이는 존재잖아요.“


낙천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 막대기를 겨누었다. 그것은 그의 키 정도 되는 길이의 곰방대였다. 곰방대 끝에 달린 대통은 사시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주술도 쓰지 못하는 도깨비가 몸에 맞는 무기도 없이 도깨비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랑 싸우면 네가 도깨비 될 수 있다는 거니?“


길청은 자리에 쪼그려 앉은 채 낙천과 눈을 맞추었다. 흔들리는 곰방대 끝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이 보였다.


”도깨비는 무당에게 맞서기 위한 존재. 우리는 무당과 싸움으로서 도깨비가 된다!“


길청은 낙천이 한 말을 듣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향의 새끼 도깨비 입에서 백골 놈들의 전쟁 구호를 듣게 될 줄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놈들을 죽일 때 혼에 박히는 듯한 공허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녀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이미 너는 도깨비인걸. 명치에 있는 본성과 붉은색 기력. 그런 게 내 눈엔 보인단다.”


”주술을 못 쓰면 도깨비가 아닙니다.“


낙천은 길청의 친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길청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주술을 못 쓰는 도깨비, 도술을 못 쓰는 무당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무모하게 목숨을 던지던 수많은 도깨비. 도깨비의 함정을 밝혀내기 위해 투입되는 액막이 목숨. 도계의 전쟁에서 그들은 말할 줄 아는 인형일 뿐이었다.


‘이 아이는 아직 전쟁 속에서 살고 있구나.’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이 도깨비굴엔 그 소식이 전해지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설화로 여겨질 정도로 숨겨져 있는 이곳까지 이 소식을 전해줄 영체는 없을 것이었다. 이 도깨비굴에 살던 도깨비 중 아무도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것은 길청에겐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그러면 남은 건 이 아이뿐인가? 버려진 도깨비굴을 지키고 있는 반푼이 도깨비.‘


길청이 다시 손을 뻗자 낙천은 튀어 나가듯 일어서 다시 자세를 잡았다.


"나한테 죽어서라도 도깨비가 되고 싶다는 거야?“


길청의 물음에 낙천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제 주제는 알아요. 주술도 못 쓰는 제가···당신을 이길 수는 없겠죠.“


그의 말을 들은 길청은 전쟁터에서 만났던 수많은 영체를 떠올렸다. 도깨비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전쟁터에선 목숨을 내던지는 영체들이 있었다. 부하로서 전장에 내보낼 때도, 적으로 전쟁터에서 마주할 때도 길청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생기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남은 것이 없다고, 그렇게 믿는 영체들이었다.


"이길 수 있을 때 싸워라. 그러지 않으면 도망쳐라. 죽는 것보다 어리석은 명예는 없다.”


그녀는 허리춤에 달린 쌈지에 무구를 집어넣었다. 무구는 물 흐르듯 쌈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길청은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눈을 낙천을 향해 고정한 채 다가갔다. 낙천은 길청이 다가오는 만큼 뒷걸음질 쳤다. 뒷걸음치는 다리를 멈추기 위해 곰방대로 허벅지를 찔러댔다. 그는 피가 묻은 곰방대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나를 죽이라고! 도깨비를 죽이려고 태어난 이 악귀야! 끝나지 않는 이 지옥에서 날 꺼내달라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자세는 낙천의 발이 문턱에 닿자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졌다. 낙천이 쓰러지자 길청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다가갔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낙천의 귓가에 길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세를 취할 땐 항상 디딤발을 조심해라. 네가 딛고 있는 곳을 보지 않으면 무너지긴 마련이란다.“


낙천은 눈을 떴다. 길청은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낙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천은 급하게 곰방대를 찾았지만, 곰방대는 어느새 길청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낙천은 팔을 뻗으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길청의 푸른 불꽃이 닿는 곳마다 낙천의 몸은 굳어갔다. 그녀의 눈을 마주하자 낙천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낙천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공포였다. 계승된 기억에 새겨진 무당에 대한 공포가 낙천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다친 데는 없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 길청은 낙천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그녀가 손을 떼자 그의 손목엔 짚 끈이 매여있었다. 그가 팔을 뻗자 짚 끈에 달린 금색 방울이 달려 있었다.


"금줄에 무령을 달았다. 이제 나는 너를 해치지 못해. 물론 너도 나를 해치지 못하고.“


길청의 단호한 말투에 낙천은 그 자리에 굳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길청의 허락 없이는 손끝에도 닿을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이라는 것을 느꼈다.


”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는 지 알려주겠니? 무당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구나.“


백골 놈들의 구호를 알고 있다는 건 전쟁 소식을 전해 준 누군가가 이향에 왔다는 뜻이었다. 길청의 물음에 낙천은 그녀가 쥐고 있는 곰방대를 가리켰다.


"거기에 기록되어 있었어요. 문 도깨비 가문의 역사부터 바깥세상까지 모든 것들 모두가 적혀 있어요.”


길청은 곰방대를 살펴봤다. 곰방대 끝의 연통엔 빼곡하게 서하문자가 쓰여 있었다. 설대를 따라 이어지는 서하문자는 물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기억 기록 장치구나. 이 정도로 복잡하게 생긴 건 처음 보기는 하지만.‘


길청도 이 장치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물건에 기억을 새겨 기억을 계승시키는 도깨비들의 주술은 큰 도깨비굴이나 전쟁터에 하나 쯤은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복잡하게 문자들을 덧씌워져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분명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기억이 이 안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었다.


“도깨비와 인간들의 시체가 쌓여있는 모습도요. 모두 바깥세상에서 저희 가문에서 온 도깨비들에게 건네준 기억이에요.”


"이게 너희 가문의 역사가 담긴 거면, 나의 무구처럼 이건 너한테 소중한 거겠구나?“


낙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청은 그에게 곰방대를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길청은 아까 전 이걸 부러트리지 않은 자신의 인내심에 뿌듯해했다.


"다시 너한테 줄 테니 어떻게 기억을 읽는지 보여주렴. 이걸 다시 나에게 겨누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그는 바닥에 곰방대를 올려두고 입에 물었다. 그가 숨을 깊게 내쉬자 청동으로 만들어진 설대에 새겨진 문양에 붉은빛이 피어올랐다. 검붉은 연기가 진득하게 피어오르더니 길청과 낙천의 주위를 감쌌다. 감싸 오른 연기 속에서 누군지 분간할 수 없는 여러 명의 비명과 피비린내, 시체 썩는 냄새가 흐릿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형태를 분간할 수 없는 언덕 위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언덕에 튀어나온 손과 다리로 그것이 무수히 많은 시체가 쌓여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덕 위에 어떤 영체가 서 있었다.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던 낙천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붉은 연기는 다시 곰방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팔전에서 왔던 바퀴 도깨비가 어르신께 보여줬던 기억이에요. 다른 기억에서도 모두 무당이 도깨비를 죽이고 있었어요. 모두 눈에 푸른 불꽃을 한 무당들이었어요.“


의식이 끝난 낙천이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아직 기억 속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길청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이건 옛날 일이란다. 지금 도계에선 사람과 도깨비가 싸우지 않기로 했어.“


길청의 말을 들은 낙천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그게 가능해요?“


평화 협정을 맺기 전 조정에 불려가서 받은 질문을 꼬마 도깨비의 입에서 다시 들을 줄은 몰랐다. 길청은 그때 했던 대답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도계엔 아직 문제가 남아 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선 문 도깨비가 필요해.“


길청은 낙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그래서 너는 뭐지? 왜 문 도깨비의 본가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체이면서 왜 문 도깨비가 아니라고 하는 거야?“


길청의 물음에 낙천은 깊은 한숨으로 답했다.


"도움을 청하기엔 너무 늦으셨습니다. 이제 여긴 아무것도 안 남아 있거든요. 모든 문 도깨비가 전쟁을 나갔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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