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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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dguszza
그림/삽화
더티너디
작품등록일 :
2024.07.1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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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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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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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남겨진 도깨비-6

DUMMY

8

낙천은 발걸음이 엉키려고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다잡았다. 그의 발은 쉼 없이 달음박질하고 싶은데 그의 손에 매달린 객이 걸음을 늦춘다. 그는 자신이 말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길청을 잡아당기고 있다는 걸 잊었다. 길청이 할 수 있는 것은 뒤늦게 낙천의 걸음을 밟아가는 것밖에 없었다. 둘은 뛰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길청은 그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낙천이 길을 못 찾을 리 없었다. 이곳은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었고 대부분 시간을 보낸 곳이었다. 문 대부분이 닫혀 있을 때 그가 이곳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문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이 습관은 남아 있었다.


"도착했어요. 모든 지식이 담긴 저희 서재예요!“


그들이 멈춰선 곳은 단출한 방이었다. 도착하기 전에 스쳐 지나갔던 방들에는 용, 모란, 대나무 등의 여러 그림이 방 위쪽에 새겨져 있거나 그림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 방에는 아무런 그림이나 조각도 없었다. 얼기설기 짜 맞춘 듯한 벽과 위에 달린 창살 모두 아무런 칠도 하지 않은 나무로 이뤄져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본다면 버려진 판자로 급하게 지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서재를 이렇게 형편없이 만들었다고?'


길청은 속으로 말을 삼키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부분 명문가에는 자신만의 서재가 있다. 가문에 쌓인 지식이 곧 독자적인 도술이 되고 도술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시대였다. 집에서 서재는 가문의 힘을 나타내는 상징이자 권위를 상징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서재와 안에 담긴 책들을 살펴보면 이 가문이 과시적인지, 겸손한 척하는 야심가인지 판단할 수 있었다. 수많은 서재를 봤던 길청에게도 이 정도로 허름한 서재는 처음이었다.


'도깨비들은 주술을 계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애초에 물건을 통해 기억을 후손에게 전승할 수 있으니.‘


참 부러운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전쟁 때 도깨비 주술의 공통적인 파훼법을 개발하기 위해 도계의 내로라하는 무당과 도사들이 머리를 맞댄 적이 있었다. 그 연구의 결론은 천수관음의 손을 모두 맞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깨비들에겐 각자 자기 집안만의 독자적인 주술이 있었고 그 수많은 변주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도계가 주목했던 연구의 충격적인 결과와 전쟁 때의 기억이 뒤섞여 '도깨비 주술은 신묘하고 이치를 알 수 없는 괴이한 것이다.'라는 경외가 포함된 두려움이 퍼졌다.


"나약한 놈들!“


그때 생각을 하니 또다시 분이 차올라 중얼거렸다.


'무당이라는 것들이 이해를 포기하고 경외에 빠져들다니.'


그녀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신묘해 보이는 것들이어도 실체가 존재하는 한 풀어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만약 세간에 알려진 대로 문 도깨비의 본가를 설화라고 치부해버렸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 했을 것이었다.


'남은 문 도깨비가 없다는 건 예상 밖이지만 상관없어. 고치기만 하면 쓸 수 있어.‘


길청은 다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세상에 내려진 신의 저주를 풀고 죽어가는 무당의 세계를 구해내는 것. 그것이 자신의 딸, 길오를 위해 그녀가 할 일이었다.


"제 손 꼭 잡으세요. 생긴 것들이 똑같아서 길을 잃기 쉽거든요. 저는 그게 좋아서 여기 있긴 했지만요.“


생각에 빠져 하염없이 걸어가던 길청은 낙천의 목소리를 듣고 주위를 살펴봤다. 허름한 외견과 다르게 방의 크기는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길청의 키를 넘는 선반에는 온갖 형태의 책과 물건들이 쌓여있고 그런 선반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지어 있었다.


"축지술이 몇 겹이나 겹쳐 있구나. 역시 문 도깨비의 본가라는 건가.“


길청은 감탄이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공간을 왜곡하여 거리를 줄이거나 늘리는 축지술은 그 유용성에 비해 거의 쓰지 않는 주술이었다. 길이가 점차 길어질수록 축지술은 쓰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해졌기 때문이었다. 기력도 많이 들어 무당 대부분은 훨씬 간결한 경공술을 썼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평생 쓸 일이 없었겠지.'


길청은 자신의 옆에서 길을 찾는 데 여념이 없는 도깨비를 바라봤다. 이 아이도 축지를 쓸 수 있으려나. 아무런 주술도 못 쓴다는 반푼이라는 건 알았지만 문 도깨비가 축지술을 못 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전쟁에서 무당 군단을 박살 냈던 대부분 진영은 문 도깨비가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전쟁에 문 도깨비들이 나타나면서 도깨비의 진영은 수많은 축지술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짜 맞춰지기 시작했다. 진영에 군단이 들어갔다면 버리고 나오는 것 따위가 훌륭한 판단이라고 치부 받던 시대였다. 동료를 구하려고 하는 시도는 군단을 전멸시킬 위험에 빠트릴 뿐이었다. 자묘 도사의 연구가 없었다면 문 도깨비의 축지술은 평생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졌을 것이었다. 무력감의 상징이었던 축지술이 이런 낡은 서재에 몇 겹이나 쌓여있는 것을 보자 길청은 헛웃음이 났다. 자신이 문 도깨비의 본가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도착했어요! 구석에 있어서 다른 도깨비들도 이게 있는지 몰랐을걸요? 저만 알고 있는 장소죠.“


걸음을 멈춘 낙천은 팔을 여러 번 뻗으며 말했다. 자신만의 성취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인 몸짓이었다. 길청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 보였다. 의무적인 보상을 준 뒤 길청은 낙천이 가리킨 곳을 살펴봤다. 그들은 어느새 이 서재의 끝에 도착해 있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벽에는 그에 맞춘 듯한 낡은 수납장이 놓여 있었다. 길청의 가슴팍까지 오는 수납장은 서재의 법칙을 따르는 듯 아무런 장식이나 칠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장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수납장 위에 놓여 있는 황동색 구조물이었다.


'혼천의가 놓여 있구나. 그래도 이놈이 엉뚱한 곳으로 안내한 건 아닌 거 같군.'


수납장은 소중하게 숨겨놓았다기보다는 구석에 내버려 놓았다는 것이 맞는 듯 보였다. 낙천은 허탈감에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붙잡고 물었다.


"수납장 안에 지도를 넣어놓은 거야?“


"수납장은 제가 못 열어요. 저기 위에 걸려 있는 그림이에요!“


낙천의 다그침에 길청은 고개를 위로 들었다. 수납장 위쪽의 벽엔 족자가 걸려 있었다. 족자는 길청의 양팔을 뻗어야지 겨우 닿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눈에 충분히 들어올 정도의 큰 크기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길청은 저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저것이 집의 구조를 나타낼 것으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자 추상화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여러 곳에서 출발한 각자의 선이 내지르고, 굽어지며, 맴돌고 휘몰아쳤다 아무런 규칙도 없이 퍼져 나갔다. 휘갈긴 글씨라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는 추측이었다.


"저게 이 집의 구조라고?“


"네, 제가 다 살펴봤거든요. 이건 사랑채, 여기까지는 안채, 이쪽은 행랑채···.“


길청은 낙천의 설명을 따라가며 다시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선에는 먹물이 퍼진 것처럼 새까만 점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낙천은 저 점들이 방이고 선들로 방들이 이어져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길청은 저렇게 어지럽게 돌아다닌 적이 없었다.


'이게 문 도깨비 본가의 도깨비집이구나.‘


길청은 축지술을 떠올리고 헛웃음을 지었다. 낙천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말이 되는 설명은 하나밖에 없었다. 집 전체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축지술이 겹쳐 있었다. 공간 자체를 왜곡하는 주술이기에 진영에 들어오면 그걸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무당을 진영에 가둬 몰살시킬 수 있었다. 길청은 여전히 방들을 설명하는데 빠져있는 낙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행히 이 아이는 도깨비 주술을 꿰뚫어 보고 이 집의 진짜 구조를 알 수 있는 거군. 어쩌면 축지술을 쓸 수도 있겠어. 그게 숨을 쉬듯 당연한 거고.‘


낙천은 길청의 눈길이 지도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길청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에 슬퍼하며 물었다.


"제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었나요?“


길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도움이 필요하겠구나. 일단 저 지도를 떼가서 보자꾸나.“


"못 떼요.“


단호한 대답이었다. 길청은 자신이 예의 없이 행동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례를 저질러서 미안하구나. 주인이 있는 집인데 멋대로 가져간다 말했어.“


"상관없어요. 어차피 부술 집인데요. 근데 저 족자가 벽에 걸려 있어서 손댈 수가 없어요."


길청은 이해할 수 없는 낙천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벽에 걸려 있으면 떼면 되는 거 아닌가. 길청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뻗었다. 하지만 족자에 손이 닿자 길청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청의 손은 한지 두께만큼의 틈을 남겨두고 족자의 앞에서 멈췄다. 분명 손을 뻗고 있었지만 멈춰 있었다. 바닥이 없는 수렁에 손을 집어넣은 듯한, 지독하도록 익숙한 감각이었다.


"엄청난 밀도의 축지술을 쌓아 올린 결계구나. 눈앞에 보여도 닿을 수 거리만큼 떨어져 있겠지. 잠시 기다려 줄 수 있니? 어딘가에라도 옮겨 그려야겠구나.“


"왜 옮겨 적어요? 이미 봤잖아요.“


"그래도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이미 머릿속에 있는데요. 정 어려우시면 마당에 제가 그려 드릴게요."


길청은 낙천을 바라봤다. 그는 길청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읽은 건 기억하는 편이구나.“


"당연하죠. 안 그러면 여기 있는 걸 어떻게 모두 기억하겠어요?“


낙천은 서재를 한 바퀴 빙글 돌며 들뜬 듯이 말했다.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의 표정이었다. 길청은 낙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래 보여도 문 도깨비다. 상식을 벗어나는 재주 하나쯤은 있겠지.'


"혹시 좀 더 도와줄 수 있겠니?“


길청이 부드럽게 물었다. 기력과 일손도 많이 부족하다. 지금 이 애를 안 쓸 이유가 없었다. 길청의 요청에 낙천은 웃으며 물었다.


"제가 해야 하는 게 뭔가요?“


"이제부터 우리는 추적꾼이 된다. 이 집안의 주술을 추적하는 거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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