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지 매니전지 헷갈린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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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흘렸어
작품등록일 :
2024.07.20 14:54
최근연재일 :
2024.08.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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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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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화

DUMMY

워라벨.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의 줄임말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켜 만족도를 올린다는 사전적 의미지만, 전생이나 현생이나 잘 지켜지지 않는다.

워크 쪽으로 매우 기울어진 불균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워크 속 라이프를 찾아야 하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현승호 AD가 보내준 오디션 곡 「사랑의 길」을 들어 보았다.


“으흠······. 좋은데?”


나름대로 감동이 밀려왔다. 잘 된 드라마 OST 답다고나 할까.


토도독. 토독, 토도도독.

날렵한 키보드 타건음과 함께하는 추가 업무의 마무리.

모레 저녁 7시 오디션 소식을 추가해서 오승민 팀장과 신세영, 한세경에게 이메일을 전달했다. 그리고 확인 요청 문자까지 넣었다.


“그러고보니, 세경 누나도 얼마 전에 OST 한 곡 부르지 않았었나······? 아, 몰랑.”


생각하기 몹시 귀찮음. 오늘 업무는 이걸로 끝이다.

디스 이스 워라벨을 외치며 냉동고를 오픈.

소고기 한 덩어리를 꺼내 설탕 푼 찬물에 던져 넣었다. 스텔라의 체력 보강을 위해 단백질이라도 먹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이이잉―

오승민 팀장의 문자다.


[ 현우야, 수고했다. 자세한 얘기는 내일 아침에 마저 하자. ]


잠시 뒤 폰 벨소리가 울렸다.


♬ Reject, 날 거부해도, ♬ Reject, 난 멈추지 않아!


“응. 세영아.”

-매니저님! 저 「푸른바다」 OST 오디션 봐요?


수화기 너머로 지원이와 유진이의 꺅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응, 내일 우리 녹음 마치고 한세경 쌤한테 봐 달라고 해야지.”

-2집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에요?

“그냥, 운 좋게 아는 분이 소개해 준 거야. 노래 좀 들으면서 쉬고 내일 봐.”

-네, 매니저님.


전화를 끊자마자 또다시 벨소리가 울렸다.


♬ Reject, 날 거부해도, ♬ Reject, 난 멈추지 않아!


한세경이었다.


“네, 세경 누나.”

-현우 동생, 「푸른바다」 OST는 또 어떻게 연결한 거야? 나 7화의 「그 바다에서」 불렀던 거 알지?


기억났다. 엄청나게 슬픈 곡이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잘됐다. 그쪽 음악감독과 작업한 경험이 있으니 더 쉽게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네, 그래서 그런데, 누나가 세영이 좀 봐주실 수 있나요?”

-누나를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닌지 몰라? 음악감독님하고 진 PD님 성향을 아니까 참고할 부분은 알려줄게. 나머지는 세영이 몫이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럼, 내일 10시에 봐요. 고마워요, 누나.”


* * *


변함없이 아침 운동과 샤워를 마쳤다.

오늘은 식사 준비를 하며 손이 조금 더 바빴다.

압력솥에 잡내 제거용 향신채를 썰어 넣고 쇠고기를 덩어리째 삶았다.


치익. 칙. 칙. 칙!

헤드 뱅잉 중인 압력추를 살피며 노른자가 흐를 정도로 반숙한 달걀 8개를 찬물에 식혔다.


치이이이익――

쇠고기 덩어리도 솥에서 꺼내 한 김 식히고 얼음팩으로 차갑게 만들었다.

식사를 마친 뒤, 평소와 다름없이 수트를 입고 향수를 췩췩 뿌렸다.


바로 스텔라의 숙소로 출근했다.


띠디띠띠띡. 즈르르 철컥.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스스한 머리에 키티 잠옷을 입은 제이즈와 눈이 마주쳤다.


“굿 모닝. 제이즈.”

“어······? 매니저 오빠, 좋은 아침.”


방문이 빼꼼 열리더니 김지원이 와락 튀어나왔다. 볼에는 배게 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매니저 옵빠! 좋은 아침이에요. 헤헤헷.”

“웅냥~ 매니저 아저씨······.”


김지원을 뒤따라 나온 최유진은 아직도 눈을 감고 있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채 신세영이 나왔다.


“매니저님, 오셨어요? 아침은요?”

“당연히 먹고 왔지. 다들 아침 안 먹었지?”

“넹~”


수트 상의를 벗어 놓고 셔츠를 걷어 올렸다.


“오올~ 매니저 옵빠, 전완근 대박!”

“매니저님, 뭐 하시려고요?”

“······?”

“웅냥~ 쿠울······.”


냉장고를 열고 스캔했다.

필요한 재료는 있는 대로 그때그때 가감 또는 대체하는 거라고 외식업계의 대부이자 너튜버 백종연 선생님이 그러셨다.


양파와 엔초비, 그린올리브는 생존. 오리엔탈 드레싱은 유통기한이 며칠 남지 않았다. 레몬은 사망한 지 이미 오래. 음식물쓰레기 봉투로 이동시켰다.

푸른곰팡이에 정복당한 레몬을 보며 제이즈가 중얼거렸다.


“그거······ 버리려고 했던 건데.”

“괜찮아. 지금 버렸으니까. 그리고, 다들 뭘 보고 있어. 얼른 준비들 해야지. 오늘 레코딩하러 가야 하잖아?”

“넹~”


힐끗거리며 4명이 슬쩍 흩어졌다.


견과류 믹스 소포장 4개도 함께 꺼냈다.

샐러드를 꺼내 접시 4개에 올렸다. 곁눈질로 쳐다보는 김지원의 눈에 실망감이 가득하다.

걱정 마라, 맛있게 해 줄게.


사아악, 사악. 서걱. 서걱.

삶아온 쇠고기를 얇게 썰어서 싱싱한 샐러드 위에 고루 흩었다. 그리고,


타다다닥. 다다다닥.

양파와 그린올리브, 엔초비를 다져서 샐러드에 고루 올린 뒤, 반숙 달걀 껍데기를 벗겨 반으로 쪼개 놓고 오리엔탈 드레싱을 뿌렸다.


콰광. 쾅. 타다다당.

지퍼백에 쏟아 넣은 견과류 믹스를 칼자루로 두들겼다. 적당히 먹기 좋게 부서진 견과류를 샐러드 접시에 솔솔 뿌렸다. 끝내주는 식감이 나올 거다.

레몬즙까지 살짝 올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백 선생님 왈, 없으면 없는 대로였다.


“얘들아, 오늘의 건강식! 지중해풍의 쇠고기 샐러드다. 먹자.”


“우오오~ 고기다 고기!”

“잘 먹겠습니다.”

“고기······ 오랜만.”

“드디어 고기에요!”


음······ 회사에서 애들을 굶긴 줄.

와구와구 맛있게 먹는 스텔라를 보니 마음이 다 흐뭇했다.

건강은 젊었을 때부터 챙겨야 하는 거다.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인생에 있어서 돈은 잃어도 벌 수 있지만, 건강은 잃으면 크리티컬 데미지 먹는 셈이다.

이건 정말 암 걸려서 한번 죽어보면 알 수 있는 PTSD 같은 거다.


달그락. 다그락. 바악 박.

접시 긁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얘들아, 접시는 담가 놓고. 준비 빨리 해서 내려와.”

“넹~”


대답은 잘 한다. 빨리빨리를 주문해 놓고 차로 내려왔다.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우르르 내려와 차에 탔다.


“지원이, 제이즈, 세영이, 유진이······ 다 탔네. 벨트 매고.”

“넹~”


코드아트의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밴 하나가 뒤따라 들어왔다. 한세경이었다.


“세경 누나,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 굿 모닝. 얘들아, 아침은 잘 챙겨 먹었어?”

“넹~, 오늘은 매니저 옵빠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줬어요.”


한세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리하는 매니저는 듣도 보도 못했을 테니까.


“뭐야? 에이스는 매니저가 요리도 직접 해 줘?”

“아하하······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건강한 식생활을 추구하는 편이라서요.”

“건강한 식생활? 현우 동생은 가끔 애 늙은이 같을 때가 있어.”


이 누나도 은근히 예리한 구석이 있다. 예술을 하는 인간들이라 그런가? 쓸데없는 촉이 발달해 있나 보다.

김지원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쌤. 옵빠가 가끔 큰아빠 같은 말을 해요. 충격적임.”

“시골집······ 할아버지.”


얘들은 그냥 나 놀리는 재미다.

말을 돌리며 코드아트의 스튜디오로 양몰이 하듯 몰아넣었다.


“자자, 고객님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스튜디오로 들어가시죠.”


벽면 장식장에는 안경식 명인의 손길로 다시 태어난 한정판 촙파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장식장에는 귀멸의 톱날 뾰족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었다.


코드아트가 얼마나 좋아했을지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어쩌면 그래서 스텔라의 2집 인스트루멘탈 작업이 더 빨리 끝났을지도······.

복도 끝 스튜디오에서 코드아트가 트레이드 마크인 웃음소리를 흘리며 반겼다.


“우흐흐흐흣. 어서들 오세요. 다들 앉으시고 한 분씩 들어갈게요.”


저 웃음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뭐, 그래도 실력은 좋으니까.

코드아트의 주도하에 레코딩이 시작 되었고, 한세경도 코드아트의 디렉팅을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더니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인다.


“괜히 국내 TOP 3라고 하는 게 아니었나 봐. 진짜 잘하는데?”

“누나도 국내 TOP 3 올라운더 거든요? 최고의 보컬, 랩 트레이너.”

“아이~ 얘는 뭐래?”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던 한세경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칭찬은 한세경도 손사래 춤 정도는 추게 만드나 보다.


「Tonight」의 편곡 버전은 금세 레코딩이 끝났다. 코드아트의 신들린 디렉팅 탓도 있지만, 제이즈의 워낙 깔끔한 편곡 덕분이었다.

모니터링 스피커로 완곡을 듣고 나니 다들 표정이 다양해졌다. 감격도 하고 기쁘기도 한 얼굴이다.


“프로듀서님, 대박 머쪄요. 넘 좋음.”

“프로듀서님······ 최고!”


“우흐흐흐흣. 요기까지는 생각한 대로 잘 나왔어요. 「Reject」는 점심 먹고 레코딩 들어가죠.”


띵동, 띵동.

스튜디오의 초인종이 울렸다. 저번에 치킨도 그러더니 귀신같이 시간을 맞춰서 가져다준다. 미리 시켜뒀던 육공김밥의 야채김밥과 키토김밥, 떡볶이와 어묵을 받아왔다. 레코딩하는 날, 부담 없는 분식이 안성맞춤이다.


“제로 콜라 먹고 싶다.”

“난 쿨피X······ 복숭아 맛.”

“놉!”


당연히 음료는 생략. 탄산이라도 먹어봐라. 레코딩할 때 드래곤 브레스 내뿜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코드아트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하나씩 나눠줬다.


“오늘은 무적권 탄산 안 됩니다.”

“히잉~”


그렇게 점심 식사가 끝나고 30분 정도 휴식이 끝났다. 한세경은 이렇게 많은 피규어를 처음 보는지 박물관 온 사람처럼 구경했다.


“이게 유명한 애니메이션 「원피스트」의 주인공 로피에요. 얘는 우섭, 얘는 졸로구요. 아, 이 여자요? 나미에라고 항해사죠.”

“현우 동생, 여자 친구 없지?”

“네? 그건 왜······?”

“아니, 그럴 거 같아서.”

“······.”


음······ 열심히 알려주고 패배한 거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코드아트가 오후 일정의 시작을 알렸다.


“다들 모여주세요. 「Reject」를 모두 레코딩 한 뒤에 인트로 부분만 따로 넣을까 해요. 우리 천재 작곡자 래퍼 제이즈, 먼저 부스로.”

“네······ 프로듀서님.”


부스에 들어간 제이즈의 랩이 터져 나왔다. 고막에 때려 박히는 딕션과 찰진 라임. 노력했지만, 사회에서 거부당한 소수의 아픔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느껴지는 슬픔

-세상이 내게 던진 차가운 거짓말의 물음

-사회는 나를 거부해, 마치 잘못된 덫과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건 빈손의 결과

-길을 잃은 나에게 남은 건 오직 분노

-그래서 난 외쳐, 나의 삶을 위한 격노


뿌이 뿌이 뿌이―!

살짝 올드스쿨의 냄새가 나긴 했지만, 국내 여성 래퍼로서 이 정도 퀄은 아무나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랩을 들은 한세경이 손뼉을 치다가 양손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본 제이즈가 환하게 웃었다.


“제이즈, 말할 때 하고 랩 할 때하고 다른 사람 같아요. 멋졌습니다. 나와도 돼요. 우흐흐흐흣.”

“네······ 프로듀서님.”

“다음은 메인보컬 신세영, 들어가세요.”

“네, 프로듀서님.”


신세영이 보컬 부분을 시원하게 질러댔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막힌 곳이 없었다. 코드아트와 한세경 둘 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 Reject, 날 거부해도, ♬ Reject, 난 멈추지 않아!

-♬ Reject, society의 규칙, ♬ 노력이 배신하지만 포기하지 않아

-♬ Reject, 우리가 만든 희망, ♬ 세상에 외쳐, 우리의 존재를 알려


찢었다! 한세경의 가르침으로 신세영이 신세영 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게 어울렸다. 이런 인재를 왜 샤이닝퀸즈에서 뺀 건지. 스텔라 입장에서는 천만다행, 샤이닝퀸즈에게는 완전불행.

코드아트가 신세영을 불러냈다.


“신세영, 너무 잘했어요. 나와도 돼요.”


부스에서 나온 신세영이 꾸벅 숙여서 인사했다.


“프로듀서님 감사해요. 세경 언니, 가르쳐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매니저님, 이렇게 노래 부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서 너무 감사해요. 정말요.”


한세경이 웃으며 신세영을 놀렸다.


“세영아, 레코딩하고 나와서 너무 감격한 거 아냐? 상이라도 받으면 기절하는 건가? 푸후훗.”

“아! 언니~”


코드아트의 디렉팅에 따라 김지원과 최유진도 무사히 레코딩을 마쳤다. 완곡을 다 들은 후 한세경과 코드아트가 눈빛을 교환했다.

한세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그렇죠?”

“네, 인트로가 아쉬워요. Reject된 소수의 목소리가 있으면 더 감동할 것 같거든요. 한숨 소리와 나레이션 한 문장인데······ 일단 트랙 잡아 놓고 제이즈 먼저 가보죠.”

“네······? 제가요?”

“그럼, 누가요?”


코드아트가 장난 스럽게 한마디 툭 던지자 제이즈가 깜짝 놀랬다.


“네에······?”

“우흐흐흐흣. 농담이고 제이즈, 부스로.”

“네······.”


제이즈가 부스 안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뭘 시키려고 하는 건지······.

코드아트가 지시했다.


“한숨을 크게 내쉬세요. 세상이 끝나고 10분 뒤에 죽어간다는 느낌으로요. 나레이션은 ‘여기까지인가?’ 한마디면 됩니다. 하나 둘 셋!”


제이즈가 한숨을 크게 쉬며 나레이션을 뱉어냈다.


“후우우―― 여기까···지인가?”

“다시.”

“후우우······ 여기까지······인가?”

“다시.”


몇 번을 반복하다가 제이즈가 부스에서 나왔다. 뭔가 조금 아쉬운 느낌이랄까?

김지원이 들어갔지만,


“하아앙― 여기까지인강?”

“그만.”

아예 꽝이다. 한숨부터 너무 밝고 해맑다.


최유진은 아이들 한숨 소리 같아서 너무 귀여워서 기각.

신세영의 한숨 소리는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여기까지였다. 나레이션이 매우 어색하다.

코드아트가 너무 아쉬워했다.


“정말 아쉽네요. 몇 번 더해서 기계로 만져볼까요?”

“그러게요. 정말 나라도 괜찮으면 해 주고 싶다. 이 인트로가 들어가야 곡이 완벽하게 살아날 텐데.”


한세경도 아쉬워했다.

나도 아쉽다. 내일 「푸른바다」 OST 오디션 곡을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게 너무 아쉬워서 저절로 한숨이 났다. 한세경에게 아쉬움을 담아 한마디 건넸다.


“하아아―― 연습 시간이 점점 줄어드네요?”


그때, 갑자기 코드아트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어?!”

“왜요? 무슨 일이에요?”

“매니저님, 부스로 들어가서 조금 전처럼 한번 해 주세요. 너무 잘 어울려요.”

“네에······? 제가요?”

“네!”

“왜요?”

“한숨 소리가 마치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둔 사람 같이 처절했어요. 그런 느낌 너무 좋아요. 매니저님 목소리도 좋으니 나레이션까지 한번 해 주세요.”

“음······.”


코드아트도 매우 날카로운 것 같았다. 주변에 조심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마치 전생의 내 모습을 살펴보고 온 것 같았다. 하여튼 예술하는 인간들이란······.


“현우 동생. 한번 해 봐. 노래도 아니고 한숨 쉬고 말 한마디잖아. 내가 듣기에도 현우 동생의 목소리는 좋은 편이야.”

“아, 세경 누나까지 왜 그래요?”


이번에는 스텔라 멤버들까지 다 나섰다.


“매니저 옵빠, 함 해봐요. 스텔라의 객원 멤버 차현우! 짜잔~”

“매니저님, 도전해 보세요.”

“매니저 오빠, ······믿는다.”

“매니저 아저씨, 도와줘요.”


아, 진짜!

유진이의 도와줘요 때문에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다. 전생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미안한 마음을 다시 쿡 쑤셨다.

쪽팔리긴 하지만, 이건 잠시일 뿐이다. 내가 맡은 스텔라를 위한 일이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좋아요. 뭐, 노래도 아니고 랩도 아닌데. 함 해볼게요. 대신 기대는 하지 마세요.”


과감하게 부스로 들어갔다.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 앞에 섰다. 괜히 떨렸다. 코드아트의 목소리가 헤드폰으로 흘러나왔다.


-차 매니저님, 잘 들리시죠? 편하게 하세요. 연극 하신다고 생각하시고요. 나는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어요.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크게 내쉬세요.


후회? 나 그거 많이 가지고 회귀한 사람이야. 왜 이래!

이것만큼은 진짜 자신있게 할 수 있다. 췌장암 4기를 선고받고 죽어가던 그 기억.

깊은 한숨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후우우―――”

-그레이트! 한 번 더 다른 버전으로요.


내 손으로 해체한 스텔라의 김지원과 제이즈. 그때는 이미 세상을 등졌던 최유진과 문서율. 손 놓고 바라만 봤던 신동욱. 그리고 도구였던 다른 배우와 가수들······.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되돌릴 수 없는 그 마음을 기억해 냈다. 땅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바로 이 느낌.


“하아아―――”

-엑설런트! 끝내줍니다. 정말 세상 무너진 거 같아요. 한숨은 여기까지 갈게요.


응? 뭐지. 두 번 만에 끝나다니. 내가 한숨을 이렇게 잘 쉬었나 싶었다. 어쨌든 도움이 됐다면 다행.


-이번엔 나레이션입니다. 여기까지인가.

“여기 까지인가?”

-굿! 다른 버전으로요.

“여기까지 인가?”

-그레이트에요. 한 번 더!

“여기까지인가?”

-엑설런트입니다. 나와도 돼요. 차 매니저님.


부스를 열고나고자 다들 잘했다며 난리다.

코드아트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차 매니저님, 엑설런트! 저 잠시 마무리 좀 할게요.”

“오올~ 현우 동생, 좀 치는데? 잘 땄어.”


한세경도 웃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스텔라는 뭐, 항상 좋게만 보는 거 같다.


“매니저 옵빠, 정말 지친 사람 같았어요. 연기력 대박!”

“매니저님, 생각보다 목소리가 좋아요.”

“매니저 오빠······ 진짜 힘든 거······ 아니죠?”

“매니저 아저씨, 잘 도와줄 걸로 믿었어요. 헤헤.”


“아하하······ 그래.”


아무튼 잘 됐다니 다행이다. 잠시 짬이 났으니, 내일의 일을 신경 쓸 타이밍이다.


“세경 누나, 코드아트님 마무리하는 동안 세영이 「푸른바다」 OST 오디션 곡 좀 봐주세요.”

“현우 동생, 누나를 너무 알차게 부려먹는 거 아냐?”

“에이~ 누나 동생 좋다는 게 뭔가요. 이럴 때 써먹어야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한세경이 이내 피식거리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푸후훗, 지금부터 봐주고 내일도 봐줄 테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 마.”

“네, 감사해요. 누나.”

“세영아, 이리 와. 이 곡은 말이야······.”


그렇게 내일 있을 OST 오디션까지 준비하며 하루가 알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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