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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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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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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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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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DUMMY

바실리쿠스는 아이에게 밥을 먹인 뒤에 다시 성내의 모든 외양간을 돌았다. 그곳에서 바실리쿠스는 양이며 염소며 말들, 당나귀며 개며 백작부인의 애완 고양이에 사냥매같은 녀석들을 모두 보여준 뒤에 소중한 가족들이니 해치지 말라고 한 뒤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지금 요놈이 짓고있는 표정이 무슨 표정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고개는 끄덕이고 있으니 이쯤하면 됐구나 싶었다.



바실리쿠스는 돼지우리로 돌아와 자리에 담요를 깔았다. 그리고 대장간에서 빌려온 불씨로 바깥마당에 군불을 피웠다. 식사시간을 앞두고 늑대새끼한테 오늘부터 너는 여기서 나와 함께 잘 거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러자 늑대새끼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왜 돼지우리에서 자요?"



바실리쿠스는 거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난 완전히 사람과 같은 건 아니란다. 나도 너처럼 변신술사거든."



아이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태양은 언덕 위에 솟은 성의 뒷자락으로 왠 가마우지 떼와 함께 씰룩씰룩 내려가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그 언덕길쪽에서 돼지여물죽 재료들이 수레에 가득 실린 채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리로 달려갔다. 수레를 낑낑거리며 가져온 뒤에 그것을 커다란 솥에다 넣고 천천히 뭉근하게 끓였다. 여물죽이 완성되었을 때 하늘 위로 어스름밤이 지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여물죽을 다시 수레에다 싣고 돼지우리로 들어가 구유통에 한 국자 한 국자 정성스럽게 여물죽을 펐다. 민토네와 말레이카는 한창 꿈을 꾸다가 바실리쿠스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바실리쿠스."

"주님의 축복이요, 오빠. 오늘 밥도 따뜻해보이네."



그러면서 그들은 구유통으로 저벅저벅 걸어와 저녁을 맛있게 냠냠 먹기 시작했다. 그들이 먹는 소리에 빈부미도 깨어나 아무말 없이 다가왔다. 그는 구유통에 코를 박고 한동안 먹더니 누구보다 빠르게 가장 많은 양을 배에다 채워넣고는 겨울잠 자러 가는 곰처럼 구석으로 들어가 디비 잤다. 그리고 잠시 늑대아이에게 흐리멍덩한 시선을 주었는데 누군지 알아보는 눈치는 아니었다.



바실리쿠스는 배급을 마치고 자기들 그릇을 두 개 퍼서 식탁 위에 놓고는 돼지 울타리 앞에 가 섰다. 그는 늑대새끼도 자기 옆에 서게 하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저녁기도를 올렸다.



"전능하신 하느님, 오늘도 덕분으로 따뜻한 잠자리와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뚱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날까지 이런 하루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달콤한 것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멘."



바실리쿠스는 식탁에 앉아 돼지들이 여물 먹는 소리와 함께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늑대꼬마도 그를 따라서 숟가락을 들었다.



그 때 우리의 문이 벌컥 열렸다. 바실리쿠스는 뭔 일인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게랙탱이 이쪽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식사시간에 기분이 좀 불쾌해졌다. 무엇보다 게랙탱은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된 외지인이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질 이유는 충분했지만, 그렇다고 같은 사람끼리 대놓고 내색을 할 수도 없는 꼴이었다. 게랙탱이 바실리쿠스를 보고는 대뜸 말했다.



"야, 바실리쿠스, 너 왜 그걸 먹고 있냐?"



바실리쿠스는 치부를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황급히 그릇을 아래로 숨겨없앴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자기랑 똑같은 걸 먹고 있는 늑대새끼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게랙탱은 보자기에 싸인 그릇을 잘 보이게 들어올리며 밤부크 억양이 섞인 고프라크어로 말했다.



"영주님께서 네 밥을 이렇게 가져다주라고 하셨어. 그런데 너 왜 거기서 돼지들 먹이를 먹고 있는 거야?"

"밥을 가져다주러 오신 거면 그건 감사해요. 편한 데 놓고 가시면 돼요."

"그건 안되겠는걸. 여기에 내 밥도 같이 들어있거든. 너네들 먹을 걸 전해주고 나는 또 다른 데 가서 먹는 건 꼴이 안 살잖니. 여기선 좀 그렇고 밖에 불도 피워놨던데 거기 가서 먹자구."



바실리쿠스는 그러자고 했다. 그는 늑대새끼의 손에서 그릇을 놓게 한 뒤 나른한 몸을 이끌고 게랙탱과 함께 불가로 걸어갔다. 불꽃은 영웅의 마지막 칼날처럼 괴수같은 밤의 어둠과 소박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불 곁에 모여앉아 보자기를 풀었다. 그곳에는 소시지와 빵과 치즈와 말린 과일이 담겨있었다. 걸쭉한 맥주와 소박한 고기찌개는 뚜껑 삼은 면포를 흠뻑 적셔놓고 있었다. 면포를 걷어내자 국물이 뚜욱 뚝 떨어졌다. 바실리쿠스는 아이에게 물 탄 포도주 약간을 허락했다. 게랙탱은 자기 고향땅의 언어로 저녁기도를 마치고는 바실리쿠스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고 바실리쿠스는 꼬마를 돼지우리에서 자게 한 뒤 불에 나뭇가지를 더 던져놓고 게랙탱과 담소를 나누었다. 얼마 뒤에 그들은 각자의 주먹으로 서로의 얼굴을 사정없이 구타한 뒤에 헤어지게 되었다. 그 전말은 이러하다.



게랙탱은 따뜻하고 배도 부르겠다 자기 고향땅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5월의 밤은 가을의 낮같았다. 고향땅의 자연과 교회와 마을, 도시와 가축의 울음소리며 물 흐르는 소리와 풀벌레가 우는 소리, 지방에 따라 풀벌레는 다른 소리를 낸다고도 했다. 이야기는 취기에 더해 차츰 여자 이야기로 나아갔다. 게랙탱은 고향의 여자들을 몹시 그리워했다.



"아아, 젠장, 여자가 그리워, 바실리쿠스! 너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니?"

"아니요."

"그렇다면 너는 정말 천하에 바보가 아닐 수 없어!"



게랙탱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때부터 바실리쿠스는 심기가 많이 불편했다. 게랙탱은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아아, 그렇지만 나도 여기 와서는 전혀 사랑을 해본 적이 없네. 어디 하늘에서 참한 여자 하나 떨어졌으면 좋겠다. 진탕 놀다가 시간 되면 다시 날아갔으면 좋겠어.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천사였던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바실리쿠스?"



바실리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게랙탱은 음흉한 얼굴을 한 채 바실리쿠스에게 그가 하는 일들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그는 바실리쿠스의 어깨를 힘있게 쥐면서 본론을 꺼냈다.



"바실리쿠스, 너 하룻밤만 나한테 돼지우리를 맡겨보는 건 어떠냐?"



바실리쿠스는 하도 꺼림칙해서 되물었다.



"왜요?"

"왜요는 무슨 임마... 알잖아. 응? 너도 가끔 외로울 때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을 거 아냐?" 게랙탱이 바실리쿠스의 옆구리를 툭툭 쳐댔다. "이 녀석아, 이 벙탕구(원래는 당나귀가 풀잎을 씹을 때 입술을 벌렁거리는 모양을 의미하지만 밤부크 방언으로 내숭쟁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야, 지금 누굴 속이려고."



바실리쿠스는 상대해주기 싫었고 또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은 짐작이 갔다. 그는 탁탁 타오르는 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꾸했다.



"저는 당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저는 천성이 아둔한 놈이라 직접 입으로 듣지 않는 한 몰라요. 그냥 말해봐요. 뭔데요."



그러자 게랙탱은 음탕한 웃음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자 바실리쿠스에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바실리쿠스의 두 눈이 점점 커졌다. 그가 가레랑 영주의 지방으로 이주해 온 몇달 전의 그날부터 게랙탱의 불쾌한 평판들을 소문과 귓동냥으로 심심치 않게 들어왔던 터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바실리쿠스가 쿠미누스의 심부름으로 대장장이에게 갔을 때, 그가 했던 말이 있다.



"저기 저 타지에서 왔다는 게랙탱인가 뭔가 하는 놈이랑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아. 놈이 왔다고 하는 그 밤부크라는 데는 다리 달린 뱀이 걸어다니고 또 양들은 다리가 세 개 에다 아주까리를 씹어먹고 다녀서 그 젖통에 나쁜 독성이 스며든다고 하질 않나. 거기 사람들은 천성이 게으르고 사기꾼 기질이 있다는 말을 내 똑똑히 들은 바가 있어! 거기다 놈들은 짐승과 사람을 구분 못 하고 그 못된 짓을 마구 해댄다고."

"하지만요, 불루무스 아저씨, 그런 건 모두 소문이고요. 아무도 게랙탱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는 말은 한 적이 없잖아요?"



불루무스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번 겨울, 성모강림축일 때, 녀석이 혼자 염소우리로 들어가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뭐 심심하면 양이나 염소 구경하러 갈 수도 있죠."



불루무스는 말없이 바실리쿠스를 쳐다보았다. 바실리쿠스는 대경실색했다.



"아이, 설마요!"

"설마가 사람잡아, 이 놈아! 너 지금 내가 허풍떤다고 생각하지? 그때 외양간에서 염소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 창문으로는 허연 김이 멈추지 않고 솟아나왔지. 그래서 유심히 지켜봤더니, 놈이 아주 개운하다는 얼굴로 우리에서 나오는 거야!"



불루무스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이제 알겠지? 저 놈은 짐승이랑 사랑하는 미친자식이야! 한 번은 실수로 그렇다 칠 수 있어. 그런데 두 번은...."

"하느님 맙소사, 두 번이요?"

"두 번이든 세 번이든! 확실한 건 저 놈이 아주 거기에 맛을 들여버렸다는 거야. 기회 되면 한 번 봐봐. 놈이 자기 사타구니를 긁나 안 긁나!"



사실 아까부터 게랙탱은 아주 가렵다는 듯이 자기 사타구니를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그가 귓속말로 하는 말들을 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신기하게도 그의 주먹이 게랙탱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지금 여기서 이 놈을 죽인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게 되어 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게랙탱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도 바닥에 깔린 채로 바실리쿠스의 얼굴을 향해 양 주먹을 마구 올려붙였다. 두 사내는 한데 뒤엉켜 구르면서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고 음식이 담겼던 가재도구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의 사그라든 불티 위를 한 번 굴렀고, 그 바람에 바실리쿠스의 윗도리가 그슬려 어깨죽지가 드러났다.



바깥의 소란에 돼지들이 불안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두 사내가 악 지르는 소리에 성 안 사람들도 자다 말고 바깥에 저게 무슨 소리일까 침대 맡 촛불을 켰다.



게랙탱은 바실리쿠스보다 영리하고 덩치도 컸다.



그리고 바실리쿠스는 좀 느리고 둔하지만 자기 몸 아끼지 않고 사는 천성이었다. 싸울 때도 한 대 때리고 두 대 맞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가 굴복할 때까지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게랙탱이 항복했을 때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그때쯤 하여 성 안의 사람들이 졸린 눈 부비며 달려와서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게랙탱은 보는 눈들이 많고 또 사람들이 그들 사이의 방패막이 되어주자 아까보다 힘을 더 내면서 바실리쿠스에게 이런저런 욕을 퍼부었다. 그래서 바실리쿠스도 사람들을 밀치고 달려들어 녀석의 얼굴을 두 번 더 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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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반딧불이가 많은 숲 (1) 24.07.29 8 1 12쪽
14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7 1 11쪽
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9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7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8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10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3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1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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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7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4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8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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