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최근연재일 :
2024.08.22 20:35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680
추천수 :
26
글자수 :
426,357

작성
24.07.31 05:37
조회
6
추천
1
글자
12쪽

매춘하는 개 인간 (3)

DUMMY

사람이 다가오면 보초는 나무 문을 똑똑 두드리고 안쪽의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도록 되어있었다. 검지를 조금 구부려 표면을 두어번 살짝 때린다. 듣지 않으면 손등으로 두드리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아예 주먹으로 때려서라도 바깥의 상황을 알려야 한다.




테레사가 휴게소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보초는 아예 바싹 붙은 채로 문간을 쾅쾅 두드리고 있었다. 남자의 목걸이에 매달린 쇠십자가가 거칠게 흔들리고 오래된 돌쩌귀에서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녀석이 창을 꼬나들고 앞으로 척 내뻗으면서 '뭐하는 놈이냐?' 라고 묻기도 전에 그녀가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다.




때마침 안쪽에서 성난 사내 두 명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테레사는 재빨리 안쪽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덩치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문이 열린 곧장 마주쳤던 것이다.




테레사는 문간을 잡은 채 멈춰섰다. 그들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쳐다보았다. 병사들은 그녀가 영주의 딸인 것을 알아보았다.




"아가씨?"




두 사내 중 덩치 큰 쪽이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물었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몸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이 남자는 앞으로 쭉 뻗은 이 퉁퉁하고 단단해보이는 아랫배를 조금도 뒤로 물러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것은 그녀의 얼굴에 자그마치 세 주먹 거리까지 와있었고, 양파와 기름 냄새 너머로 희미한 민트와 비누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가 안쪽을 보려고 고개를 기울이면 이 뱃살 역시 그 방향을 따라 조금 움직였다. 그 뱃살은 옆으로 풍푸짐했기 때문에 아주 조금만 움직여도 열 여덧살 처녀 아씨의 시야를 방해하기엔 충분했다.




그보다 작은, 불안한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흘겨보고 있는 쥐처럼 생긴 남자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손톱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테레사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여긴 아가씨 같은 분들이 와서 좋을 곳이 못 됩니다. 무슨 몹쓸 꼴을 보실라고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이 그들보다 훨씬 고귀한 신분인 게 분명한데도, 어째선지 지금은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또 겁먹고 있었다. 지켜주는 사람도 없이 홀로 외간 사내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당하는 이런 상황이 그녀의 사지를 마비시켰던 것이다. 테레사는 우물거리다가 입가를 옴짝 쭈므렸다.




"내가 봤어."


"뭘 봤다는 겁니까?"


"여기 불이 켜져 있는 걸 봤다구." 테레사는 용기를 내서 고개를 위로 바짝 들었다. "여기서 대체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여기는 경비 서는 사람들이 쉬고 비 피할 때 쓰려고 만든 건물 아니었어? 그런데 어째 이 야밤에 여기 불이 훤하게 다 켜져있는데다 또 안에서는 술 먹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지?" 테레사는 일단 목소리를 높혔고 또 사내들이 가만히 있자 더 용기를 얻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일이 아니라면 내 기필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야. 나한테 걸린 걸 다행인 줄 알라구. 난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야겠어. 그러니 어서 바른대로 말해 봐!"




사내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오직 한 명 뱃살이 뚱뚱하고 덩치가 큰 사내가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은, 피곤하다거나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지 않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흔히 쓰곤 하는 하품과는 달랐다. 그것은 무언가 힘 좀 쓰는 일을 해야 할 때 준비과정으로, 심장에 기합을 넣는 것과 비슷했다.




"아니, 그래서, 지금 저희가 제대로 경비를 서고는 있는 건가 궁금하셔서 이렇게 감시하러 오셨다, 그건가요?"


"그렇지?"




테레사는 불안하게 쏘아붙였다.




"그렇다면요, 아가씨, 정말 너무하시네요. 아가씨 같은 분들은 저희같은 야간 경비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근무하는지 아셔야 합니다. 저희는 우선 낮에는 잠을 자고요, 밤에만 근무를 하니 친구도 제대로 못 만듭니다. 밤낮이 바뀌니까 사람이 피폐해지는 건 말할 것도 없구요. 다시 말해, 남들이 놀고 일하는 시간에 저희는 잠을 자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희도 놀 땐 놀아야죠. 그렇다고 근무를 게을리한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이 태평천하에 무슨 위협이 있다고 이 높다란 성 경비를 그래 삼엄하게 지켜야 한단 말입니까? 저희가 지난 일년 간 이 성벽 위에서 하루같이 근무를 서왔는데 그런 간 큰 놈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사내는 벽을 손등으로 소리나게 두드렸다. "이런 덩치를 부수려면 충차나 투석기를 가져와야 한단 말입니다. 여기까지는 제 말을 이해하시겠나요?"


"지금 이 사람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거지? 옳커니, 내가 우스워서 그런 말을 하는 게구나. 동정심에 호소하면 어물쩡 넘어갈 수 있을 줄 아는 거야, 당신!"


"전혀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아가씨." 테레사가 목소리를 높히자 덩치 큰 사내가 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되받았다. "제 이름은 깁요슨이라고 합니다. 아가씨의 아버님께서도 저를 아십니다. 저는 지난 삼 년간 가레랑 영주님을 받들면서 그분의 성을 밤낮으로 지켰습니다. 저는 이년 전 아버님께서 게레스로스를 잡으러 겐헴까지 가셨을 때에도 함께했었죠. 저의 명예와 정직함은 증명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죠?" 테레사가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아버님을 잘 섬기고 명예롭게 복무해온 사람이라면 지금 상황에 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지. 난 지금 당신들이 농땡이 피우고 있던 걸 말하는 건데?"


"바로 그 부분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일단 날이 추운데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싫어." 테레사가 딱 잘라 말했다. "난 여기 있을 거야."


"그렇다면 저도 여기 있겠습니다." 깁요슨은 나머지 두 사람에게 눈짓을 하여 그들을 초소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다 큰 어른들이 열여덧 된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건 아무래도 볼품이 없다.


이 두 남녀는 이제 어두운 성벽 위 난롯불이 켜진 초소 앞에 마주보고 섰다. 구름에 젖은 듯 성벽 위 공기가 축축해지고 짙은 흙과 나무 냄새를 쓸어오자 그들은 코끝이 안쓰러운 그 향기에 연신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깁요슨이 창대에 기대어 입을 열었다.


"가레랑 영주님께서는 아시다시피 품을 팔아주는 농부들에겐 일정량의 점심을 제공하고, 또 본인의 도구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몇달 전에 아르노캉테 수도원에서 소금을 받아오는 일꾼들을 호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때 그 수레는 영주님께서 제공하신 거였죠. 일꾼들은 돌아와 영주님께서 내려준 맥주와 고기 파이를 먹었고 말린 무화과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때가 사순절이었죠, 아마. 그 날 무슨 중요한 일에 소금이 필요했었는데 무슨 일이었는진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런 신성한 날에 땀 뻘뻘 흘려 일한 꾼들을 위해 영주님께서는 휴식과 양식을 내려주신 겁니다. 그리고 지역 사제들과의 의논 끝에 손님들을 모신다는 명목으로 사순절에 고기를 먹었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자리엔 저도 있었죠. 저는 영주님의 사람이었지만 그분께선 딱히 뭐라 하시진 않으셨습니다."




테레사는 그날을 기억했다. 그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일을 빌미로 밤까지 말싸움을 해댔다. 그 일은 그녀에게도 꽤나 충격이었다. 한동안 아버지를 쳐다볼 때 경멸을 담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 사건들은 지역 안에서 끝났고, 유아무야 넘어갔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영주님께서도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부릴 줄 아신다는 거지요. 이제 다시 저희쪽으로 돌아와봅시다. 이 초소는 아가씨 말대로 비나 눈을 피하고 피곤할 때 안에서 잠도 자고 뭄도 녹이고 하라고 만든 게 맞습니다. 예, 그렇죠. 하지만 잠도 자고 몸도 녹이고 비도 피하고 나면 좀 외로워지는 게 사람 아닙니까? 저희가 모두 성직자처럼 살 수는 없는 겁니다. 그 치들이 본인들 말을 잘 지키고 다니는가는 제쳐두어도 말이죠. 영주님께서 이 초소를 세우실 때 하셨던 말이 비 피하고 눈 피하라 이런 게 아니라 방비에 도움이 되게끔 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제 한 번 생각해보죠.




무엇이 저희 경비병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적당히 융통성 있게 초소를 사용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렇게 못살게 굴고 감시하는 것일까요?"




테레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팔짱을 낀 채 깁요슨을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가씨, 그건 그렇고 왜 이 야밤에 혼자 이런 구석을 돌아다니고 계시는 겁니까? 아버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나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남이 보면 욕할 겁니다. 저도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는군요. 아가씨, 어서 돌아가도록 하세요. 안그러면 저는 영주님에게 이 사실을 보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님께서는 아가씨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하녀와 시녀들을 벌하겠지요. 그애들이 주는 술을 너무 받아드실 필요도 없어요. 그애들은 그냥 자기들만 즐겁자고 그러는 겁니다. 아가씨 같은 분들은 그런 애들이랑은 어느정도 선을 긋고 지내셔야 해요. 그러지 못하니까 오늘 이 같은 칠칠치 못한 일들이 생기는 겁니다."




미세한 빗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 빗발을 몰고오는 폭풍의 기운은 몇 시간 전의 저녁부터 천천히 서쪽에서 동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오, 이제는 비가 오는군요." 깁요슨이 말했다. "저는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비가 오면 초소를 사용해도 되는 거였죠?"




테레사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멀어지더니 계단 밑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깁요슨은 그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한동안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리고 입김이 달밤에 흩어지는 모습에 멍을 때리다가 천천히 뒤를 돌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나뭇가지를 태우는 연기와 냄새가 망루의 큰 구멍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에 섞이며 훅 들어왔다. 깁요슨 잠시 매운 연기에 눈을 찡그렸다.




"어떻게 됐어?" 크레드켄스가 채근했다. "잘 타일러서 보냈나?"


"그래." 깁요슨이 눈앞에 손부채로 연기를 날려보내며 대답했다. "이제 걱정할 거 없어. 그냥 몇 마디 주의를 주니까 가버리더군. 귀족이래도 애는 애인가봐. 젠장, 내일이 걱정되는군. 가레랑이 내 사지를 조사버릴라 하면 어쩌지."


"그애가 날 봤을지도 몰라. 분명 날 봤어." 에릴돈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가슴이 드러난 펑퍼짐한 모피옷을 입은 채 제 걱정만을 했다. 그녀의 옷차림은 거의 헐벗었다가 급히 채워올린 모습인데, 도로 단정하게 매만질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옷차림은 갈수록 녹아내리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녀는 좁은 공간을 걸어다니면서 허벅지가 어깨의 부드러운 옷감이 아래로 조금 흘러내리면, 그냥 흘러내리게 두었다.


"내가 요 뚱뚱배로 잘 가렸어 이 여자야. 니가 그 궤짝 안에 잘 숨은 게 분명하다면 들킬 일도 없으니 안심하라고."


얼마 안 가 꼬리가 드러났고, 그녀는 화로의 열기와 서늘한 폭풍전야가 반반 섞인 초소 안에 온몸에 털이 난 나체로 서서, 바닥에 떨어진 검은색 부드러운 여우 코트를 발치에 놓고 초조하게 질질 끌고 있었다. 온몸은 냄새나는 털에 뒤덮혀 있었다. "날 봤으니까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분명해. 망할 년, 사람을 감시하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매춘하는 개 인간 (4) 24.07.31 8 1 11쪽
» 매춘하는 개 인간 (3) 24.07.31 7 1 12쪽
19 매춘하는 개 인간 (2) 24.07.30 7 1 11쪽
18 매춘하는 개 인간 (1) 24.07.30 6 1 12쪽
17 반딧불이가 많은 숲 (3) 24.07.29 4 1 11쪽
16 반딧불이가 많은 숲 (2) 24.07.29 7 1 12쪽
15 반딧불이가 많은 숲 (1) 24.07.29 7 1 12쪽
14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7 1 11쪽
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9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7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8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10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2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10 1 13쪽
7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24.07.26 8 1 11쪽
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0 1 11쪽
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7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3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8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1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