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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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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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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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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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하는 개 인간 (2)

DUMMY

그건 바실리쿠스의 종아리였다. 이 생물은 그것에 손을 가져다 댔고, 무언가 사람의 다리 같은, 아주 익숙한 촉감을 느꼈지만, 당장은 시각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두 손아귀에 꼬옥 쥔 다음, 천천히 위로 더듬어 올라갔다. 그곳은 돼지우리 옆이었고, 바로 위 벽에는 소쿠리가 걸려있었다. 조심조심 하던 게 마침내 얼굴까지 가 닿았고, 퉁퉁한 볼과 숨 쉬는 코가 만져졌다. 이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또 한 번 뒤로 펄쩍 물러났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얼어붙었다.




잠시 후, 이 사람은 누가 자기 몸을 그렇게 더듬어도 한 번 잔 잠은 깨지 않는다는 거의 확신이 들자마자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그녀의 품에는 넉넉한 담요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바실리쿠스의 몸에 얹어주고 나서 그 옆을 지나쳐 성벽 앞으로 걸어갔다. 덕분에 바실리쿠스는 이 추운 날 입이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성벽의 희뿌연 그림자들이 새벽을 틈타 소곤소곤 이상한 말들을 뇌까리고 있었다. 이 시간쯤 되면 이 세상의 모든 수도원들은 잠들고 도시는 바람보다 조용해졌다. 테레사(영주의 딸)는 적당한 건물 뒤에 숨고 주변에 누가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성벽에 가까이 다가갔다. 돌은 반듯하고 차가웠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에 지었던, 아주 튼튼하고 견고한 성벽이다. 그러니 해마다 눈비를 맞은 것도 백년은 우습다. 그 시절에는 가문이 지금보다 세가 많고 훌륭한 기사들이 많았다고 아버지는 그 시절을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리운 옛날을 추억하듯 말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 성벽에 얽힌 전설을 알려주었다. 그 시절에는 이 고장에 지금보다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었으며 성벽을 지을 때도 그들이 도와주었다고, 그들은 성주 몰래 이 두꺼운 돌벽 속에 자신들만의 마을을 세웠고 지금도 밤마다 그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다고.




테레사는 바람에 깎이고 새똥에 파인 벽의 울퉁불퉁한 부분에 귀를 대어보면서, 그런 건 잘 모르겠다고 아버지에게 대꾸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때 아버지는 굉장히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테레사는 낮에 보아두었던, 몸을 숨기기 쉬워 보이는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성벽 위로 올라가는 계단의 뒤쪽이었다. 이를 위해 미리 아까 이 부근을 청소해두었던 것이다. 바닥에 멍석까지 깔아놓고 꽤나 아늑한 공간이었다. 테레사는 벽에 등을 기대면서 이끼와 풀을 닦아두길 잘했다며 혼자 스스로를 칭찬했다.




품속에 손을 넣자 호두와 아몬드가 들어있는 주머니가 손에 들어왔다. 잘게 빻은 소금과 후추를 뿌리면서 갈색이 나도록 볶은 것을 하나씩 집어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무언가 알기 힘든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위에서 들려오는, 장화가 돌계단을 밟으면서 내려오는 소리였다. 테레사는 몸을 뒤쪽으로 더 숨겼다. 계단을 내려와 공터 앞에 선 사람은 분명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고 있어야 할 아버지의 위병이었다. 그가 있는 방향은 분명 아버지의 적들이 있는 방향인데 어떻게 자리를 벗어날 수가 있을까?




'내가 어제 잘못 보았던 게 아니었구만! 어찌 저리 파렴치한 사람이 있을까 몰라! 당신은 우리 집이랑 우리 가족들을 지켜주는 사람인데 지금 그러고 있으면 우리가 뭐가 돼? 내일 당장 아버지한테 말해서 혼꾸녕을 내주어야지! ....그런데 만약 내가 말하면 밤에 몰래 밖으로 나갔던 것도 들킬 텐데 그건 어쩌지?'




남자는 적당히 무장한 폼으로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분명 위에다 두고 왔으리라. 남자는 일부러 한숨을 쉬어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것을 구경하거나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뒷짐을 지고 한동안 제자리를 걸었다. 그러는가 하면 제자리에 쭈그려 앉아 저 먼 곳을 멀거니 쳐다보거나 코를 킁 하고 입가를 쓱 하더니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테레사는 저 남자를 쏘아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창문에서 우연히 저 모습을 보았다고 하면 어떨까? 아니야, 너무 멀어서 보이지도 않을 거야. 그럼 어쩐다? 내가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저놈을 고발할 방법이... 좋아. 이번 한번만은 봐주겠어. 하지만 다음부터는 정말 얄짤없을 줄 알라구.'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레사는 얼른 그쪽을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남자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여기까지 내려온 게 설마 나 때문인가? 저 위에서 내가 성 안을 돌아다니는 걸 보고 내려온 건가?'




남자는 그녀로부터 두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짚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재수가 없다는 혀를 끌끌 찼다.




"새끼들 제초 제대로 안했네, 이거...."




그 말에 테레사도 옆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이 있는 장소에는 개망초들이 어른의 허리만큼 올라와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듯이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갑자기 조용한 소리와 함께 한 줄기 빛이 그녀의 눈을 덮쳤다. 그녀가 다시 눈을 깝쭉 감았다가 떴을 때 남자의 손에는 단도가 들려있었다. 단단한 치즈를 잘라먹어야 하는 쇠칼의 비린내 나는 쇳빛이 눈가에 쪽 하고 다가온 것이다.




장홧발이 돌과 모래를 짓밟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자세를 바꾸어가며 거칠게 풀들을 한 움큼씩 잡아 단도로 베어내기 시작했다. 저번에 아버지가 보초를 서는 위병들에게 속에 금속을 덧댄 가죽신을 보급해야 한다고 말하던 것이 떠올랐다. 남자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것이 바닥을 밟는 금속성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조금 축축한 냄새가 났다. 비 냄새, 비 냄새가 났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분의 노(怒)인지 악(樂)인지, 태풍의 꺼먹한 기운이 요 성벽 옹졸한 구석까지 끼치고, 잘린 풀더미가 그 허공을 휙휙 날았다. 거기에 지독한 풀냄새가 섞였다. 지독한 풀 냄새.... 왜냐하면 저놈이 풀을 베어내는 족족 적당한 구석으로 던져댔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당한 구석이란 바로 지금 그녀가 숨어있는 계단의 뒤쪽이었다. 테레사는 개망초 더미를 얼굴 온몸에 뒤집어 쓰면서도 움직이면 들킬까봐 어쩌지도 못했다. 그래서 조금 성질이 난 채 계속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남자는 귀찮은 일을 끝냈다는 듯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갑자기 바지끈을 풀기 시작했다. 테레사는 눈을 크게 떴다. 마침 이 때 구름이 젖은 솜같은 달을 벗어났고, 그들이 있는 곳을 비추었다. 구름을 통과한 달빛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새까만 그늘 속에 있었지만, 사내의 모습만은 훤하게 밝히는 것이다.




하얀 줄기가 곡선을 그리며 공중을 날고 있었다. 가을날 누렇게 익고 고개를 숙이는 갈대처럼 그것은 달빛에 함빡였다. 졸졸 흐르는 소리와 함께 쪼르르 돌벽에 부딪히는 줄기는 끝에서 작은 물방울들로 힘차게 부서졌다. 그 위로 창에 찔리는 짐승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그 작은 물방울들이 볼살에 비처럼 튀는 것을 느끼며 테레사는 눈을 꼭 감고 마음 속으로 신을 찾았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아버지가 오줌싸는 모습도 본 적이 없는데요.'




남자가 방광을 모두 다 비울 때까지 그 광경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남자는 천천히 바치춤을 올리고 돌아갔다. 테레사는 얼굴에 묻은 풀들을 집어치우고 옷소매로 볼을 문질렀다. 그녀는 간신히 소리를 내는 것을 참고 있었다. 지금 소리를 낸다면 댐물이 넘치듯 아주 큰 소리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주의 딸이 몸 이곳저곳에 손을 문지르고 냄새를 맡아보며 눈가에 물을 찡그리고 있을 때, 남자는 아까 그 자리로 돌아가 옷솔기를 때거나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는 둥 목소리 내는 연습을 했다. 불현듯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시선은 한 곳으로 고정되었고, 그 방향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테레사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그 사람이 왔음을 직감했다. 남자는 한달음에 달려가 여자와 두 손을 맞잡았다. 그러더니 거칠게 껴안으면서 입과 입을 천박하게 부딪혔다.




여자 쪽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뭐라뭐라 말을 했는데 이쪽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계단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건 보였다. 테레사는 그들이 계단을 다 올라갈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렸다가 단숨에 구석을 빠져나와 위로 올라갔다.




이제 막 성벽길에 올라 걷기 시작하는 그들의 뒤통수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계단에 가슴을 바짝 대고는 네 발로 걷는 짐승처럼 올라갔다. 야밤에 새까만 옷을 둘러쓰고 그러고 있는 건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게 뭔가 싶어서 깜짝 놀랄 만큼 그 모습은 수상쩍은 데가 있었다. 사제가 봤다면 악마를 보았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십자가와 성수를 들고 쫒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어렵사리 계단 위로 도착했을 때 녀석들은 성 위에 세워놓은 작은 오두막의 문을 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먼저 들어가게 한 다음 이런저런 장난을 치면서 본인도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그녀가 알기로 저 오두막은 병사들이 추운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 쓰거나 교대 근무자가 잠시 눈을 붙일 때 쓰는 임시초소였다.




아버지가 병사들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씨로 세워올린 휴게실이 한낱 양아치 놈들의 매춘굴로 사용되고 있었다니 분노와 슬픔을 금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 때 갑자기 나무로 된 문이 벌컥 열렸다. 그쪽을 향해 조심조심 나아가던 테레사는 심장이 벌떡 뛰는 고양이처럼 계단으로 달아났다. 성벽의 요철 뒤에 숨어서 그쪽을 바라보니, 여자를 데려온 사내는 문 밖으로 거칠게 떠밀리고 있었다. 휴게실 안쪽에는 화톳불이 켜진 듯 훈훈한 불빛이 세어나왔고, 그 안에서는 사내의 비웃는 듯한 호통과 여인의 애교섞인 조소가 난잡하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바깥으로 밀려난 사내는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문 밖으로 억센 손이 밀려나와 사내를 밀어냈다. 두 명의 건장한 사내와 거기에 합세한 여인이 힘을 모아 남자를 밀치고 무언가 지시를 내리면서 문을 닫았다.




신경질적인 웃음소리가 벽을 뚫고 터져나왔다. 안에서 무슨 잔치라도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이내 잦아들었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바람결에 아주 희미한,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가 신음소리 같은 게 스멀스멀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듯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째지는 웃음과 찰싹 때리는 소리와 간지럼을 참는 큰 소리가 났다. 밀려나온 남자는 잠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자기 창을 잡고 보초를 섰다. 그건 성 밖에서 수상한 사람이 오는지 보는 게 아니라, 휴게실 쪽으로 누가 다가오면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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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매춘하는 개 인간 (3) 24.07.31 6 1 12쪽
» 매춘하는 개 인간 (2) 24.07.30 7 1 11쪽
18 매춘하는 개 인간 (1) 24.07.30 6 1 12쪽
17 반딧불이가 많은 숲 (3) 24.07.29 4 1 11쪽
16 반딧불이가 많은 숲 (2) 24.07.29 7 1 12쪽
15 반딧불이가 많은 숲 (1) 24.07.29 6 1 12쪽
14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6 1 11쪽
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9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7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7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9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2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9 1 13쪽
7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24.07.26 8 1 11쪽
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0 1 11쪽
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7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3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7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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