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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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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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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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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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DUMMY

"세상에, 그럴리가요!"



불루무스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어떻게 감히 쿠미누스 사제님께 배짱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의 사정을 좀 헤아려주십사 하는 것이지요. 그 목걸이가 당장에 꼭 필요하신가요?"



불루무스의 공손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쿠미누스의 노친네 화딱지는 사그라들 길이 없었다.



"불루무스, 내 말에 거역한다고 해서 전혀 좋을 게 없어! 난 이 성의 교회를 책임지는 사제야. 나는 지금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너무 많아. 신앙심이 아니었더라면 전부 팽개치고 잠이나 퍼질러 자고 싶을 정도야. 그런데 지금 너마저 나에게 자꾸 그런 삿된 의심을 들이대고 배짱을 놓는다면, 그때 나는 정말 사제가 아니게 될지도 몰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알아듣겠나, 불루무스? 그깟 말의 편자 하나 때문에 내가 지금 자네에게 이런 말들을 늘어놓고 자네는 나에게 그런 말들을 늘어놓아야 하겠나? 이성적으로 생각해. 의심에 빠져서 물 속에도 풍덩 빠져버린 성 베드로의 선례를 기억하게!"



이제야 불루무스는 연신 허리를 조아리며 쿠미누스 사제의 말끝마다 "예,예" 대꾸했다. 그리고 방금 물 속에 처박아두었던 말 편자 하나를 꺼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숯더미 속에 넣어두었다가 꺼내서 망치로 가늘게 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사한 돼지목걸이 하나가 완성되었다. 그 모습이 쿠미누스에겐 대단히 흡족했다. 그는 목걸이를 받아들자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졌다.



"좋아, 좋았어! 이거면 되겠어!"



그런 뒤 곧장 돼지우리쪽으로 걸어와 바실리쿠스를 부른 것이다.



"바실리쿠스, 너 아까 내 말들을 단순 허풍으로 알아들었다면 그건 정말 크나큰 오산이야! 지금껏 내 성질을 건드린 사람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너는 정말 알고 싶지 않을 걸. 이번 기회에 내가 얼마나 정직하고 굳건한 남자인지, 남아일언중천금의 사내인지 너에게 보여줄 수 있겠구나. 자, 이걸 봐라, 오늘부터 이 목걸이는 니 거야, 바실리쿠스."



바실리쿠스는 사제의 손아귀에 들린 굴렁쇠를 보고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아까 큰소리 떵떵 친 것도 있어서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헹, 사제님이 그렇게 위협을 하신다고 제가 그깟 목걸이 하나 두려워 할 줄 아세요? 저는 돼지목걸이는 커녕 개 목줄을 목에다 건데도 전혀 두렵지않아요. 아니, 그건 둘째치고 저에게 그 목걸이를 씌울 수는 있겠어요?"



쿠미누스와 바실리쿠스는 돼지똥 냄새 나는 우리 문간에서 본격적으로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바실리쿠스는 여전히 땅바닥에 옆드려 누운 채로, 돼지들도 서있는데 지 혼자만 흙바닥에 누워서 큰아버지뻘 되는 사람한테 배짱을 놓았다. 쿠미누스의 양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건 어째서지, 바실리쿠스? 나에게 그런 허풍을 놓는다면 곤란해. 이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니가 될 거야. 나의 의지는 주님으로 충만하고, 이제부터 정말 너를 사람이 아닌 돼지로 보기 시작했거든. 그런데 어째서 내가 너에게 이 목걸이를 씌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거지? 나는 그저 손과 다리만 움직여서, 너의 그러한 배짱을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다."



그리고 춤에서 성수 통을 꺼내 돼지목걸이를 축복하기 시작했다.



"보았느냐, 바실리쿠스? 나는 한낮 돼지목걸이에도 세례를 넣어주는 좋은 사제다. 그런 나의 말을 거역하는 너는 악당이 분명해!"



바실리쿠스는 사제의 팔뚝근육을 슬쩍 보았다. 쿠미누스는 책을 많이 읽는 사제지만 턱걸이를 안 쉬고 한 번에 마흔 개씩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는 축제날에 묘기를 보여주겠다고 한 손으로 사과를 으깨버린 적이 있다. 바실리쿠스는 밖으로 뛰쳐나가 땅바닥에 목을 딱 붙이고 대자로 누웠다.



"제가 이러면 사제님도 별 수 없을 겁니다!"



쿠미누스는 제 발이 저린 사람처럼 진흙바닥에 머리를 푹 누른 바실리쿠스를 이쪽저쪽으로 뜯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제대로구나, 바실리쿠스. 정말 제대로 의표를 찔렸어.... 으음...음!"



쿠미누스는 옷이 더러워지는 걸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방법이 있지..."



하며 쿠미누스가 경비병을 세 번 외쳐 부르자, 구석에 짱박혀서 주사위도박을 하던 위병이 저 멀리서 설렁설렁 뛰어왔다. 쿠미누스는 뒷짐 지고 그 모습을 보다가 외쳤다.



"자네 어디서 근무하는데 그 닭장 뒤에서 나오나?"


"아, 예.... 오줌 싸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제님, 얘는 왜 이러고 있죠?"



쿠미누스는 그에게 목걸이를 건냈다.



"이놈한테 이 목걸이를 씌우게. 내 말은 도통 듣질 않아."



위병은 이게 뭔 소린가 싶다가 먼 산을 바라보고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목걸이를 받아들고 쭈그려앉았다.



"야, 바실리쿠스, 고개 좀 들어봐라."



그 말에 바실리쿠스는 고개를 조금 들었다.



"그로가네 형님이오? 난 지금 형님 말도 들을 기분이 아니에요. 세상에, 쿠미누스 사제님이 이제는 나를 정말 돼지 취급하려고 작정하신 모양이에요. 인간으로서 이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있답니까? 난 형님이 부탁은 커녕 사정사정해도 들어줄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 그런 줄 아세요. 저는 여기 이렇게 있을 겁니다."



위병은 바실리쿠스의 머리에 양 손을 짚고 한 번 힘을 주다가 내려놓았다.



"사제님,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이건 정말 하고 싶지 않은데요. 이녀석 꼴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무엇입니까?"



그 말에 사제가 바실리쿠스는 일벌백계가 필요하다고 고함을 쳐댔다.



마침내 그는 손이 좀 더러워지는 걸 감내하고 위병과 함께 바실리쿠스의 머리를 들어 목걸이를 씌우는 데 성공했다. 완벽하게 패배한 바실리쿠스는 자존심 때문에 한동안 진흙 속에 머리를 처박고 그렇게 누워있었다.



"이제 알겠느냐, 바실리쿠스? 너는 이제부터 돼지우리에서 사는 돼지야. 우리는 너를 돼지로서 취급할 것이니 앞으로 그리 알거라. 한 번이라도 그 목걸이가 너의 모가지에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간, 그 즉시 악마의 꾀임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처벌할 것이야. 우리는 너를 붙잡고 구타할 거야. 난 이제 간다."



돼지우리로 돌아온 바실리쿠스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자는 척을 했다. 말레이카와 민토네는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을 복돋아주려고 했다.



"걱정마라 바실리쿠스. 사제는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이 참에 나와 협력해서 쿠미누스를 무너뜨리는 계획을 세우는 게 어때? 같이 힘을 합쳐서 녀석을 지옥으로 보내버리자고."


"오빠는 그동안 말썽만 피우고 제대로 한 일도 없었으니 자업자득인 면도 있긴 하지요. 대체 어떻게 했으면 쿠미누스 사제님 같은 분이 화를 냈겠어요. 솔직히 나는 이번 문제에서 오빠를 변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앞으로 잘해야죠. 오늘 일을 교훈 삼아서 겉으로나마 똘똘하고 의젓한 모습을 보여야 쿠미누스 사제님도 오빠를 다시 보고 그 목걸이를 풀어주지 않겠어요?"



그동안 자는 척을 하던 바실리쿠스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빠딱 몸을 돌렸다.



"다들 아까부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나는 이 목걸이가 아주 마음에 드는 걸요? 이건 쿠미누스 사제님이 나에게 선물을 주신 거나 다름없어요! 성수까지 뿌려주시는 걸 다들 똑똑히 봤잖아요. 거기다가 이 돼지우리에서 살라는 말도 사제님 깐에는 벌처럼 주신 거지만, 오히려 나는 우리 식구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어서 기쁜 걸요."



마침 밖에 비까지 오는 바람에 바실리쿠스는 온몸에 묻은 진흙을 씻기 위해 쏟아지는 장대비에 몸을 맡겨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얼굴을 문질렀다.



"쟤는 안 될 놈이야. 이런 일을 당하고도 자존심이나 부리다니."


"오빠 이제 그만 들어와요. 감기 걸릴라. 날도 어두우니까 이만 담요 덮고 자요."



하지만 그들의 말은 빗소리에 묻혀서 바실리쿠스에겐 전달되지 않았다. 성 창문에서 기어나오는 횃불의 광원이 폭우에 잠든 가마욱스 지방 시골 땅덩이에 서늘한 그림자를 띄우고 있었다. 그들은 직접 돼지우리에서 나와 그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소동에 곤히 잠들어있던 빈부미가 잠에서 깨어났다.



"이게 무슨 소동이지? 이게 무슨 소동이야? 어째서 밖은 비가 내리고 있는 거지? 그리고 또 왜 바실리쿠스 동생이 이 시간에 돼지우리에 있는 것이야. 바실리쿠스 동생! 너는 지금쯤 마굿간에 있어야 하지 않니?"


"빈부미 오빠, 지금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예요? 바실리쿠스 오빠가 마굿간지기에서 짤린 지 한 달은 됐는데. 먹고 자고 싸는 시간만 빼면 온종일 잠만 자고 있으니 그런 걸 알 턱이 있나."



그러자 빈부미는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그만큼 내가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는 것 아니겠어? 좋은 일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허나 오늘 바실리쿠스에게 있었던 일을 전해듣자 빈부미는 펄쩍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는 사람이었는데, 바실리쿠스는 귀여운 동생이었다.



빈부미는 여물통에 박은 머리를 퍼뜩 들고 눈을 함뿍 뜨더니 사방으로 연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그 덩치는 산에서 잘 먹고 자란 맷돼지에 비견할 만하다. 왜 영주가 이런 덩치를 돼지우리에서 키우고 있는가는 둘째치고, 아무튼 그가 한 번 날뛰면 집이고 뭐고 다 무너졌다.



"죽여버리겠어, 쿠미누스! 죽여버리겠다! 그놈을 기필코 죽여버리고 말겠어!"


"아니,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바실리쿠스 오빠 일 때문에 다같이 심란한데 왜 오빠까지...."



이미 그에겐 사람의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말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빈부미는 쿠미누스 사제의 숙소를 향해 펄쩍펄쩍 뛰어가기 시작했다.



"오늘이야말로 네놈을 죽여버리고 말겠어, 땡중 쿠미누스!"



그 때 숙소에서 자고 있던 쿠미누스는 방 맞은편 자리에 바실리쿠스가 없는 걸 보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왜 침대에 바실리쿠스가 없냐? 오늘 어디 나갔냐?"


"모르겠는데요."



위병이 대답했다.



사제는 비몽사몽한 정신 때문에 오늘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오줌싸러 갔겠거니 하고 다시 자러갔다.



그때까지도 빈부미의 성난 진격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빈부미는 달렸고, 계속 달렸다. 하지만 쿠미누스가 어디 사는지 알지는 못했다. 머리로는 쿠미누스가 있는 곳으로 가겠노라 소리를 질러댔지만 막상 거기가 어딘지는 몰랐고, 그래서 일단 되는대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성을 빠져나오고 발을 가로질러 한적한 숲속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곳곳의 산딸기나 뱀딸기를 따먹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그 모습을 근처에 있던 늑대들이 발견하고 킁킁거렸다.



"이거 정말 횡재했는걸. 이렇게 커다란 맷돼지가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니. 정말이지 전능하신 하나님만큼 강하고 위대한 분은 이 세상에 또 없으시다니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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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반딧불이가 많은 숲 (3) 24.07.29 4 1 11쪽
16 반딧불이가 많은 숲 (2) 24.07.29 6 1 12쪽
15 반딧불이가 많은 숲 (1) 24.07.29 6 1 12쪽
14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6 1 11쪽
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8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6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7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9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2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9 1 13쪽
7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24.07.26 8 1 11쪽
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0 1 11쪽
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6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2 1 12쪽
»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7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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