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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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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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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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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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가 많은 숲 (2)

DUMMY

그레코르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바실리쿠스를 바라보았다.




"방금 말했듯이 마을의 식구들에게, 특히 클리셰 걔가 다 말하더구나. 너는 도르헤 영감을 지키려고 했다면서."




그 말은 사실이었다. 허나 바실리쿠스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의도가 어찌됐건 본인 팔꿈치로 노인을 찌부시킨 것도 사실이다.




"어찌됐건 이 양반이 노망이 나서 제멋대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것도 사실이지 않느냐."




그레코르는 한 번 깊게 숨을 마신 뒤 내쉬었다. 고기를 삶고 남은 고소한 냄새가 젖은 대지의 공기와 맞물렸다. 벌레가 꼬이기 시작하는 고기의 쉰내를 제외하면 누린내는 그렇게 나지 않았다. 향풀을 넣었기 때문이다. 후추와 양파와 운향 영생이가 많이 들어가서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었다. 그레코르는 근처 땅바닥을 짚어보다가 먹고 남은 국물을 어디다 버렸는지 발견했다. 손가락에 묻어나온 국물은 센불에 팔팔 졸여서 끈끈하고 달콤해져 있었다. 그는 버릇대로 국물의 맛을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밤의 그러한 공기가 모두 그의 폐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있었다. 머리는 맑아지고, 한 덩이 지옥이 들어차 있었던 홧홧한 뱃속에는 찬 비가 내리고 이끼가 피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도르헤 영감은 제 버릇대로 살다가 굶주린 사람들에게 붙잡힌 거니 그대로 잡아먹혔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되려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건 모두 이 사람 몫이었어. 내 말은 어차피 영감은 그렇게 붙들린 순간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는 거야. 너는 그걸 구하려다가 실수를 저지른 게지. 네가 일을 잘 마무리했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거야.


사람들은 네가 벌인 일에 화가 나서 영감을 잔인하게 죽여버렸을지도 몰라. 너에게는 더 큰 처벌이 내려졌을 거고. 마을에서 쫒겨났을지도 몰라. 그렇게 된다면 너희 식구들은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됐을 거야. 나는 일이 이쯤에서 마무리 된 걸 오히려 다행으로 본단다." 잠시 후 그는 선언하듯이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 너는 나쁘지 않아. 좀... 소견이 없었을 뿐이지. 이 양반 정신머리도 없어서, 자기가 꽥 하는 줄도 모르고 갔을 거다."




그레코르는 또 한 번 거칠게 술부대를 들이켰다. 그리고 바실리쿠스의 어깨를 툭 치며 목소리를 높혔다.




"그래도 나는 네가 좋다, 바실리쿠스야! 그건 알고 있지?"




바실리쿠스는 이제야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런 형님의 눈에 눈물이 번들거리는 걸 잠시 알아보았다. 서로의 얼굴마저도 분간하기 힘들지만 달이 너무 밝고 또 반딧불이도 많은 밤이었다.




"어쩌면 네가 깔끔하게 그분을 보내드린 걸지도 모르겠다. 머리에 도끼 처박히는 것보단 그 편이 한결 낫잖아. 그게 말이다, 나도 그 일을 좀 해봐서 아는데 한 방에 죽지를 않거든.




사실 그들은 조금 전부터 그레코르가 가져온 술부대를 조금식 나누어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좀 많이 취하게 되자 평소라면 못 나올 말도 나오게 되었다.




"영감님이.... 슬슬 가실 때가 되긴 하셨어! 그지?"


"몇년 전에 아흔을 넘기긴 하셨죠...."


"사람들이 우리 일을 줄여준 셈이 됐네.... 삶아서 살을 다 발라줬으니 편하게 매장만 하면 되겠어."




그레코르가 데려온 암말은 취하면 걸음걸이가 뭉개진다면서 거절했다. 하지만 친구와 단 둘이 있는 자리라면 조금 풀어지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이 사람은 낮을 많이 가리고 사람과 만나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바실리쿠스가 비슷한 변신술사 겨레의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하더라도 좀처럼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이 밤동안 바실리쿠스와 그녀가 대화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망자에게는 눈물보다 기도가 필요한 법이지. 자네는 지나간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게 나을 거야. 가능한 한 빨리 언덕늪으로 가서 사제님들을 모셔와야 해. 장례를 치르고 뼈를 매장하고 유족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용서를 구해. 그들이 자네에게 어떤 짐을 부과하던 묵묵히 따르도록 하고. 사제들에게 본인의 죄를 고한 다음 그들이 내리는 보속을 받게. .... 음 그래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야."




이 말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그레코르도 그 후부터는 음주를 자제했다. 그레코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나가 오줌을 싼 다음 손을 씻고 수풀을 해치며 걸어나왔다.




"자." 그는 다시 죽은 돼지뼈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가자."


"어디로요?"


"어디긴. 사냥하러 가야지."


"사냥을요?"




그레코르는 등에 맨 화살을 꺼내들더니 다치지 않은 손으로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죽은 사람을 이 찬바람 부는 데 계속 둘 생각이니? 영감님은 이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분이야. 가서 뭐라도 좀 잡아와야지 바꿔치기를 할 거 아냐."




바실리쿠스는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뭐라도 돕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심하게 비틀거렸다. 그레코르가 나눠준 술은 딱 기분을 좀 나아지게 할 만큼의 양이었지만 아까 사냥꾼들이 나눠준 것도 있어서 취기가 역하게 올라왔다.




바실리쿠스가 현기증에 괴로워하자 그들은 그를 이곳에 남겨두고 가려고 했다. 바실리쿠스는 재빠르게 사냥꾼들이 있는 곳으로 가 그들을 깨웠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저 이제 그만 자고 싶거든요. 다음 차례는 알아서들 정하시고 저는 잠시 오줌싸고 올게요."




그런 뒤에 대답도 듣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달려나가 숲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선량한 사냥꾼들은 이미 바실리쿠스가 혼자서 상당한 시간을 봐준 것에 만족하고 자기들끼리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정말이지 으슥한 밤이었다. 부엉이가 울고 또 바람 부는 보리밭이 울었다. 이런 시기엔 낮이라면 음침하였을 구석탱이까지 평등하게 어둠이 스며들고, 응달과 양지의 구분이 사라지며, 그래서 약간의 활기가 돌고, 악의에 가득한 사람들의 작당모의가 소곤소곤 벌어지고는 하였다.




바실리쿠스에게 얻어맞은 게랙탱 (6화에서 바실리쿠와 싸우고 패배했던 바로 그 사람) 이 그러했다. 그는 우연히 이 마을에서 만나 평소 어울리던 동향 사람 둘을 더 모아놓고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소란을 피우거나 술집에서 너무 크게 떠들어대면 약간의 눈총을 받게 되는 타지 사람들이었기에 모여서 놀고 싶으면 적당한 아지트를 마련해야 했다.




그들이 정한 곳은 들판에 버려진 잿간이었다. 아주 먼 옛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들판에 화전을 놓곤 했었는데, 침략자들이 처들어와 그들의 땅을 빼앗고 잔혹하게 죽이면서 쫒아냈다. 이곳은 그 시절에 마지막으로 쓰인 잿간으로 거의 다 쓰러져갔다. 억울하게 죽은 옛 사람들을 생각한 것인지 그 원혼을 생각한 것인지 부정탄다며 수백년 내버려두었고 벽과 천장은 허물어져 동네 한량배들이나 비밀기지로 쓰이던 것이 이번에는 이 밤부크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이곳은 허물어진 벽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만 담요로 어찌 잘 이겨낼 수만 있다면 주위에 누가 오는지 잘 살필 수 있고 주위 일대는 사람 없는 들판이라 마음놓고 떠들었다. 게랙탱은 염소한테 옮은 병 같은 것 때문에 사타구니에 비싼 연고를 얇게 발랐는데 그런데도 가려워서 바지 너머로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는데 이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자.




"내 말좀 들어 봐. 우리가 이곳에서 외지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자구. 저들이 우리한테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는 앞으로 수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때까지 우리가 이 고장을 떠나지 않는다면 말이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닥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도 우리 고향 밤부크에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대놓고 차별하는 건 뭐야."


"자네 며칠 전에 바실리쿠스 비스콘티와 싸웠던 일을 말하는 건가."


"그래, 맞아. 이 세상 모든 돼지치기들은 악마가 잡아가기를!" 게랙탱이 소리쳤다. "그 자식은 뭔가 건실한 부분이라곤 없는 한량배야. 내가 전에 들은 말이 있는데 그놈도 따지고 보면 우리랑 비슷한 외지인이더라고. 그런데 왜 이리 대우가 다르지? 내가 그 자식보다 뭐 못한 게 있다고? 내가 바실리쿠스 그 녀석처럼 사고치고 살아봤어라 진작에 쫒겨났을걸!"


"그녀석이 쿠미누스 사제한테 알랑방구를 열심히 뀌었나 보지."


"내 말이 그 부분이야. 녀석은 쿠미누스 사제가 뒤를 봐준다고 해서 그걸 믿고 너무 까분다니까."


"자네, 억울한가?"




그때까지 입을 닫고 있었던 롤마르가 물었다. 그는 이 세 명의 밤부크인들 중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지금은 도시의 관청 서기로 근무, 가장 출세한 인물이다.




"억울하지!"




게랙탱이 외쳤다.




"바실리쿠스 그 새끼가 나한테 먼저 싸움을 걸었는데 영주는 우리 둘을 똑같이 처벌했어."




롤마르가 물었다. "맞아 내 그 부분이 궁금했었는데. 나도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그 자와 한 번 술을 마신 적이 있었어. 나쁘지 않은 친구 같던데. 누군가를 변덕으로 해칠만한 사람은 아니었어. 자네 그 불쌍한 천치에게 무슨 말을 했길레 그자가 자네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가?"


"내가 말 하긴 뭘!" 게랙탱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래, 이 기회에 내가 자네들에게 말을 해주도록 하지.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말이야. 내 말을 잘 듣고 과실이 누구에게 더 많이 있는가 판단하도록 해. 자 이야기 시작한다."




게랙탱은 동향 친구들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과장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단지 바실리쿠스에게 돼지에 관련된 좋은 일거리가 있는지 물어보았던 것인데 놈이 대번에 코웃음을 치면서 '누가 너같은 외지인 불량배한테 일을 맡기겠나. 가서 니가 좋아하는 밤부크 창녀들 머릿니나 한 마리 백원에 잡아주러 가거라. 그게 너한테 가장 어울리는 일자리일 거다.' 같은 말들을 해댔다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허나 진실도 섞을 필요성이 있었기에 그날 자신은 놈에게 맛있는 저녁식사까지 가져다 주러 가는 길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런 사람에게 다짜고짜 모욕과 주먹질을 날렸으니 바실리쿠스 그 인간은 어찌나 은혜를 모르는 악한인가? 그런데도 영주는 사건을 제대로 보지 않고 게랙탱이 외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폭력사건을 무마하였으니 모두 다 한 통속이다. 밤부크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자기 일인 양 얼굴이 시뻘게졌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롤마르가 말했다. "버릇을 단단히 고쳐줄 필요가 있겠는걸."


"자네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어, 게랙탱!" 나머지 한 사람이 소리쳤다. "우리는 동향 사람이야. 타지에서 항상 힘을 합쳐야 해. 자네는 복수를 바라나, 형제? 우리는 모두 형제야. 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언제든 자네와 함께하겠어!"




그러던 그 때, 그들 중 한 사람의 머릿속에 오늘 낮에 있었던 늑대사냥과 숲속에 미끼를 두고 불침번을 서는 사냥꾼들, 오늘의 주인공 바실리쿠스 역시 그들과 함께 있으리라는 교활한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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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딧불이가 많은 숲 (2) 24.07.29 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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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6 1 11쪽
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9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7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7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9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2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9 1 13쪽
7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24.07.26 8 1 11쪽
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0 1 11쪽
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7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2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7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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