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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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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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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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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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DUMMY

"당신은 돼지가 우는 거 가지고 그래 야단이유? 그냥 잠이나 자시지."


"아,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노동으로 피곤해져 있었던 불루무스가 잠결에 외쳤다. "저것들이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데 당신은 잠이 와?"


"그렇게 신경쓰이면 당신이 한 번 나가보시든가."




아내는 대꾸하면서 이불을 당겨 얼굴까지 덮었다. 그리고 몇 번을 더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불루무스는 툴툴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야 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어쩐지 소리보단 목마름 때문에 일어난 것도 같았다. 오랜 세월 가마의 열기를 받고 침침해진 눈이지만 달빛의 도움을 받아가며 어찌저찌 돼지우리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한 손엔 부지깽이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돼지우리 벽간에 한쪽 팔을 기대어 잠시 나막신에 묻은 진흙을 털었다. 어째선지 이번에는 돼지들이 시끄럽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것이 의아하게 생각되어서 그는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보았다.




돼지들은 놀라우리만치 평온하게 모두 잠들어있었다. 잠시 문간에 멈춰서서 돼지치기의 기척이 느껴지지는 않는지 확인했다. 바실리쿠스의 대타로 잠시 근무를 서게 된 사내는 옆 휴게실에서 자고 있었다. 모든 돼지들이 자기들 자리에 정돈되어 있었고, 잠꼬대를 하거나 심지어 코를 고는 녀석도 없었다. 불루무스는 이 밤 내내 그를 못 자도록 괴롭혔던 그 소란스러운 소리들을 떠올렸다.




'그건 도저히 없었던 소리로 칠 수 있는 게 아닌데. 악마가 내게 장난을 쳐놓았던지 아니면 순전히 내가 잘못 들었던 게 분명하군. 방금 전까지 그 난리를 피우던 놈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잠에 들었을리는 없잖아. 그건 마치 여자들이 단체로 비명을 지르는 것 같기도 했어. 고라니 울음소리처럼 말이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끄럽게 울어대던 돼지들의 울음소리가 어느순간 일제히 뚝 그쳤다는 결론만이 그의 머릿속 남아 몽롱한 멍을 때리게 만들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리고 숨 쉬는 것도 불편했다. 마치 이 밤 전체가 마술에 걸려 사람의 채액을 뒤흔들어놓고 보지 못할 것을 보게 하며 또한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게 만든다는 백귀들의 야행이 저 가레랑의 영지 가까운 곳, 고적한 언덕배기까지 어느틈엔가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아까 낮에 숲에서 경청했던 그 이야기처럼 말이다. 불루무스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그 얘기를 숨 죽여 들었었고, 그 때문에 아까 소리를 듣고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이미 겁에 질려있었다. 사람이 겁을 먹으면 사소한 소리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법이다.




인간을 적대하고, 인간을 사냥하며, 무서운 개와 사냥꾼들을 부리는 그들의 왕, 악마들의 전령 아를르캥이 엄청난 수의 망령, 요정, 악마들의 행렬을 이끌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이매망량의 짐승들을 잔뜩 거느린 채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그러나 너무나도 가까운 마을의 일대를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는 전설 속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 속에선 백귀들이 내는 소리가 작아질 수록 사람에게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의 소리가 뚝 그쳐버린 게 연관이 있을까?




그러던 그의 시선에 이상한 것이 밟혔다. 그는 두 눈을 씻고 제대로 보았고, 다시 한 번 창문과 열린 문간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의지하여 녀석들이 자는 게 아니라 모두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깨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 쉬는 소리 외의 나머지 것들을 모두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참으로 신묘하고 기이한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심은 갑자기 확신이 되었고, 그러자 이 모든 상황들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내가 지금 악마들과 같은 공간에 들어와있구나. 녀석들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구나.'




불루무스는 겁에 질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바실리쿠스의 조카를 발견했다. 냅다 그 손을 잡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가 이불을 들추고 벌떡 일어났다. 불루무스는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를 오늘 하룻밤만 집에서 재워야겠다고 선포했다. 그 선포는 집안의 주인인 가장의 위엄이 서린 것이었기 때문에 아내는 쉽사리 반대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돼지똥냄새가 풀풀 나는 것을 데려왔기 때문에 아예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내는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정신없이 오늘이 무슨 불운을 지닌 날인 건 아닐까 하며 속으로 달력을 세어보느라 바빴기 때문에 아내의 이것저것 묻는 소리들을 들을 정신이 없었다. 아내는 점차 짜증이 났고 질문은 윽박과 신경질로 바뀌어갔지만, 불루무스는 침대에 앉은 채 횡설수설했다.




"잠자코 내 말을 들어. 지금 저 돼지우리는 악마에 씌인 게 분명하다니까. 저 돼지새끼들의 눈동자에서 번뜩거리는 사악함을 내 분명히 보았어. 얼마 전에 맷돼지가 아이 팔을 물어뜯어서 죽인 일도 있었지, 분명. 이 마을 돼지들한테 무슨 저주가 내려진 게야 필연코! 쿠미누스 사제가 자리를 비우니까 이런 일이 벌어졌구만. 그 양반 좀 돌긴 했어도 신기가 있거든."




불루무스는 벌떡 일어나 선반에서 검댕이묻은 부지깽이와 망치를 꺼내더니 그것들을 소중하게 꼭 안은 채 침대로 돌아왔다. 그것들은 혹여나 불상사가 발생할 시 집안까지 처들어오는 악마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무기였다. 그러는가 하면 오늘밤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큰 소리로 가재도구들을 뒤적거렸다.




"임자, 부엌에 치즈, 치즈 있나?"




마침내 그가 입안에 뭔가를 잔뜩 오물거리면서 침대로 돌아왔다. 그의 품안에는 마른 과일과 그저께 아내가 만들었던 말랑말랑한 염소치즈, 마늘이 들어간 소시지와 베이컨, 그리고 땅 속에 묻어두었던 좋은 포도주가 들려있었다. 불루무스는 돌연 식탐이 병으로 걸린 사람처럼 그것들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이 사람 지금 집 근처에 향신료 장수나 조개 장수가 지나가며 요란한 목을 뽑아 한바탕 호객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당장에 달려가 가진 것을 모두 담보로 주어서라도 굴과 꿀과 국수와 시큼한 오렌지를 왕창 사들이고는 혼자 배가 터져 죽을 때까지 먹어댈 것만 같았다.




"진짜 큰일날 사람이네 이거!" 그 모습을 보고 아내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보기에 지금 뭐에 씌어도 씌인 사람은 당신이야!" 그녀는 잠결에 정신이 없는 나머지 지금 남편이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침대맡으로 기어들어와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쓰며 지 혼자 해대는 소리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 남편은 어디선가 눈 먼 술을 받아먹고 단단히 취한 게 틀림없었다. 이 사람은 방금 전까지 너무나도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남편이 잠깐 밖에 나갔다 오는 사이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기 때문에, 이 정도 시간이라면 마을을 빠져나가 밤의 어둠이 내려앉은 오솔길을 걷고 걸어, 늘 밤늦게까지 죽어라 마시고 놀던 한량 친구들이 있는 교차로 여관을 들러 맥주나 포도주 서너 잔을 홀짝거리다 온 게 분명하다는 판단까지 내려졌다.




그래서 아내는 어깨의 이불이 벗겨진 부분에 찬공기가 닿는 것도 모른 채 몸을 반만 일으키고는 그 자리에서 남편을 한참이나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따금 한숨을 내쉬었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부부가 싸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오늘 너무나도 피곤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의 손에 연장이 들려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잠이 덜 깬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소한 일쯤은 금방 잊어버리고 남편이 어질러버린 집안의 정리도 내일로 남겨둔 채 일단은 잘 준비를 했다. 소녀를 침대 바닥에 눕혀놓고 좀 헌 이불을(말했듯이 냄새가 났기 때문에) 덮어준 아내는 어린 여자애를 돼지똥간에서 자게 만든 바실리쿠스를 작신작신 씹어먹을듯이 욕하다가 어느새 잠에 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이 혼자 뒤척이거나 작은 소리를 듣거나 하여 깨어나지 않을 듯하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할 즈음, 문밖에서 세 여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적당히 몸을 가릴만한 시골아낙의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는 편한 만큼 짧게 깎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가레랑의 영지에서 이 여인네들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그들이 한밤중에 대장장이네 집의 대문을 조심조심 열어재끼고 주방에 처들어가는 쥐새끼마냥 소리없이 밀고들어가, 찬바람이 들어오기도 전에 재빨리 문을 닫은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그 여인들은, 당장에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불루무스가 데려간 여자아이를 남몰래 깨워 밖으로 끌고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한밤중에 험상궂은 대장장이가 돼지우리로 처들어오더니 당장에 지켜줄 사람이 없는 여자아이를 붙잡고 자기 집으로 끌고 갔다. 그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사람 된 도리가 아닐 것이다.


여인들 중 한 사람이 아이를 깨웠다. 아이는 잠결에 눈을 뜨더니 여인들의 손을 잡고 다함께 숨을 죽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사람 수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사람이 네 명이나 차례차례 문 밖으로 나가는 동안 너무나 많은 찬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 바람에 대장장이의 아내가 한 번 더 잠에서 깨어났고,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걸 보고는 겁에 질려 일어났다.




"여보, 집 문이 왜 열려있지?"




그러자 어둠 탓으로 잘 보이지 않았던 문 틈 사이의 공간 속에서 네 사람의 눈동자가 일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내의 비명소리에 대장장이도 잠에서 깨어나 단숨에 침대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문간에 도착했을 때 집앞에는 저 멀리 도망가는 꼬마아이와 두 마리 돼지, 그리고 도망가는 암말이 있을 뿐이었다.




불루무스는 그 모습을 보고 노여움에 가득차서 우리로 도망가는 돼지들을 쫒아가 그 엉덩이를 걷어차고 마구 때려댔다. 돼지들은 비명을 질렀고, 대장장이는 이 몹쓸 악마의 자식들이 멋대로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와 아이를 데리고 날랐다며 큰소리를 쳤다. 뒤이어 따라온 아내도 돼지들을 욕하고 때리면서 못살게 굴기 시작했다.




이놈의 돼지들을 지금 당장 도살하여 후환을 없애야겠다는 호통소리를 듣고 깨어난 돼지치기와 대장장이가 한바탕 몸씨름을 벌인 일은 여기서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바람 잘 날 없이 봄에서 여름으로 푹 넘어가는 가레랑의 영지에서 또 한 번의 소란이 벌어지고 있던 그 때 바실리쿠스는 늑대가 나온다는 저 머나먼 숲속에 앉아 홀로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그날은 저녁에서 밤이 되는 동안 다른 사냥꾼들이 술부대를 돌려가며 많이 울적해있는 그를 위로해주었고, 그래서 아까보다는 기분이 많이 나아져있었다. 그가 이 밤의 모든 불침번을 자기가 서겠다며 한사코 고집을 부렸기에, 다른 사냥꾼들은 그를 혼자 둔 채 모두 은신처로 잠을 자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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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반딧불이가 많은 숲 (2) 24.07.29 7 1 12쪽
15 반딧불이가 많은 숲 (1) 24.07.29 6 1 12쪽
»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7 1 11쪽
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9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7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7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9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2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9 1 13쪽
7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24.07.26 8 1 11쪽
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0 1 11쪽
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7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3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7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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