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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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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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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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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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DUMMY

바실리쿠스가 그날 밤동안 깜깜한 숲속에서 영주의 사냥꾼들과 술부대를 나누어 마시면서 순번대로 불침번을 서는 동안 돼지우리의 식구들은 그가 돌아오지 않고 밖에서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당연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레이카는 늑대새끼를 불러 성 주방에서 꿀꿀이여물을 받아올 때 바실리쿠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좀 물어보고 오라고 말했다. 늑대새끼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돼지여물이 무거운 나머지 끙끙거리며 끌고 오느라 묻는 건 까먹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잠자코 바실리쿠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다른 우리의 식구들에게도 물어보았으나 그들은 어쩐지 대화를 피했다. 돼지우리 식구들의 수심은 더욱 깊어졌을 뿐이다.




저녁시간이 되었으나 말레이카는 한 입도 먹을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건 민토네도 마찬가지였다. 빈부미는 오늘따라 밥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았고 늑대새끼는 바실리쿠스를 그닥 신경쓸 이유가 없다. 두 여인은 돼지우리에 홀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있으니 두 사람만 남은 그들 자신이 정말 외롭게 느껴졌다.




그 때 마을 곳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땅에 떨어진 도토리 따위를 주워먹는 그레코르가 오랜만에 돼지우릿간에 돌아왔다. 그레코르는 빈부미보다 덩치는 작지만 살가죽의 거뭇한 그을음이며 뻣뻣한 털을 가지고 있었다. 가레랑의 아버지 시절부터 돼지우리에 살았던 그는 가끔씩은 몰래 사람으로 변해 갑옷과 창칼을 차고 영주를 따라 전장터에 나가기도 했었는데,


얼마 전 아버지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로 마음에 병이 생겼는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심하게 떠돌아 다녔다. 그랬던 그가 지금 막 돌아온 것이다. 말레이카와 민토네가 열렬히 환영했지만, 그레코르는 잠시 슬픈 표정을 짓더니 그들의 어깨를 붙잡고 지긋이 떼어놓았다.




"스승님, 사매,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곳을 떠나기로 했어요.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민토네가 언성을 높혔다. "오랜만에 집으로 들어와서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


"아내가 생긴 건가요?"


그 말에 민토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다면 말이 되지. 나는 그동안 네가 마음을 못 잡고 영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됐다. 섹시는 어디있어?"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내도 아니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에요.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는 건 슬픈 소식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는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저는 한 남자를 죽이기로 맹세했어요."




아마 머리 위에 커다란 흙더미가 떨어졌다 하더라도 지금 이 말을 들은 두 사람처럼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말없이 입을 벌려 뒷말을 요구하는 식구들에게 그레코르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갈길이 급하니 짧게 하겠습니다. 우리 영지를 가로지르는 작은 강을 아시죠? 그 강가에는 물레방아를 이웃두고 사는 아낙이 한 명 있습니다. 제가 그곳을 잠시 나들이 겸 다녀오고 있었는데, 왠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문짝이 열려있고 거기에 돼지꼬리 하나가 쑤북 나와있는 거에요. 그건 저희같은 집돼지가 아니라 진짜 야산을 돌아다니는 맷돼지 꼬리였죠. 저는 생각했어요.




'아! 저 못된 맷돼지 새끼가 또 어디 으슥한 집구석에 들어가서 잠자는 애기들의 팔이나 머리통를 뜯어먹으려고 하는구나!'




그러자 제 마음 속에 천불이 화뜩이고 저런 세상의 못된 것들은 모조리 다리를 분질러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곧바로 변신을 풀고 제가 무기들을 숨겨두는 곳으로 달려갔어요. 그곳에는 그간에 꿍쳐두었던 가죽 갑옷이며 창칼들이 모두 손질된 채로 관짝에 들어있었죠. 그 멋진 무기들을 들고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사태는 이미 늦은 뒤였어요.


맞아요, 생각을 잘못 한 거죠. 제 멍청함을 탓하세요. 그럴 시간에 놈을 막으면서 사람들을 부르는 게 옳은 처사였어요. 저 스스로가 영웅이라던가 그 비슷한 거라도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리 나이를 먹고도 주먹질로 한껏 뽐내볼 기회나 찾던 한량이었네요.


놈은 막 아이의 팔을 뜯어먹고는 집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곧장 놈에게 달려들었어요. 그런데 놈도 저처럼 변신술사였죠. 그것도 저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거인으로 변하더군요. 놈은 한손에 커다란 가시곤봉을 들고 저를 공격했어요. 자존심 때문에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일은 생각도 못했고요, 상처를 입고 수치스럽게 도망쳐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그 집으로 가보았죠. 그게 오늘 아침의 일입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신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죠. 저는 그 과부를 알았습니다 아이가 죽고 이 세상에 더 이상 그녀의 가족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따라가기로 결정한 것 같아요. 저는 그분을 나무에서 내리는 동안 맹세했습니다.


이 세상 끝까지 놈을 추적하기로요. 제 몸을 갈아서라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제 죗값을 조금이라도 덜고, 또 이 상처의 수치를 되갚아줄 수 있다면 더더욱이요."




그레코르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마쳤다. 그는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는 가볍고 단단한 옷을 입고 칼날을 꺼내어 석양에 비춰보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식구들을 향해 작별의 절을 했다. 말레이카는 그가 팔에 심한 부상을 입었는지 조금 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민토네는 그가 다시는 돼지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추억많은 가레랑의 영지와 이 돼지우리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어찌 세상에 그런 놈이 있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니. 할 말이야 많다만, 네 결심이 그렇게 굳은 이상 내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겠구나. 차라리 너를 축복하고 말겠다. 그레코르야, 하느님과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앞으로 네가 하는 모든 일들에 축복이 있기를 바라겠다. 하지만 함께 웃으며 살던 추억을 생각해서 부디 남은 식구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하고 가거라."


"당연히 그래야죠. 다른 식구들도 많이 있지만 여길 먼저 온 거예요. 제 집같은 곳이니까요."




그레코르는 고개를 돌려 동생들을 찾았다. 그는 빈부미를 깨워 마지막 작별인사를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빈부미는 콜콜 자느라 깨어나지 않았다.




"요 녀석아, 형 가는데 정말 안 볼 거야?"




결국 그레코르는 그의 볼살을 찰싹찰싹 두드리면서 일어났다. 그것이 그들의 작별인사가 되었다. 식구들이 빈부미를 흔들어 깨우려고 했지만 그레코르는 더 자게 두라고 했다.




"바실리쿠스는 어디있죠? 마구간에 있나요?"


"바실리쿠스 오빠는 마구간에서 짤렸어요." 말레이카가 대답했다. "며칠 전부터 돼지치기로 일하면서 저희랑 같이 살아요. 그런데 오늘 늑대사냥하러 간다고 영주님과 함께 나가더니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았어요. 사람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러고보니 마굿간 식구들이 분명 같이 갔을텐데, 클리셰 그 못된 년은 물어봐도 이리저리 피하면 전혀 알려주지 않았어요. 분명 무슨 사달이 난 게 분명해."


"내가 오는 길에 보아하니 영주님 밑에서 사냥꾼 일을 하는 사람들도 돌아오지 않았지. 아마 숲속에 천막을 펴고 야영을 하고 있을 거야. 거기에 썩은 고기 같은 걸 놓고 늑대들을 유인하려는 거겠지. 나도 몇 번인가 그렇게 했던 적이 있거든. 아마 바실리쿠스도 거기에 있겠네. 그러면 영주가 왜 걔를 거기다 두고 왔는지가 의문인데. 무언가 사고를 친 건 맞을지도 모르겠어. 그쪽은 마침 내가 가는 방향이니까, 중간에 들러서 바실리쿠스를 만나볼게."


"그럼 다행이네요."


"지금 문제는 나뿐만이 아니야. 스승님과 사매와 다른 돼지 식구들도 조심해야 해. 아이가 돼지한테 해코지를 당했고, 그 일을 저지른 돼지는 잡히지 않았어. 사람들은 화풀이 대상이 필요할 거야."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걱정하지 말거라." 민토네가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네 일에만 전력을 다하는 게 맞을 듯 싶구나."




민토네와 말레이카는 마지막까지 눈물을 흘리며 그레코르를 송별했다. 그레코르는 가레랑 영지의 외양간과 개집들을 일일히 방문해서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모두 작별의 뜻을 전한 뒤에 짐을 가볍게 하고 영지를 떠나 숲으로 향했다. 그 때는 저녁에서 밤으로 기울어가는 시기였고 황혼에 어스름이 적당히 버무려져 있었다. 그레코르가 숲의 어귀에 이르자마자 그곳에서 심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초로를 바라보는 야생마 한 마리가 마지막 여정으로 그를 따라가기 위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레코르를 전송하고 민토네와 말레이카는 가족을 떠나보내게 되어 슬프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밥을 먹고 기운을 차리기로 했다. 그래서 밥을 먹고 말레이카는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와 집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말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집앞에 멈춰서는 것이 보였다.


말레이카가 못 본 채 하였지만 이번에는 클리셰가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언니, 지금 시간 괜찮아요?"




클리셰는 세 번 물어도 대답이 없자 발굽 소리나게 달려가서 앞을 딱 막아섰다.




"왜 자꾸 사람을 무시하는 거예요?"


"이거 참 이상하구만..." 말레이카가 땅바닥에 콧구멍을 댄 채 중얼거렸다. "말이 사람처럼 말을 하다니 말이야. 그런데 머리는 좀 이상한 모양이네. 돼지새끼한테 말을 다 걸구 말이지..."


"이 사람 좀 봐!" 클리셰가 말했다. "설마 아까 내가 언니를 좀 피했다고 이리 심하게 대하는 건 아니겠죠? 그게 정말이면 언니는 정말 큰일 날 사람이야. 우리가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그래 너 말 잘 했구나. 이년아, 우리 사이니까 하는 말인데, 너는 내가 바실리쿠스 오빠 때문에 심란해 하는 걸 알고 있었겠지? 너는 늑대사냥인지 나들인지 가레랑을 따라갔으니까 말이야."




말레이카가 쏘아붙였다.




"그런데 너는 내가 아무리 물어보아도 그 어떤 대답도 시원스레 해주지 않았어. 오히려 나를 피하기까지 했고. 내가 당시엔 몰랐는데,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속에 천불이 나더라니까. 이건 다들 한꺼번에 짜고 나를 무시하거나 놀려먹은 게 분명해. 나는 식구가 걱정되어서 안부를 물으러 갔던 건데 문전박대를 당한 셈이지. 그러니 어찌 내가 너를 사람으로 볼 수가 있겠어?"




클리셰는 그 말을 들으니 말문이 뚝 막혔다. 그러더니 설움이 복받쳐서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왜 언니는 혼자 나를 오해하고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거예요,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저년이 울면 내가 싹싹 빌 줄 아나보네."




클리셰는 한동안 자기 감정 때문에 울었다. 그리고 울 만큼 울고 나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구요! 지금 바깥에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면 언니는 나한테 아주 싹싹 빌어야 할 걸."




말레이카는 코웃음 치고 무슨 말을 하는가 일단은 들어보기로 하고 앉았다.






잠시 후, 돼지우리에서 잠을 자고 있던 민토네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쪽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여보니 그건 말레이카가 울부짖는 소리였다. 뒤이어 무겁게 진흙밭을 밟으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말레이카가 우리 문을 박차고 들어와 민토네의 품에 안겨 울부짖었다.




"얘, 얘야, 갑자기 무슨 일이니? 꿀꿀거리지만 말고 사람의 말을 좀 해봐."




그녀의 뒤를 역시 클리셰가 훌쩍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민토네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드디어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그녀는 사실 은연중에 바실리쿠스가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녁에 식구 하나를 떠나보내고 또 역시 하나를 떠나보내게 되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잠결에도 두 눈에 눈물이 차올라 소리를 질러댔다. 돼지우리는 삽시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저 돼지새끼들이 오늘따라 왜 저럴까."




불루무스 (2화에서 쿠미누스의 옹고짐에 결국 돼지목걸이를 공짜로 만들어주었던 그 사람) 는 낮의 노동이 끝나 침대에 피곤한 몸을 누이고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다가 저 시끄러운 소란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여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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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반딧불이가 많은 숲 (2) 24.07.29 6 1 12쪽
15 반딧불이가 많은 숲 (1) 24.07.29 6 1 12쪽
14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6 1 11쪽
»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9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7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7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9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2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9 1 13쪽
7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24.07.26 8 1 11쪽
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0 1 11쪽
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7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2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7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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