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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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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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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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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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하는 개 인간 (1)

DUMMY

그 때 사내들이 공터를 떠나며 말을 불렀고, 그녀는 딸기 몇개를 더 집어먹다가 뒤를 돌아서 달려가버렸다. 대장 늑대는 그들이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숨을 죽이다가 동료들과 함께 여전히 몸을 땅 표면에 가까이 붙인 자세로 천천히 기어나왔다. 다른 녀석들은 방금 전까지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정신나간 것처럼 사지를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놓인 부댓자루에 이빨을 놓으러 가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부댓자루는 아주 컸다. 밤중에도 군불의 연기처럼 피어나오는 김의 막대한 열기가 보였고, 그 속에는 토막한 사슴의 고깃덩어리가 푸짐하게 쌓여있었다. 몸통이며 머리 목 할 것 없이 다양한 부위가 뒤엉킨 퍼즐 조각처럼 뒤섞여있었으며, 그 단면을 보아하니 깔끔하고 훌륭한 솜씨였다. 사슴의 다리는 자루의 바닥에, 몸통은 중간에, 10조각 이상으로 소분된 머리는 자루의 상부에 놓여있었다. 대장 늑대는 조각의 모듬이 온전하지 않다는 걸 쉽게 눈치챘다. 놈들은 자기들이 먹을 건 조금 가져가고 나머지는 여기에 놓고 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대장은 자연히 교활한 늑대들 특유의 예리한 경계심으로 상황을 살펴보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시선은 그쪽으로 고정되었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입 안에 피의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고깃덩이가 입속에 들어가고부터는 그런 질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늑대들은 맘놓고 포식했다. 밤부크 사람들과 가레랑의 사냥꾼들이 여전히 뒤쪽에서 싸우고 있을 때, 그들의 입속에는 피가 주륵주륵 묻어나는 고기와 말랑말랑 꼬릿내 나는 내장이 앞발에 밟힌 채 날카로운 어금니로 작신작신 잘려나가고, 제들 몸뚱이에 아직 남아있는 생명의 기운으로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늑대들은 더없이 포식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배가 불러오는데도 부댓자루속에 남은 고기의 양은 넉넉했다. 대장 늑대는 가장 묵직한 부댓자루를 들고 나머지는 그 속에서 고깃덩어리를 하나씩 꺼내 입에다 문 다음 자기들 구역으로 달아났다.




이제 근방 숲속에는 소란에 밀려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반딧불이들과 청명한 달빛을 제외하면 사냥꾼들과 밤부크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싸우면서 서로를 흥분시켰다간 슬슬 무기를 꺼내고 피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술기운은 달아났고, 차가운 밤공기가 몸 속에 잠든 감기 기침을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 밤부크 사람들은 아직도 저 사냥꾼들 중에 한 놈이 분명 바실리쿠스일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바실리쿠스는 돼지의 뼈를 품에 안은 채 부지런히 들판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레코르에게서 모든 일들을 전해들었고, 그를 눈물로 송별한 뒤의 울적한 마음을 담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생각해보죠. 왜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어야 하죠?" 머리가 가장 잘 돌아가는 롤라드가 어둠 속에서 외쳤다. "우리는 바실리쿠스 비스콘티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겁니다. 그놈이 내 친구를 모욕했기 때문이오. 우리는 밤부크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가레랑에게 신세를 지는 사람이라면 저희들 얘기를 들어보셨겠죠.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가레랑의 사냥꾼들이다. 우리는 늑대들을 유인하기 위해 숲속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 죄도 없는 우리를 덮지고 심하게 때리는 너네들은 누구냐?"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밤부크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너네가 롤라드와 게랙탱과 그리고 피오르크냐?"


"맞아요."


"왜 갑자기 나를 때렸냐?"


"우리는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를 때리러 온 겁니다."


"근데 왜 나를 때렸냐, 이 개새끼들아?"


"아, 우리가 때린 사람이 당신이었나요?" 롤라드가 외쳤다. "그렇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바실리쿠스인 줄 알았거든요."


맞은 사냥꾼은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바실리쿠스가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은 맞다. 왜 그녀석을 때리러 온 거냐? 비겁하게 한 사람을 여럿이서 다구리치러 오다니 너희들은 뭐하는 것들이냐?"




비겁하다는 말에 게랙탱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에겐 모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롤라드가 그를 막았다. "가만 있어 멍청아."




"그렇다면 저희가 하는 말을 한 번 들어보시지요. 여러분도 저희를 이해하게 될 겁니다." 롤라드가 외쳤다.




사냥꾼들은 저들끼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내 본인들이 지친 만큼 저쪽도 똑같이 험하게 맞고 지쳤으리란 생각이 들어 이제는 대화할 시간이라는 결론이 났다. 밤부크 사람들과 사냥꾼들은 한 곳에 모였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사냥꾼들 중 한 사람도 밤부크 출신으로, 아주 어렸을 적에 부모님을 따라 이곳에 왔다는 기막힌 우연이 있었다. 바로 바실리쿠스로 오인당하여 맞고 바지까지 벗겨질 뻔한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방금 전까지도 씩씩거리며 화를 삭히지 못하다가(자신이 가장 많이 맞은 사람이기에) 저들이 동향 사람들이라는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을 때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사냥꾼들은 익숙하게 불을 피웠다. 자리가 따뜻해지자 달아났던 취기가 돌아왔고, 그들은 몽롱해진 상태에서 롤라드의 설명을 들었다. 술부대가 손에서 손으로 옮겨질때마다 모두들 취하는 걱정도 없이 한 모금씩을 마셨다. 다들 거나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냥꾼들 중 한 명이 말했다.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는 정말 명예를 모르는, 천하의 못된 불한당이야."


"그러니 저희에게 바실리쿠스를 넘겨주시지요." 롤라드가 말했다. "이미 저희는 충분히 녀석을 때려주었습니다. 이제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화해해봅시다. 자,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는 어떤 사람이죠?"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냥꾼 중 하나가 대답했다.




"그 친구 지금 여기 없는데."




롤라드는 게랙탱을 쳐다보았다. 게랙탱은 말없이 고개를 두번 끄덕였다.




"아까 오줌싸러가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그렇다면." 롤라드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때리고, 또 그 사람 때문에 서로간에 바보처럼 싸워댔던 겁니까?"


"그렇게 된 셈이로군."




모두들 잠시 말이 없었다. 스스로의 행동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잠시 후 피오르크, 그러니까 밤부크 사람들 중 나머지 한 사람이 외쳤다.




"그렇다면 바실리쿠스만 실리를 취한 셈이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주목을 받자 잠시 움찔했다. "내 말은 정작 사건의 목표였던 바실리쿠스는 폭력을 면하고, 애먼 사람들만 아프게 되었다는 거야. 그런 건 세상의 이치가 아니잖아? 그러니 녀석은 우리 모두에게 죄를 지은 셈이 되는 거야. 이렇게 맞아야 할 사람은 못 맞고 우리들만 서로 흠씬 맞게 되었으니 더없이 억울하지."


"그렇게 되는 건가?" 사냥꾼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다면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그 녀석은 정말 세상에 다시없을 비겁자로구만!"




모두가 그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는 영문도 모르는 사이 영주의 사냥꾼들과 밤부크인들의 공공의 적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래!"


"그래!"


"그렇게 되는 거로군!"


"우리는 아까 그 녀석을 위로해주고 술을 나누어 주었었어!" 사냥꾼이 외쳤다. "이제보니 쓸데없는 짓이었구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건, 모두가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 취해있는 한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더 나올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만 맞은 채로 끝나는 건 억울하지 않겠어요?" 게랙탱이 덧붙였다. "놈을 밟아버립시다! 바실리쿠스의 계략에 우리들은 휘말려버리고 만 거예요. 녀석은 분명 어딘가에서 우리들을 비웃고 있을 거라고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 좋아! 바실리쿠스를 때려주자!" 사냥꾼이 외쳤다.


"흠씬 때려주자고!"


"그리고 바지를 벗겨!"


"바지를 벗기고 거시기가 까매질때까지 차버리자구!"


"항문에 새알을 넣고 밟아버려!"


"그리고 여자들이 보게 해!"


"놈은 동네에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게 될 거야!"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를 파멸시키자!"




그렇게 이들은 무시무시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게랙탱은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는 억울한 일을 당했고, 이 세상 사람들이란 것은 모두 악마에 지배당하며, 세상은 협잡의 구렁텅이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를 위해 힘써주시고 부당한 일에 함께 분노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복많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형제이며 친구입니다!"


"이 일을 쿠미누스 사제에게 말해보는 건 어때?"




롤라드가 제안했다. 모두 다같이 좋은 생각이라며 입을 모았다. 바실리쿠스가 쿠미누스의 비호를 받고 있다면, 가장 먼저 건드려야 하는 것은 사제의 신뢰니까. 게랙탱은 이 밤동안 아주 큰 수확을 얻은 셈이었다.




한 편 이 때 바실리쿠스는 집앞에 도착해있었고, 오도가도 못한 채 문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식구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귀를 기울여보니 안쪽에서는 코 고는 소리와 들려오는데 그 소리는 평소보다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돼지뼈를 품 안에 꼭 안은 채로 이리저리 망설이다가 일단 벽에 등을 기대 누웠다. 그리고 그 상태로 밖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그를 발견한 건 아침 일찍 일어난 말레이카였다. 말레이카는 조용히 바실리쿠스를 깨웠고, 안으로 들여와 아침을 먹였다. 그리고 온 식구들을, 외양간의 소며 말이며 닭이며 개며 염소 양 고양이 거위 할 것 없이 모두 한 자리에 모아 그날의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들이 얼마나 울고 또 원망했으며, 결국에는 어떻게 바실리쿠스를 용서하고 그가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인정해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서술하지 않겠다.


아직 이 밤에는 아주 큰 일 한 가지가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실리쿠스가 외로움과 쓸쓸함에 잠겨 눈가 한 켠으로 마른 눈물을 삼키고 있었던 그 때, 그의 곁으로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한 마리 지나갔다. 그것은 성안에 밤이 내리고 사람들이 모두 잠자러 들어간 이후부터 경비병이 돌아다니는 돌벽 사이를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어두운 옷을 입고 있었고, 그림자 속을 오가는 고양이처럼 살콤살콤 움직였다. 이곳의 지리를 아주 잘 아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성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느순간 내딛은 발에 뭔가 단단하고 물컹한 게 확 차이는 것을 느꼈고, 화들짝 놀라 뒤로 껑충 물러났다. 이 생물은 운동신경이 아주 좋았던 것이다.




그것은 바닥에 착지한 그 자세 그대로 얼어있다가, 방금 자신의 발에 채인 정체불명의 물체가 시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은 뒤에야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 방금 그게 뭐였는지 얼굴을 내밀고 자세히 관찰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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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반딧불이가 많은 숲 (3) 24.07.29 4 1 11쪽
16 반딧불이가 많은 숲 (2) 24.07.29 6 1 12쪽
15 반딧불이가 많은 숲 (1) 24.07.29 6 1 12쪽
14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3) 24.07.29 6 1 11쪽
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8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6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7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9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2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9 1 13쪽
7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24.07.26 8 1 11쪽
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0 1 11쪽
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6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2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7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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