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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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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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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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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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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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DUMMY

바실리쿠스와 게랙탱은 코피를 흘리면서 서로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부어댔다. 하지만 바실리쿠스는 게랙탱의 추잡한 행위들까지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그런 걸 사람들에게 알렸다간 저 놈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자기한테 무슨 짓을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실리쿠스는 게랙탱을 향해 송아리 귓밥덩어리, 악마의 똥구멍에서 사는 놈, 무례한 천치에 달팽이 꼽추, 사고만 치고 다니는 외지인, 부랑자 쓰레기, 죽고 나서 시신이 개한테 뜯길 놈, 나무 옹이구멍에서 잉태한 개잡놈, 등등의 말은 하여도 수간에 관련된 말만큼은 입에 담지 않았다.



사태가 일단락되고 바실리쿠스는 돼지우리로 돌아와 바닥에 누웠다. 문간에서 영주의 시종 바르간트가 혀를 끌끌 찼다.



"바실리쿠스 너 이제 큰일 났다. 쿠미누스 사제님이 돌아오면 그분께 뭐라고 말할래? 그동안 네가 천성은 착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제보니 아주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구나."



바실리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르간트가 돌아가고 창밖에서는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지고 있었다. 영주 가레랑도 자신의 성으로 돌아와 침대에서 잠을 자려는데 아내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가레랑은 피곤한데 잠도 못 자게 해서 억울한 마음이었지만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가 들어는 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베베라스의 마리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의지해서 남편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바실리쿠스 말이에요. 보자보자 하니까 오늘은 성의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람을 때리고 유세를 부리는데, 이게 다 당신이 하인들을 너무 봐주고 잘 대해주니까 업신여기는 거라고요. 보고도 모르겠어요?"



마리가 두번째 자식을 아들로 낳은 이후로 그들은 이미 몇번이나 이런 대화를 반복해왔었다. 별 소득도 없고 결론도 없는 말싸움이다. 가레랑은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여보, 몇 번이고 말하는데 바실리쿠스는 내 하인이 아니라 그냥 여기 성에 사는 사람이야. 유세는 뭔 유세! 수틀려서 싸운 거 가지고. 내일 얘기해."

"내일은 얼어죽을 내일이에요? 당신이 그런 식으로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니까 저것들이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나대는 걸 왜 몰라요? 아버님이 살아계셨으면 지금 이런 꼴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아 진짜, 쫌!" 가레랑은 아버지 얘기를 듣고 기분이 나쁘기도 해서 소리를 질렀다. "너 낮에는 나랑 암말도 안하다가 왜 맨날 잘 때 다 돼서 이러는데?"



가레랑은 다시 배갯잇에 머리를 파묻었다. 마리는 남편의 성질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당신이랑 언제 말을 안 했다고 그래요? 내가 말을 좀 할라치면 당신은 뭐 했어요? 맨날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대답도 건성이고 뭔 말을 할라치면 나중에 얘기하자고만 하고, 날 무시하고! 솔직히 말해봐요. 당신은 맨날 저 밖에 싸돌아다니고 난 여기 성에 처박혀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단 둘이 있을 만한 상황이 언제 또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말 좀 하려고 하는데 왜 당신은 맨날 나를 밀어대는 거예요?"



가레랑은 도무지 어이가 없었다. 요즈음 밤마다 성질머리가 불같아지는 게 아이를 벤 것이 틀림없다. 생각해보면 아예 아닌 말도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려왔다. 하지만 가레랑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재주 따위는 도무지 없는 사람이라 이런 때에는 잠자코 아내의 말을 듣는 것 외에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방법을 몰랐다.



"내가 이 일을 도시의 고명한 수사님한테 말했는데 그분이 글쎄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그 잘 배우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당신이 나한테 너무하다고 하잖아요. 나는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될 사람이 아니라고, 부부 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편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그렇게 말했다고요."



나중에 가레랑이 도시에 가서 그 수사를 추궁하자, 그 수사는 자기는 부부 간의 문제가 있다면 아무튼 양측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식으로만 말했을 뿐인데 부인이 곡해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술 한 잔을 같이 하고 헤어졌다. 아무튼 지금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여보 오늘은 그만 자자구. 나 내일 늑대들 잡으러 숲에 가야 해."



마리가 그 말에 따져들었다.



"그건 또 뭔 소리?"

"어제 성에 늑대가 왔었잖아."

"그런데요?"

"그럼 요즘 놈들이 많아졌다는 거 아냐."

"그쵸."

"그러면 언제 또 처들어올지 모르고 말이야."

"응."

"그럼 또 피해가 생기기 전에 놈들을 잡으러 가야지."



마리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요. 그러시겠지. 아주 훌륭하신 영주님 납셨어 그래."



가레랑은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키고 아내를 쏘아보았다.



"이 사람아, 또 왜 그렇게 나를 헐뜯고 그러는 거야. 왜 이 문제에서까지 당신의 비난을 들어야 하는 거지? 나도 더 이상은 못 참겠어. 그냥 말해. 속시원하게 말을 해보라고."



마리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남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가레랑을 비웃었다.



"우리 고명하신 영주님께선 늑대들을 잡으러 바쁘시니 집구석에 처박힌 여편네한테는 상의할 필요도, 알릴 필요도 없다는 거겠죠. 이젠 다 알겠어요. 알겠다구요. 그러니 내가 그 얘기를 오늘 처음 들었어도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괜찮아요. 나는 이제 다 이해했어요."

"아, 이 사람아 왜 또 말을 그렇게 해?"

"왜요? 내가 뭐 없는 말 했어요.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가요. 가시라구요."



가레랑은 아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채고 그럼 내일 당신도 같이 숲에 나가서 바람 좀 쐬면 될 거 아니냐고 했다. 마리는 조금 튕기다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마리는 그 후로도 이것저것을 말했고 가레랑은 그것을 들었다.



"이번 문제만 해도 그래요. 하인들을 관대하게 대해주는 건 좋지만 가끔은 그게 너무 지나쳐요. 그러니까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라고요. 이 참에 녀석들을 단단히 훈계해서 영주로서의 위엄을..."



한편 바실리쿠스는 얻어맞고 퉁퉁 부어터진 얼굴을 습포로 감싼 채 말레이카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그는 지금 아파서 잠도 잘 못자고 있었지만, 게랙탱도 비슷할거라 생각하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말레이카는 싸운 이유를 물어보아도 그가 한 치 대답도 하려 하지 않아 속이 무던히도 상했다. 민토네는 울타리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게랙탱인가 뭔가 하는 그 녀석은 처음 볼 때부터 뭔가 싸한 기분이 들더라니까. 내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지. 조만간에 분명 무언가 꺼림칙한 짓거리를 하려고 할 것 같아."



말레이카도 녀석을 욕하느라 바빴다.



"그 망할놈의 새끼는 지옥의 악마나 잡아가라고 하세요. 얼굴을 만창을 내놨어, 그냥. 이걸 어떡하면 좋아. 그 자식 내 눈에 걸리기만 해 봐, 발가락을 씹어서 아예 절름발이로 만들어 줄 거야."



더 이상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바실리쿠스는 퉁퉁 부운 입술을 힘겹게 움직여가면서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왜 다들 아까부터 내가 실없이 얻어터진 것마냥 말들을 해요? 분명 아까 그놈이 자기가 졌다고 부탁이니 그만 하자고 말하던 걸 똑똑히 들었지 않아요?"

"그래도 결국 더 많이 맞은 건 오빠예요."



바실리쿠스는 그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그놈한테 졌다고 말하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싸움이고 이기고 지는 게 뭔 소용이에요. 결국 얻어터진 건 오빤데."



바실리쿠스는 그 말을 듣고 제 혼자 씩씩거리다가 모두에게서 등을 돌린 채 누워 담요를 홱 덮었다. 말레이카가 웃긴 이야기를 들려주며 달래보며 했지만 담요 속에서 웃음만 쿡쿡 참는 소리가 들릴 뿐, 바실리쿠스는 그녀가 가까이 올 때마다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말레이카가 담요를 물고 벗겨내려 하자 바실리쿠스는 두 손으로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민토네는 그 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잠시 후에 민토네는 늑대새끼를 어느 한 구석으로 불렀다. 늑대새끼가 다가가자 그곳에는 약초가 한 포기 바닥에 피어있었다. 말레이카는 녀석에게 이 약초를 주면서 이것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들을 모아오라고 시켰다. 바깥에서는 한창 늑대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잠시 후에 녀석이 돌아왔다. 늑대새끼는 겨우 풀 몇 줌을 모아왔을 뿐이었다. 민토네는 이거라도 어디냐 하며 풀들을 입에 넣고 씹어 바실리쿠스의 얼굴을 감싼 습포 위에 발라주었다. 잠시 후, 누군가 돼지우리의 문을 두드렸다. 바실리쿠스가 나가보니 그곳에 머리수건을 쓴 마리에뜨가 서있었다. 마리에뜨는 성에 사는 하녀인데 잠도 못 자고 이런 일을 하게 되어 몹시 귀찮다는 투였다. 바실리쿠스는 면목이 없었다. 마리에뜨는 습포를 벗기고 등불을 대어 한참 보더니 미련하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싸우고 앉았다며 핀잔을 주었다.


'약 바르러 왔으면 약이나 바르고 가던지 성질을 낼 건 또 뭐야.'



하지만 바실리쿠스는 치료받는 입장이니 거따 대고 뭐라 할 수는 없다.



"여기 바른 이건 약초야?"



마리에뜨는 바실리쿠스의 얼굴에 발린 씹은 약초를 손가락으로 집더니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하녀들이 평소에 입는 더러워져도 되는 옷이 아니라 외출할 때 입는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돼지 냄새가 나지 왜...."



바실리쿠스가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돼지우리에 있었으니까 돼지 냄새가 나지."

"그래? 그렇다면 뭐...." 마리에뜨는 고약을 다 바르고 습포를 덮어준 뒤에 돼지우리로 들어가는 바실리쿠스의 등에다 대고 말했다. "너 그 꼴로 내일 숲은 어떻게 가려고?"

"숲?" 바실리쿠스가 뒤돌아보았다. "무슨 숲?"

"늑대 잡으러. 넌 안 가? 난 따라갈 건데."

"글쎄, 난 영주님한테 들은 거 없다."



바실리쿠스는 다시 들어가려다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는 마리에뜨한테 말했다.



"야, 그 위험한 데 뭐 좋다고 따라가냐?"

"바깥 공기나 쐬는 거지 뭘 그래?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많이 가는 걸. 영주 마님은 물론이고 마님들 시녀 아가씨들에다 다른 하녀들도 따라가고 라랑튀아 수녀님도 근처 수도원 가는 길까지 따라가신댔어. 그러니 말하자면 나들이도 겸하는 셈이지."



바실리쿠스는 어이가 없었다.



"이 여편네들 좀 봐라. 사내들끼리만 가도 위험해서 신경이 곤두설 판인데 여자들이 옷 빼입고 도시락 까들고 따라가면서 희희낙락들 하겠다는 거야? 뭐 하러 사냥은 하고 토벌을 하고 그래? 정말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네."

"싫으면 됐다? 안 가면 되는 거지 뭘 그리 성질을 내고 그러냐?" 마리에뜨는 옷섶을 풀럭거리며 웃었다. "아가씨들이 위험에 처하면 용감한 아저씨들이 칼 차고 구해주러 올 거거든. 너 같은 돼지치기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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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2) 24.07.29 9 1 13쪽
12 영주가 바실리쿠스에게 내린 벌 (1) 24.07.28 7 1 11쪽
11 개와 사람을 반쯤 합쳐놓은 24.07.28 8 1 12쪽
10 산사과 같은 머리 24.07.27 10 1 12쪽
9 너도밤 나도밤 24.07.27 13 1 11쪽
8 너 제정신이냐? 24.07.27 1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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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더 많이 다친 사람은 바실리쿠스였다 24.07.26 11 1 11쪽
5 안 돼요! 24.07.26 11 1 13쪽
4 닭대가리 게레할드 24.07.26 17 1 11쪽
3 늑대의 습격 24.07.26 13 1 12쪽
2 난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걸 24.07.26 28 1 11쪽
1 쿠미누스 사제의 억지 24.07.26 9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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